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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의 신
아룬다티 로이 지음, 황보석 옮김 / 문이당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에는 파라반이라는 천민이 나옵니다. 계급사회인 인도에서 파라반은 야자수 수액을 채취하는 천민인데요. 계급제도인 카스트의 가장 밑바닥에 존재했던 사람들입니다. 이 천민 계급은 파라반, 펠리야, 풀라야 이렇게 하는 일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렸고, 주요 등장인물 중 한 사람인 벨루타는 야자수 수액을 채취하는 파라반이었던 거죠. 파라반들은 신분이 높은 힌두교도들과 기독교도들이 만지는 어떤 것에도 손을 대면 안됩니다. 우산을 써도 안됩니다. 말을 할 때는 자신의 입김이 상대에게 향하지 않게 입을 가려야 합니다. 이런 파라반인 벨루타가 신분이 높은 아무와 사랑에 빠지는 게 화근이 됩니다. 벨루타는 자신이 들어서려는 터널의 유일한 출구가 자신을 말살시키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서지 못합니다. 그 사회 법칙을 어긴 죄로 그는 끔찍한 댓가를 치루게 됩니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계급이 중요하지 않고, 세상의 법칙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을 둘러싼 사회는 그런 모습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아룬다티 로이는 <작은 것들의 신>에서 그런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순차적으로 들려주지 않는데요. 그래서 무엇이 어디서부터 꼬였는지를 알기 위해 가족의 과거로, 더 깊고 오랜 과거로 이야기가 파고듭니다. 소피 몰이라는 소녀의 장례식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그 사회 법칙을 깬 남녀가, 특히 신분이 낮았던 남자가 강간죄를 뒤집어쓰고 개처럼 두들겨맞고 누명을 벗지 못한 채 죽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지배권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본성이 냉철하게 폭력으로 증명되는 거죠.
<작은 것들의 신>에는 시간의 축이 두 개 존재합니다. 이란성 쌍둥이 중 여자아이였던 라헬이 고향 아예메넴으로 돌아오는 일을 기점으로 하는 시간의 축과 소피 몰이라는 소녀의 죽음을 기점으로 한 과거의 축이 있습니다. 죽던 당시 아홉 살이었던 소피 몰은 이란성 쌍둥이 남매인 에스타와 라헬의 외사촌이었습니다. 영국에서 잠깐 놀러 와 있던 소녀였죠. 그런데 이 죽음이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발생했는지 약간 모호한 상태로 진행됩니다. 그런데 과거로 이야기가 돌아갈 때면 꼭 소피 몰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소피 몰이 죽은 직후, 소피 몰이 살아 있던 당시의 모습들이 하나씩 등장하다가 왜,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에까지 이르죠. 소피 몰이라는 소녀에게 특별한 점이 있다기보다는 소피 몰의 죽음이 이 소설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의 과거에 의미심장한 시간의 점이었기 때문입니다. 소피 몰은 과거에 일어났던 많은 사건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사건이었고,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과거를 회상할 때면 소피 몰을 기점으로 시간을 끌어다 대게 됩니다.
이란성 쌍둥이인 라헬과 에스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야기 초반에는 대체 어쩌자는 건지 알기가 좀 힘듭니다. 전혀 귀에 익지 않은 인명에 지명에 직업이름에... 게다가 어떤 일이 일어났고 어떤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지가 불분명하거든요. 그런데 뒤로 가면서 라헬과 에스타의 어머니인 아무의 이야기 쪽으로 비중이 서서히 높아지더니 후반부에 이르면 아무와 벨루타의 이야기가 폭발적으로 쏟아집니다. <작은 것들의 신>의 매력은, 이 책이 독자에게 친절하지 않은 방식으로 현재와 과거를 오가면서 무언가 사건이 일어날 조짐을 독자 스스로 느끼게 만드는 데 있습니다. 자잘한 암시와 불길한 그림자가 점점 어두워지는 셈인데요. 그러다 후반부에서 속도가 빨라지면서 사건의 진실이 한꺼번에 쏟아집니다. 이 후반부의 주인공이 바로 아무와 벨루타입니다. 신분차에도 불구하고 운명적으로 사랑에 빠졌는데, 도저히 해피엔딩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죠. 게다가 이미 책 앞부분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암시를 읽은 뒤라면 더더욱 불안해지죠.
이 책에서 중요하고도 아름다운 게 바로 아무와 벨루타의 사랑입니다. 계급을 뛰어넘으려는 의식적인 행동이 아니라 정말 사랑에 빠진 사람이 하필이면 다른 계급이었던 셈입니다. 이 두 사람의 관계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벨루타는 아무를 강간했다는 누명을 쓰고 개처럼 맞습니다. 그리고 경찰서로 끌려가죠. 경찰 관계자는 사실 강간은 없었다는 사실을 안 뒤 아무의 가족을 위협합니다. 결국 있지도 않은 벨루타의 혐의는 엄마인 아무를 구하려는 꼬마 에스타의 한마디로 완성되고 맙니다. 과연 그 사랑이 벨루타가 속했던 사회로부터 배신당하고 죽기까지 할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 해답은 이야기의 맨 마지막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아무와 벨루타는 사랑에 빠졌습니다. 벨루타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일자리, 가족, 목숨까지 잃게 될 거라는 사실을.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연인이죠. 발각되는 날로 모든 게 끝이니까요. 그래서 두 사람은 본능적으로 작은 것들에만 매달립니다. 개미에게 엉덩이를 물린 자국이나, 뒤집혀서 제 힘으로 일어나지 못하는 풍뎅이나, 거미줄의 일부, 먼지, 썩은 잎사귀를 보면서 웃을 수 있을 뿐입니다. 우연히 잡은 거미에게 자신들의 운명을 투영해 거미가 하루를 더 살아남으면 기뻐하는 식이죠. 자신들의 믿음을 나약하고 작은 것에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벨루타는 그런 작은 것들의 신이 됩니다. 두 사람이 헤어질 때 했던 유일한 약속은 단 한가지입니다. “내일”이라는 한마디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