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 양장본
마크 해던 지음, 유은영 옮김 / 문학수첩 리틀북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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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밤중에 개가 쇠스랑에 찍혀 피를 흘리며 둑어있었다. 이웃집 시어즈 부인의 개였다. 만 열다섯 살 먹은 자폐아인 크리스토퍼는 자신의 이야기를 함과 동시에 개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기 위해 추리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이것이 이 소설의 줄거리다.

특이하고 재밌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크리스토퍼는 자신의 시각으로 이 세상을 그려나간다. 그의 세계에는 우리가 흔히 농담이라고 부르는 것이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논리를 무척 좋아하는 크리스토퍼는 수학을 좋아하고 잘한다. 하지만 또 한편으론 그러면서 세상과 부딪치고 깨지면서 깨뜨린다. 자신의 세상과 자신이 살고 있는 사람들의 세상이 무리 없이 소통하기에는 자폐의 벽이 너무 두껍다. 15년이나 사랑과 정성을 다해 키워온 엄마와 아빠도 그 벽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때가 있다. 더구나 자신들의 문제를 더 우선순위로 놓고 생각하다 보니, 크리스토퍼는 어느 순간 더 멀리 가 있는 것이다.

작품 자체는 무척 흥미롭고 구성도 좋고 문체도 자연스럽고 읽기에도 무리가 없다. 하지만 읽는 내내 마음 한 켠이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었다. 이 세상이 크리스토퍼가 알고 있는 진실과 순수함만 있는 세상이라면 크리스토퍼에게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래서 작가는 이렇게 거짓과 오염으로 변해버린 우리들, 어른들의 세상을 비판하는지도 모르지만, 우리의 평범하고도 미천한 머리로는 도저히 짐작조차 할 수 없고, 알 수 없는 “자폐”라는 세상을 마치 기준인 것처럼 드러냈다. 일단 자폐라는 걸 받아들이면 크리스토퍼가 이해된다. 하지만 이해란 건, 이해일 뿐이다. 그래서 한편으로 이 소설이 어렵고 무겁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정말 불편했던 건 그의 스위스제 군용 칼이었다. 크리스토퍼가 칼이란 생각을 하거나 손에 쥔다거나 하는 것도 그 나름대로의 방어이지만, 그런 공격적인 면에 대한 섬뜩함은 대할 때마다 말 못할 공포감을 안겨주었다.

물론 이 소설은 특별히 교훈을 주려는 것도 아니고 이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것도 아니다. 재미만을 추구하는 소설 같지도 않다. 하지만 광고 카피가 말하듯 ‘깊은 감동’보다는 덕분에 ‘세상을 한번 뒤돌아보게 하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우리 같은 범인이 어떻게 그렇게 복잡다단하고 천 갈래 만 갈래 나뉘는 인간의 정신세계를 감히 알고자 하겠는가. 그저 한 켠이라도 스치듯 봤다면, 손끝으로라도 살짝 만져봤다면, 그 다음은 이해하고 열린 마음으로 그 다른 세상을 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비록 스위스제 군용 칼을 손에 쥐고 있더라도 그런 크리스토퍼를 만난다면 알렉산더 부인처럼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걱정 마라. 나는 경찰에게 말하지 않아. 그리고 아빠에게도 말하지 않으마. 이야기를 조금 했다고 해서 나쁠 건 없거든. 이야기를 나누는 건 그저 정답고 좋잖아.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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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의 심리학 - 인간은 어떻게 서로에게 매혹되는가 마인드 북스 1
파트릭 르무안 지음, 이세진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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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자세히 쓰다 보니 어느 정도 스포일러성 리뷰가 되었다. 하지만 한방에 범인 잡는 추리물도 아니고, 반전을 노리는 영화도 아니며, 이 스포일러성 리뷰가 오히려 이 책을 읽는데 도움이 되리라 감히 생각한다. 워낙 방대하게 유혹에 대해 여러 방면을 어우른 책이다 보니, 각 파트마다 중점적인 면을 보고 책에서 자세한 내용을 읽으면 더 재밌고 흥미로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유혹의 심리학은 원제가 “seduire”이다. 직역하면 “유혹하는 것”이 되겠다. 즉 유혹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얘기인 것이다. 저자는 다방면에서 과학적이며 심리적인 근거를 들어 유혹에 대해 설명한다. 너나 나나 겪을 수 있는 일상적인 예, 세렌기티(!)의 “동물의 세계”를 통해서 어느 정도 익숙해 있는 동물의 세계나 심지어 식물들의 어떤 모습, 또 스크린에서 보는 유명한 배우나 가수 등을 예를 들어 설명함으로써 소설도 아닌 꽤 두꺼운 책을 “유혹”이라는 주제를 갖고 쉽게 풀이해 놓았다. 태고 적부터 역사를 아우르며 전 세계의 종교 습관도 동원되고 인간의 정신, 오감을 통한 육체까지 정말 안 다루는 부분이 없을 정도로 모든 면에서 유혹과 관련시키고 있다.

