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에 속지 마라 - 내 안의 불안을 먹고 자라는 심리학의 진실
스티브 아얀 지음, 손희주 옮김 / 부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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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책의 저자이면서 심리학 잡지 편집자인 스티브 아얀은 심리전문가 유타의 강연회에서 종교부흥회 같은 분위기에 충격을 받는다. 이 점은 '긍정의 배신' 저자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유방암에 걸려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만난 '긍정주의'의 단면과 비슷한 면이 많다. 긍정을 부정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부정적인 영향이 긍정의 효과를 상쇄하기까지 할 것이란 믿음이 만연해 있다는 사실에 그녀는 '긍정의 배신'을 썼다. 실제로 긍정이 주는 효과는 사실 입증된 바 없으면서도 마치 신에 대해 우리가 두려움과 경외심을 갖듯 긍정 심리학에 대한 추앙은 이미 정도를 넘어섰다. '심리학에 속지마라'는 저자가 관련 잡지의 편집장 일을 하면서 알게된 심리학의 맹점과, 무조건적인 맹신이 만들어내는 부정적 효과, 그리고 상업주의를 모아 비판하는 책이다. 


몰랐었는데..


양귀자의 '모순'이라는 소설이 있다.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난 엄마와 이모가 남편을 잘만나고 잘못만나 어떻게 상반된 인생을 살아가는지 보여준다. 시장에서 행상을 하면서도 자식들의 뒤처리 뿐만 아니라, 남편의 주정과 폭력을 견뎌내며 하루 하루 전쟁처럼 사는 엄마와, 너무도 평온한 집안에 유학가있는 아이들, 안정된 남편을 두고 평화롭게 사는 이모의 삶은 그 자체로도 모순적이다. 하지만, 소설은 결국 그 평화로움을 견디지 못한 이모가 자살을 하면서 진짜 모순을 드러낸다. 지극히 평화로워서 견딜수 없게 되는 것, 그 시작은 심리학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을증을 한편에서 '배부른 병'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행상을 하며 하루하루를 장애물 넘듯 살아가는 엄마에게는 결코 찾아올 수 없는 병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은 현대인의 척박한 삶과 원인이 사라지고 증상만 남은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답을 제시하며 틈새를 파고 들었다. 처음까지만 해도 그저 위로가 되고 모호한 무언가에 대해 원인을 설명해주는 것으로 큰 힘이 되었던 심리학이 어느 순간 선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특히 심리학이 수익모델로 더할수 없이 무한한 가능성이 있음이 증명되는 순간 모든 모호한 영역에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저자가 심리전문가의 강연회에서 종교적 색채를 짙게 느꼈다면 그것은 결국 규정되지 않고, 증명되지 않은 무언가에 대해 답을 내릴 수 있다는 분위기, 이에 반할 때 답은 멀어진다는 믿음의 강요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이 점은 '긍정의 배신'에서 긍정주의를 강요하는 분위기와 비슷하다. 


정신병자가 늘어나나, 정신병이 늘어나나


본문에 따르면 독일에서 1998년에서 2008년 사이에 정신질환으로 병가 낸 사람은 80%나 증가했고, 은퇴자 비율도 15%나 증가했다고 한다. 항울제 처방을 받은 수도 2000년에 비해 2009년 107% 증가했다. 번아웃이나 ADHD, 인터넷 중독 같은 새로운 병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과연, 과거에 우리가 몰랐기 때문에 그 존재를 몰랐던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그 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걸리게 된 것일까. 저자의 생각은 아무래도 후자쪽이다. 저자는 우리가 그동안 매우 신기한 성과라고 여겼던 심리학 실험이 사실 허구나 오류로 밝혀진 사례를 통해 심리학이 얼마나 쉽게 왜곡될 수 있는 지 설명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프로이트의 이론에서부터, 한때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던 모차르트 효과(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은 집단이 우수한 성적을 내다)의 허구도 실려있다. 잠재의식을 통해 제품 광고를 가능케 한다는 '서브리미널 효과'나, '위기상황 스트레스 해소법(CISD)'의 치료 실패 사례 등도 심리학이 만능이 아님을 알게 해준다. 


