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밥그릇이 빛난다 창비시선 273
최종천 지음 / 창비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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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최종천의 시집을 접했을 때,
느낀 감정은 불편함이었다.

마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남성적이고,
죄의식을 강요하는 듯, ‘노동자적’이고,
그의 시선은 현대 사회를 비꼬고 경멸하는데 강하고, 
거리낌 없이 대놓고 시니컬하고,
용서 없이 잘못을 꼬집는 그의 시들이 불편했다. 

하지만 읽어갈수록 행간에서는
용접으로 풀리는 쇠 같은 부드러움이,
세상에 대한 안쓰러움이,
순수함에 대한 그리움이,
그래도 용서하는 체념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의 펜 아래에서는 쇠도 녹일 힘이 있어 보인다.
현 문화, 예술에 대한 비판도,
실재에 대한 그의 신념과 함께,  
노동으로 인간이 되어가야 한다는 소리침이 울려 퍼진다.

* 시 순서를 그렇게 의미가 강한 시부터 자리를 잡게 한 것이
시인의 의도였는지, 편집자의 의도였는지 궁금하다.
가만히 의식 없이 있던 독자를 정신 차리라고 ‘공격’하는 의도인지...

덜 최종천다운 이 시가 내겐 좋았다.

<찌그러진 밥통>

출근길이었다.
한길에서 택시기사 두 명이
서로 삿대질로 혈압을 올리더니
약속이나 한 듯
차를 몰고 간다.
끝났나?
싶었는데, 웬걸
공터가 나오자
약속이나 한 듯
차를 동시에 세운다.

파란 택시기사가
야, 너나, 나나, 먹고살기 바쁜데 딱,
십분만 뛰자고 제안하니
노란 택시기사는
너, 이 개자식 오늘이 제삿날인줄 알아! 한다.
싸움은 딱 십분만 뛰자던 사람이 이겼다.
코피가 터진 것을 신호로 끝난 것이다.
시계를 보니 딱 십분,
노란 택시기사가 올려다본 하늘은 노랗다.
사나이는 차 대신 찌그러진 것이다.

아무렴! 잘한다, 잘해.
밥통이 찌그러져서는 안 되지!
밥이 적게 들어가니까.

<이성민을 만나다> 가운데에서.

(...)
놈의 어울리지 않지만 말쑥한 정장을 보니
계급상승에 어지간히 애쓰는 모양이었다
여자들이 남자를 보면 먼저 손을 본다나
직업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놈은 밤마다 두 손에
바쎌린을 흠뻑 바르고 고무장갑을 끼고 잔다고 했다
놈의 손은 정말로 윤이 나고 예뻤다
놈은 또 맞선에 대비하여
상식백과사전을 열심히 읽기도 했다
(...)

여자들(!)아, 저 구절에 동의하십니까?
난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 여자들도 있겠지.
그런 여자를 만나려고 손에 바쎌린을 바르고... 그런 노력을 하는 이성민도 안쓰럽고,
친구로서 그런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시인도 내겐 안쓰럽다...
세상이 모두 그렇다면 할 말 없지만...

<당신은 얼마나 불행하기에> 가운데에서.

(...)
어저께 우리 옆집 주부는 오디오를 고장내고 말았습니다. 오디오는 그 주부의 행복이어서 그녀는 많은 돈을 주고 행복을 수리쎈터에 맡겼답니다. 행복하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은 행복이 고장나도 수리할 줄을 모릅니다. 그래서 버리거나 팔아버립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고장난 것을 수리하여 잘 사용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행복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이웃과 사물을 고장낸 것입니까? 당신은 얼마나 불행하기에 그토록 행복할 권리는(를?) 주장하는 것입니까? 행복이란 인간의 선한 모습입니다.

<화곡역 청소부의 한달 월급에 대하여>  난 이 시에 대해 노코멘트다!