유혹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 그리고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육감까지... 그리고 사회적으로 나타나는 유혹의 모습까지 일반적이고 다양한 모습들을 그리고 있다.

역사적으로 “남자는 욕망하는 상대를 사랑하고 여자는 사랑하는 상대를 욕망한다.”고 한다. 

인간에게 있어 감각이 중요한 이유는 “모든 남녀의 속셈은 하나다. 아무리 플라토닉하다 한들, 사랑은 결코 육체성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남자와 여자가 근본적으로 유혹에 대한 접근이 다르다는 것이겠다.

시각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외모이다. 남자들에게 여자의 미모가 중요한 것은 (과연 그럴까만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란다.

“어떤 민족을 대상으로 조사하든 간에 남성들은 항상 생식능력, 가임능력, 즉 어머니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최고조에 있는 연령대의 여성들을 유혹하고 싶어 한다. 남성들은 건강한 후손을 보기 위해 산모가 될 여성의 건강 역시 양호하기를 바란다. 바로 그 때문에 남성들은 여성의 미모를 중시한다. 미모는 대체로 건강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꼭 그럴까...

여자가 남자를 볼 때는 그 입장이 사뭇 다르단다. “‘선험적으로’ 남자들을 선택할 때는 건강보다 유전적 자산이 더 중시된다. 아기를 갖는 사람은 남자 쪽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커다란 물건(생식능력이 뛰어난)을 지닌 돈 많고 지배적인 남성(양육기의 안전을 보장해 줄 만한)이야말로 남성의 (로맨틱한) 이상형이다. 여성은 촉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언제나 현실적이고, 물건을 구매하기 전에는 일단 만져봐야 한다. 상대의 나이나 외모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론상으로는 단 한 방, 정자 한 마리면 충분하니까.”

청각적으로 보면 동물이나 인간이나 유혹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여기서는 단지 소리와 연관된 청각만 뜻하는 것이 아니고 말(유혹 시에 돌려 말하는!)이 뜻하는 바도 포함한다. 즉 동물적인 입장에서 보면, “다른 새의 둥지에서 자라는 뻐꾸기 새끼들은 그 새 새끼들의 고유한 울음소리를 흉내 내어 양부모들을 유혹한다(속인다)”고 한다. 반면, 인간은 소리만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유혹할 때, ‘너를 원해’라든가 ‘사랑해’라든가 또는 다른 말로 사랑 고백을 하며 유혹을 한다는 것이다.

그럼 사랑의 맛은 어떨까. 동물들이 흔히 서로 냄새를 맡고 핥고 하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듯이 인간도 자궁 속에서부터 맛에 대한 소양을 쌓는다고 한다. 맛 하면 또한 우리가 흔히 알 수 있듯이 최고의 유혹, 키스가 아니겠는가. 그 이후의 기타 등등은 생략한다. 아무튼 도망가는 남편을 잡을 수 있는 것이 요리일 수도 있다니, 결혼 후에 열심히 요리를 연마할지어다~!

후각에서는 기가 막힌 일화 하나만 들고 넘어간다. 뭐, 그런 것으로 유혹할 수도 있다니... 즉 용맹하고 열정적인 남편인 나폴레옹이 전장에서 몇 달간이나 아내와 헤어져 있다가 사랑하는 왕비에게 “이제 2주 후면 돌아갈 테니 ‘몸을 씻지 말고’기다리라는” 전갈을 보냈다는 얘기다. 흠... 2주간이나 몸을 씻지 말고... 꽤나 독특한 후각의 취향 같지만 후각과 리비도 사이에는 긴밀한 관계가 존재한다고 한다.

