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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의 심리학 - 인간은 어떻게 서로에게 매혹되는가 ㅣ 마인드 북스 1
파트릭 르무안 지음, 이세진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자세히 쓰다 보니 어느 정도 스포일러성 리뷰가 되었다. 하지만 한방에 범인 잡는 추리물도 아니고, 반전을 노리는 영화도 아니며, 이 스포일러성 리뷰가 오히려 이 책을 읽는데 도움이 되리라 감히 생각한다. 워낙 방대하게 유혹에 대해 여러 방면을 어우른 책이다 보니, 각 파트마다 중점적인 면을 보고 책에서 자세한 내용을 읽으면 더 재밌고 흥미로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유혹의 심리학은 원제가 “seduire”이다. 직역하면 “유혹하는 것”이 되겠다. 즉 유혹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얘기인 것이다. 저자는 다방면에서 과학적이며 심리적인 근거를 들어 유혹에 대해 설명한다. 너나 나나 겪을 수 있는 일상적인 예, 세렌기티(!)의 “동물의 세계”를 통해서 어느 정도 익숙해 있는 동물의 세계나 심지어 식물들의 어떤 모습, 또 스크린에서 보는 유명한 배우나 가수 등을 예를 들어 설명함으로써 소설도 아닌 꽤 두꺼운 책을 “유혹”이라는 주제를 갖고 쉽게 풀이해 놓았다. 태고 적부터 역사를 아우르며 전 세계의 종교 습관도 동원되고 인간의 정신, 오감을 통한 육체까지 정말 안 다루는 부분이 없을 정도로 모든 면에서 유혹과 관련시키고 있다.
유혹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 그리고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육감까지... 그리고 사회적으로 나타나는 유혹의 모습까지 일반적이고 다양한 모습들을 그리고 있다.
역사적으로 “남자는 욕망하는 상대를 사랑하고 여자는 사랑하는 상대를 욕망한다.”고 한다.
인간에게 있어 감각이 중요한 이유는 “모든 남녀의 속셈은 하나다. 아무리 플라토닉하다 한들, 사랑은 결코 육체성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남자와 여자가 근본적으로 유혹에 대한 접근이 다르다는 것이겠다.
시각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외모이다. 남자들에게 여자의 미모가 중요한 것은 (과연 그럴까만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란다.
“어떤 민족을 대상으로 조사하든 간에 남성들은 항상 생식능력, 가임능력, 즉 어머니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최고조에 있는 연령대의 여성들을 유혹하고 싶어 한다. 남성들은 건강한 후손을 보기 위해 산모가 될 여성의 건강 역시 양호하기를 바란다. 바로 그 때문에 남성들은 여성의 미모를 중시한다. 미모는 대체로 건강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꼭 그럴까...
여자가 남자를 볼 때는 그 입장이 사뭇 다르단다. “‘선험적으로’ 남자들을 선택할 때는 건강보다 유전적 자산이 더 중시된다. 아기를 갖는 사람은 남자 쪽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커다란 물건(생식능력이 뛰어난)을 지닌 돈 많고 지배적인 남성(양육기의 안전을 보장해 줄 만한)이야말로 남성의 (로맨틱한) 이상형이다. 여성은 촉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언제나 현실적이고, 물건을 구매하기 전에는 일단 만져봐야 한다. 상대의 나이나 외모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론상으로는 단 한 방, 정자 한 마리면 충분하니까.”
청각적으로 보면 동물이나 인간이나 유혹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여기서는 단지 소리와 연관된 청각만 뜻하는 것이 아니고 말(유혹 시에 돌려 말하는!)이 뜻하는 바도 포함한다. 즉 동물적인 입장에서 보면, “다른 새의 둥지에서 자라는 뻐꾸기 새끼들은 그 새 새끼들의 고유한 울음소리를 흉내 내어 양부모들을 유혹한다(속인다)”고 한다. 반면, 인간은 소리만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유혹할 때, ‘너를 원해’라든가 ‘사랑해’라든가 또는 다른 말로 사랑 고백을 하며 유혹을 한다는 것이다.
그럼 사랑의 맛은 어떨까. 동물들이 흔히 서로 냄새를 맡고 핥고 하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듯이 인간도 자궁 속에서부터 맛에 대한 소양을 쌓는다고 한다. 맛 하면 또한 우리가 흔히 알 수 있듯이 최고의 유혹, 키스가 아니겠는가. 그 이후의 기타 등등은 생략한다. 아무튼 도망가는 남편을 잡을 수 있는 것이 요리일 수도 있다니, 결혼 후에 열심히 요리를 연마할지어다~!
후각에서는 기가 막힌 일화 하나만 들고 넘어간다. 뭐, 그런 것으로 유혹할 수도 있다니... 즉 용맹하고 열정적인 남편인 나폴레옹이 전장에서 몇 달간이나 아내와 헤어져 있다가 사랑하는 왕비에게 “이제 2주 후면 돌아갈 테니 ‘몸을 씻지 말고’기다리라는” 전갈을 보냈다는 얘기다. 흠... 2주간이나 몸을 씻지 말고... 꽤나 독특한 후각의 취향 같지만 후각과 리비도 사이에는 긴밀한 관계가 존재한다고 한다.