올해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겠다는
지원비가 드디어 한달에 100원씩
1200만원으로 올랐다, 용렬하게
이 몸도 신청했다, 문득 화곡역 청소부에게
한달 월급이 얼마나 되느냐고
왜 물어보고 싶었을까?
63만원이라고 했다.
시집도 내고 목돈으로 1200만원이나 벌었으니
행복은 역시 능력있는 사람의 권리지 의무가 아니라고
누군가는 생각할 것이다, 솔직히
배때지가 꼴린다, 내가 못 받았기 때문이다
“모든 예술은 사기다.”
백남준의 이 말은 은유도 비유도 아니다
예술은 부를 창출하는 게 아니다, 그 청소부는
얼마나 많은 부를 창출하고도 그것밖에 가지지 못하나
예술은 허구를 조작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자각하는 시인만이 시인이라고
단언하기는 그렇지만, 시인들이여
행복은 권리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렇다면 그대는
시인은 못되리라, 행복은 누구나의 의무다
우리의 행복함은 곧 우리가 선함이요
우리의 불행은 우리가 악하기 때문이라
이러한 행복과 불행의 원리는,
화곡전철역에서 하루종일 허리 구부리고 청소하시는
아주머니의 월급이 63만원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 <정년제> 9째줄
키에 닿는 건물을 지날 때
깎여나간 어깨를 씨멘트로 보충하고
대었던 보강재을(를?) 떼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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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돌아왔다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이우일 그림 / 창비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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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김영하가 좋아졌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을까>를 재밌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같던 그 맛이 왠지 모르게 얄밉기도 하고 가볍기도 해서 그땐 막 흉을 봤었다. 외모도 자장면 배달이나 삐끼 같다는 말도 안 되는 정의를 갖다 붙이고 말이다. (그 사진, 쫌 그랬다... ^^;; 덧붙이자면, 난 자장면 배달하는 오빠들, 멋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래도 늘 김영하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봐야지... 하고 마음에 은근히 담아두고 있었다. 한번 라디오에서 <검은 꽃>에 대해 얘기하는 걸 들었을 때도 꼭 읽어봐야지 했었는데, 이제야 다시 단편집을 먼저 잡았다. 그가 맘에 든다.

이 작품집에는 <오빠가 돌아왔다>를 비롯해 모두 8개의 단편이 들어있다. 모두 다 김영하스러운 가볍지 않은 가벼움이 특징이었다. 아마 현대적인 감각이 살아있는 스토리 구성, 산뜻한 문체나 대화 스타일 때문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드라마적인 특성이 강한 것은 그의 작품을 쉽게 읽게 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가볍게 만드는 장점이자 단점이다. 또한 미디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것도, 한편 그가 우리 삶 속에 녹아있으면서 또 한편 너무 가볍게 보이는 면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제일 즐겁게 읽은 작품은 물론 <오빠가 돌아왔다>이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 <크리스마스 캐럴>이나 <보물선>도 나름대로 특색 있고 개성 있어서 좋았다.

<오빠가 돌아왔다>는 한마디로 콩가루 집안 얘기다. 워낙 콩가루이다 보니, 중학생 여자애의 나레이션이 오히려 쿨하고 즐겁게 느껴졌다. 어디 가서 얘기하기도 쪽팔린(창피하다고 해야 옳으나 김영하하곤 이 말이 더 잘 어울린다. 그리고 또 그게 우리가 우아하게 ‘창피하게’ 살기보다는 ‘쪽팔리게’ 사는 게 더 ‘내 현실’에 맞지 않겠는가.) 아버지의 직업은 ‘직업적인 신고꾼’이다. 이혼하고 나가서 함바집에서 일하는 엄마는 말로는 애들을 위해 집으로 돌아오지만 딸 입장에서 보면 남자 품이 그리워 돌아오는 것이다. 중학생인 딸과 동생의 속옷과 교복을 훔쳐다 성적 판타지에 젖는 아버지와 오빠... 중학생 나레이터는 권력 구도의 중심이 아버지였을 때보다 집을 나갔다 돌아온 오빠로 바뀐 걸 더 좋아한다. 물론 여자애를 하나 달고 들어오긴 했지만... 특이한 건, 오히려 오빠가 돌아오면서 집안꼴이 갖춰지는 것 같다는 점이다. ‘그렇게 서울로 돌아오던 길에 오빠가 어느 여고 앞에 차를 세웠다. 그러더니 우리 모두 차에서 내려 기념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했다. 어디에서? 오빠는 스티커 사진 부스를 가리켰다. 엄마는 얼굴이 큰데도 맨 앞에서 찍어서 얼굴이 타이어만하게 나왔고 오빠와 여자애는 뒤에서 찍어서 쪼다처럼 나왔다. 나는 좀 예쁘게 나왔는데 여자애는 그게 조명발 덕이라고 구시렁거렸다. 바보. 조명은 나한테만 비추나.’ 뭐, 남들 눈에는 쪼다 같지만 자신은 진짜 쪼다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 생각, 그게 모두 우리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 생각이 아닐까.

