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단 한번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0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책에는 꽃이 수줍게 피어있고, 고운 나비가 날았지만, 다 읽고 나니, 장영희 선생님의 감성이 감동의 낙엽이 되어 떨어져 내 마음속에 수북이 쌓였다. 읽는 내내 눈물이 어리고, 가끔 고개를 들면 아름다운 낙엽이 바스락 소리를 냈고, 그 낙엽 태우는 냄새도 향긋하게 페이지마다 배어있다.
 
한편 엄격한 영어 선생님으로, 또 한편 문학을 감성적으로 읊어내는 교수로도 모습을 드러내지만, 한 켠에서는 장애인으로서 넘어야 했던 많은 산들 앞에서 주저앉았다 다시 일어난 열성이, 또 한 켠에서는 우리와 똑같이 못났다고 느끼며 자신을 채찍질하고 좌절하고 자책하는 모습도 보인다.

“미운 사람 보고도 반가운 척 웃고, 하고 싶지 않은 말도 꼭 해야 할 때가 있고, 지키지 못할 약속인 줄 알면서도 무조건 남발하고, 누군가의 말에 상처받고 또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이 ‘살아감의 절차’를 다시 되풀이해야 할 일이 한심하다.”

내게는 저 절차가 ‘생존’의 의미인데 선생님은 그게 살아감이다. 내게 살아간다는 것은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말이다. 생존은 별 의미 없이 그저 숨쉬는, 한숨 쉬는 행위이다. 즉 내게 의미 없는 생존이 누구에게는 살아감이 되는 것이다.

선생님은 늘 부족하지만 현재 자신이 갖고 있는 것, 자신의 재능, 즉 자신을 소중히 여기라고 말씀하신다. 고민, 불평, 불만이 끊임없이 쌓이는 지겨운 나날이 아무 일 없는 천국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다고 역설하신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축복받은 시간이고, 천국은 다름 아닌 바로 여기라고...”

가족 간의 얘기도 애틋하게 풀어내신 선생님은 공적인 신분에서 벗어나 아버지, 어머니의 장애를 가진 애처로운 딸로... 연주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철없던 초등학생 영희로도 가만히 모습을 드러내, 때로는 수줍게, 때로는 부끄럽게, 또 때로는 의연하게 지나간 세월을, 현재의 세상을 보여준다.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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