조금도 아프지 말라고?


자신에게 눈을 돌리고 스스로 어떤 이유에서 지금의 심리가 발현되었는지를 밝히는 것은 스스로를 위안하고 변명거리로는 충분하지만, 중요한 결정이 필요할 땐 오히려 방해가 된다. 문제는 나의 능력 탓인데도 실패에 대해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다거나,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데도 결과를 낙관하라는 식, 인간관계에 대해 무조건 수긍하고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해결책일 경우가 많다. 실제로 너무 강한 자의식은 한계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며, 스트레스를 피하려만 한다면 우리는 지루해 견딜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생각보다 견고하고, 크고 작은 외상에 견뎌낼 준비가 되어 있지만 심리학은 미리 앞질러 가서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심리학이 하는 일은 우리가 의아해 하거나 상처받았던 일들에 대해 그럴듯한 이름과 이유를 붙여주며 자위하게 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에 대한 심리학자 롤프 데겐의 결론은 이 책의 주제를 잘 보여준다. 


인간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찾지만 실제로 자신을 '들여다보지' 못한다. 사실 심리학자들은 타인처럼 자신을 외부에서 관찰하고 이런 낯선 자아를 어떻게 판단했는지에 대해 그럴듯하게 들리는 이론을 성급히 만들어 낼 뿐이다.(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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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 플라네타 - 진화하는 아이돌 행성 탐사 문화 레전드 1
김수수 지음, 찰스장 그림, 스토리텔링콘텐츠연구소 / 이야기공작소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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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에 우연히 여고 졸업식에 간 적이 있었다. 졸업생 대표 몇 명이 나와서 엑소의 '으르렁'을 춤과 함께 선보였는데 그 때 보았던 학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못해 광적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사실 그때까지만도 엑소 역시 여느 보이그룹과 차별성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학생들의 반응은 뭔가 다른 것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특히 내가 모르는 사실에 열광하는 것을 그냥 넘기지 못한다. 그들이 생각하고 있고, 미치게 만들었던 이유가 무엇인지를 꼭 알고 싶은 게 타고난 본성이다. 어렸을 때 내가 가지고 있던 궁금증 중에 한가지는 '바둑'이었다. 그 당시 집집마다 풍경은 친구 아버지들이 바둑을 틀어놓고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바둑판에 똑같이 두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어린 나이에도 왜 저렇게들 바둑에 열중하는 지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 의구심은 내가 바둑을 배우면서 풀렸었다. 바둑과 엑소라니 뭔가 비교가 불가한 두 가지를 동일선상에 올려 놓은 느낌이 강하지만, 뭔가에 열광한다는 점은 매우 유사하다. 그래서 나는 엑소의 음악을 들어보고 유튜브로 뮤비를 보고 했는데, 엑소와 관련된 책이라니 안 볼 이유가 없다.

 

스토리의 완성, 기획의 진화

 

1세대라고 불리는 H.O.T나 젝스키스가 단순히 노래 잘하고 춤좀 춘다는 아이들을 모아서 결성된 그룹이라면, 2세대인 빅뱅이나 슈퍼쥬니어 원더걸스 같은 그룹들은 상당기간의 육성 시간을 갖고 준비된 그룹이었다. 그리고 엑소가 속해 있는 3세대에 이르러서는 기본적인 재능, 충분한 준비 기간, 육성 시스템에 덧붙여 시나리오가 추가 된다. 판타지 영화의 등장인물을 연상시키듯 엑소 12명의 각각의 멤버는 물, 바람, 번개, 텔레포트 같은 각각의 능력을 가진 초능력을 가진 캐릭터로 설정이 되어 있다. 이들은 각각의 세계에서 일식과 월식같은 특별한 시간대를 제외하고는 만나지도 알지도 못한다. 그들이 각각 EXO-K, EXO-M으로 정해지고 한국과 중국에서 6명씩 활동한다. 그들이 한 자리에 서는 것은 그 때문에 특별한 일이 되는 것이다. 이런 스토리가 가지는 의미는 내용의 개연성이나 스토리의 탄탄함을 떠나, 하나의 그룹이 완성되는 과정이 과거와 판이하게 달라졌다는 점이다. 결국 엑소의 탄생과정 자체가 K-pop이 발전하는 과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의미이다.

