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지하철에서 친구가 얼마 전 선물해준 <에보니 타워>를 읽는다.

존 파울즈... 어디서 이름은 많이 들어 익숙한데...

알고 보니, <프랑스 중위의 여자>의 저자다.

  표지가 바뀌었네. 예쁘다...

예전에 언니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너무 너무 재밌게 읽은 책이라고 해서,

또 김석희 선생님이 빼지 않고 추천하는 책이어서, 읽었는데...

맙소사... 이게 뭐야? 뭔 얘기를 하려는 거야?

친구 얘기 좀 들어보려고 빌려줬더니, 얼마 후에 돌려주며 하는 말이,

"재미도 없고 못 읽겠다. 나중에 읽을게..." 한다.

빌어묵을... 의견 좀 들어보려고 했더니 말이지...

문제는... <에보니 타워>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뭘 말하려고 하는건지...

미술에 대한 전위 형식, 남녀 간의 사랑, 욕망?

뭐냐구... 재미도 없고, 이해도 안 되고...

이해가 안 되니, 재미도 없는 것이겠지만...

<에보니 타워>를 읽어보고 싶단 친구가 있었는데, 먼저 읽으라고 주고 싶지만,

당장 만날 일이 없다. 선물해준 친구는 자신이 무척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랬는데... 에궁...

 요것도 표지는 예쁘다...

그런고로... 할 수 없이, 재미 없어도 내가 먼저 다 읽을 거 같다. 

아침에 나올 때, <에보니 타워>를 너무 갖고 나오기 싫어서 다른 책을 골라보려고 했는데,

늦어서 그냥 들고 나왔다.

두 번째 얘기, <엘리뒤크>는 중세 사랑 얘기를 엮은 거라, 그나마 좀 나았는데,

웬놈의 서두는 또 그렇게 긴 거야...

존 파울즈... 나랑 안 맞나 보다...

에이... 난 왜 이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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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생활자의 수기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2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동현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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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은 아주 어릴 적에 <죄와 벌>을 읽었고 좀 커서는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었었다. 두 작품 모두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때쯤이면 다시 한 번씩 읽곤 해서 몇 번은 읽었던 것 같다. 그만큼 그의 작품이 좋았다. 비 오는 여름 밤, 번개도 치고 천둥도 치는데 <죄와 벌>에서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느꼈던 소름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런 탓에 이번 작품도 편한 마음으로 잡았다. 하지만 그 얼마나 큰 착각인지... 짧은 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읽어 가면 갈수록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평생을 두고 그를 따라다녔던 간질병, 사형 직전까지 갔다가 살아 돌아온 이력, 시베리아의 감옥 생활, 늘 빚에 시달렸던 가난... 그런 면을 다 알고 시작한 독서였건만 이 작품은 그 어떤 고찰과도 맞아 떨어지지 않았다.

그의 생각이 마치 마구잡이로 뭐 널뛰듯 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도무지 그 생각이나 고찰에 대한 논리를 찾을 수 없고 주제를 잡아낼 수 없었다. 크게 1부 “지하의 세계”, 2부 “진눈깨비의 연상에서”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2부는 그나마 스토리가 있어서 그 정신세계를 상상하는데 도움이 되었지만 1부는 정말 오리무중이었다.

정신병을 앓고 있는 어떤 이의 정신세계가 자유분방하게 끝간 데를 모르고 펼쳐지는 그 느낌이었다. 연결고리도 없고 논리도 찾을 수 없는 정신세계가 다방면으로 뻗어나가니 그 사상을 어찌 하나로 묶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이의 정신세계가 얼마나 복잡하고 얼마나 깊이 파묻혀있는지 일개 평범한 독자가 어찌 알아내겠는가 말이다.

그의 지론을 한번 들어보자.

