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강수정 옮김 / 생각의나무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다 읽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남의 독서일기를 읽을 때 늘 그렇듯, 나는 내가 읽은 책에 관해 쓴 글을 먼저 읽고 이 책을 다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한다. 이 책의 저자에 그 정도의 예의는 차리는 편이 예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가 읽은 책을 나도 읽고 이 책의 각 장을 소화하는 편이 좋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편이 좋겠다. 그래서 결국 다른 책 읽어가면서 이 책을 읽어야 해서 시간이 한참 걸렸다는 이야기.

나는 책을 닥치는 대로 읽고 음악을 닥치는 대로 듣는 편이다. 책들과 음악들, 영화들 사이에 줄을 세우고 그들을 분류하는 작업은 익숙하지 않다. 익숙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지만, 그런 필요성이 있지 않은가 생각하는 이유는, 결국은 책들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식하다는 말은 모른다는 말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뭘 알고 있는지 모른다는 데도 적용된다.

<독서일기>의 저자인 알베르토 망구엘은, 작가 설명에 따르면 유명한 작가이자 번역가이자 편집자라고 한다. (프로필 자체가 꽤 이상적이다) 게다가 학창시절에 서점 점원으로 일하다가 무려 보르헤스를 만나게 되는데, 시력을 잃어가던 보르헤스의 "책 읽어주는 남자"가 된다. 덕분에 보르헤스가 책에 덧붙이는 독특한 촌평을 얻어들을 기회를 얻게 되었고, 거기서 문학적 영감을 받는다. 게다가 그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외교관인 탓에 이탈리아, 영국, 타히티, 캐나다 등지를 옮겨다녔다고. 운이 겁나 좋았던 셈이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그가 읽은 책들을 열거한 독서일기가 아니라는 사실에 있다. 흔히 독서일기라 함은, 자기가 읽은 책에 대한 단상을 붙이는 데 지나지 않지만, 망구엘의 <독서일기>는 그가 여러번 반복해 읽은 책들 중 12권을 골라 한달에 한 권씩 다시 읽으면서 단상을 정리한 책이다. 다시 말해, 새로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를 깊이 파고들어간 책이다. "독서는 편안하고 고독하며 느릿한 감각적인 행위다"라는 자신의 말에 가장 적합한 형태의 독서를 했다고도 볼 수 있다.

스스로 해박한 독자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다독을 해 온 사람이니, 여러 번 읽은 책을 한 달 동안 다시 읽으면서 생각에 잠긴다고 상상해보라. 얼마나 할 얘기가 많겠나.

그는 10월에 <네 사람의 서명>을 다시 읽었다. 자, 이 독서일기에는 <네 사람의 서명>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되어 있지 않다. 줄거리를 모르고, 책을 모르고 이 글부터 읽는다면 망구엘이 인용하는 인용구에만 관심이 치우칠 수 밖에 없을 정도다. 하지만 <네 사람의 서명>을 최소한 한 번 정도 정독해 본 독자라면, "국외자는 왓슨처럼 드러난 것 이상을 보지 못한다"는 말에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그리고 저자가 여행을 하고 집에 돌아오고의 과정에서 신변에 일어난 자질구레한 일들이 자연스럽게 책과 섞인다. "홈스의 도시(내가 처음 영국에 갔을 때 찾으려 했지만 당연하게도 끝내 찾지 못했던 그 런던)은 완벽하게 허구이고, 실재하지 않는 현실의 반영이다"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을 것이다.

책에 대한 불만이라면, 왓슨을 왜 굳이 웟슨이라고 썼는지, 그리고 <피네건의 경야>로 이미 잘 알려진 책을 언급하는데 왜 굳이 <피네건즈 웨이크>라고 썼는지 하는 것들일 것이다. 저자는 한 권의 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수많은 책을 인용하고 거기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낸다. 그야말로 보르헤스 아닌가. 끝없이 두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책읽기다. 1년에 책 12권이라고 말하지만 아마도 120권도 넘을 것이다. 관련된 책과 관련되지 않은 책들 모두가 한 사람의 서가에 꽂혀있고, 거기서 끝없이 길은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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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7-09-23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너무 좋았어요. 이제, 그림일기와 독서의 역사를 읽어볼까 생각중이랍니다.

marina🦊 2007-09-23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 나서 망구엘이 쓴 책을 다 사버렸어요. 연휴 동안 열심히 읽어야 할텐데요. 이 책 정말 너무 좋더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