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천에는 똥이 많다
이창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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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 녹천에는 똥이 많다 | quick space 2004/06/30 21:14

suede = stay together

영화 "오아시스"의 활약덕분에, 대형도서관에서나 발견되었을 이창동의 92년작 소설집이 2002년 10월 문학과 지성사에서 재발간 되었다. 그의 최근작인 "오아시스"로 이창동을 기억하고 있다면, 이 소설집의 재발간은 다소 거북한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창동 스스로가 그의 최근작을 '경계에 관한 영화'로 규정짓고 있지만, 바로 전 작품까지만 하더라도 진흙탕 같은 질펀한 현실 속으로 우리를 자꾸만 끌어당기던 그가 아니었던가.

이창동은 아마도 선천적으로 꾸미거나 둘러대는 것에 몹시 약했거나, 병적이면서도 의식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가 소위 예술이라는 것에 가치를 두기 시작하는 시기는 그야말로 극심한 사회적 병폐 속에 인간이라는 가치는 변두리로 밀려나 있던 7, 80년대였던 것이다.

이런 그의 표현방법을 사람들은 '비판적 리얼리즘'이라 이름 붙였다. 그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사회에서 떠밀려 있거나, 스스로 현실에서 멀어지기를 선택하며, 그들은 전자에 비하면 오히려 용감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창동이 관심을 가지는 쪽은 후자 쪽이 아니다.

이창동의 관심사는 사회구조에 의해 노골적으로 밀려났던가, 밀려나지 않기 위해 그 속에 어정쩡하게 뒤섞여 끽 소리도 내지 않는 이들이었다. 그런 그들을 그는 철저하게 냉혹한 현실 속에 밀어 넣었고, 어느 순간에 그들로 하여금 정신적 무력감의 끔찍한 마지막 순간들을 경험하게 한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영화보다 훨씬 잔인하며, 그 잔인성으로 무장된 내러티브로 읽는 이들을 수갑채운다.

이 소설집에는 5편의 중■단편 소설들이 실려있는데, 5가지 모두가 앞에서 언급한 범주를 벗어나지 않으며, 그 형식상 구조 또한 너무나 단순하다. 그가 현실을 꿈과 판타지(이 판타지라는 것은 영화 "오아시스"를 경계에 세우고, 앞으로 꾀하게 될 변화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로 포장할 수 없었던 것처럼, 그의 문장 역시도 너무나 메말라 있다. 그의 글을 읽고 있자면 마치 오래되어 지린 냄새를 풍기며 딱딱하게 굳어버린 오징어를 씹는 기분이면서도, 그 인물이나 이야기구조가 너무도 사실적이어서 끝까지 그를 따라가고야 마는 것이다.

여기 실린 길고 짧은 소설은 꼭 한 번쯤은, 어디에선가는 분명히 있었을 법한 이야기들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는 7, 80년대를 피끓는 젊음으로 살아온 세대이며, 조악한 현실이더라도 그것과 동떨어진 삶을 사는 것을 경계해온 작가이기 때문이다.

"진짜 사나이"나 "용천뱅이"는 소신을 지키며 사는 데에 우리 사회가 얼마나 인색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며, "운명에 관하여"는 인생을 지나친 우연의 장단에 맡겼지만, 우리는 그것이 결코 억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똥구덩이에 엉덩이를 깔고 앉은 채 어린애처럼 소리내 울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다("녹천에는 똥이 많다"). 우리는 그의 이야기에서 그토록 버리고 싶었던 나 자신과 주변의 모습을 다시 한번 더 절감하게 된다.

그리고 이창동은 마지막으로 실려 있는 "하늘燈"에서 지금은 우리가 역사의 터널 속에 있을 뿐이라는 수임의 말에 '터널 저쪽은 도대체 뭐가 있는 거지?'라는 반문을 던진 채 끝을 맺는다. 그러나 우리는 비극 속에 비극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듯이 우리는 역시 그를 통해 그래도 터널을 건너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번 더 다지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현실이 끔찍하게 두렵다면, 아직은 이창동을 피해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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