촉각에 있어서는 개인적으로 “기분 좋은” 발견을 해 저자에게 감사할 정도이다. 다음과 같은 구절 때문이다. 불어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표현들이 유난히 촉각에 의지한 표현이 많다면서 예를 든 문학 작품이 바로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과 엑토르 말로의 <집 없는 아이>였다. “코제트 혹은 레미 같은 소설 속 인물들은 ‘감동적’이다. (touching-와 닿는다)”
사랑의 연금술이라는 호르몬 작용에 대해서는 불륜과 정조의 생태학, 여성과 남성의 거세, 마조히즘과 새디즘까지 어우른다. 즉 고통과 쾌락의 엔돌핀에 대한 얘기, 멜라토닌이 동물들의 생식활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설까지... 게다가 “벼락같은 첫 만남, 그것 역시 오르가슴에서 생성될 것으로 추정되는 그 무엇을 감지하는 것이라”고 한다.
‘왜 유혹하는가’라는 장에서는 행동학자가 말하는 이상적인 남성상과 여성상을 알려준다.
결합을 오랜 기간 끌고 나가기를 원하는 남성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녀야 한다.
- 한눈에 보기에도 건강상태가 좋아야 하며 얼굴과 신체가 좌우대칭이어야 한다. 상대 여자보다 키가 커야 하며 어깨가 넓고 허리는 적당히 날씬해야 한다(포도주나 맥주를 담는 부대자루 같은 체형이어서는 안 된다.)
- 똑똑하고 야심만만하며 열심히 일해야 한다.
- 정서적으로 안정감이 있고 성숙한 인간이어야 한다. 친절하고 존경할만하며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한다.
- 관대해야 한다. 요컨대, 선물을 자주 하고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며 꽃을 보내고 가끔은 걸인들에게 적선도 베풀 줄 알아야 한다.
- 오랜 기간 동안 정서적으로나 (재정적으로나) 함께 살아갈 의지가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 아기들을 온화하게 대해야 한다.
- 사회적으로 좋은 위치에 있고 은행잔고가 넉넉해야 한다.
- 예전에 미모의 여성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인 적이 있어야 한다.
한편 남성들 입장에서 보면, 평균적인 서양 남성은 이상적인 여성, 기꺼이 결혼할 만한 여성의 조건을 다음과 같이 정의해 왔다.
- 얼굴과 신체가 좌우대칭을 이루어야 하고
- 안색이 환하고 여드름, 잡티, 털이 없어야 한다(이 때문에 각 가정고 뷰티 살롱에서 온갖 고문들이 자행되고 있다).
- 눈의 동공이 커야 하고
- 입술이 붉고 도톰하며 촉촉해야 한다.
- 머리칼은 반짝반짝 윤기가 나고
- 허리가 가늘고 가슴은 풍만하며 엉덩이가 펑퍼짐해야 한다.
읽다가 절망했다. 도대체 해당되는 게 있어야 말이지... 쩝~!
작가는 마지막으로 몇몇 여성적 유혹의 모습을 그리는데, 그 가운데 마릴린 먼로의 경우를 보자. 그대로 하면 세계 최고의 지도자를 꼬실 수 있는겨? 그건 두고 볼 일이지만~!
마릴린 먼로는 그리스적인 미의 기준을 충족시키는 미녀는 아니었지만, “그녀는 애교의 명수였다. 상냥하게, 교묘하게 눈썹을 찡긋해 보이거나 추파를 던지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순진한 표정을 지어 보이곤 했다. 마릴린 먼로에게는 순결한 처녀의 (가짜) 수줍음, 처녀티를 내면서도 도착적인 면이 있는 천진난만함이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이 여배우는 어린아이 같은 매력으로 우리의 넋을 빼앗았던 것이다.”
하지만 마릴린 먼로가 아니라고 해서 절망하지 마시라. 저자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결코 발정한 짐승들이 아니다. 심지어, 아니 특히 그들이 사랑을 나눌 때에는.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충동을 초월하며, 나아가 그 충동을 승화하는 것-이것이 휴머니즘의 초석이다. 그러한 휴머니즘이야말로 인간의 궁극적인 속성이라고 하겠다. 화류계의 여자도 처녀일 수 있고, 호색한도 낭만주의자일 수 있다. 유혹은 단순한 이끌림이 아니요, 사랑은 섹스 이상이다. 감각과 관능성을 인간답게 사용할 때 남성과 여성은 결국 서로를 사랑하게 될 것이고, 거기에는 소아애도 노인애도 없을 것이다. 사랑, 그냥 단순한 사랑일 뿐.”
사실 어렵게 썼다면 너무 과학적이니, 인류학적이니 해서 이해도 제대로 못했을 거면서, 너무나 일상적인 예를 들며 쉽게 읽히다보니, 좀 아쉽다 싶은 점이 좀 눈에 띈다. 읽다보니 이 책이 상당 부분 개론적인 입장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과학적인 실험이나 조사, 분석 그리고 심리적인 입장에서 객관성도 떨어진다. 즉 손에 잡히는 대상을 가지고 일종의 결론을 유추하려했다는 점에서 어떤 과학적인 근거나 심리적인 분석에 대한 신빙성에 상처를 입었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동물은, 인간은 어떤 면에서 유혹을 하고 유혹을 당하는가 하는 이런 저런 얘기를 그냥 재미로 읽는다고 하면 오히려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될 것 같다. 아쉬운 점으로 불평을 하긴 했지만 정말 다방면에서 유혹에 대한 얘기를 이처럼 방대하게 썼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그 존재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다. 최고의 유혹 보고서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