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알라딘도서팀 > 스티븐 킹 특별 기자회견 in 런던

최근 스티븐 킹의 2006년 작 <셀>이 국내 출간되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얼마 전 킹은 또 한편의 새로운 작품 <리시 이야기>를 발표하였는데요. 지난 11월 9일 런던 외신기자협회(FPA)에서 열린 스티븐 킹의 특별 기자회견장에서 오간 이야기들을 정리해 전합니다. (제공: 황금가지 출판사)

사회자: 따로 소개할 필요조차 없는 최고의 작가인 스티븐 킹은 마흔 권이 넘는 소설로 전 세계 독자들을 가슴 졸이게 했습니다. 킹 씨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이자 거의 대부분의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된 작가입니다.
오늘 이 자리는 킹 씨의 아주 특별한 새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바로 <리시 이야기(Lisey's Story)>입니다. 킹 씨의 새 책이 특별한 이유는 우리의 예상과 달리 이번에는 공포가 아니라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지요. 킹 씨의 새 책을 영국에서 소개할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지금부터 약 40분 동안 킹 씨가 기자 여러분의 질문에 답할 것입니다. 그럼 킹 씨에게 마이크를 넘기겠습니다.

스티븐 킹: 고맙습니다. 그런데 사회자께서는 저를 아신 지 얼마 안 되신 것 같습니다. 한때는 제가 ‘기네스북에 오른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였거든요. 잠시, 아주 잠시뿐이었지만요. (웃음) 그 기록은 오래전에 깨졌습니다. 누가 새 기록을 세웠는지는... 기억이 안 나네요. 물론 기록을 세운 본인은 알고 있겠지요. 지금의 저는 그냥 평범한 ‘글쟁이(writing guy)’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원래 책을 홍보하기 위해 나서는 사람이 아닙니다. 커다랗게 써 붙인 작가의 사인이나 시끌벅적한 분위기 같은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리시 이야기>는 제게 매우 특별한, 뜻깊은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이 여러 가지 의미에서 제가 지금껏 쓴 소설 중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영국의 독자들께 제가 직접 책을 소개하고 싶었고, <셀(Cell)>(밀리언셀러클럽 51, 52)을 출간하여 큰 성공을 거둔 호더 출판사가 자리를 마련해 준 덕분에 이곳에 올 수 있었습니다. 영국에는 <자루 속의 뼈>를 출간했을 때 와 본 후로 오랜만에 다시 오게 되었습니다. 지난번 영국 여행은 좋은 만남으로 제 기억에 남아 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 같군요. 자, 이제 여러분의 질문에 답하도록 하겠습니다. 편하게 물어봐 주세요.

Q. <리시 이야기>가 자신의 최고 걸작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공포가 아니라 사랑을 다룬 이야기이기 때문인가요?

A.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기는 힘듭니다. 단지... 가끔, 아주 특별한 작품이 나올 거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고나 할까요.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모든 작품이 자기 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가장 쓰기 힘든 작품에 가장 정성을 쏟게 마련이지요. 때로는 그 작품이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임을 알면서도 그렇게 합니다. 그건 마치 장애를 지닌 아이를 정성껏 보살피는 부모의 마음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쓴 책들 가운데 어느 것이 그런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웃음)

하지만 가끔 지금 쓰고 있는 글이 정말로, 정말로 특별한 작품이 될 거라는 예감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글을 쓰려고 앉아 있는데 책 속의 이야기가 제 정신의 모든 방을 완전히 차지하고, 이야기 속의 언어가 머릿속에 떠올라 점점 더 뚜렷해지는 경험을 할 때가 있지요.

<리시 이야기>는 어쩌면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도 있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책의 첫 문장은 좀 우울합니다.
“너무 유명한 사람의 배우자는 대중의 눈으로 보면 투명인간이나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유명 인사들을 보면 실제로 그렇거든요. 아, 정치인의 경우는 좀 다르지요. 로라 부시 같은 사람은 꽤 유명하니까요. 남편을 위해 열심히 선거 운동을 했고, 실제로 남편이 당선되는 데 큰 몫을 했습니다. 힐러리 클린턴의 배우자도 꽤 유명한데 그 사람은 자기가 알아서 유명해진 거고요. (웃음)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남편도 유명하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대개 유명인의 배우자를 주목하려 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의 이야기를 써 보고 싶었어요. 주목받지 않는 사람이 주목받는 사람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어떻게 살아갈 힘을 주는지 그려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아내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스티븐슨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원고를 이틀 만에 뚝딱 써 냈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아내에게 원고를 보여 줬습니다. 사실 저도 원고를 완성하면 제일 먼저 제 아내에게 보여 줍니다만, 스티븐슨의 아내는 원고를 읽고 겁에 질려 굉장한 악평을 했다는군요. 아예 불쏘시개로 던져 버리라고 했대요. 스티븐슨은 아내가 시키는 대로 했답니다. (웃음) 그러고는 원고를 완전히 다시 썼지요. 그게 바로 오늘날 우리가 읽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입니다. 사람들은 아직도 “스티븐슨의 걸작이 불쏘시개가 되었다니 아깝군.”이라고 말하지만... 글쎄요, 불쏘시개가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웃음)

