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 아이 고 - 내 남편의 아내가 되어줄래요
콜린 오클리 지음, 이나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27살의 데이지. 암 치료후 완치되어 잭과 행복한 날을 보낸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너무 행복한 날, 평온한 날이 계속되면 독자나 관객은 불안해진다. 지중해의 어느 지방에서 연인끼리 'la paloma' 같은 배경 음악을 듣는 장면이라면, 이내 얼마 지나지 않아 폭풍같은 시련이 닥칠것을 본능처럼 알게 된다. 데이지와 잭에게 있어서 시련은 데이지 암의 재발이다. 이번에는 그녀는 회복을 기대할 수 없다. 남은 시간은 6개월 뿐이다. 그녀의 입장이 되어 책을 읽는 독자라면 '나라면~'이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평생 죽음을 유예받는 삶을 사는 우리에게 '죽음'은 끝내 풀어야할 숙제이면서, 오늘을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동기가 되기도 한다. 잡스는 '죽음이야말로 삶이 만들어낸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말한 바 있다. 데이지에게 최고의 발명품을 가치 있게 해주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정원(한석규 분)은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아버지에게 리모컨 사용법을 알려준다. 아버지는 네가 해주면 되는데 왜 자꾸 배우라고 하냐며 투정을 한다. 정원은 짜증내면서 다시 말한다. "전원 켜신 다음에 티브이로 올리시고 4번이요." 비디오 사용법은 글로 남겨도 되고, 사진 현상법은 알려주고 가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내 존재가 잊혀지는 일은 정말이지 견딜 수 없는 일이다. 정원은 아버지에게는 짜증을 내면 그만이지만, 다림(심은하 분)에게만큼은 어떤 말도 할 수가 없다. 사진도 아니고, 리모컨도 아니고 내 '사랑'을 간직하라는 말이 어떻게 소리로 전달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말을 꺼내는 순간 사랑일 수 없다. 간직하겠다고 생각하는 이에게는 말할 필요가 없고, 간직할 맘이 없는 사람은 말한다고 해서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오직 영원할거라는 믿음만을 가지고 가는 방법 뿐이다.  


데이지는 생각한다. 자기가 없을 때 공백이 생기는 잭의 모든 부분에 대해서. 양말을 치워줄 사람, 등을 긁어줄 사람, 도시락을 싸줄 사람, 침대를 정리해 줄 사람이 없을 때 잭은 데이지의 부재를 느낄 것이다. 그러한 공백에서 그 일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공백을 느끼지 않을까. 데이지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녀의 역할을 대신할 누군가를 찾기 시작한다. 하지만, 바꿔 생각해 보자. 내가 그 사람을 사랑했던 것은 내 일을 도와줘서였을까. 데이지가 일도 않고 누워서 티비만 본다고 그의 사랑이 불씨에 찬물 뿌리듯 꺼져버렸을까. 어쨌든 데이지는 그런 것이 아닌 줄 알면서도 자기가 아닌 누군가(본인이 골라준) 잭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생각하는 대타의 역할은 어쩌면 본인의 흉내를 내면서 끝없이 데이지의 부재를 확인시켜주는 존재였을 것이다. 


누군가 술자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한테 서운한 게 있으면 다 말해봐. 다 들어줄게.' 이런 경우. 다 말하는 바보는 없다. 그것은 나에게 서운한 게 있을리 없잖아라는 말의 또 다른 표현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떠나야 하니 새로운 사람을 소개시켜 주고 간다고 한다면? 이 역시 내가 아니면 누구도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없는 것 맞지? 라는 확인의 과정일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양말을 빨아주고, 청소를 해주고, 도시락을 챙겨주는 것을 해준다고 해서 내 자리가 채워질 것 같아? 데이지는 당연히 혼란스러워진다. 견고하다고 믿고 싶은 둘 사이 사랑의 감정이 새로운 존재에 의해 금이 가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 부분의 혼란은 데이지가 잭에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해줄 용의가 조금도 없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소설은 결국 데이지가 자신의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 본인도 모르는 스스로의 진심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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