촉각에 있어서는 개인적으로 “기분 좋은” 발견을 해 저자에게 감사할 정도이다. 다음과 같은 구절 때문이다. 불어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표현들이 유난히 촉각에 의지한 표현이 많다면서 예를 든 문학 작품이 바로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과 엑토르 말로의 <집 없는 아이>였다. “코제트 혹은 레미 같은 소설 속 인물들은 ‘감동적’이다. (touching-와 닿는다)”

사랑의 연금술이라는 호르몬 작용에 대해서는 불륜과 정조의 생태학, 여성과 남성의 거세, 마조히즘과 새디즘까지 어우른다. 즉 고통과 쾌락의 엔돌핀에 대한 얘기, 멜라토닌이 동물들의 생식활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설까지... 게다가 “벼락같은 첫 만남, 그것 역시 오르가슴에서 생성될 것으로 추정되는 그 무엇을 감지하는 것이라”고 한다.

‘왜 유혹하는가’라는 장에서는 행동학자가 말하는 이상적인 남성상과 여성상을 알려준다.

결합을 오랜 기간 끌고 나가기를 원하는 남성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녀야 한다.

- 한눈에 보기에도 건강상태가 좋아야 하며 얼굴과 신체가 좌우대칭이어야 한다. 상대 여자보다 키가 커야 하며 어깨가 넓고 허리는 적당히 날씬해야 한다(포도주나 맥주를 담는 부대자루 같은 체형이어서는 안 된다.)

- 똑똑하고 야심만만하며 열심히 일해야 한다.

- 정서적으로 안정감이 있고 성숙한 인간이어야 한다. 친절하고 존경할만하며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한다.

- 관대해야 한다. 요컨대, 선물을 자주 하고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며 꽃을 보내고 가끔은 걸인들에게 적선도 베풀 줄 알아야 한다.

- 오랜 기간 동안 정서적으로나 (재정적으로나) 함께 살아갈 의지가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 아기들을 온화하게 대해야 한다.

- 사회적으로 좋은 위치에 있고 은행잔고가 넉넉해야 한다.

- 예전에 미모의 여성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인 적이 있어야 한다. 

한편 남성들 입장에서 보면, 평균적인 서양 남성은 이상적인 여성, 기꺼이 결혼할 만한  여성의 조건을 다음과 같이 정의해 왔다.

- 얼굴과 신체가 좌우대칭을 이루어야 하고

- 안색이 환하고 여드름, 잡티, 털이 없어야 한다(이 때문에 각 가정고 뷰티 살롱에서 온갖 고문들이 자행되고 있다).

- 눈의 동공이 커야 하고

- 입술이 붉고 도톰하며 촉촉해야 한다.

- 머리칼은 반짝반짝 윤기가 나고

- 허리가 가늘고 가슴은 풍만하며 엉덩이가 펑퍼짐해야 한다.

읽다가 절망했다. 도대체 해당되는 게 있어야 말이지... 쩝~!

작가는 마지막으로 몇몇 여성적 유혹의 모습을 그리는데, 그 가운데 마릴린 먼로의 경우를 보자. 그대로 하면 세계 최고의 지도자를 꼬실 수 있는겨? 그건 두고 볼 일이지만~!

마릴린 먼로는 그리스적인 미의 기준을 충족시키는 미녀는 아니었지만, “그녀는 애교의 명수였다. 상냥하게, 교묘하게 눈썹을 찡긋해 보이거나 추파를 던지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순진한 표정을 지어 보이곤 했다. 마릴린 먼로에게는 순결한 처녀의 (가짜) 수줍음, 처녀티를 내면서도 도착적인 면이 있는 천진난만함이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이 여배우는 어린아이 같은 매력으로 우리의 넋을 빼앗았던 것이다.”