“나는 지금 나이 40이지만, 40년이라면 이것은 이미 인간의 전생애라고 할 수 있다. 그야말로 굉장한 노령인 것이다. 40년 이상이나 산다는 건 염치를 모르는 비열한 짓이며 추악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40년 이상을 사는 건 대체 누구냐? 정직하고 성실하게 대답해 보라. 내가 대답하마. 바보와 무뢰한만이 40년 이상이나 사는 것이다. 나는 이 세상의 모든 노인에게 맞대놓고 말하겠다!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백발이 성성한 복 많은 노인들에게 말해 주겠다! 세상 놈들한테 맞대놓고 말하겠다! 나는 그럴 권리가 있다. 왜냐하면 나도 60까지 살 테니까. 70까지 살 테니까! 80까지 살 테니까!... 그러나 잠깐만! 여기서 한숨 돌려야겠다...”

자신의 처지에 있으면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마치 그럴 수밖에 없는 자신을 용서를 해달라는 것처럼 그는 말한다: “여러분, 내가 신이 나서 엉터리 철학을 두드리는 걸 용서하기 바란다. 어쨌든 40년 동안이나 지하생활을 해온 인간이니 약간 공상에 치우치더라도 봐줘야 할 게 아닌가.”

그런데 그의 공상들은 하나같이 모두 철학적이고 사색적이라 얼추 상상해보기도 힘들다.

그 자신도 이런 수기를 마음속으로 상기하면 됐지, 왜, 무슨 목적으로 쓰는지 묻는다. 그리고 대답한다: “종이에 적으면 어쩐지 훨씬 엄숙해지는 것 같다. 종이에 적으면 뭔가 아주 그럴듯해 보이고, 자기 비판도 더욱 철저할 수 있을 것이며, 그럴싸한 말도 절로 떠오를 게 아닌가. 뿐만 아니라 수기를 쓰고 있노라면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다.”라고...

남의 웃음거리가 되는 걸 싫어하고 남과 어울리기도 싫어하면서 그는 그가 오는 걸 원하지도 않는 친구들을 찾아가 억지로 웃음거리가 되고 경멸을 자초하고 그 경멸을 이겨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창녀에게는 인생이 불쌍하다면서 불행의 잘못된 길로 접어들었음을 알리기 위해 일장 연설을 해 공감을 얻기도 한다. 결혼한다고 해서 모두 행복한 건 아니지 않느냐는 창녀의 질문에 그는 대답한다: “그야 물론 모두가 행복한 건 아니지. 그래도 여기서 이런 생활을 하는 것보다야 나을 것 아닌가. 비교가 안 되지. 애정만 있으면 불행 속에서도 세상을 살아나갈 수가 있으니까. 슬픔 속에서도 인생은 좋은 거야. 아무리 어려운 살림살이라도 인생은 역시 아름다운 것이거든. 그런데 여긴 뭐가 있어? 더러운 시궁창, 악취가 코를 찌르는 시궁창이라고밖엔 말할 수 없잖나!”

창녀를 감동까지 시키는 그의 이 말들을 듣고 있으면 마치 그가 우리네와 같은 이성으로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이후에 그가 벌이는 행동이나 말을 보면, 그건 또 아니다. 자기가 한 말을 반박하고 더 추하고 비열한 이유를 대서 창녀도 멸시하고 자신도 스스로 환멸에 빠진다. 즉 남에게 모욕을 주고 그렇게 함으로써 스스로도 모욕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끝에 가서 그는 ‘수기’를 ‘소설’이라는 말과 기꺼이 혼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에 대한 부연 설명은 문학의 장르를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왜 이 수기가 소설이 되어야 했는지... 설명하는 것처럼.