 

이 시나리오의 정점은 바로 팬덤(fandom)이다. 이들은 과거의 단순히 가수를 좋아하는 의미를 떠나 '추종'이라는 의미에 더 가까운 팬들이다. 가장 큰 장점이면서 단점은, 가수를 너무 좋아해서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지만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에도 비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판이라하면 음악이 좋을 땐 지지하면서도 별로라고 생각할 땐 차이가 있어야 함에도, 어떤 경우에도 한결같은 반응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은 가수를 지지하는 효과가 있으면서도 좀더 대중적인 지지를 얻는데는 걸림돌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보이그룹이나 걸그룹에 대해 음악이 엇비슷하다는 선입견이 생기는 데는 어쩌면 지나친 팬들의 사랑 때문일 수도 있는 것이다. SM은 이런 점을 어느 정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엑소의 타이틀 곡을 만들 때 전 세계 작곡가 50여 명이 모여 '뮤직 캠프'를 개최했다. 이러한 라이팅 캠프는 정기적으로 국내에서도 열면서 SM이 이 모든 곡들에 대한 데이터베이스화 하는 작업을 한다는 사실은 꽤 놀라웠다. 곡이 만들어지면 A & R 팀이 가수에게 가장 잘 맞는 곡을 고르고, 퍼포먼스 디렉터는 아티스트들의 안무, 무대 공연 등 일체를 디렉팅 한다. 전체가 완성되고 나면 비주얼 디렉팅 팀에서 전체 홍보와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관장한다. 이 전체의 과정이 엑소가 완성된 하나의 공정이 되는 것이다.

 

중국 멤버를 대하는 자세

 

대형 기획사와 멤버간에 소송 사건이 발생한다면 특별히 관심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사건의 구도를 강자와 약자의 대결로 보기 마련이다. 특히 포털에서 제목만 보고 넘어간 나같은 사람이라면 그럴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엑소에서도 2014년 5월 크리스를 시작으로, 10월 루한, 다음 해 4월 타오의 탈퇴설이 불거져 여러 차례 홍역을 겪었다. 과거 슈퍼주니어에서 탈퇴한 후 중국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한경의 케이스의 관점으로 보자면 중국 멤버의 탈퇴는 실리적인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 책의 내용이다. 어디까지 진실일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는 말이기도 하다. 이미 홍보효과는 톡톡히 누렸기 때문에 훨씬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중국의 기획사와 일하는 것이 나을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SM이 무조건 옳다는 시선은 또 위험할 수도 있다. SM 또한 이런 탈퇴가 악재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마지막 남은 중국인 멤버 레이를 위해 아예 현지 개인 법인을 설립하게 한다.

 

SM의 이미지 실추와 멤버의 탈퇴라는 최악의 수를 피하기 위해 SM에서는 중국인 멤버들이 탈퇴하는 이유를 아예 SM 내에서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실리와 명분을 모두 챙기겠다는 이러한 전략은 앞으로 유사한 사태에 대해서도 다른 그룹에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어 보이기도 한다.

