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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에 속지 마라 - 내 안의 불안을 먹고 자라는 심리학의 진실
스티브 아얀 지음, 손희주 옮김 / 부키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이책의 저자이면서 심리학 잡지 편집자인 스티브 아얀은 심리전문가 유타의 강연회에서 종교부흥회 같은 분위기에 충격을 받는다. 이 점은 '긍정의 배신' 저자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유방암에 걸려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만난 '긍정주의'의 단면과 비슷한 면이 많다. 긍정을 부정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부정적인 영향이 긍정의 효과를 상쇄하기까지 할 것이란 믿음이 만연해 있다는 사실에 그녀는 '긍정의 배신'을 썼다. 실제로 긍정이 주는 효과는 사실 입증된 바 없으면서도 마치 신에 대해 우리가 두려움과 경외심을 갖듯 긍정 심리학에 대한 추앙은 이미 정도를 넘어섰다. '심리학에 속지마라'는 저자가 관련 잡지의 편집장 일을 하면서 알게된 심리학의 맹점과, 무조건적인 맹신이 만들어내는 부정적 효과, 그리고 상업주의를 모아 비판하는 책이다.
몰랐었는데..
양귀자의 '모순'이라는 소설이 있다.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난 엄마와 이모가 남편을 잘만나고 잘못만나 어떻게 상반된 인생을 살아가는지 보여준다. 시장에서 행상을 하면서도 자식들의 뒤처리 뿐만 아니라, 남편의 주정과 폭력을 견뎌내며 하루 하루 전쟁처럼 사는 엄마와, 너무도 평온한 집안에 유학가있는 아이들, 안정된 남편을 두고 평화롭게 사는 이모의 삶은 그 자체로도 모순적이다. 하지만, 소설은 결국 그 평화로움을 견디지 못한 이모가 자살을 하면서 진짜 모순을 드러낸다. 지극히 평화로워서 견딜수 없게 되는 것, 그 시작은 심리학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을증을 한편에서 '배부른 병'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행상을 하며 하루하루를 장애물 넘듯 살아가는 엄마에게는 결코 찾아올 수 없는 병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은 현대인의 척박한 삶과 원인이 사라지고 증상만 남은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답을 제시하며 틈새를 파고 들었다. 처음까지만 해도 그저 위로가 되고 모호한 무언가에 대해 원인을 설명해주는 것으로 큰 힘이 되었던 심리학이 어느 순간 선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특히 심리학이 수익모델로 더할수 없이 무한한 가능성이 있음이 증명되는 순간 모든 모호한 영역에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저자가 심리전문가의 강연회에서 종교적 색채를 짙게 느꼈다면 그것은 결국 규정되지 않고, 증명되지 않은 무언가에 대해 답을 내릴 수 있다는 분위기, 이에 반할 때 답은 멀어진다는 믿음의 강요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이 점은 '긍정의 배신'에서 긍정주의를 강요하는 분위기와 비슷하다.
정신병자가 늘어나나, 정신병이 늘어나나
본문에 따르면 독일에서 1998년에서 2008년 사이에 정신질환으로 병가 낸 사람은 80%나 증가했고, 은퇴자 비율도 15%나 증가했다고 한다. 항울제 처방을 받은 수도 2000년에 비해 2009년 107% 증가했다. 번아웃이나 ADHD, 인터넷 중독 같은 새로운 병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과연, 과거에 우리가 몰랐기 때문에 그 존재를 몰랐던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그 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걸리게 된 것일까. 저자의 생각은 아무래도 후자쪽이다. 저자는 우리가 그동안 매우 신기한 성과라고 여겼던 심리학 실험이 사실 허구나 오류로 밝혀진 사례를 통해 심리학이 얼마나 쉽게 왜곡될 수 있는 지 설명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프로이트의 이론에서부터, 한때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던 모차르트 효과(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은 집단이 우수한 성적을 내다)의 허구도 실려있다. 잠재의식을 통해 제품 광고를 가능케 한다는 '서브리미널 효과'나, '위기상황 스트레스 해소법(CISD)'의 치료 실패 사례 등도 심리학이 만능이 아님을 알게 해준다.
조금도 아프지 말라고?
자신에게 눈을 돌리고 스스로 어떤 이유에서 지금의 심리가 발현되었는지를 밝히는 것은 스스로를 위안하고 변명거리로는 충분하지만, 중요한 결정이 필요할 땐 오히려 방해가 된다. 문제는 나의 능력 탓인데도 실패에 대해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다거나,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데도 결과를 낙관하라는 식, 인간관계에 대해 무조건 수긍하고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해결책일 경우가 많다. 실제로 너무 강한 자의식은 한계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며, 스트레스를 피하려만 한다면 우리는 지루해 견딜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생각보다 견고하고, 크고 작은 외상에 견뎌낼 준비가 되어 있지만 심리학은 미리 앞질러 가서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심리학이 하는 일은 우리가 의아해 하거나 상처받았던 일들에 대해 그럴듯한 이름과 이유를 붙여주며 자위하게 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에 대한 심리학자 롤프 데겐의 결론은 이 책의 주제를 잘 보여준다.
인간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찾지만 실제로 자신을 '들여다보지' 못한다. 사실 심리학자들은 타인처럼 자신을 외부에서 관찰하고 이런 낯선 자아를 어떻게 판단했는지에 대해 그럴듯하게 들리는 이론을 성급히 만들어 낼 뿐이다.(p.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