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이라고 말해
우웸 아크판 지음, 김명신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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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월드컵 직전까지, 각국 전력 분석만큼이나 자주 들려오는 소식은 남아공의 극도로 불안정한 치안에 대한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아프리카에 대한 뉴스가 폭력과 무관하기란 얼마나 힘들었나. 아프리카 문학이 (인종차별을 비롯한)정신적 폭력과 (부족간의 대학살과 같은)물리적 폭력을 주로 다루는 건 당연해 보인다. 우웸 아크판은 나이지리아 출신의 예수회 사제인데, 미국에서 석사 학위를 받으면서 <뉴요커>와 같은 매체에 단편을 발표해왔다. <한편이라고 말해>는 그렇게 발표했던 단편을 모은 소설집이다. 그 자신이 직접 돌아본 케냐, 나이지리아, 에티오피아, 르완다의 현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첫번째 단편 <크리스마스 성찬>의 무대는 케냐. 주인공 소년은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는 집에서 형제 자매들과 복닥거리며 크고 있다. 그는 한참을 고대하던 학교에 갈 수 있게 되었다는 설렘에 들뜨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누나가 몸을 파는 일을 그만둘 수 없다. 누나가 창녀촌에 들어가 돈을 모으겠다는 생각을 말할 때, 말리고 싶지만 말릴 수 없는, 학교에 너무 가고 싶은 소년의 마음이 절절하게 그려진다. 대체 이들의 크리스마스는 어떻게 될까. 대부분의 이야기가 가난과 굶주림, 아동 학대, 종교 및 인종 분쟁를 다루고 있고, 주인공은 어린이들이다. 소설집의 제목이 된 “한편이라고 말해”는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설 때 살아남기 위해 꼭 해야할 말, 그 어떤 종교의 기도문보다 효과적으로 아이를 살릴 수 있는 한 마디다. 자의로 선택할 수 없었던 부족의 이름 때문에 혹은 종교 때문에 언제라도 죽을 수 있기 때문에 부모는 “사람들이 물으면, 너는 그들과 같은 부족이라고 말해. 알겠니?”라고 아이에게 당부한다. 그 말에 숨은 뜻이 부모의 죽음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모르는 아이의 순진함이 잊을 수 없는 여운을 남긴다. ‘한편이라고 말해’라는 제목의 단편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편집의 제목이 된 데는, 아프리카의 현실을 관통하는 뼈아픈 한마디가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한편이라고 말해>는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에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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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을 깨다 - 우리는 어떻게 해서 종교라는 주문에 사로잡혔는가?
대니얼 데닛 지음, 김한영 옮김, 최종덕 해설 / 동녘사이언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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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개미 한 마리가 있다. 개미는 풀잎을 타고 열심히 오르고, 떨어지고, 다시 오르고 또 오른다. 이유? 개미의 뇌가 창형흡충이라는 작은 기생충에게 점령당했기 때문이다. 뇌 기생충은 개미의 목숨이야 어찌되건, 자기 자손에게 이득이 되는 위치로 개미를 조종한다. 이같은 일이 인간에게도 일어날까. 꼭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인간은 종교를 위해, 하나의 생각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고, 고통을 용감하게 받아들이고, 목숨을 내던지지 않던가. 인간에게는 번식을 위해 무엇이든 하려는 욕구가 내재해 있지만, 동시에 유전적 명령을 초월하는 능력이 있다. 리처드 도킨스가 ‘지적인 영웅’으로 여기는 생물철학자 대니얼 데닛의 종교비판서 <주문을 깨다>의 부제는 이렇게 묻는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 종교라는 주문에 사로잡혔는가?’
