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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말로 좋은 날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평점 :
성석제의 책은 지금까지 <순정>과 <소풍> 밖엔 읽은 것이 없었다. <순정>은 어디서 그런 상상력이 나오나 싶을 정도로 정신없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 새 도둑 이치도의 이야기에 푹 빠진 소설이었고, <소풍>은 맛과 글이 얽히고설키면서 맛과 멋으로 살아난 산문이었다. 그의 글 가운데 가장 좋다는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는 아껴먹는 떡처럼 일부러 남겨두고 있다.
그러다 이번에 <참말로 좋은 날>을 이런 저런 이유로 먼저 잡게 되었다. 처음으로 읽는 중단편집이었는데, 성석제가 바뀌었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 글이었다. 성석제는 작가의 말에서 세상은 바뀌어도 사람은 그대로라는 얘기를 한다. 결국 바뀐 건 자신일지도 모른다면서... 그만큼 자신도 느끼고 있는 바일 것이다. 바뀐다는 건, 언제나 익숙한 사람에겐 혼란을 불러오지만 세상이든 사람이든 바뀌기 마련이 아닐까.
바뀐 성석제를 알아차릴 만큼 내가 성석제를 많이 읽은 건 아니었지만, 이 글들은 제목과는 다르게 전체적으로 우울하고 꾸질꾸질한 현실을 그린 게 대부분이다. 놀리는 듯하고 장난치는 듯하던 그는 어디로 가고 내게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일들이 특별한 애정도, 증오도 없이 무난하게 그려져 있다. <고욤>, <환한 하루의 어느 한때>, <고귀한 신세>, <악어는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었다>, <집필자는 나오라>, <저만치 떨어져 피어 있네> 등 모두 7편이 들어있다.
<고욤>에서는 관계가 묘해져버린 두 친구가 할머니 손순두부를 먹으러 가면서 일어나는 현재와 그들의 과거가 묘하게 얽힌 이야기였다. “고욤나무는 열매가 감나무보다 작아서 소시라고 불리긴 해도 실상은 감의 원종이다. 파랄 때는 도저히 먹을 수 없도록 떫지만 겨울에 얼었다 녹았다 한 고욤은 단맛이 났다. 개량종인 감에서 맛보기 힘든, 야생의 본질적인 맛이었다. 한번 고욤을 맛본 사람은 그 맛을 잊을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어릴 적부터 엄마가 가끔 “감보다 고욤이 달다”라는 말을 하는 걸 들은 적이 있었다. 이 글을 읽고 나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언제 그런 표현을 썼었는지 알아보려고. 실제적으로, 대중적으로 좋다고 알려진 것보다 원래 것이 더 낫다라는 것을 표현할 때 주로 쓴단다. 덕분에 그런 저런 얘기를 하며 엄마랑 웃었다.
그.런.데 웃긴 건, 조금 있다가 아버지한테 전화가 온 것이다. 그러면서 대뜸 그 뜻도 모르냐고... 그러면서 설명을 장황하게 해주신다. 엄마의 설명이 약간 틀렸다면서. (웃기는 집안이다.) 자수성가한 분답게 아버지는 예를 들어도 꼭 미래를 위해 저축을 해야 한다는 등의 예를 드신다. 고욤나무를 감나무와 접을 붙여야 감이 열리지 않느냐. 그런데 당장 먹고 싶다고 고욤을 다 따먹으면 나중에 얻을 것이 없지 않느냐. 덜 맛있는 고욤을 미리 따먹느라고 나중에 맛있는 감을 대량으로 먹을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등등 하지만 사람이란 게 당장의 작은 이익을 위해 미래의 큰 이익을 잃지 않느냐... 등등의 얘기셨다. 고욤이 그런 교훈을 이끌어냈다.
<환한 하루의 어느 한때>는 과거와 현재가 작은 소도시 고향과 그 고향에 얽힌 추억 한 마디 그리고 현재 냄새나는 김치를 들고 구수한 사투리를 쓰며 버스를 타고 털털거리며 딸네 집에 가는 할머니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시작도 끝도 없는 그냥 소읍의 어느 한 때를 그리는 것처럼 보인다.
<고귀한 신세>는 읽다보면 결말이 어떻게 날지 대충 감이 잡히는 이야기였다. 삶과 둑음이 내가 생각한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우연과 운명에 얽혀있다는 좀 허무한 이야기였다. 유난히 건강을 생각해 커피 한 잔도 안하고 몸에 좋다는 것만 찾아먹는 누군가가 생각나 빙그레 웃음이 났다. “그의 삶, 그의 육체와 시간은 남들보다 많은 비용을 치르고 얻어낸 것이라고 그는 믿었다. 남들처럼 산다는 것은 낭비나 다름없었다. (...) 타인에게는 무해하고 자신에게는 유익한 것들을 조용히 추구했을 뿐이었다.”
“잘 가라, 돼지야” <악어는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을까? 궁금해진다.
<집필자는 나오라>는 가슴이 미어질 지경으로 고문과 신념에 대한 얘기가 끝도 없이 흘러나온다. “전하, 신의 목을 바로 베소서. 누가 말리오리까. 전하께서는 어찌 받기 힘든 지만을 반드시 받으시려 하십니까. 신의 머리를 베시더라도 지만을 받지는 못하십니다. 이제 만일 지만한다면 신이 죽어 지하에 돌아가서 형벌을 못 이겨 거짓 자복한 권신이 됨을 면치 못하여 여러 귀신들이 손가락질하고 비웃을 것이니 어찌 부끄러워 견딜 수 있겠습니까. 신이 살아서 전하를 바른길로 이끌지 못했으니 차라리 죽어서 아무것도 모르고 싶습니다. 빨리 죽이시옵소서. 이 말씀밖에는 아뢸 게 없나이다.”
<저만치 떨어져 피어 있네>는 이 책에서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가장 꿀꿀했던 이야기였다. 불행은 결코 혼자 오지 않는다는 얘기를 실감나게 풀어낸 이 이야기에서는 경제적인 문제가 꼬이고 꼬여 나중엔 둑음 같은 비극적인 끝이 아니고서는 풀 수 없을 지경이 되는 경우를 보여준다. 부부가 하는 중산층과 영세민의 구별이 마음 아프다. “어허, 차 굴리고 애 학원 보내고 전셋집 살면 중산층이지. 단칸방에서 월세 내는 사람들, 비닐하우스에서 촛불 켜고 살다 불나는 사람들이 영세민이고.” 끝도 없이 추락하는 한 가정의 가장, “현실에서는 무기력하지만 인터넷에서 그가 신이다. (...) 그는 소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라면을 먹고 인터넷을 한다.”
이제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읽으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