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만나는 성리학 이황의 성학십도 Easy 고전 9
조남호 지음, 신명환 그림,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삼성출판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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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번에 만난 책은 말로만 듣던 이황의 성리학에 대한 책이었다. 어릴 때는 늘 그의 인품과 학식에 대해서만 재미있는 일화를 많이 읽었다. 그래서 겉만 보고 남들이 그러니까 나도 막연히 존경하는 인물이었다. 실제로 그가 이루어놓은 중요한 학문은 부끄럽게도 전혀 모른 채 말이다. 통탄할 일이지만 내 지식은 그가 그저 성리학의 대가였다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해서 욕심을 냈다. 욕심을 내긴 잘 했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설명해주니 이해도 쉽고 그림도 재미난 그림이 꽤 들어있었다. 이론을 읽으면서 조금만 지루해질라 치면 곧 도표가 나오고 센스 만점인 그림이 나와서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중간 중간 이황의 가족에 대한 예나 친구,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들로 인간으로서의 이황을 엿보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단지 고전 풀이뿐만 아니라 요즘 시대에 맞게 설명을 하면서 주의하라는 조언과 충고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황의 삶과 학문이 대단한 것은 인품으로 보나 학문으로 보나, 칼부림과 피가 흥건한 그 어려운 시대를 어진 성품으로 살면서 또한 시대적으로 볼 때, 토론 문화가 제대로 정착이 되지 않은 그 시대에 새파랗게 젊은 학자와 8년이라는 세월을 거쳐 논쟁을 하고 자신의 학문을 계속 수정해나갔다는 점이다. 이황에게 공부는 ‘시험공부나 출세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참된 인간이 되기 위한 공부’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황의 성리학이 그렇게 어려운 것인지 모르고 덤빈데 있다. 꼼꼼히 체크해가면서, 열심히 줄을 그어 가면서 읽었는데, 한자도 어렵고 뜻도 쉽게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어서 그런지, 아무래도 공부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머리가 정말 좋은 사람이라면 한번 읽고 다 이해하고 머릿속에 간직하겠지만, 공부를 그만 둔지 어언 몇 년인가. 이 책을 읽으며 다시 머리 싸매고 독서실에 앉아 연습장에 연필로 쓰면서 외워야 한다는 말이다. 그만큼 이황의 성리학은 학문 자체가 어렵고, 아무리 쉽게 설명한다고 해도 한번에 다 깨달을 수는 없는 학문인 것이다. 어쩌면 그게 맞는 말인지 모른다. 그토록 명석한 분도 평생을 걸쳐 이룬 학문인데,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서 쉽게 해준다고 한다손 치더라도 그냥 공으로 먹기는 좀 미안한 것이다. 공부, 필요하면 이 나이에도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 공부를 조금 해보자. <성학십도>를 풀이해보면, 이때 성학(聖學)은 성인이 되기 위한 학문, 십도(十圖)는 열 개의 그림이라는 뜻이다. 태극도, 서명도, 소학도, 대학도, 백록동규도, 심통성정도, 인설도, 심학도, 경재잠도, 숙흥야매잠도의 십도이다. 먼저 첫째, 태극도는 우주 최고의 기준이자 원리이고 원리인 태극, 하늘과 땅을 낳는 음양, 서로 끊임없이 이기는 오행인 물(水), 불(火), 나무(木), 쇠(金), 흙(土)이 세상 만물의 근원이라고 보았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둘째, 서명도는 우주 가족과 그 사이의 계층적 질서, 하늘의 명령인 효를 따르고 효자의 예를 들며 사람의 다짐을 담고 있다. 셋째, 소학도는 몸가짐, 대인관계의 기본 덕목 등 행동규범을 담고 사회의 가치관을 익히게 되어 있다. 즉, 어린이가 배워야 할 기초적인 학문인 것이다. 넷째, 대학도는 성인이 배우는 3강령 8조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공부를 하는 과정과 효과에 대해 설명한다. 그 자체가 이성에 대한 논리적 체계이면서 이성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정치적인 개념이 강한 혁명 공약과도 같다고 한다. 다섯째, 백록동규도는 학문의 큰 원칙과 인간관계의 원칙을 밝힌 오륜에 관한 것과 그 이론과 실천에 관한 것이다. 여섯째, 심통성정도는 마음이 어떻게 이루어져 움직이며 도덕적 완성을 향한 관점에서 본 성정의 문제를 다룬다. 즉, 인간의 감정과 본성을 다룬 것이다. 일곱째, 인설도에서는 인(仁)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실천할 수 있는지 얘기한다. 주희(=주자)는 인을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이라고 하며 봄기운과도 같이 생명을 사랑하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이요, 이 같은 사랑의 마음(仁)은, 사람은 물론 천지자연에도 가장 근원적인 덕, 곧 원(元)이라는 것이다. 여덟째, 심학도는 심(心)과 경(敬)에 관한 것이다. 심은 인간적인 마음과 적절한 관계를 맺는 마음인데, 경으로 이를 제어한다는 것이다. 아홉째, 경재잠도는 상황에 따라 어떻게 경 공부를 하고 경건함을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 말해준다. 정신집중을 하고 주체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마지막 열째는 숙흥야매잠도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간 순서에 따라 어떻게 경 공부를 해야 하는지 얘기한다. 간단히 말하면 이것은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든다’라는 뜻으로 하루 종일 경건한 마음으로 공부에 매진하라는 것이다.