“이제 그만 이 ‘수기’를 끝맺는 게 좋지 않을까? 어쩌면 이 따위를 쓰기 시작한 것 자체가 처음부터 잘못이었는지 모른다. 적어도 나는 이 ‘소설’을 쓰고 있는 동안 줄곧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러고 보면 이것은 이미 문학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징벌 수단이다.
뿐만 아니라, 나는 구석진 곳에 틀어박혀 돈도 없이 모든 현실과 인연을 끊은 채 지하의 세계에서 증오와 원한을 쌓아올리는 것으로 자기의 생활을 소모했다는 등의 얘기를 길게 늘어놔봐야 하나도 재미가 없을 건 뻔한 일이다. 소설엔 주인공이라는 게 필요하다. 그런데 여기엔 일부러 계획한 것처럼 주인공다운 것과는 정반대되는 성질만을 하나하나 거둬 모아놓지 않았는가. 그리고 첫째로 이런 일은 독자에게 동떨어져 있어서 생활이란 것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모두들 정신적으로 절름발이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멀리 동떨어져버려서 때로는 ‘산생활’에 대해 일종의 혐오를 느낄 지경이다. 그 때문에 ‘산 생활’을 상기시키는 걸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이제 병이 고질화되어, 진짜 ‘산 생활’을 마치 무슨 힘든 노동이나 되는 것처럼 느끼며, 차라리 ‘소설식인’ 생활 쪽이 좋다고 모두들 속으로 생각하게끔 되어버린 것이다.”

이건 마치 그가 내놓는 문학의 한 이론 같다. 충분히 이성적이고 문학적인 이론! 하지만 이 이론을 위해서 그가 여지껏 독자를 이리저리 이해하기 힘든 문학의 세계 속으로 끌고 다녔단 말인가. 그러기엔 그 과정의 길이 너무나도 험난하고 그 연결고리가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는 문학 이론이며 그 증명 과정이다.

아... 문학 전공자로서 할 말은 아니지만 나름 정말 어려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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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Road -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
박준 글.사진 / 넥서스BOOKS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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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멋진 여행길이 있을까. 박준의, 이 사람의, 저 사람의, 너와 나의 카오산 로드... 가난한 여행자들이 모이는 곳, 국적을 불문하고 허름한 게스트하우스에 모여들지만 그곳이 태국이건 아니건 상관없다. 그곳엔 밤이건 새벽이건 활기가 넘치고 언제나 배낭여행객들을 맞을 준비가 되어있는 곳이다. 싼 가격으로 여행할 수 있는 곳, 잠시 머물다 가는 여행객도 있고 잠시 머물려고 왔다가 어느 새 그곳에 있는 게 생활이 된 사람들도 있다.

이 책을 3분의 1쯤 읽었을 때, 확 던져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떠나고 싶었다. 배낭 하나 싸서 등에 짊어지고 회사고 집이고 일이고 다 내던지고 떠나버리고 싶었다. 카오산 로드로... 반쯤 읽었을 땐 다시 맘을 먹었다. 언젠가 꼭 방문해주리라고 다짐을 했다. 더러워도 무서워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게 있을지라도 내 꼭 네게로 가서 한 달이든, 석 달이든 함께 살아보리라 맘먹었다. 그만큼 이 책은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내게로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하지만 끝까지 다 읽었다. 그러고 나니 맘이 변했다. 카오산 로드로 가는 마음은 여전했지만, 장기여행에 대한 벅찬 마음은 여전했지만, 꼭 떠나는 것만이 대수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당장은 아니다. 내게는...

이 책은 일단 볼거리, 읽을거리, 먹을거리, 생각할 것들로 가득하다. 생활이, 여행이 생경하게 그 실상과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지만 그것이 어느 여행집보다 더 멋들어지게 드러나 있다.