<그림자를 판 사나이>는 가운데 나레이터를 중심으로 오른쪽엔 신부가 된 친구, 다른쪽엔 그 신부를 좋아했던 여자 친구의 얘기가 중심의 축인데, 내겐 오히려 나레이터와 그 엄마의 관계가 더 흥미로웠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던 엄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사람 몇이나 되냐’고 말하지만 자신은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았던 사람이 바로 그 엄마였다. 소설가가 되었다는 말을 듣자, 엄마가 하는 충고는 “여자들을 위하는 문학을 하렴. 그럼 일생이 평탄할 거야. 여자는 아름답게 그려주고 남자들은 죽일놈들로 만들어. 그럼 아무도 널 미워하지 않을 거다.” 그런가...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꼭 그런 것 같진 않지만, 생각해보니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크리스마스 캐럴>은 형사물이다. 살인이 벌어지고 그 살인 때문에 과거가 살아나고 살인에 연루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죄의식을 담은 심리로 이어진다. 치사한 짓을 했던 대학시절의 유령이 되살아났다 다시 둑은 것이다. 그들을 모두 끌고 들어가는 물귀신처럼. ‘시골역장의 수양딸쯤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을 통통하고 수수한 외모의 그녀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남자들과 어울릴 수 있었는지 숙경으로서는 의문이었다.’ 날라리, 걸레, 자판기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여자가 세월이 흘러 다시 나타나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요구한다. 그녀를 대학시절 그렇게 만들었던 남자들은 그렇게 느낀다. 철없던 시절의 이기심이 인생의 치욕이 되어 나타날 때... 자신을 둑이고 반성하기보다 그것을 요구하는 과거를 둑여버리는 게 더 상식적일지도 모른다. 이 사회에서는...

<보물선>은 반전의 묘미가 살아있는 작품이었다. 욕심이 별로 없고 간이 작아서 원금 손해만 안 보면 된다는 소심한 내게 계속 은행에서는 리스크를 감수하는 투자를 하라고 난리인데, 이런 작품을 읽다보면 괜히 고소해진다. 욕심을 내보라는 은행직원에게 이번엔 이 얘기를 해줘야겠다고 맘먹는다.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 세상은 가끔 엉뚱한 곳에서 철퇴를 날린다. 어쩌면 실제 세상은 그래도 똑똑한 사람에게 더 유리할지 모르지만...

나머지 작품들도 나름 특색 있고 생각해볼만한 작품들이었다. 김영하를 좋아할까, 말까 망설이는 독자들은 이 작품집을 읽고 나면 좋아하는 쪽으로 기울지 않을까...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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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 - 박완서 산문집
박완서 지음 / 열림원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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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하게’ 긴 세월 칠십 년, 그 세월에 비해 건질 장면이 많지 않아 보이는 허망함을 시냇물 소리, 꽃망울, 바람과 눈 그리고 햇살이 선생님을 벗 삼아 다독거려준 책이 바로 <호미>이다. 그리고 이제 독자를 다독거려준다. 자연과 가족, 70세의 일상, 둑음에 대한 바람 그리고 호미질 같은 정직한 삶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이를 거저먹고 있을 때, 선생님은 77세라는 나이를 거저먹은 게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신체적인 나이로 보면 내 나이도 적은 게 아닌데, 기억을 되살려보면 도대체 뭘 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더구나 지금도 유치하기 이를 데 없는 생각으로 머리가 아프다. 그럴 때 드는 생각은 나이를 어디로 먹었길래... 하는 것이다. 그렇게 헛먹은 내 나이를 돌아보게 해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나이만이 줄 수 있는 여유로움, 사고의 폭과 깊이 그리고 자연스러움... 그것들이 모두 글 속에, 행간에 녹아있다.  