 

엑소가 넘어야 할 산

 

이 책의 아쉬운 점은 이 책이 팬들을 위해서 만들었거나, 무관심한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었거나 간에 엑소 멤버 사진이 한 장도 없다는 사실이다. 내가 좋아하는 어떤 그룹의 이야기가 적힌 책을 샀는데 사진은 하나도 없고 그들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애미메이션만 몇 장 있다면 실망스러웠을 것도 같다. 또한 나처럼 멤버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이 책을 접할 때를 위해 멤버들 사진이 있었으면 더 나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나는 아직도 고등학교 때 넥스트 콘서트 실황 비디오를 헤드폰을 끼고 들으며 꽤나 흥분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누군가를 광적으로 좋아해 본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그 마음을 모를수가 없다. 무엇보다 보이그룹이나 걸그룹이 넘어야 할 장애물이라면 대형기획사에서 공산품처럼 찍혀 나온 가수라는 선입견이다. 멤버 개개인이 다른 색을 가지고 있듯, 한 그룹도 다른 그룹과 같을 수는 없다. 문제는 어떻게 사람들의 관심을 자기네 쪽으로 끌어오느냐의 문제이다. 기획사에서도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걸그룹의 경우 과도한 노출로 관심을 끌어오려고 하는 것이다. 기획사가 진화하듯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수준도 높아지고 있다. 복면가왕에서 EXID의 솔지나, f(x)의 루나, EXO의 첸이 우승한 것도 단순히 비주얼만으로도 가능했던 과거와는 시대가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엑소 뿐만 아니라 다른 가수들도, 특히 소규모 기획사에서 육성된 그룹들에게도 선입견 없이 평가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주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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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지금+여기 3
오찬호 지음 / 개마고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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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승복할 줄 아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출발드림팀의 구호이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최선을 다하고 졌으면 졌음을 인정하는 모습은 성숙한 사회 구성원만이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행동이다. 하지만 자칫 잘못 생각하면 결과가 과정을 정당화 시켜준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출발드림팀에서는 모두가 0.00초에서 시작하고 똑같은 장애물을 넘어가며 똑같은 위기와 한계를 경험한다. 다만 차이라면 평소에 스스로가 몸을 다졌는지, 운동을 열심히 했는지 정도이다. 만약 거기서 한 명이라도 먼저 출발하거나 시간을 느리게 흘러가게 한다거나 한다면 당장 제지를 가할 것이다. 서울대 합격자의 70%가 강남 소재 고등학교에서 나오고, 하위권 대학으로 갈수록 학자금 대출자 비율이 높아지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뭔가 공정하지 못한 게임이 이뤄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비정규직은 비정규직일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과에 승복할 줄 아는' 생활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모두 같은 출발선상에서 시작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류대는 시간을 잘 이용한 사람의 결과물이고 지방대는 최선을 다하지 않은 사람의 메마른 과실이 되어 버렸다. 특히 학생들에게 이 생각이 깊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에 저자는 큰 충격을 받았다. '비정규직 KTX 여승무원'이 정규직을 만들어 달라고 하는 주장에 대해, 노력도 하지 않고 정규직으로 되려는 건 불합리하다는 학생들의 답변 때문이었다. 모두 뼈를 깎는 노력을 해서 정규직을 들어가려고 노력하는데 쉬운 길을 택하고서 이제와서 정규직으로 해달라는 건 한마디로 생떼라는 것이다. 그들의 생각에 비정규직은 바로 자기계발을 게을리 한 탓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옥죄는 자기계발의 논리에 스스로 도취되어 자신들이 얻은 것은 오롯이 자신 노력의 대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더 큰 경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겁없이 걸어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처럼 노동시장은 공정한 싸움터가 아니다. 스펙쌓기에 열을 올리는 동안 구성원들은 이제 '붉은 여왕의 나라'처럼 죽어라 뛰면 이제 고작 제자리를 유지하기에 이르렀다. 자기계발이 스스로의 계발에는 조금의 도움도 되지 못한 채, 회사에서 원하는 요건 채우기에 머물면서 학생들의 더 피폐해진다. 가끔 이에 대해 반론이라도 제시할라치면 가뭄에 콩나듯 나오는 '개천에서 용나는' 케이스가 너는 아직도 한참 노력이 모자라다며 질타한다. 그러는 동안 '공감'이란 단어는 사라졌다. 청소 아줌마들의 시위에는 찬성하면서도, 그들과 연대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촛불시위에는 참여하지만,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에 대해서는 여전히 냉랭하다. 이제 학생들은 이미 고통을 이겨내고 성공한 선배의 전철을 되밟으며, 스스로의 고통은 여전히 아무것도 아니라고 다독인다. 그러는 동안 다른이들의 낮은 지위는 바로 노력부족이라는 등식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우리는 아니었는데?