박준이 여행자들에 대한 인터뷰를 담고 있는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보통 사람들이 보면 특별해보이지만 사실 우리와 다를 게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다. 다른 게 있다면 그들은 여행을 ‘저지른’ 사람들이고 우리는 이곳에서 그저 꿈만 꾸고 있다는 정도랄까. 하지만 그 차이가 얼마나 크던가. 사람은 누구나 머릿속에 하고픈 일이 반, 해야 할 일이 반 정도이리라. 우리는 현재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고, 그들은 하고픈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다른 세상 속에서 다름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며 돌아보면 보이는 모든 이들과 친구가 되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 같이 하는 말은 여행을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을 찾고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는 것이라고 한다. 난 내가 날 사랑하기 시작한지 정말 몇 년 안 됐다. 늘 나 자신에 불만이었고, 더 노력하지 못하고 더 앞서가지 못하는 내가 못마땅했었다. 더 똑똑하지 못한 게 불만이었고, 더 예쁘지 못한 게 억울했고, 더 사랑받지 못해서 안달했었다. 하지만 세상과 부딪치고 일상을 살면서 조금씩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내가 얼마나 소중한지, 얼마나 귀한지 깨달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행객들에 비하면 조금 억울하다. 내가 몇 십 년을 통해 부딪치고 깨지면서 깨달은 그 조그만 진실을 그들은 더 젊은 나이에 여행을 ‘저질러’ 가면서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 온 몸으로 배우고 경험하고 깨닫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즐겁고 행복하게... 그러니 난 이 얼마나 억울하지 아니한가.

“아, 제일 많이 바뀐 점은 그거다. 여행을 하다보니 내가 좋아졌어요. 그리고 사는 게 전보다 조금 더 즐거워졌어요.”

선진국을 다니며 명품을 사고 하나밖에 없는 디자인을 걸치고 멋진 풍경을 구경하는 것도 나름의 깨달음거리를 줄지 모르지만, 허술하고 산만한 카오산 로드에서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세상을, 멋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덤으로 자신을 찾고 자신을 사랑하고 그로 인해 세상을 아름답게 볼 줄 알고 더불어 이웃들에 대한 배려도 배운다면 이보다 더 나은 세상을 어디에서 경험할까.

망설이는 그대, 이제 한번은 떠날 때가 왔다. 망설이지 말고 떠나라, 카오산 로드로... 언젠가 나와 마주친다면 우리 서로 한번 웃어주자고... 친구...

하지만 그 전에 난 매일매일 배낭 속에 읽을거리 세상을 잔뜩 넣은 배낭을 메고 세상을 향한 여행을 한다. 그렇게 난 이미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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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면서 책쓰기 - 컨셉의 명수에게 배우는 책쓰기 전략
탁정언.전미옥 지음 / 살림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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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매일 무엇인가를 쓴다. 그게 일기든, 메모든, 리뷰든, 기획서든 말이다. 일에 관해서든, 일상생활에 관련해서든 조금이라도 글을 쓰게 마련이다. 물론 그냥 쓰는 글자와 글쓰기의 글은 의미가 다르지만. 

이 책에서는 그렇게 글을 쓰는 사람들로서 조금 욕심을 내보라고 말한다. 이제는 전문적인 글쓰기뿐만 아니라 나와 너 같은 평범한 사람도 글을 쓰는 시대이고, 컨셉만 잘 잡아도, 조금만 훈련해도 글을 쓸 수 있다는 용기를 준다. 조금만 컴퓨터를 다룰 줄 알면 이제 누구나 쉽게 싸이니 홈피니 블로그니 하는 온라인상에 자기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다. 자신의 취향이나 관심, 느낌이나 일상, 직업상의 애로, 전문 분야 등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쓰고 온라인상에서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요즘은 블로거로 출발해서 책을 내, 의외의 성공을 거두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인터넷 상의 글쓰기와 전문가가 아닌 일반적인 개인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더구나 책을 계속해서 읽고 책에 대한 감상을 “리뷰”로 적고 “이주의 리뷰”로 뽑히기도 하다보면 조금씩 욕심이 생길 수도 있다. 이 책은 그런 욕심을 실천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준다. 그 방법이 좀 애매하기도 하고 이해가 잘 안 가기도 하지만, 일반인으로서 책을 내기 위한 여러 가지 아이디어와 절차를 알려준다.