하지만 마릴린 먼로가 아니라고 해서 절망하지 마시라. 저자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결코 발정한 짐승들이 아니다. 심지어, 아니 특히 그들이 사랑을 나눌 때에는.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충동을 초월하며, 나아가 그 충동을 승화하는 것-이것이 휴머니즘의 초석이다. 그러한 휴머니즘이야말로 인간의 궁극적인 속성이라고 하겠다. 화류계의 여자도 처녀일 수 있고, 호색한도 낭만주의자일 수 있다. 유혹은 단순한 이끌림이 아니요, 사랑은 섹스 이상이다. 감각과 관능성을 인간답게 사용할 때 남성과 여성은 결국 서로를 사랑하게 될 것이고, 거기에는 소아애도 노인애도 없을 것이다. 사랑, 그냥 단순한 사랑일 뿐.”

사실 어렵게 썼다면 너무 과학적이니, 인류학적이니 해서 이해도 제대로 못했을 거면서, 너무나 일상적인 예를 들며 쉽게 읽히다보니, 좀 아쉽다 싶은 점이 좀 눈에 띈다. 읽다보니 이 책이 상당 부분 개론적인 입장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과학적인 실험이나 조사, 분석 그리고 심리적인 입장에서 객관성도 떨어진다. 즉 손에 잡히는 대상을 가지고 일종의 결론을 유추하려했다는 점에서 어떤 과학적인 근거나 심리적인 분석에 대한 신빙성에 상처를 입었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동물은, 인간은 어떤 면에서 유혹을 하고 유혹을 당하는가 하는 이런 저런 얘기를 그냥 재미로 읽는다고 하면 오히려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될 것 같다. 아쉬운 점으로 불평을 하긴 했지만 정말 다방면에서 유혹에 대한 얘기를 이처럼 방대하게 썼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그 존재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다. 최고의 유혹 보고서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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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연습
조정래 지음 / 실천문학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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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된 건, <태백산맥>이었고, 그 다음으로는 <아리랑>이었다. 그 방대함과 위대함에 감탄에 감탄을 하며 읽었었다. 느낀 것도 많았고 배운 것도 많았고 소설로서의 재미도 끝내줬었다. 특히 <아리랑>은 우리 민족을 사랑하게 해준 작품이었고, 우리 민족의 식민, 해방을 이해하게 해준 작품이었다. 단행본으로는 <대장경>도 읽었는데, 불심으로 왜구를 물리치려는 노력과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감동적인 작품이었다. 

<인간 연습>에서 윤혁이라는 인물은 대남간첩이었고, 남파되자마자 찾아간 친구에 의해 고발당해 감옥에서 30년을 복역하고 정신질환을 앓는 상태에서 전향서에 사인을 하고 타의에 의해 ‘강제전향’을 당하고 나온 인물이었다. 즉 수기를 쓰라고 민규가 말하는 대목에서 그의 존재가 어떤 것인지 잘 드러난다.

“한 사람의 일생이 정직한가 정직하지 않은가를 준별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그 사람의 일생에 그 시대가 얼마나 담겨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데, 선생님이야말로 우리의 분단시대를 온몸으로 떠안고 가장 정직하게 살아오신 분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아무 일도 한 게 없다고 하시는데, 평생을 수난당하고 산 그것보다 더 치열한 일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또 중요한 사실은, 수많은 장기수들이 당한 고난은 엄연한 분단 역사의 한 페이지라는 사실입니다. 그 사실을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고 묻혀버리게 하는 것이 옳은 일입니까. 그건 꼭 기록으로 남겨져야 할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습니다.”

이 책은 생각보다 ‘짧은 장편’이었다. 분단, 이념 그리고 세상이 변해감에 따라 더욱더 오리무중이 되어가는 사상과 현실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글이었다. 의외로 ‘짧은 장편’이란 느낌이 든 것은 주인공의 사고나 인생역정, 감옥에서의 이야기 그리고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민규, 또 윤혁을 친할아버지처럼 따르는 고아남매와의 관계 등 많은 이야기들이 그냥 단순한 이야기처럼 흘러간다는 느낌 때문이리라. 윤혁의 시선이나 삶에 대한 생각, 또 이야기들이 단순구도로 흐르다 보니 어느 정도는 교과서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윤혁의 남은 인생이 바뀌어 가는 세상에서 향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는 어쩌면 그렇게 교과서적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지만 다 읽고 난 느낌이 마치 양념이 덜 된 말간 국 같다고나 할까. 치열한 소재를 그렇게 싱겁게 끓여내는 게 오히려 선생님의 멋인지도 모르겠다. 맛은 좀 싱겁지만 몸에는 좋은 국 같은... 암튼 내겐 그런 느낌이었다. 소설로보다는 조정래 선생님의 전체적인 작품 구도 안의 한 작은 조각이라고 이해하면 훨씬 더 아름답고 좋은 작품으로 다가올 것 같다.    