어릴 적엔 자연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가 나이가 들면서는 점점 더 자연에 감사하게 된다. 꽃을 좋아하기 시작하면 나이가 든 것이라고 하는데, 다 그럴만한 연유가 있는 것이다. 사람들과 세상에 지치다 보면 어느 날 꽃과 나무가 말을 걸어오는 것이 들린다. 흙을 돋우고 꽃씨를 뿌리고 하루하루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그 마음, 그 마음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것들은 내가 기다리지 않아도 올 것이다. 그래도 나는 기다린다. 기다리는 기쁨 때문에 기다린다.’ 기다리고 마중하는 마음... 자연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다. 

가족은 선생님의 추억과 일상 속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예전 글에서도 늘 그 애증이 잘 드러나지만 이제 선생님은 그 가족을 감사와 그리움으로 피워낸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전쟁 통에 가족을 등진 오빠... 자유를 주려고 애썼지만 결국은 엄마의 말뚝에 매려고 했던 어머니, 보수적이면서도 신식이었던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친구처럼 의지했던 큰 딸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할 정도로 아름다운 감동이 살아있었다. 

어느 새, 세월은 흘러 ‘소심하고 변변치 못한’ 70세로 들어선 선생님은 자연 속에서 삶을 꾸리면서도 끊임없이 일상에 부딪치며 살아간다. 할머니 소리만 듣다가 어느 날 ‘아줌마’ 소리에 감동 받은 친구의 얘기, 다쳐서 일상이 고달팠던 지루한 날들, 그리운 침묵, 여행 중에 겪게 되는 상처받는 휴머니즘, 익숙해지지 않는 자본주의 공부, 지하철에서 만난 무례한 삼사십대... 등등 70세에 겪을 수 있는 많은 일들이 자잘한 씁쓸함으로 그려진다. ‘특히 오늘의 주역인 삼사십대의 본데없음과 상상력 결핍은 우리가 저들을 어떻게 길렀기에 저 모양이 되었나, 죄책감마저 들게 한다. 상상력은 남에 대한 배려, 존중, 친절, 겸손 등 우리가 남에게 바라는 심성의 원칙이다. 그리하여 좋은 상상력은 길바닥의 걸인도 함부로 능멸할 수 없게 한다.’

나이가 들면서 누구나 어떤 형태로든 둑음을 생각하게 된다. 두려움에 떨 수도 있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사람도 있고 더 살고 싶다고 몸에 좋은 것만 찾아먹는 사람도 있고, 자식들 고생시키고 싶지 않아 마지막 날까지 건강하게 움직이다가 잠자듯이 가고 싶다는 등의 나름대로 바람이 있게 마련이다. 또한 주위에서 가족, 친구, 아는 사람, 하나, 둘 사라지는 걸 경험하게 된다. 선생님도 다르지 않다. 그런 일을 겪으며 선생님은 추억도 떠올리고 살아생전 고마움도 그리고 자신의 둑음에 대한 바람도 그린다. ‘우리가 죽는 날까지 배우는 마음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은, 사물과 인간의 일을 자연 질서대로 지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가 아닐까. 익은 과일이 떨어지듯이 혹은 누군가가 거두듯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죽고 싶다.’   

글쟁이로만 살아오던 선생님은 더 늦기 전에 ‘죽기 전에 꼭 완벽하게 정직하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고, 그건 농사밖에 없을 것 같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농사꾼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잔디나 꽃밭을 가꾸면서 호미를 많이 쓰는데 그 예찬이 예사롭지 않다. ‘호미는 남성용 농기구는 아니다. 주로 여자들이 김 맬 때 쓰는 도구이지만 만든 것은 대장장이니까 남자들의 작품일 터이나 고개를 살짝 비튼 것 같은 유려한 선과, 팔과 손아귀의 힘을 낭비 없이 날 끝으로 모으는 기능의 완벽한 조화는 단순 소박하면서도 여성적이고 미적이다.’

선생님이 평생 써오신 글에서 나는 이러한 아름다움을 느낀다. 유려한 필체, 과장하거나 오바하지 않는 글의 진정성 그리고 단순 소박하면서도 여성적이고 미적인 선생님만의 문학성이 바로 그것이다. 늙으신 선생님의 모습에서도 그런 아름다움을 느낀다. 단순 소박하면서도 여성적인 아름다움... 그러면서도 고집스런...