<주문을 깨다>는 사회과학 분야에서 다루어지던 종교 비판을 진화생물학적으로 파고든다. 다윈의 진화론에 기반을 두고 미국을 텍스트로 해 풀어가는 이 책은 신은 망상이라는 도발적인 주장을 펴나간다. 종교에 대해 과학적 분석을 하려는 시도만으로도 불경하다거나 신성모독이라는 말을 듣는 나라에서 데닛은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한다. 무엇을 믿는가가 왜 중요한가? 당신의 종교는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하는가? 종교는 우리를 도덕적으로 만드는가? 현실적인 예시를 통해 논리를 이해하기 쉽게, 때로 유머러스하게 펴나가기 때문에 술술 읽힌다. 예컨데 말장난으로 무신론자를 유신론자로 바꾸는 방법이 있다. 만일 신이 크고 작은 모든 생명체를 만들어 낸 어떤 것(어떤 것이든)의 이름이라면, 신은 결국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과정일 수도 있다는 식이다. 종교가 인간을 구한다면 베트남 전쟁 때 담배에서 큰 위안을 얻고 구원받았다고 느낀 병사들은 어떨까. 담배도 인간을 구원한다고 말할 수 있나.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긴급하게 제기하는 문제는 종교적 양육과 교육이 어린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당연하게도, 이 책이 성가대석에 앉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할 수밖에 없음을 명심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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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6-5 리졸리 & 아일스 시리즈 5
테스 게리첸 지음, 박아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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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인 줄 알았던 여자가 부검대 위에서 깨어난다. 법의관 마우라 아일스 덕에 생명을 구한 그녀는 병원으로 이송되지만 그곳에서 안전요원을 살해하고 인질극을 벌인다. 인질 중 한명은 공교롭게도 마우라의 지인이자 강력반 형사인, 무엇보다도 만삭의 몸인 제인 리졸리. 인질극은 종결되고 범인 두 사람은 사살되지만 마우라와 제인은 이 사건이 단순 인질극이나 테러리스트에 의한 범죄가 아님을 직감하고 수사를 계속한다. 테스 게리첸은 ‘국가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 알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을 스릴러 장르로 소화해냈다. <외과의사>에서부터 이어지는 ‘제인 리졸리 & 마우라 아일스 시리즈’를 읽어온 팬이라면 절대 놓치지 말 것. 이 시리즈가 금시초문인 사람이 시리즈에 입문하기에도 매력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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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을 엄벌하다
로익 바캉 지음, 류재화 옮김 / 시사IN북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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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놀라운 수출력은 비단 맥도날드 햄버거와 <아바타>, 아이팟에 그치는 게 아니다. 미국은 ‘톨레랑스 제로’ 정책도 수출했다. 관용과 인내심 전무, 절대 봐주기 없기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톨레랑스 제로’는 사소한 경범죄도 엄벌하는 강경한 형벌 정책을 일컫는다. 1990년대 뉴욕 시장이었던 루돌프 줄리아니의 그 유명한 ‘범죄와의 전쟁’과 일련의 형벌 정책에서 비롯된 말이다. 그는 빈민층을 위한 사회복지 예산을 축소하고 대신 교도소를 지었는데, 그 교도소의 입주자들은 공교롭게도 빈민층과 (흑인을 중심으로 한)이주자들이었다. 이런 뉴욕의 형벌 정책은 전세계로 수출되었고, 신자유주의의 물결을 타고 남미로 북유럽으로 국경을 넘어 자리잡았다. “벌금형은 부르주아와 프티부르주아에게! 집행유예는 빈민에게! 징역은 극빈 무산자에게!” 프랑스의 사회학자 로익 바캉이 1999년에 쓴 <가난을 엄벌한다>는 1980년대 이래 20년간 서구에서 감옥이 팽창하고 강경한 형벌 정책이 부상하게 되는 이유와 그 양상을 보여준다. 신자유주의의 바람이 한국을 비껴가지 않은 탓에, 이 책이 제기하는 문제는 한국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보이는 것만으로도 방해가 되고, 공공장소에서 소란은 물론, 사건 사고를 일으킴으로써 항상 뭔가 불안하고, 불편하고, 불쾌하고, 짜증나게 만드는 빈민에 대한 치안 및 형벌 업무 법제화는 ‘범죄와의 전쟁’ ‘공공장소 재정복’ 같은 군사적 수사법과 함께 한국에서도 뿌리를 내렸다. 기업은 세계 경쟁의 명목 하에 철저히 국가의 보호를 받지만 서민층과 빈민층은 국가의 지원이 줄어드는 현실 앞에 속수무책이다. 시장은 커지고, 모든 것이 경쟁이 되고, 국가는 별 하는 일이 없다. 그런 세계적 흐름 속에, 노동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자들을 ‘쓸어다 담는’ 동시에 ‘쓸어다 버리는’ 형벌 제도가 인기를 얻고 있다. 이 책의 문제제기가 10년 전 미국과 유럽에 대한 것이라 현실감각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책 말미에 실린 로익 바캉 인터뷰를 읽어볼 것. “다 신자유주의로 개종해버린다면, 신자유주의 정부란 국민의 사회적 경제적 보호에 대한 무관심, 무능력을 내건 정부인데, 그렇다면 "나, 하는 것 전혀 없음"을 내건 정치인들을 우리가 뽑고 있는 것입니다. 정치인들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제공하는 자인데, 이제 사회 안전/사회복지 대신 범죄 안전 정도나 제공하고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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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유 클로델 - 거침없는 호흡으로 삶과 예술을 이야기한 카미유의 육필 편지
카미유 클로델 지음, 김이선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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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카미유 클로델 서간집. 현존하는 모든 편지의 원문을 고증을 바탕으로 연대기순으로 실었다. 저주받은 천재 목록에, 남자 때문에 인생을 망친 여자 예술가 목록에, 세상보다 너무 앞선 재능을 지녀 끝내 불행해진 똑똑한 여자 목록에서 너무 자주 보게 되는 그녀의 일과 인간관계 그리고 스승이자 연인이었던 오귀스트 로댕, 외교관이자 시인이었던 동생 폴 클로델 등 많은 존재가 이 편지들로 좀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대의 지위가 나의 지위처럼 훌륭해지는 것은 나중일지 모르나, 그대는 나보다 훨씬 행복한 지위에 도달하게 될 것이오. 그대는 그럴 가치가 있으니 말이오”라는 로댕의 편지를 보면 씁쓸함을 느끼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정신병원에서의 오랜 생활을 담은 편지는 너무 담담해서 슬픔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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