윤혁이 떠날 때, 윤혁의 아내 모습은 참... 감동적이다.  

<아내의 눈물은 여자의 마음이었고, 웃고 있는 얼굴은 당성의 견고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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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 러블리
강서재 지음 / 예담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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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0여 쪽의 이 책을 다 읽고 접어놓은 쪽이 딱 한 군데였다. 나름대로 그럭저럭 재밌게 읽었고, 웃은 대목도 있고 마음이 울~렁 했던 대목도 있었는데, 다시 보려고 접어놓은 쪽이 단 한쪽이라니 좀 허무하다. 하지만 명품(!) 로맨스를 읽은 듯 금방 읽었으니 억울할 건 없다. 또 전체적으로 글발(!)이 괜찮아 읽는 동안은 어느 정도 즐겁기도 하다.   

<나는 ‘남자’보다 ‘적금통장’이 좋다>라는 책으로 알게 된 강서재는 요즘 잘 나가는 방송작가다. 3년 동안 억척 같이 1억이라는 머니를 모은 내용을 책으로 냈고, 이번에는 서른이라는 나이로 악착 같이 명품남자를 찾아 물 좋은 동네를 삼만 리나, 있는 푼수, 없는 푼수 다 떨며 헤매는 여자 얘기를 소설로 냈다. 전작은 나름 얄미운 면도 없지 않았지만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깨달은 바나 어려움 등이 섞여있었고, 처음 사회로 나오는 이들에게 ‘머니’에 대한 의식을 심어준다는 면에서 꽤 도움 되는 측면도 있었다. 현실적이고 진솔한 면이 단점을 덮어주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 책은... 장편소설보다는 로맨스소설로 분류되어야 할 것 같다. 어떤 면에선 <쇼퍼홀릭>과 <워커홀릭>을 흉내 낸 감도 느껴진다. 그게 요즘 한국에서 잘 나가는 싱글여자들의 세계라면 할 말이 없어지지만, 그 세계 속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살고 있는 내겐 좀 동떨어진 세계로 보였고, 과장이 좀 지나치다 싶은 면이 거슬리기도 했다. 또 소설로서의 구성도 다른 걸로 덮어주고 넘어가니 망정이지. 우연이나 갈등 해소 같은 것도 소설로서는 그 가벼움이 지나치다. 그러니 어느 더운 날,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먹고 난 느낌이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 방송작가인 장만옥의 스타일을 보자면, 평범하고 자그마한 체구에 가슴이 무척 작지만 꽤 귀여운 외모를 가진 여자다. 성격은 어떤 때 보면 <올드미스 다이어리>의 미자처럼 푼수를 떨기도 하지만 일에서만은 뒤지지 않는 커리어우먼이다. 이제 좀 따져보자. 쇼핑으로 원고료 들어오는 대로 다 써버리고 그것도 모자라 몇 개의 카드가 정지되고 명품관에 가서 울며불며 사정해서 명함을 주고 나오는 것으로 79만원 짜리 원피스를 입고 나온다. 물론 나중에 갚는 건 잊는다. 그게 평범한가? 물론 요즘 ‘된장녀’ 얘기를 보면 평범하다 하겠지만, 그 주인공이 그럼 된장녀란 말인가. 44사이즈니 자그마한 체구 맞다. 그런데 가슴이 작은 거에 무지 콤플렉스가 있어서 작대기 세 개짜리 브랜드 양말을 브래지어 안에 넣고 다닌다. 아무리 과장을 해도 그렇지, 지금이 70년대도 아니고... 뽕브라가 얼마나 좋은 게 많은데... 더구나 패션에 그렇게 민감한 여자가... 이 얘길 왜 굳이 따지느냐... 제목이 연관되어있기 때문이다. 억지로 갖다 붙였다는 느낌이 드니 말이지.                   