선생님, 새봄에는 100여 가지가 넘는 정원의 꽃을 가꾸시면서 이제 더 건강한 80세를 준비하는 선생님만의 일상을 보여주세요... 또 다른 80세의 <호미>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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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 무덤 창비시선 272
엄원태 지음 / 창비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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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났다.
시를 읽는 내내 울었다.
살풋 미소도 아닌 것이,
찡그린 듯 보이는 시인의 모습이 괜히 서러워 울었다.
세상은 왜 이리 아픈 것일까.
시인도 아프고,
그의 시도 아프고,
그의 시에 나오는 인물들도 아프고,
어느 하나 아프지 않은 것이 없더라.
시인의 아픔이 아팠다.
그 아픔을 견디는 모습이 더 아팠다.

그래서 나도 아파졌다.

나의 건강함이 비겁해서 울었다…

<물방울 무덤들>

아그배나무 잔가지마다
물방울들 별무리처럼 맺혔다
맺혀 반짝이다가
미풍에도 하염없이 글썽인다

누군가 아그배 밑동을 툭, 차면
한꺼번에 쟁강쟁강 소리내며
부스러져내릴 것만 같다

저 글썽거리는 것들에는
여지없는 유리 우주가 들어 있다
나는 저기서 표면장력처럼 널 만났다

하지만 너는 저 가지 끝끝마다 매달려
하염없이 글썽거리고 있다

언제까지고 글썽일 수밖에 없구나, 너는, 하면서
물방울에 가까이 다가가보면
저 안에 이미 알알이
수많은 내가 거꾸로 매달려 있다

<불탄 나무>

1
깊고 둔중한 고통이 등허리를 지나가며
내게 말한다, 겸허하고 깊어질 것,
자신에게 절실할 것,

나는 네게 말하마, 
고통마저 태워버린 너에게

내 아파서 너를 아프게 하는 게 더 아프구나!

2
불탄 나무가 남은 한쪽 팔로 푸른 그늘 이룬 것
악, 악, 하고 입을 벌려
삶을 받아들인 현존, 그 증거
진정한 현존이란
아직 살아보지 않은 시간 속에 있다
끊임없이 오고 있는 것
언제나 생성중인 상태에서
그 어떤 죽음들을 통하여……

3
솔숲에 가려 반짝이는 수은등 하나,
차고 흰 얼굴을 보여주는 불빛
서늘하게 맑은 정신의 결기

우리는 오래 침묵을 나누었다
그 어느 것도 아닌
침묵……
마음 고요했던가, 강물처럼 깊어갔던가

외로움이란
내 가슴 불타고 남은 공동에
아무것도 채우지 않음으로써 너를 채우는 것

4
첫눈이 우레처럼 우리를 지나갔다

흑백필름에 새겨지는 마그네슘 플래시 발광처럼

환하게 밝아오던 땅 끝

처음 너를 알아보던 때!

<어떤 잠꾸러기> 가운데에서

어쨌든 잠이란, 무언가를 오롯이 견뎌내야 하는 때 가장 좋은 친구, 그야말로 휴식 같은 친구 아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곤히 잠든 그의 얼굴, 수척한 몸피에 밴 저것은 고스란히 괴로움과 슬픔이 아니면 무어란 말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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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 2006년 겨울호 - 통권 3호
문학동네 편집부 엮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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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창간호에 이어 가을호 그리고 이제 겨울호를 읽었다. 창간호부터 ‘심심해?’와 ‘도망’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맛깔스런 많은 글이 소개되었다. 나름 신선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지만 이번 겨울호만큼은 아니었다. 일단 ‘훔치다’라는 야릇한 주제를 가지고 이렇게 재밌고 즐겁게 표현을 하다니, 겨울이 가는 게 아쉬울 정도로 정말 신선하고 상쾌한 겨울호였다.

‘내가 쓴 글이 아무것도 아니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으로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나타낸 이혜경의 진솔한 고백이 마음에 와 닿았다. 