어쨌든, <리시 이야기>에서 주인공의 남편인 스콧 랜던은 매우 유명한 작가입니다. 그는 도서관 준공식에 참석했다가 광적인 팬의 총에 쓰러지고 말죠.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자기 목숨을 챙기려고 도망가기에 바쁜 와중에 오직 그의 아내인 리시만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은 그녀만은 남편을 구하러 달려옵니다. 이 장면을 그려 보면 리시는 오직 하나뿐인 구원입니다. 다른 것들은 모두 그늘에 묻히고, 단 하나의 구원만이 빛납니다. 리시이지요. 남편을 구하기 위해 달려오는 그녀 말입니다. 이런 생각이 제 머릿속에 떠올라 하루하루 더 또렷해졌고, 리시와 랭던의 깊은 사랑은 제 안에서 나날이 강해졌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쓰는 것이 최고의 작품이 될지 어떨지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저 멋지디 멋진 문장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그것을 쓸 뿐입니다. 작가뿐만 아니라 기자 여러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어느날 잠에서 깨어나 보면 여기가 어딘지도 잘 모르겠고, 간밤의 숙취로 정신이 혼미한 지경이라고 해도 쓸 수밖에 없지요. 그것이 바로 ‘쓰는 일’의 본질입니다. 이번에는 그 일이 아주 특별하게 느껴졌지만요.

Q. 킹 씨는 그동안 수많은 공포 소설을 써서 유명해지셨는데요, 정작 킹 씨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건 뭔가요? 또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요?

A. 어제까지는... 조지 W. 부시가 제일 무서웠습니다. (폭소) 아니, 정말이에요. 진짜로. 어제 미국에서 중간 선거가 있었는데, 그 사람 코가 아주 납작해졌더군요. 또 어제 저녁에 출판사 파티에 갔다가 사람들 얘기하는 걸 들어 보니 럼즈펠트 장관이 경질되었다고 하던데, 그 얘기를 들으니 문득 <오즈의 마법사>가 떠올랐습니다. “마녀는 그렇게 죽었습니다. ”였던가요? (웃음)

사실 부시 개인을 미워하는 건 아닙니다. 그보다는 그토록 강대한 군산복합체를 통제하는 힘이 그토록 유별난 신앙과 결합하여 유치한 감성을 지닌 사람에게 부여되었다는 사실을 혐오하는 거지요. 그건 정말로 두렵습니다. 미국인들이 그러한 현실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점도 싫습니다. 2000년도 대선에서 600표나 적게 획득하고 대통령이 된 사람인데 말이지요...
제가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죽음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 하는 것 말입니다.

Q. <리시 이야기>의 주인공은 베스트셀러 작가의 아내인데요. 킹 씨 자신의 현실에서 소재를 찾은 것이 아닌가 궁금합니다. 책에서 킹 씨 자신의 이야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됩니까?

A. 당연히 나올 만한 질문입니다. 저는 작품을 책으로 출간하기 전에 꼭 아내에게 보여 주고 의견을 듣습니다. 평소에는 아내가 좋은 의견을 들려 주는데, 이번에는 그러더군요.
“스티브, 이 원고는 출간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 사람들이 당신은 스콧이고 나는 리시라고 오해하겠어요.”
기록을 위해 분명히 말하지만, 저는 스콧이 아니고 아내는 리시가 아닙니다.

책을 읽다보면 스콧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옵니다. 만일 제가 스콧이라면 저는 이 책에서 제가 저지른 범죄들을 고백하는 셈이 되는데, 전 그러지 않았거든요. 또 리시는 고졸 학력에 아이가 없는 여성이지만, 제 아내는 대학을 나와서 아이를 셋 낳았고 소설을 여섯 권이나 썼습니다. 저는 아내가 풍부한 교양과 풍요로운 정신 세계를 가진 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콧과 제가 닮은 점이 있다면, 똑같은 서재를 가졌다는 사실입니다. 책에 나오는 스콧의 서재는 제가 글을 쓰는 방과 아주 똑같아요. 여기저기 어지럽게 쌓인 책과 원고들, 책상, 양탄자, 모두 그대로입니다. 5년 전에 폐렴에 걸려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가 서재를 싹 치워놨더군요. 가구도 치우고 양탄자도 걷어내 버렸어요. 맨바닥을 드러낸 서재에 들어갔더니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소리가 울렸는데, 예전에 어머니 댁을 치울 때가 생각났습니다.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신 후에 동생과 함께 집을 청소할 때에도 그런 소리가 났었지요. 내가 죽으면 아내도 이 서재를 정리하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게 10년 후가 될지, 아니면 12년, 15년 후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요.