휴~ 어렵다, 어려워...란 생각이 들지만, 사실 짧게 정리해놓으니 더 어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에는 재밌게 읽었고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도 거의 없었다. 그만큼 설명이 자세하고 예도 충분하고 그림도 곳곳에 너무 재밌게 들어가 있어서 지루한 줄 모르고 읽었다. 이제 문제는 이황의 위대한 인격만큼이나 이렇게 배운 것을 어떻게 실천으로 연결시키느냐일 것이다. ‘세상의 이치를 알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행하기가 어려우며, 또 행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참을 쌓아 오래도록 힘쓰기가 더욱 어렵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논술을 위한 작은 연습 문제집은 복습하기에 아주 좋아 보인다. 밑줄 그은 대목만 다시 한번 보고 대충 훑어보았는데 쉽지만은 않겠으나, 한번 시험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책이 끝부분 4장이 갑자기 거꾸로 들어가 있다. 빠진 줄 알고 깜짝 놀랐으나 자세히 살펴보니, 4장이 잘못 제본된 것이었다. 다른 책들은 이런 실수가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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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다예요 2007-02-08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좀 편식하는 편인데, 책을 참 다양하게 읽으시네요. 좋은 점이세요. ^^

진달래 2007-02-09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다예요님은 대신, 깊이 있게 읽으시고 군더더기 없이 표현을 잘 하시잖아요. ^^
전 원래 소설만 읽었었는데요, 작년부터 인문학 중에서도 역사, 철학 등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조금씩 재미를 붙이고 있죠. ^^ 재미있게 읽자고 맘 먹으니 조금씩 더 재밌어지는 거 같아요. ^^
 
풋 2006년 여름호 - 창간호
문학동네 편집부 엮음 / 문학동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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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나 논술 등 입시와는 상관없는 -물론 전혀 상관이 없지는 않겠지만- 청소년을 위한 순수 문학잡지가 나왔다. 가볍게 머리를 식힐 겸 들여다봐도 좋고 전혀 가볍지 않게 문학공부를 하듯이 들여다봐도 좋을 잡지다. 가볍게 자신의 취향에 맞는 분야만 골라 읽어도 좋고 진지하게 하나하나 다 꼼꼼히 봐도 좋다는 뜻이다.
사실 어떻게 보면 소설 같은 문학 분야에서 청소년은 사각지대다. 어릴 적엔 부모님들과 선생님들이 거의 강요하다시피 읽기와 쓰기를 시켜서 읽기 싫어도, 취향이 아니어도 울며 겨자먹기로 안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중학교, 고등학교에 가면서 할 공부는 많아지고 학교로, 학원으로 바쁘게 뛰어다니게 되다 보면 소설 나부랭이(!)를 읽을 시간은 점점 더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사회 전체가 우리 청소년들을 문학의 사각지대로 몰아대고 있는 것이다. 문학 속엔 우리의 삶, 인생이 고스란히, 다양한 모습으로 들어있다. 어쩌면 그 중요한 시기에 감성을 자극하는 한 줄, 깨달음을 주는 한 권의 책이 청소년을 감동시키고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문학을 문학으로서 맛을 들이지 못한 청소년이 자라서 성인이 되었을 때, 무작정 자기계발서만 읽으면 얄팍한 세상 처세술은 배울지 몰라도 인성이나 인품을 완성시켜주는 기본적인 삶에 대한 사고나 자세가 빈약해 늘 인생의 어려움에 부딪칠 수 있다. 깊은 속은 들여다보지 못하고 겉만 핥는 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의 사각지대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문학을 접하게 하고 직접 참여하게 함으로써 흥미를 유발해 인생을 탐험할 수 있게 한다는 목적에 부합하는 잡지다. 또한 말 안 듣는다고, 비뚤어진다고 불평만 하는 부모님이나 선생님도 아이들을 더 잘 이해하고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함께 읽어주면 좋을만한 잡지다.

