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 양장본
마크 해던 지음, 유은영 옮김 / 문학수첩 리틀북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한밤중에 개가 쇠스랑에 찍혀 피를 흘리며 둑어있었다. 이웃집 시어즈 부인의 개였다. 만 열다섯 살 먹은 자폐아인 크리스토퍼는 자신의 이야기를 함과 동시에 개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기 위해 추리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이것이 이 소설의 줄거리다.

특이하고 재밌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크리스토퍼는 자신의 시각으로 이 세상을 그려나간다. 그의 세계에는 우리가 흔히 농담이라고 부르는 것이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논리를 무척 좋아하는 크리스토퍼는 수학을 좋아하고 잘한다. 하지만 또 한편으론 그러면서 세상과 부딪치고 깨지면서 깨뜨린다. 자신의 세상과 자신이 살고 있는 사람들의 세상이 무리 없이 소통하기에는 자폐의 벽이 너무 두껍다. 15년이나 사랑과 정성을 다해 키워온 엄마와 아빠도 그 벽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때가 있다. 더구나 자신들의 문제를 더 우선순위로 놓고 생각하다 보니, 크리스토퍼는 어느 순간 더 멀리 가 있는 것이다.

작품 자체는 무척 흥미롭고 구성도 좋고 문체도 자연스럽고 읽기에도 무리가 없다. 하지만 읽는 내내 마음 한 켠이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었다. 이 세상이 크리스토퍼가 알고 있는 진실과 순수함만 있는 세상이라면 크리스토퍼에게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래서 작가는 이렇게 거짓과 오염으로 변해버린 우리들, 어른들의 세상을 비판하는지도 모르지만, 우리의 평범하고도 미천한 머리로는 도저히 짐작조차 할 수 없고, 알 수 없는 “자폐”라는 세상을 마치 기준인 것처럼 드러냈다. 일단 자폐라는 걸 받아들이면 크리스토퍼가 이해된다. 하지만 이해란 건, 이해일 뿐이다. 그래서 한편으로 이 소설이 어렵고 무겁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정말 불편했던 건 그의 스위스제 군용 칼이었다. 크리스토퍼가 칼이란 생각을 하거나 손에 쥔다거나 하는 것도 그 나름대로의 방어이지만, 그런 공격적인 면에 대한 섬뜩함은 대할 때마다 말 못할 공포감을 안겨주었다.

물론 이 소설은 특별히 교훈을 주려는 것도 아니고 이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것도 아니다. 재미만을 추구하는 소설 같지도 않다. 하지만 광고 카피가 말하듯 ‘깊은 감동’보다는 덕분에 ‘세상을 한번 뒤돌아보게 하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우리 같은 범인이 어떻게 그렇게 복잡다단하고 천 갈래 만 갈래 나뉘는 인간의 정신세계를 감히 알고자 하겠는가. 그저 한 켠이라도 스치듯 봤다면, 손끝으로라도 살짝 만져봤다면, 그 다음은 이해하고 열린 마음으로 그 다른 세상을 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비록 스위스제 군용 칼을 손에 쥐고 있더라도 그런 크리스토퍼를 만난다면 알렉산더 부인처럼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걱정 마라. 나는 경찰에게 말하지 않아. 그리고 아빠에게도 말하지 않으마. 이야기를 조금 했다고 해서 나쁠 건 없거든. 이야기를 나누는 건 그저 정답고 좋잖아.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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