책을 덮고 다른 사람들이 이 책에 대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본다.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대체로 요즘 젊은이들은 정말 문제다 라는 데에는 의견이 모아진다. 내가 나를 돌아봤다. 그때는 IMF조차 터지지 않은 대학이었지만, 나는 나름 좋은 대학이라며 우쭐하면서 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학교에 가면 다른 학과보다 낮은 커트라인에 창피할 때면 '너무 하향지원을 해서'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어쩌면 이 책에 나온 학생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지 모른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기성 시스템에 편입되고 안되고의 문제를 벗어나 스스로에게 잣대를 들이대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 이를 욕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시기를 훌쩍 지나버렸기 때문에 당당히 비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좋은 대학 다니면서 자랑하지 않으려는 친구를 본적이 없고, 안 좋은 학교 다니면서 창피해 하지 않는 친구도 본 적이 별로 없다. 


그런 식으로 '햐~지금 젊은 애들 걱정이다 걱정이야'라는 식으로 안이한 비판은 안된다. 사실 누구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힐링'이니 '격려'니 하는 말을 무책임하게 내뱉는 것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위로라는 것은 결국 '다시 일어나서 달리렴.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잖아. 힘내!'라는 말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자기계발이 경쟁처럼 일어나서 이건 아니다 싶은데도 현재는 답은 없다. 그래서 위로라도 구하고자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위로 아닌 해결책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저자는 '그래서 대안이 뭔데?'라는 질문으로 문제제기 자체를 봉쇄하는 것을 우려한다. 확실한 대안이 없으면 문제제기를 못하는 것은 어떠한 변화도 가져올 수 없다. 


그러나 쉽지만은 않은 일


김영하의 단편 소설 '옥수수와 나'에 이런 에피소드가 나온다. 스스로 옥수수라고 생각해서 닭들이 무서워서 정신병원에서 치료받던 남자가 어느날 스스로가 옥수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닭들에게 쫓겨 오자 의사는 당신이 옥수수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을 아는데 왜 그러냐고 했다. 그러자 그 남자의 답은 '글쎄 저야 알지요. 하지만 닭들은 모르잖아요.'


이런 상황은 의외로 주변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나는 깨달았다고 생각하지만 주변에서 모르고 있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옥수수이다. 이 책을 보면서 나는 왜 '옥수수' 이야기가 떠올랐을까. 만약 내가 이것은 잘못된 현실이며 이제 나로부터 이 상황을 개선시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치자. 그리고 나는 당당하게 살고 있는데, 여전히 주변 상황은 그대로이다. 나는 차별하는 현실이, 자기계발에 매진해봐야 그저 평범해지는 것에 그치지 않는 현실이 오류 투성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아무도 쫓아오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계속 도망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문제는 여전히 녹록치 않다. 강준만의 '개천에서 용' 책을 볼 때처럼 답은 멀리 있거나, 혹은 아주 가까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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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젊은 뇌는 충동적일까 - 성장하는 뇌, 삶을 변화시키는 똑똑한 습관의 발견
제시 페인 지음, 엄성수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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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이 되기전 나뭇잎들은 막 새순을 벗어난 연두색을 띤다. 연두의 은은한 빛이 내는 숲색을 보고 있자면, 생명체에게 절정은 모든것이 정해진 장년기가 아닌 가능성을 내포한 유년기에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나라 전통 가옥이 왜 99칸인지, 왜 10층 석탑보다는 9층 석탑이 많은 지에 대해 읽은적이 있다. 그것은 완성된 형태 완결된 모양보다 그 직전의 단계에 더 많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선조들의 지혜라는 것이다. 젊음이 가지는 장점이자 단점은 그런 것이다. 완성의 목전에 있으면서도 완성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아직 허술하고 뭔가 불안정한 느낌이다. 