그리 두껍지 않은 잡지로 구성도 알차다. 기존 작가들의 짧은 작품들도, 그들의 육성을 들을 수 있는 인터뷰 같은 글도, 그들이 직접 청소년을 대상으로 쓴 적은 분량의 글도 있고, 우리에게 막 알려지기 시작한 외국 작가들의 글도 있고, 현재 우리 사회에서 화두가 될 만한 주제의 글도 있고, 재밌는 만화 스타일의 글, 여행과 책에 대한 얘기, 문화에 대한 글 등 무척 다양하게 구성되어있다. 청소년이 직접 참여해 쓴 글, 청소년 문학상에 당선된 글, 고민거리를 상담해주는 코너 등, 자기 표현력이 강한 요즘 세대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켜 줄만한 코너들이 많다.

청소년 문학상 우수작으로 뽑힌 작품, <거울>은 정말 청소년만의 풋풋함이 살아있는 글이었으나, 초등학교 6학년 아이의 ‘동성애 코드’가 과연 고민거리가 될 수 있나... 하는 작은 의문을 품으면서 내가 정말 어른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또한 잡지가 지향하고 있듯이, 자신은 그런 소설을 써서 응모했으면서 정작 본인은 “소설은 거의 읽지 않는 편이라”고 똑 부러지고 건방지게(!) 말하는 당선자의 글엔 나도 모르게 ‘풋’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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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평정
윤문원 엮음 / 씽크파워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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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을 선택했던 이유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빌 게이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선현들이 펼치는 지혜와 위안으로의 초대’라는 문구 때문이었다. 요즘 인문학에 재미도 들이고 있고, 어려워도 자꾸 읽어 버릇해야 독서의 취향도 조금씩 발전하게 되리라고 생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에서의 철학적 위안이 무척 좋았던 기억도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기대와는 조금 달랐다. 위대한 성현이나 성공한 사람들의 조언이나 경구 그리고 그런 경우를 예로 들었을 것이라는 기대를 했었는데, 인생을 살면서 필요한 많은 마음가짐이나 태도에 정의를 내리고 약간의 설명을 덧붙였다. 없는 정의가 없을 정도로 방대하게 작은 책에 사람이 삶을 살고 세상을 대하면서 겪을 수 있는 많은 감정을 다루고 있다. 지혜, 자아, 분수, 성공관리, 거절, 일, 선택, 노력, 열정, 습관, 변화, 돈, 가난, 배려, 희망, 건강, 행복, 죽음 등 모두 170가지에 대해 조언과 충고를 하고 있다.