“일하면서 책쓰기”는 사실 일하면서 어떻게 시간 안배를 하라는 등,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한다는 등, 어떻게 출판사와 접촉을 하라는 등의 구체적인 것을 알려주기보다는 어떤 일을 함에 있어 그 분야를, 또는 그 취미를 전문 분야로 키워서 책을 낼 생각을 하라는 쪽이다. 일단 쓰기 시작해 용기를 갖고 전문분야를 파고들어 독자들이 원하는 바를 찾아 전략을 갖고 컨셉을 잡고 많이 읽고 많이 쓰라는 얘기이다. 수필이나 시, 소설 분야가 아닌 일상 속에서 컨셉을 잡고 컨셉을 키워 쓰라는 것이다.
 
누구나 책을 쓸 수 있다는 용기를 주는데 이만한 책도 없다고 본다. 게다가 컨셉을 잡고 기획을 하고 조사나 수집 등의 방법을 알려주는 데서도 이만하면 꽤 좋은 지침서라고 본다. 또한 글을 쓸까, 써도 될까...하고 고민하는 선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정말 좋은 책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다. 하기야 누구나 그 이해하는 폭이 다르고 또 실용적으로 적용하는 크기가 다르고 각자의 노력이나 역량이 다른데 그 어찌 장담할 수 있으랴만은... 누구나 (정확하게 말하면 “누구나”도 “누구나” 나름이다~!) 책을 낼 수는 있지만, 과연 성공한 확률은 얼마나 될까... 아무튼 이 책을 읽으면서 글을 좀 더 체계적으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막연히 아무거나 쓸 것이 아니라 일종의 목적의식을 갖고 조금씩 훈련하는 마음으로. 비록 그것이 아무 결과에도 이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나는 알지 않는가. 내 글이 내 마음에 든다는 것을... 그럼 됐다. 결과야 장담 못하지만 일단 시작하면 그것이 반의 성공이 아니겠는가. 책은 못 내더라도 글은 조금이라도 더 좋아질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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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단 한번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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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꽃이 수줍게 피어있고, 고운 나비가 날았지만, 다 읽고 나니, 장영희 선생님의 감성이 감동의 낙엽이 되어 떨어져 내 마음속에 수북이 쌓였다. 읽는 내내 눈물이 어리고, 가끔 고개를 들면 아름다운 낙엽이 바스락 소리를 냈고, 그 낙엽 태우는 냄새도 향긋하게 페이지마다 배어있다.
 
한편 엄격한 영어 선생님으로, 또 한편 문학을 감성적으로 읊어내는 교수로도 모습을 드러내지만, 한 켠에서는 장애인으로서 넘어야 했던 많은 산들 앞에서 주저앉았다 다시 일어난 열성이, 또 한 켠에서는 우리와 똑같이 못났다고 느끼며 자신을 채찍질하고 좌절하고 자책하는 모습도 보인다.

“미운 사람 보고도 반가운 척 웃고, 하고 싶지 않은 말도 꼭 해야 할 때가 있고, 지키지 못할 약속인 줄 알면서도 무조건 남발하고, 누군가의 말에 상처받고 또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이 ‘살아감의 절차’를 다시 되풀이해야 할 일이 한심하다.”

내게는 저 절차가 ‘생존’의 의미인데 선생님은 그게 살아감이다. 내게 살아간다는 것은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말이다. 생존은 별 의미 없이 그저 숨쉬는, 한숨 쉬는 행위이다. 즉 내게 의미 없는 생존이 누구에게는 살아감이 되는 것이다.

선생님은 늘 부족하지만 현재 자신이 갖고 있는 것, 자신의 재능, 즉 자신을 소중히 여기라고 말씀하신다. 고민, 불평, 불만이 끊임없이 쌓이는 지겨운 나날이 아무 일 없는 천국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다고 역설하신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축복받은 시간이고, 천국은 다름 아닌 바로 여기라고...”

가족 간의 얘기도 애틋하게 풀어내신 선생님은 공적인 신분에서 벗어나 아버지, 어머니의 장애를 가진 애처로운 딸로... 연주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철없던 초등학생 영희로도 가만히 모습을 드러내, 때로는 수줍게, 때로는 부끄럽게, 또 때로는 의연하게 지나간 세월을, 현재의 세상을 보여준다.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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