젊은 사람들이 충동적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생각하고 있고, 어느정도는 젊어서 그러려니 하고 인정하는 사실이다. 이 책이 다른 서적들과 다른 이유는 이 책은 과연 젊은 사람들이 충동적인 것이 단순히 마음의 문제이냐고 반문하기 때문이다. 달리기를 할 때 유난 끈기가 없는 아이가 있다고 하자. 처음에는 달리기를 못한다거나 열심히 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아이는 평발을 가지 아이였다면, 우리는 어쩔 수 없었다는 사실을 수긍하게 된다. 그런 부분을 아이의 행동으로 옮겨서 생각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유난히 한가지에 집중을 못하거나, 작은 일에도 쉽게 흥분하거나, 이성보다 항상 감정이 앞서는 것은 아이의 마음의 문제로 쉽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좀더 강하게 훈육하거나, 아이가 마음을 다잡는다면 충분히 교정 가능한 무엇처럼 느껴진다. 


저자는 젊은 뇌가 충동적인 이유를 설명하면서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물리적인 뇌 성장의 문제라고 말한다. 이성을 관장하는 뇌의 영역은 바로 전전두피질 부위인데 25세 이전까지는 이 부분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전전두피질이 발달하지 않았다는 것은, 충동적인 행동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고, 남에게 상처를 주는 일에 상대적으로 무감각하고, 판단이나 세세한 컨트롤도 어렵다는 의미이다. 또한 대상회라는 부위가 있는데 이 부위는 머릿속의 변속기어 역할로서 유연한 사고를 보장해 주는 영역이다. 이 부위에 문제가 발생하면 부정적인 생각이나 행동에 집착하고, 융통성이 없어서지고, 걱정이 늘어난다. 심하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투렛 증후군까지도 발생한다. 그밖에도 심부변연계나 기저핵 등에서도 감정을 통제하고 적절하게 조절하는 등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각 부위의 역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젊은 뇌가 충동적이 아니라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 아닐까. 