이 책에 나타나는 여자의 심리는 어떻게 보면 모든 한국 싱글여자가 어느 정도는 느끼는 것일지 모른다. 아무리 고상하고 겸손한 사람이라도 현실적이고 속물적인 면이 없지 않다. 그런 면까지 부인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그게 전부는 아니다. 남자친구나 남편감으로 잘 생기고 몸 좋고 좋은 집안에 좋은 직업에 성격도 좋고 머니 많은 사람을 싫다할 여자가 있겠는가. 게다가 평범한 나를 좋아해주는 남자라면, 더구나 나의 최대 단점을 보면서 “헬로, 러블리~”라고 말해주는 남자라면, 진정한 명품남자 맞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런 명품남자가 평범한 여자하고 사랑에 빠지고 연애를 할 경우가 얼마나 될까.

그래서 이 소설이 로맨스소설이라는 얘기다. 내 사정, 내 현실은 다 잊고 로맨스소설의 완벽한 명품남이 평범한 나를 선택해준다는 설정과 해피엔딩...

다시 보려고 접어놓은 쪽, 한쪽도 정말 개인적인 이유였다. “원래 리스크란 리스크가 발생했을 때 손해 보는 쪽에서 관리하는 것이다.” 아무리 상대가 무슨 이유에서건 꼬셔도 리스크가 발생했을 때, 결국 손해 보는 건 당사자라는 말씀~! 여기선 연애에 대한 얘기였지만, 이건 자금이나 일에 대한 투자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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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말로 좋은 날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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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의 책은 지금까지 <순정>과 <소풍> 밖엔 읽은 것이 없었다. <순정>은 어디서 그런 상상력이 나오나 싶을 정도로 정신없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 새 도둑 이치도의 이야기에 푹 빠진 소설이었고, <소풍>은 맛과 글이 얽히고설키면서 맛과 멋으로 살아난 산문이었다. 그의 글 가운데 가장 좋다는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는 아껴먹는 떡처럼 일부러 남겨두고 있다.

그러다 이번에 <참말로 좋은 날>을 이런 저런 이유로 먼저 잡게 되었다. 처음으로 읽는 중단편집이었는데, 성석제가 바뀌었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 글이었다. 성석제는 작가의 말에서 세상은 바뀌어도 사람은 그대로라는 얘기를 한다. 결국 바뀐 건 자신일지도 모른다면서... 그만큼 자신도 느끼고 있는 바일 것이다. 바뀐다는 건, 언제나 익숙한 사람에겐 혼란을 불러오지만 세상이든 사람이든 바뀌기 마련이 아닐까. 

바뀐 성석제를 알아차릴 만큼 내가 성석제를 많이 읽은 건 아니었지만, 이 글들은 제목과는 다르게 전체적으로 우울하고 꾸질꾸질한 현실을 그린 게 대부분이다. 놀리는 듯하고 장난치는 듯하던 그는 어디로 가고 내게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일들이 특별한 애정도, 증오도 없이 무난하게 그려져 있다. <고욤>, <환한 하루의 어느 한때>, <고귀한 신세>, <악어는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었다>, <집필자는 나오라>, <저만치 떨어져 피어 있네> 등 모두 7편이 들어있다.

<고욤>에서는 관계가 묘해져버린 두 친구가 할머니 손순두부를 먹으러 가면서 일어나는 현재와 그들의 과거가 묘하게 얽힌 이야기였다. “고욤나무는 열매가 감나무보다 작아서 소시라고 불리긴 해도 실상은 감의 원종이다. 파랄 때는 도저히 먹을 수 없도록 떫지만 겨울에 얼었다 녹았다 한 고욤은 단맛이 났다. 개량종인 감에서 맛보기 힘든, 야생의 본질적인 맛이었다. 한번 고욤을 맛본 사람은 그 맛을 잊을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어릴 적부터 엄마가 가끔 “감보다 고욤이 달다”라는 말을 하는 걸 들은 적이 있었다. 이 글을 읽고 나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언제 그런 표현을 썼었는지 알아보려고. 실제적으로, 대중적으로 좋다고 알려진 것보다 원래 것이 더 낫다라는 것을 표현할 때 주로 쓴단다. 덕분에 그런 저런 얘기를 하며 엄마랑 웃었다.

