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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Road -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
박준 글.사진 / 넥서스BOOKS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보다 더 멋진 여행길이 있을까. 박준의, 이 사람의, 저 사람의, 너와 나의 카오산 로드... 가난한 여행자들이 모이는 곳, 국적을 불문하고 허름한 게스트하우스에 모여들지만 그곳이 태국이건 아니건 상관없다. 그곳엔 밤이건 새벽이건 활기가 넘치고 언제나 배낭여행객들을 맞을 준비가 되어있는 곳이다. 싼 가격으로 여행할 수 있는 곳, 잠시 머물다 가는 여행객도 있고 잠시 머물려고 왔다가 어느 새 그곳에 있는 게 생활이 된 사람들도 있다.
이 책을 3분의 1쯤 읽었을 때, 확 던져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떠나고 싶었다. 배낭 하나 싸서 등에 짊어지고 회사고 집이고 일이고 다 내던지고 떠나버리고 싶었다. 카오산 로드로... 반쯤 읽었을 땐 다시 맘을 먹었다. 언젠가 꼭 방문해주리라고 다짐을 했다. 더러워도 무서워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게 있을지라도 내 꼭 네게로 가서 한 달이든, 석 달이든 함께 살아보리라 맘먹었다. 그만큼 이 책은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내게로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하지만 끝까지 다 읽었다. 그러고 나니 맘이 변했다. 카오산 로드로 가는 마음은 여전했지만, 장기여행에 대한 벅찬 마음은 여전했지만, 꼭 떠나는 것만이 대수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당장은 아니다. 내게는...
이 책은 일단 볼거리, 읽을거리, 먹을거리, 생각할 것들로 가득하다. 생활이, 여행이 생경하게 그 실상과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지만 그것이 어느 여행집보다 더 멋들어지게 드러나 있다.
박준이 여행자들에 대한 인터뷰를 담고 있는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보통 사람들이 보면 특별해보이지만 사실 우리와 다를 게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다. 다른 게 있다면 그들은 여행을 ‘저지른’ 사람들이고 우리는 이곳에서 그저 꿈만 꾸고 있다는 정도랄까. 하지만 그 차이가 얼마나 크던가. 사람은 누구나 머릿속에 하고픈 일이 반, 해야 할 일이 반 정도이리라. 우리는 현재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고, 그들은 하고픈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다른 세상 속에서 다름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며 돌아보면 보이는 모든 이들과 친구가 되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 같이 하는 말은 여행을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을 찾고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는 것이라고 한다. 난 내가 날 사랑하기 시작한지 정말 몇 년 안 됐다. 늘 나 자신에 불만이었고, 더 노력하지 못하고 더 앞서가지 못하는 내가 못마땅했었다. 더 똑똑하지 못한 게 불만이었고, 더 예쁘지 못한 게 억울했고, 더 사랑받지 못해서 안달했었다. 하지만 세상과 부딪치고 일상을 살면서 조금씩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내가 얼마나 소중한지, 얼마나 귀한지 깨달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행객들에 비하면 조금 억울하다. 내가 몇 십 년을 통해 부딪치고 깨지면서 깨달은 그 조그만 진실을 그들은 더 젊은 나이에 여행을 ‘저질러’ 가면서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 온 몸으로 배우고 경험하고 깨닫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즐겁고 행복하게... 그러니 난 이 얼마나 억울하지 아니한가.
“아, 제일 많이 바뀐 점은 그거다. 여행을 하다보니 내가 좋아졌어요. 그리고 사는 게 전보다 조금 더 즐거워졌어요.”
선진국을 다니며 명품을 사고 하나밖에 없는 디자인을 걸치고 멋진 풍경을 구경하는 것도 나름의 깨달음거리를 줄지 모르지만, 허술하고 산만한 카오산 로드에서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세상을, 멋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덤으로 자신을 찾고 자신을 사랑하고 그로 인해 세상을 아름답게 볼 줄 알고 더불어 이웃들에 대한 배려도 배운다면 이보다 더 나은 세상을 어디에서 경험할까.
망설이는 그대, 이제 한번은 떠날 때가 왔다. 망설이지 말고 떠나라, 카오산 로드로... 언젠가 나와 마주친다면 우리 서로 한번 웃어주자고... 친구...
하지만 그 전에 난 매일매일 배낭 속에 읽을거리 세상을 잔뜩 넣은 배낭을 메고 세상을 향한 여행을 한다. 그렇게 난 이미 자유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