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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밥그릇이 빛난다 ㅣ 창비시선 273
최종천 지음 / 창비 / 2007년 2월
평점 :
처음에 최종천의 시집을 접했을 때,
느낀 감정은 불편함이었다.
마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남성적이고,
죄의식을 강요하는 듯, ‘노동자적’이고,
그의 시선은 현대 사회를 비꼬고 경멸하는데 강하고,
거리낌 없이 대놓고 시니컬하고,
용서 없이 잘못을 꼬집는 그의 시들이 불편했다.
하지만 읽어갈수록 행간에서는
용접으로 풀리는 쇠 같은 부드러움이,
세상에 대한 안쓰러움이,
순수함에 대한 그리움이,
그래도 용서하는 체념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의 펜 아래에서는 쇠도 녹일 힘이 있어 보인다.
현 문화, 예술에 대한 비판도,
실재에 대한 그의 신념과 함께,
노동으로 인간이 되어가야 한다는 소리침이 울려 퍼진다.
* 시 순서를 그렇게 의미가 강한 시부터 자리를 잡게 한 것이
시인의 의도였는지, 편집자의 의도였는지 궁금하다.
가만히 의식 없이 있던 독자를 정신 차리라고 ‘공격’하는 의도인지...
덜 최종천다운 이 시가 내겐 좋았다.
<찌그러진 밥통>
출근길이었다.
한길에서 택시기사 두 명이
서로 삿대질로 혈압을 올리더니
약속이나 한 듯
차를 몰고 간다.
끝났나?
싶었는데, 웬걸
공터가 나오자
약속이나 한 듯
차를 동시에 세운다.
파란 택시기사가
야, 너나, 나나, 먹고살기 바쁜데 딱,
십분만 뛰자고 제안하니
노란 택시기사는
너, 이 개자식 오늘이 제삿날인줄 알아! 한다.
싸움은 딱 십분만 뛰자던 사람이 이겼다.
코피가 터진 것을 신호로 끝난 것이다.
시계를 보니 딱 십분,
노란 택시기사가 올려다본 하늘은 노랗다.
사나이는 차 대신 찌그러진 것이다.
아무렴! 잘한다, 잘해.
밥통이 찌그러져서는 안 되지!
밥이 적게 들어가니까.
<이성민을 만나다> 가운데에서.
(...)
놈의 어울리지 않지만 말쑥한 정장을 보니
계급상승에 어지간히 애쓰는 모양이었다
여자들이 남자를 보면 먼저 손을 본다나
직업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놈은 밤마다 두 손에
바쎌린을 흠뻑 바르고 고무장갑을 끼고 잔다고 했다
놈의 손은 정말로 윤이 나고 예뻤다
놈은 또 맞선에 대비하여
상식백과사전을 열심히 읽기도 했다
(...)
여자들(!)아, 저 구절에 동의하십니까?
난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 여자들도 있겠지.
그런 여자를 만나려고 손에 바쎌린을 바르고... 그런 노력을 하는 이성민도 안쓰럽고,
친구로서 그런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시인도 내겐 안쓰럽다...
세상이 모두 그렇다면 할 말 없지만...
<당신은 얼마나 불행하기에> 가운데에서.
(...)
어저께 우리 옆집 주부는 오디오를 고장내고 말았습니다. 오디오는 그 주부의 행복이어서 그녀는 많은 돈을 주고 행복을 수리쎈터에 맡겼답니다. 행복하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은 행복이 고장나도 수리할 줄을 모릅니다. 그래서 버리거나 팔아버립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고장난 것을 수리하여 잘 사용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행복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이웃과 사물을 고장낸 것입니까? 당신은 얼마나 불행하기에 그토록 행복할 권리는(를?) 주장하는 것입니까? 행복이란 인간의 선한 모습입니다.
<화곡역 청소부의 한달 월급에 대하여> 난 이 시에 대해 노코멘트다!
올해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겠다는
지원비가 드디어 한달에 100원씩
1200만원으로 올랐다, 용렬하게
이 몸도 신청했다, 문득 화곡역 청소부에게
한달 월급이 얼마나 되느냐고
왜 물어보고 싶었을까?
63만원이라고 했다.
시집도 내고 목돈으로 1200만원이나 벌었으니
행복은 역시 능력있는 사람의 권리지 의무가 아니라고
누군가는 생각할 것이다, 솔직히
배때지가 꼴린다, 내가 못 받았기 때문이다
“모든 예술은 사기다.”
백남준의 이 말은 은유도 비유도 아니다
예술은 부를 창출하는 게 아니다, 그 청소부는
얼마나 많은 부를 창출하고도 그것밖에 가지지 못하나
예술은 허구를 조작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자각하는 시인만이 시인이라고
단언하기는 그렇지만, 시인들이여
행복은 권리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렇다면 그대는
시인은 못되리라, 행복은 누구나의 의무다
우리의 행복함은 곧 우리가 선함이요
우리의 불행은 우리가 악하기 때문이라
이러한 행복과 불행의 원리는,
화곡전철역에서 하루종일 허리 구부리고 청소하시는
아주머니의 월급이 63만원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 <정년제> 9째줄
키에 닿는 건물을 지날 때
깎여나간 어깨를 씨멘트로 보충하고
대었던 보강재을(를?) 떼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