‘책은 보다 진실하고 고차원적인 친구이다. 좋은 책은 인생을 담고 있는 최고의 상자이다. 그 속에는 삶을 살아가며 떠올릴 수 있는 생각들이 담겨있다. 인간의 삶의 세계는 사고의 세계이다. 좋은 책은 훌륭한 말씀과 사상의 보고이다. 우리는 알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 자신을 알기 위해서 산다. 그럴 때 진실된 우리를 사람답게 만들 것이다. 사려 깊은 사람이 되려면 품위 있는 다독으로 무장하라.’ 책에 관해 너무 좋은 말이다. 문제는 이런 좋은 말이 어떤 변화나 고저도 없이 나열되어 있다는 게 좀 아쉽다. 사람이 이런 걸 몰라서 완벽한 인간이 못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얼마나 머리에 넣고, 얼마나 온 몸으로 깨달은 다음, 실천을 하느냐가 문제인 것인데, 이런 식으로 170가지나 보다 보니, 온통 뒤죽박죽 정신이 없다. 결국 너무 좋은 떡만 먹어도 맛을 모르게 되듯이... 이 책 한권으로 한꺼번에 이 세상의 모든 ‘지혜와 평정’을 주고, 또 얻으려 했으니, 힘들지 않겠는가. 또한 기대했던 성인이나 위대한 인물의 경구가 전혀 안 나오는 것은 아니다. 정말 드물게 나오긴 하지만 대부분은 출처를 전혀 밝히지 않고 거기에 엮은이가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짜깁기를 해서 만들어 놓은 책이다. 그 점도 아쉬웠던 점이다.

물론 이 책의 장점도 많을 것이고 보는 사람에 따라선 관점을 달리해 정말 흥미롭게 읽고 많은 조언과 충고로 무장한 다음, 인생을 정말 지혜롭게 살고 한평생 평정을 유지하며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방법은, 아무래도 조금씩 읽고 조금씩 맛을 보면 될 것 같다. 하루에 한, 두 가지씩, 또는 정말 인생이 꿀꿀하고 잘 안 풀릴 때, 나하고 딱 맞는 대목을 찾아 읽고 곱씹다 보면 정말 위안을 얻고 큰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또한 처세술에 약한 사람들은 이 책을 보면 큰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다. 단지 ‘진실’의 차원에서 그 감정과 태도들을 정의내리는 것만 아니고, 21세기를 힘겹게 살고 있는 우리 현실에 맞게 조언을 해주는 것이다.

'세탁소에 갓 들어온 옷걸이한테 헌 옷걸이가 한마디 하였다. “너는 옷걸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말길 바란다.” “왜 옷걸이라는 것을 그렇게 강조하나요?” “잠깐씩 입혀지는 옷이 자기의 신분인양 교만해지는 옷걸이들을 그 동안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경우를 예를 들어 설명할 때, 이해도 잘 되고, 머릿속에 잘 들어오는 것 같다.

그래서 책장에 꽂아두고 예를 들면, ‘분노’했을 때, ‘겸손’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고 나 자신에 환멸이 올 때마다 읽어보면 정말 도움이 될 것 같은 책이다. 처세술을 강조하다 보니, 간혹 앞, 뒤가 좀 모순되어 보이는 대목이 눈에 띄기도 했으나, 전체적으로는 읽을 만했고, 내 약점이나 단점을 보완해줄 많은 대목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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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고의 숲
로버트 홀드스톡 지음, 김상훈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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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미사고의 숲>, 이 이야기는 평범한 가족 간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아버지, 형 그리고 나. 제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던 스티븐은 전쟁이 끝나고 가족이 있는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다가 형의 이상한 편지를 받고 집으로 돌아간다. 우거진 숲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집에서 형인 크리스찬은 스티븐에게 실종된 아버지의 연구물을 보여주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알려준다.

<미사고란 미스(myth, 신화)와 이마고 (imago, 심상)의 합성어이고, 이상화된 신화 속 등장 인물의 이미지를 의미해. 이런 이미지는 자연 환경 속에서 실체화되지. 피와 살, 의복, 그리고 -너도 봤다시피- 무기 따위를 가지고 말이야. 이상화된 신화의 형태인 영웅상은 문화적인 변천과 함께 변화하고, 그 시대 특유의 정체성과 기술을 취하게 돼. (...) 그리고 또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미사고의 심상이 형성될 경우, 그것이 그 시대의 모든 사람들 속에 형성된다는 사실이야... 그리고 그들이 더 이상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면, 미사고는 우리의 집합 무의식 속에 그대로 남게 돼. 그리고 세대를 넘어서 전승되는 거지.>