원인을 알았다면 두가지는 확실해진다. 하나는 단순히 마음의 문제라거나, 정신력의 차이 같은 추상적인 말로 젊은 사람을 다그치지 않는 것이고, 또 하나는 25세까지 뇌를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마치 자기계발서에서 사회생활 비법이나 화술의 이론을 설명하듯이 뇌를 똑똑하게 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당연히 순간적인 쾌락을 위한 약물이나 알콜에 대해서는 성장과정에 있는 뇌에게 도움될 리 없다. 뇌에게 영향을 끼치는 산소결핍, 수면부족에서 부터 스스로 뇌를 손상시키는 활동들에 대해 특히 주의할 것을 주지시킨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나 뿐 아니라 상대 또한 뇌 자체의 활동 때문에 어찌할 수 없는 행동이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에게만 정상적인 문제이고 남에게는 비정상적인 문제란 있을 수 없다. 누구나 어느정도는 같이 안고 있는 문제일 수 있고, 다만 취약한 부위가 조금 다를 뿐이다. '정상적이지 않은 것이 정상이다'라는 저자의 말이 이 상황을 참 잘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이 젊은 뇌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크게 보자면 조금씩 결함을 가지고 있는 뇌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고 봐야 한다. 뇌가 충동적이라는 말은 뇌의 크고 작은 손상이나 미성숙이 문제를 가져오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는 꼭 젊은 사람에게만 여지를 두는 말은 아니다. 책의 마지막에 실려있는 두뇌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따라하면서 뇌의 변화를 지켜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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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아이 고 - 내 남편의 아내가 되어줄래요
콜린 오클리 지음, 이나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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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7살의 데이지. 암 치료후 완치되어 잭과 행복한 날을 보낸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너무 행복한 날, 평온한 날이 계속되면 독자나 관객은 불안해진다. 지중해의 어느 지방에서 연인끼리 'la paloma' 같은 배경 음악을 듣는 장면이라면, 이내 얼마 지나지 않아 폭풍같은 시련이 닥칠것을 본능처럼 알게 된다. 데이지와 잭에게 있어서 시련은 데이지 암의 재발이다. 이번에는 그녀는 회복을 기대할 수 없다. 남은 시간은 6개월 뿐이다. 그녀의 입장이 되어 책을 읽는 독자라면 '나라면~'이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평생 죽음을 유예받는 삶을 사는 우리에게 '죽음'은 끝내 풀어야할 숙제이면서, 오늘을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동기가 되기도 한다. 잡스는 '죽음이야말로 삶이 만들어낸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말한 바 있다. 데이지에게 최고의 발명품을 가치 있게 해주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정원(한석규 분)은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아버지에게 리모컨 사용법을 알려준다. 아버지는 네가 해주면 되는데 왜 자꾸 배우라고 하냐며 투정을 한다. 정원은 짜증내면서 다시 말한다. "전원 켜신 다음에 티브이로 올리시고 4번이요." 비디오 사용법은 글로 남겨도 되고, 사진 현상법은 알려주고 가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내 존재가 잊혀지는 일은 정말이지 견딜 수 없는 일이다. 정원은 아버지에게는 짜증을 내면 그만이지만, 다림(심은하 분)에게만큼은 어떤 말도 할 수가 없다. 사진도 아니고, 리모컨도 아니고 내 '사랑'을 간직하라는 말이 어떻게 소리로 전달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말을 꺼내는 순간 사랑일 수 없다. 간직하겠다고 생각하는 이에게는 말할 필요가 없고, 간직할 맘이 없는 사람은 말한다고 해서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오직 영원할거라는 믿음만을 가지고 가는 방법 뿐이다.  


데이지는 생각한다. 자기가 없을 때 공백이 생기는 잭의 모든 부분에 대해서. 양말을 치워줄 사람, 등을 긁어줄 사람, 도시락을 싸줄 사람, 침대를 정리해 줄 사람이 없을 때 잭은 데이지의 부재를 느낄 것이다. 그러한 공백에서 그 일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공백을 느끼지 않을까. 데이지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녀의 역할을 대신할 누군가를 찾기 시작한다. 하지만, 바꿔 생각해 보자. 내가 그 사람을 사랑했던 것은 내 일을 도와줘서였을까. 데이지가 일도 않고 누워서 티비만 본다고 그의 사랑이 불씨에 찬물 뿌리듯 꺼져버렸을까. 어쨌든 데이지는 그런 것이 아닌 줄 알면서도 자기가 아닌 누군가(본인이 골라준) 잭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생각하는 대타의 역할은 어쩌면 본인의 흉내를 내면서 끝없이 데이지의 부재를 확인시켜주는 존재였을 것이다. 


누군가 술자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한테 서운한 게 있으면 다 말해봐. 다 들어줄게.' 이런 경우. 다 말하는 바보는 없다. 그것은 나에게 서운한 게 있을리 없잖아라는 말의 또 다른 표현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떠나야 하니 새로운 사람을 소개시켜 주고 간다고 한다면? 이 역시 내가 아니면 누구도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없는 것 맞지? 라는 확인의 과정일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양말을 빨아주고, 청소를 해주고, 도시락을 챙겨주는 것을 해준다고 해서 내 자리가 채워질 것 같아? 데이지는 당연히 혼란스러워진다. 견고하다고 믿고 싶은 둘 사이 사랑의 감정이 새로운 존재에 의해 금이 가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 부분의 혼란은 데이지가 잭에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해줄 용의가 조금도 없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소설은 결국 데이지가 자신의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 본인도 모르는 스스로의 진심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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