마음을 훔치고, 책을 훔치고, 자전거를 훔치고, 못 훔치는 것 없이 다 훔치는 괴도 뤼팽, 그리고 내 마음을 훔친 작가, 책 등등을 소개한 ‘훔치다’ 코너의 글은 정말 빨려들듯이 재밌게 읽었다. 그리고 생각해 봤다. 내 마음을 훔친 작가와 책은 누구와 어떤 것이고, 내 인생에서 내가 훔쳤던 것은 무엇이며, 앞으로 훔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남들과 다른 나만의 ‘훔치기’ 리스트도 작성하면서 너무 즐거웠다. ‘타인의 정체성’마저 훔침으로서 법이 단죄할 범법자가 아예 없는 셈이 되어 버리는 뤼팽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성귀수 선생님은 ‘훔치기’에 대해 결론짓는다. ‘사물을 넘어 존재를 훔치는 이 놀라운 경지... 자신을 벗어나 그 누구로도 되고 싶고, 또 될 수 있다고 믿는 욕망, 그것은 자아에 대한 무한한 상상을 가능케 하고, 그 나르시시즘적 상상력 앞에서 현실의 감시와 억압은 무의미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아르센 뤼팽이 훔치기의 달인일 수 있는 이유임과 동시에, 문학이 늘 우리의 마음을 성공적으로 훔치는 비결이기도 하다.’

원래 재밌는 카툰 코너는 황당하면서도 웃겨서 좋고, 단편을 소개하는 정이현의 ‘짧은 소설’도 한번 따라해 보고 싶게 만들었고, ‘묘안’이라는 릴레이 소설도 너무 짧은 게 단점이지만 슬슬 흥미로워지고, 재수록 소설 ‘큰 평지’는 어릴 적 감성이 그대로 살아나오는 것 같아 좋았다.

청소년이 직접 만드는 피플란도 점점 더 재미를 더해하고, 문화란의 영화나 광고, 소설 다시 쓰기도 무척 흥미로운 시각을 더해주고, 삶코너도 청소년의 마음을 읽는 것이라 유쾌하게 읽을 수 있었다. 지식 코너도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진달래꽃’, 지식을 넓혀주는 ‘개념정원’ 그리고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미술읽기의 ‘미술이 여자와 동물을 만날 때’도 신선했다. 특히 <허생전>을 다시 쓴 김상우의 ‘개가 인재가 된 사연’은 그 기발함에 치를 떨었다. 

하지만 이번 겨울호에서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청소년 문학상으로 실린 작품들이었다. 모두 이런 저런 이유로 좋았지만 특히 <조각배>와 <거미줄>은 성인작가 작품 뺨치게 그 구성과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힘이 돋보여서 좋았다. 불구 엄마를 창피해하고 부끄러워하다가 결국엔 자신의 그 부끄러움과 화해를 한다는 이야기인데, 어쩌면 설정은 좀 뻔하다. 하지만 그렇게 뻔한 설정을 부족함 하나 없이 꽉 짜인 구성에 엄마를 대하고 나를 대하는 주인공의 심리 변화를 묘사한 힘이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청소년 문집 같은 데서 비슷한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자신의 엄마가 자랑스럽다는 식의 가식적인 글을 읽을 때마다 구역질이 났다면서도 마지막엔 자신도 그런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런 지은이의 서툰 결말이 얼마나 귀여웠는지 모른다. 뻔한 소재와 교과서적인 결말이지만, 뻔한 걸 뻔하지 않게 느끼게 쓰는 글, 결국은 가장 자연스럽게 이 세상에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 교과서적인 게 아닐까. 아무튼 전은자양의 다음 소설을 기대해본다.

<거미줄>도 시작이 뻔하긴 마찬가지이다. 소설에서 너무 흔하디 흔한 불구 엄마, 그리고 딸과의 갈등, 사회적인 모순 등등... 소설로서는 좀 청소년들이 쉽게 가는 건 아닌지 좀 부담감도 있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건 결국 이 소설이 가진 힘이었을 것이다. 주인공의 화해로 가는 방법이나 감정처리 또한 깔끔하고 무리가 없다. 청소년이 썼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스토리를 끌어가는 힘이 자연스럽고 담담하다. 서툴다거나 서둘러 마감한 느낌도 없고, 정말 어디 한구석 빈 데가 없다. “오늘은 제가 할게요”로 표현되는 화해의 방법도 무리한 갈등을 표출하고 무리하게 결론짓는 것보다 더 무덤덤하면서 힘이 느껴진다. 이 정도의 소설 창작 수준으로 다른 소재를 잡았더라면 그 힘이 어땠을지... 상상하는 것도 즐겁다. 청소년의 십대 감각도 100% 느끼게 해주면서 소설적인 완성도로 꽉 찬 소설이었다. 조세연양(또는 군)의 또 다른 ‘껌 씹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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