이것은 크리스찬이 스티븐에게 설명한 내용이다. 독자로서는 아무리 읽어도 그 용어와 정의 모두 오리무중일 수밖에 없다. 용어가 처음 만들어진 것이면 정의가 좀 쉽게 설명이 되어있든지, 설명이 새로운 내용이면 용어는 좀 이해하기 쉬운 합성어를 쓰든지... 물론 다 읽고 나서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긴 했지만, 이야기 도입부에 있었던 내용은 암튼 어렵기 짝이 없었다. 인내심이 좀 적은 독자라면 중간에 포기할 것 같다. 중반부터 이야기는 이해하기 쉽고 호흡도 빨라지고 흥미진진하게 흘러간다. 사랑이 등장하므로... 아버지, 형 그리고 나의 아니, 어쩌면 모든 이의 미사고로 이루어진 사랑의 정령일지도 모르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원초적인 여자, 귀네스가 등장한다.

숲에는 아버지, 형 그리고 내가 만들어낸 정령들이 실체로 존재하고 있다. 실체라고 말하기에는 언어적인 어폐가 있지만, 육체와 정신을 지닌 실체긴 하지만 실제로는 현실의 내가, 내 정신이 만들어낸 이미지이자 실체이다.

이야기는 현실과 신화를 넘나들며 계속 전개되고, 사랑을 되찾으려는 스티븐은 이미 최초 원시 상태로 돌아간 아버지를 보게 되고, 아웃사이더가 되어 모든 생명체를 위협하는 형, 크리스찬을 만난다. 귀네스를 사이에 두고 크리스찬과 스티븐의 쫓고 쫓기는 게임은 게임이 아니고 실존이며 둑음과 삶 중 둘 중 하나다.

귀네스, 그녀는 말한다.

<난 저쪽 다른 세계에서 왔어요, 스티븐. 만약 당신이 내게서 떠나가지 않는다면, 어느 날 내가 당신을 떠나갈지도 몰라요. 하지만 당신은 강하니까 내가 없어도 견딜 수 있을 거예요. (...) 난 피와 살이 아니라, 나무와 돌로 되어있어요. 나는 당신과 달라요. 숲은 나를 보호해주고, 나를 지배하고 있어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적당한 단어가 생각 안 나요. 지금, 당분간 우린 함께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영원히 그러지는 못해요.>

어느 정도부터 이 작품이 이해되기 시작하고 빠지기 시작하면 내가 마치 그 이야기 속, 환상에 푹 빠져있는 걸 느낀다. 그들이 헤매면 나도 함께 헤매고, 그들이 사랑을 나누면 나도 함께 사랑을 나누고, 그들이 쫓기면 나도 함께 쫓긴다. 그 팽팽함과 긴박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후에 잊혀질 즈음, 다시 한 번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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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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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 그녀는 너무나 유명해서 내가 새삼 덧붙일 말이 굳이 있을까...

하지만 내가 알고 있던 그녀는 그냥 여행을 하는 여자,  
남보다 좀 모험을 좋아해서 오지도 마다 않고 다니는 여자, 그 정도였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내게 특별하게 다가온 것은 이 책을 통해서였다.
그녀는 내게 누구보다도 세상을

열심히,

벅차게,

아름답게

사는 여자로 다가왔다.
자신의 일을 무척 아끼고 사랑하면서 자신을 바치는 여자.
자신의 일을 통해서 인간을, 세상을 사랑하는 여자.
이타를 통해서 자아를 느끼며 사는 여자.
정말 사는 것 같게 사는 여자.

그녀 앞에선 일상의 한갓 고민과 불행도 모두 고개를 떨구고 만다.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사랑과 존중을 얘기하고 있는 그녀 앞에 서니,
연애 타령이나 하고 있는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지고,
한 사람, 한 남자, 내 가족, 내 친구만을 사랑하던 마음을
좀 더 넓히라는 소리가 들린다.
당장 내 앞에 있는 먹을거리, 볼거리, 일거리에서 눈을 들어
좀 더 먼 곳까지 바라보라고 한다.

많은 이들이 그녀의 시선과 함께, 그녀의 마음과 함께
조금만 더 멀리, 조금만 더 깊이 바라볼 수 있다면... 하고 바란다.
물론 나도... 노력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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