그.런.데 웃긴 건, 조금 있다가 아버지한테 전화가 온 것이다. 그러면서 대뜸 그 뜻도 모르냐고... 그러면서 설명을 장황하게 해주신다. 엄마의 설명이 약간 틀렸다면서. (웃기는 집안이다.) 자수성가한 분답게 아버지는 예를 들어도 꼭 미래를 위해 저축을 해야 한다는 등의 예를 드신다. 고욤나무를 감나무와 접을 붙여야 감이 열리지 않느냐. 그런데 당장 먹고 싶다고 고욤을 다 따먹으면 나중에 얻을 것이 없지 않느냐. 덜 맛있는 고욤을 미리 따먹느라고 나중에 맛있는 감을 대량으로 먹을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등등 하지만 사람이란 게 당장의 작은 이익을 위해 미래의 큰 이익을 잃지 않느냐... 등등의 얘기셨다. 고욤이 그런 교훈을 이끌어냈다.  

<환한 하루의 어느 한때>는 과거와 현재가 작은 소도시 고향과 그 고향에 얽힌 추억 한 마디 그리고 현재 냄새나는 김치를 들고 구수한 사투리를 쓰며 버스를 타고 털털거리며 딸네 집에 가는 할머니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시작도 끝도 없는 그냥 소읍의 어느 한 때를 그리는 것처럼 보인다.

<고귀한 신세>는 읽다보면 결말이 어떻게 날지 대충 감이 잡히는 이야기였다. 삶과 둑음이 내가 생각한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우연과 운명에 얽혀있다는 좀 허무한 이야기였다. 유난히 건강을 생각해 커피 한 잔도 안하고 몸에 좋다는 것만 찾아먹는 누군가가 생각나 빙그레 웃음이 났다. “그의 삶, 그의 육체와 시간은 남들보다 많은 비용을 치르고 얻어낸 것이라고 그는 믿었다. 남들처럼 산다는 것은 낭비나 다름없었다. (...) 타인에게는 무해하고 자신에게는 유익한 것들을 조용히 추구했을 뿐이었다.”

“잘 가라, 돼지야” <악어는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을까? 궁금해진다.

<집필자는 나오라>는 가슴이 미어질 지경으로 고문과 신념에 대한 얘기가 끝도 없이 흘러나온다. “전하, 신의 목을 바로 베소서. 누가 말리오리까. 전하께서는 어찌 받기 힘든 지만을 반드시 받으시려 하십니까. 신의 머리를 베시더라도 지만을 받지는 못하십니다. 이제 만일 지만한다면 신이 죽어 지하에 돌아가서 형벌을 못 이겨 거짓 자복한 권신이 됨을 면치 못하여 여러 귀신들이 손가락질하고 비웃을 것이니 어찌 부끄러워 견딜 수 있겠습니까. 신이 살아서 전하를 바른길로 이끌지 못했으니 차라리 죽어서 아무것도 모르고 싶습니다. 빨리 죽이시옵소서. 이 말씀밖에는 아뢸 게 없나이다.”

<저만치 떨어져 피어 있네>는 이 책에서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가장 꿀꿀했던 이야기였다. 불행은 결코 혼자 오지 않는다는 얘기를 실감나게 풀어낸 이 이야기에서는 경제적인 문제가 꼬이고 꼬여 나중엔 둑음 같은 비극적인 끝이 아니고서는 풀 수 없을 지경이 되는 경우를 보여준다. 부부가 하는 중산층과 영세민의 구별이 마음 아프다. “어허, 차 굴리고 애 학원 보내고 전셋집 살면 중산층이지. 단칸방에서 월세 내는 사람들, 비닐하우스에서 촛불 켜고 살다 불나는 사람들이 영세민이고.” 끝도 없이 추락하는 한 가정의 가장, “현실에서는 무기력하지만 인터넷에서 그가 신이다. (...) 그는 소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라면을 먹고 인터넷을 한다.”

이제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읽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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