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 플라네타 - 진화하는 아이돌 행성 탐사 문화 레전드 1
김수수 지음, 찰스장 그림, 스토리텔링콘텐츠연구소 / 이야기공작소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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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에 우연히 여고 졸업식에 간 적이 있었다. 졸업생 대표 몇 명이 나와서 엑소의 '으르렁'을 춤과 함께 선보였는데 그 때 보았던 학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못해 광적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사실 그때까지만도 엑소 역시 여느 보이그룹과 차별성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학생들의 반응은 뭔가 다른 것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특히 내가 모르는 사실에 열광하는 것을 그냥 넘기지 못한다. 그들이 생각하고 있고, 미치게 만들었던 이유가 무엇인지를 꼭 알고 싶은 게 타고난 본성이다. 어렸을 때 내가 가지고 있던 궁금증 중에 한가지는 '바둑'이었다. 그 당시 집집마다 풍경은 친구 아버지들이 바둑을 틀어놓고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바둑판에 똑같이 두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어린 나이에도 왜 저렇게들 바둑에 열중하는 지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 의구심은 내가 바둑을 배우면서 풀렸었다. 바둑과 엑소라니 뭔가 비교가 불가한 두 가지를 동일선상에 올려 놓은 느낌이 강하지만, 뭔가에 열광한다는 점은 매우 유사하다. 그래서 나는 엑소의 음악을 들어보고 유튜브로 뮤비를 보고 했는데, 엑소와 관련된 책이라니 안 볼 이유가 없다.

 

스토리의 완성, 기획의 진화

 

1세대라고 불리는 H.O.T나 젝스키스가 단순히 노래 잘하고 춤좀 춘다는 아이들을 모아서 결성된 그룹이라면, 2세대인 빅뱅이나 슈퍼쥬니어 원더걸스 같은 그룹들은 상당기간의 육성 시간을 갖고 준비된 그룹이었다. 그리고 엑소가 속해 있는 3세대에 이르러서는 기본적인 재능, 충분한 준비 기간, 육성 시스템에 덧붙여 시나리오가 추가 된다. 판타지 영화의 등장인물을 연상시키듯 엑소 12명의 각각의 멤버는 물, 바람, 번개, 텔레포트 같은 각각의 능력을 가진 초능력을 가진 캐릭터로 설정이 되어 있다. 이들은 각각의 세계에서 일식과 월식같은 특별한 시간대를 제외하고는 만나지도 알지도 못한다. 그들이 각각 EXO-K, EXO-M으로 정해지고 한국과 중국에서 6명씩 활동한다. 그들이 한 자리에 서는 것은 그 때문에 특별한 일이 되는 것이다. 이런 스토리가 가지는 의미는 내용의 개연성이나 스토리의 탄탄함을 떠나, 하나의 그룹이 완성되는 과정이 과거와 판이하게 달라졌다는 점이다. 결국 엑소의 탄생과정 자체가 K-pop이 발전하는 과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의미이다.

 

이 시나리오의 정점은 바로 팬덤(fandom)이다. 이들은 과거의 단순히 가수를 좋아하는 의미를 떠나 '추종'이라는 의미에 더 가까운 팬들이다. 가장 큰 장점이면서 단점은, 가수를 너무 좋아해서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지만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에도 비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판이라하면 음악이 좋을 땐 지지하면서도 별로라고 생각할 땐 차이가 있어야 함에도, 어떤 경우에도 한결같은 반응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은 가수를 지지하는 효과가 있으면서도 좀더 대중적인 지지를 얻는데는 걸림돌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보이그룹이나 걸그룹에 대해 음악이 엇비슷하다는 선입견이 생기는 데는 어쩌면 지나친 팬들의 사랑 때문일 수도 있는 것이다. SM은 이런 점을 어느 정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엑소의 타이틀 곡을 만들 때 전 세계 작곡가 50여 명이 모여 '뮤직 캠프'를 개최했다. 이러한 라이팅 캠프는 정기적으로 국내에서도 열면서 SM이 이 모든 곡들에 대한 데이터베이스화 하는 작업을 한다는 사실은 꽤 놀라웠다. 곡이 만들어지면 A & R 팀이 가수에게 가장 잘 맞는 곡을 고르고, 퍼포먼스 디렉터는 아티스트들의 안무, 무대 공연 등 일체를 디렉팅 한다. 전체가 완성되고 나면 비주얼 디렉팅 팀에서 전체 홍보와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관장한다. 이 전체의 과정이 엑소가 완성된 하나의 공정이 되는 것이다.

 

중국 멤버를 대하는 자세

 

대형 기획사와 멤버간에 소송 사건이 발생한다면 특별히 관심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사건의 구도를 강자와 약자의 대결로 보기 마련이다. 특히 포털에서 제목만 보고 넘어간 나같은 사람이라면 그럴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엑소에서도 2014년 5월 크리스를 시작으로, 10월 루한, 다음 해 4월 타오의 탈퇴설이 불거져 여러 차례 홍역을 겪었다. 과거 슈퍼주니어에서 탈퇴한 후 중국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한경의 케이스의 관점으로 보자면 중국 멤버의 탈퇴는 실리적인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 책의 내용이다. 어디까지 진실일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는 말이기도 하다. 이미 홍보효과는 톡톡히 누렸기 때문에 훨씬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중국의 기획사와 일하는 것이 나을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SM이 무조건 옳다는 시선은 또 위험할 수도 있다. SM 또한 이런 탈퇴가 악재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마지막 남은 중국인 멤버 레이를 위해 아예 현지 개인 법인을 설립하게 한다.

 

SM의 이미지 실추와 멤버의 탈퇴라는 최악의 수를 피하기 위해 SM에서는 중국인 멤버들이 탈퇴하는 이유를 아예 SM 내에서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실리와 명분을 모두 챙기겠다는 이러한 전략은 앞으로 유사한 사태에 대해서도 다른 그룹에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어 보이기도 한다.

 

엑소가 넘어야 할 산

 

이 책의 아쉬운 점은 이 책이 팬들을 위해서 만들었거나, 무관심한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었거나 간에 엑소 멤버 사진이 한 장도 없다는 사실이다. 내가 좋아하는 어떤 그룹의 이야기가 적힌 책을 샀는데 사진은 하나도 없고 그들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애미메이션만 몇 장 있다면 실망스러웠을 것도 같다. 또한 나처럼 멤버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이 책을 접할 때를 위해 멤버들 사진이 있었으면 더 나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나는 아직도 고등학교 때 넥스트 콘서트 실황 비디오를 헤드폰을 끼고 들으며 꽤나 흥분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누군가를 광적으로 좋아해 본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그 마음을 모를수가 없다. 무엇보다 보이그룹이나 걸그룹이 넘어야 할 장애물이라면 대형기획사에서 공산품처럼 찍혀 나온 가수라는 선입견이다. 멤버 개개인이 다른 색을 가지고 있듯, 한 그룹도 다른 그룹과 같을 수는 없다. 문제는 어떻게 사람들의 관심을 자기네 쪽으로 끌어오느냐의 문제이다. 기획사에서도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걸그룹의 경우 과도한 노출로 관심을 끌어오려고 하는 것이다. 기획사가 진화하듯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수준도 높아지고 있다. 복면가왕에서 EXID의 솔지나, f(x)의 루나, EXO의 첸이 우승한 것도 단순히 비주얼만으로도 가능했던 과거와는 시대가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엑소 뿐만 아니라 다른 가수들도, 특히 소규모 기획사에서 육성된 그룹들에게도 선입견 없이 평가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주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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