Q. <리시 스토리>는 매우 감성적인 소설인데, 킹 씨가 이제까지 써 왔던 스릴러 소설들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라고 봐도 되겠습니까?

A. 제가 이제껏 쓴 책들은 모두 감성적이었습니다. 저의 관심사가 바로 독자의 감성을 어떻게 공격할 것인가이거든요. 저는 독서가 반드시 지적 유희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요. 헨리 제임스나 이디스 와튼의 지적인 작품을 읽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감성적인 작품을 주로 읽고 감성적인 작품만을 씁니다. 무엇보다 제 안에서 나온 것만을 쓰려고 하고요. 기본적으로 저는 사람의 감정을 치료하는 의사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저를 호러 작가라고 부릅니다. 저는 ‘호러 작가’라는 꼬리표가 붙는 것을 거부한 적이 없습니다. 거부한 적은 없지만 순순히 인정한 적도 없지요. 단지 호러 장르가 유행했기 때문에 호러 작가라고 불렸을 뿐, 저는 다만 제 일을 했을 뿐입니다. 바로 독자들의 감정을 공격하고 놀래키는 일 말입니다.

데이트 약속을 깜박 잊게 만드는 것, 불 위에 올려놓은 저녁밥을 홀랑 태우게 만드는 것, 런던발 뉴욕행 비행기 안에서 뉴욕이 가까워질수록 아쉬워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제 직업입니다. (웃음) 제가 하고 싶어하는 일이고요. 만약 독자가 제 소설을 다 읽고 잠자리에 들었을 때 때 침대 밑에 뭔가 있지 않을까 불안해 한다면, 대성공입니다.

하지만 저는 독자들을 겁에 질리게 하는 것만큼 웃게 만드는 것도 좋아합니다. <리시 이야기>에서처럼 독자들에게 슬픔을 선물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독자들은 이 책에서 깊은 슬픔과 따뜻한 유대감을 함께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감성적인 이야기는 언제나 같은 곳에서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건 바로 제 머릿속, 제 마음속, 제 경험속이지요.

Q. 첫 장편인 <캐리>(스티븐 킹 걸작선 1)를 출간할 때의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쓰레기통에 처박힌 원고를 아내인 태비사가 건져내서 출판사에 보내게 되었다면서요?

A. 아내는 제 책의 첫 번째 서평자이자 충실한 조언자입니다. 이 얘기는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만... 사실 <캐리>를 쓸 때 편집자가 작품의 결말에 불평을 제기했습니다. 졸업 무도회 장면에 뭔가 대재앙 같은 게 필요하다고 했죠. 제 본래 의도는 무도회에 가서 돼지피를 뒤집어쓴 캐리가 눈물을 흘리며 뛰쳐나가는 거였는데, 그걸로는 부족하다더군요. 캐리가 복수하는 장면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캐리의 초능력으로 체육관에 모인 사람들을 다 결딴내는 걸로 가자고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안 났어요. 그런데 아내가 체육관 천장의 파이프를 터뜨려서 물을 뿌리고 감전시키는 건 어떠냐고 하더군요. 정말 천재적인 생각이었지요.

사실 편집자나 할리우드 제작자들에게 원고를 보여주면 칭찬밖에 돌아오지 않습니다. ‘와우, 이건 정말 멋진데요!’라거나 ‘제가 읽은 소설 중에 최고예요’,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 있어요!’, ‘성서보다 훨씬 잘 썼군요!’ 같은 소리만 하죠. 그러고 나서 꼭 한다는 말이 ‘그런데 한두 가지 문제가 있는데 말이죠... 아니, 진짜 한두 가지예요.’ 그 다음에 열두 쪽짜리 수정 제안서가 날아옵니다. (웃음)
하지만 아내는 그러지 않습니다. 최고의 비평가예요.

Q. 부부 금슬이 아주 좋으신 것 같아서 여쭤봅니다만, 성공적인 결혼 생활에 꼭 필요한 것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A. 반드시 결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저는 일부일처제를 믿습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을 믿지요. 사랑이라는 게 있다면 바로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Q. 올해 두 편의 소설을 발표하셨는데요. 어떻게 그렇게 책을 빨리, 많이 쓰시죠?

A. 전 유난히 두꺼운 책을 많이 썼습니다. (웃음) 왜냐하면 상상의 세계로 떠나는 게 즐겁기 때문입니다. 전 이야기를 쓰는 걸 좋아해요. 책을 많이 쓴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올해 초에 발표한 <셀>은 5년 전에 구상을 시작했습니다. 호텔 앞에서 휴대폰으로 통화하는 여인을 보고 이런 생각이 떠올랐지요. ‘만일 저 여자가 휴대폰으로 이상한 신호를 받고 사람을 죽이고, 죽이고, 누가 쓰러뜨릴 때까지 계속 죽인다면?’ 사실 꽤 예쁜 여성이었는데 말입니다. 세련된 모습이 미국 사람이 아니라 꼭 유럽 사람 같았어요. 매니큐어도 아주 예쁘게 발랐고... 그런 여자가 갑자기 휴대폰 때문에 미쳐 날뛴다면 누가 믿겠냔 말이지요. 그런데 사실 그런 꼴을 당해도 싸다고 봐요. 전 휴대폰을 정말, 정말 싫어하거든요. (웃음) 실제로 전 휴대폰이 없습니다. 왜 없냐고 사람들이 물어보면 그렇게 대답해요. ‘당신이 휴대폰을 소유하는 게 아니라, 휴대폰이 당신을 소유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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