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고의 숲
로버트 홀드스톡 지음, 김상훈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미사고의 숲>, 이 이야기는 평범한 가족 간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아버지, 형 그리고 나. 제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던 스티븐은 전쟁이 끝나고 가족이 있는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다가 형의 이상한 편지를 받고 집으로 돌아간다. 우거진 숲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집에서 형인 크리스찬은 스티븐에게 실종된 아버지의 연구물을 보여주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알려준다.

<미사고란 미스(myth, 신화)와 이마고 (imago, 심상)의 합성어이고, 이상화된 신화 속 등장 인물의 이미지를 의미해. 이런 이미지는 자연 환경 속에서 실체화되지. 피와 살, 의복, 그리고 -너도 봤다시피- 무기 따위를 가지고 말이야. 이상화된 신화의 형태인 영웅상은 문화적인 변천과 함께 변화하고, 그 시대 특유의 정체성과 기술을 취하게 돼. (...) 그리고 또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미사고의 심상이 형성될 경우, 그것이 그 시대의 모든 사람들 속에 형성된다는 사실이야... 그리고 그들이 더 이상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면, 미사고는 우리의 집합 무의식 속에 그대로 남게 돼. 그리고 세대를 넘어서 전승되는 거지.>

이것은 크리스찬이 스티븐에게 설명한 내용이다. 독자로서는 아무리 읽어도 그 용어와 정의 모두 오리무중일 수밖에 없다. 용어가 처음 만들어진 것이면 정의가 좀 쉽게 설명이 되어있든지, 설명이 새로운 내용이면 용어는 좀 이해하기 쉬운 합성어를 쓰든지... 물론 다 읽고 나서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긴 했지만, 이야기 도입부에 있었던 내용은 암튼 어렵기 짝이 없었다. 인내심이 좀 적은 독자라면 중간에 포기할 것 같다. 중반부터 이야기는 이해하기 쉽고 호흡도 빨라지고 흥미진진하게 흘러간다. 사랑이 등장하므로... 아버지, 형 그리고 나의 아니, 어쩌면 모든 이의 미사고로 이루어진 사랑의 정령일지도 모르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원초적인 여자, 귀네스가 등장한다.

숲에는 아버지, 형 그리고 내가 만들어낸 정령들이 실체로 존재하고 있다. 실체라고 말하기에는 언어적인 어폐가 있지만, 육체와 정신을 지닌 실체긴 하지만 실제로는 현실의 내가, 내 정신이 만들어낸 이미지이자 실체이다.

이야기는 현실과 신화를 넘나들며 계속 전개되고, 사랑을 되찾으려는 스티븐은 이미 최초 원시 상태로 돌아간 아버지를 보게 되고, 아웃사이더가 되어 모든 생명체를 위협하는 형, 크리스찬을 만난다. 귀네스를 사이에 두고 크리스찬과 스티븐의 쫓고 쫓기는 게임은 게임이 아니고 실존이며 둑음과 삶 중 둘 중 하나다.

귀네스, 그녀는 말한다.

<난 저쪽 다른 세계에서 왔어요, 스티븐. 만약 당신이 내게서 떠나가지 않는다면, 어느 날 내가 당신을 떠나갈지도 몰라요. 하지만 당신은 강하니까 내가 없어도 견딜 수 있을 거예요. (...) 난 피와 살이 아니라, 나무와 돌로 되어있어요. 나는 당신과 달라요. 숲은 나를 보호해주고, 나를 지배하고 있어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적당한 단어가 생각 안 나요. 지금, 당분간 우린 함께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영원히 그러지는 못해요.>

어느 정도부터 이 작품이 이해되기 시작하고 빠지기 시작하면 내가 마치 그 이야기 속, 환상에 푹 빠져있는 걸 느낀다. 그들이 헤매면 나도 함께 헤매고, 그들이 사랑을 나누면 나도 함께 사랑을 나누고, 그들이 쫓기면 나도 함께 쫓긴다. 그 팽팽함과 긴박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후에 잊혀질 즈음, 다시 한 번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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