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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 무덤 ㅣ 창비시선 272
엄원태 지음 / 창비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눈물이 났다.
시를 읽는 내내 울었다.
살풋 미소도 아닌 것이,
찡그린 듯 보이는 시인의 모습이 괜히 서러워 울었다.
세상은 왜 이리 아픈 것일까.
시인도 아프고,
그의 시도 아프고,
그의 시에 나오는 인물들도 아프고,
어느 하나 아프지 않은 것이 없더라.
시인의 아픔이 아팠다.
그 아픔을 견디는 모습이 더 아팠다.
그래서 나도 아파졌다.
나의 건강함이 비겁해서 울었다…
<물방울 무덤들>
아그배나무 잔가지마다
물방울들 별무리처럼 맺혔다
맺혀 반짝이다가
미풍에도 하염없이 글썽인다
누군가 아그배 밑동을 툭, 차면
한꺼번에 쟁강쟁강 소리내며
부스러져내릴 것만 같다
저 글썽거리는 것들에는
여지없는 유리 우주가 들어 있다
나는 저기서 표면장력처럼 널 만났다
하지만 너는 저 가지 끝끝마다 매달려
하염없이 글썽거리고 있다
언제까지고 글썽일 수밖에 없구나, 너는, 하면서
물방울에 가까이 다가가보면
저 안에 이미 알알이
수많은 내가 거꾸로 매달려 있다
<불탄 나무>
1
깊고 둔중한 고통이 등허리를 지나가며
내게 말한다, 겸허하고 깊어질 것,
자신에게 절실할 것,
나는 네게 말하마,
고통마저 태워버린 너에게
내 아파서 너를 아프게 하는 게 더 아프구나!
2
불탄 나무가 남은 한쪽 팔로 푸른 그늘 이룬 것
악, 악, 하고 입을 벌려
삶을 받아들인 현존, 그 증거
진정한 현존이란
아직 살아보지 않은 시간 속에 있다
끊임없이 오고 있는 것
언제나 생성중인 상태에서
그 어떤 죽음들을 통하여……
3
솔숲에 가려 반짝이는 수은등 하나,
차고 흰 얼굴을 보여주는 불빛
서늘하게 맑은 정신의 결기
우리는 오래 침묵을 나누었다
그 어느 것도 아닌
침묵……
마음 고요했던가, 강물처럼 깊어갔던가
외로움이란
내 가슴 불타고 남은 공동에
아무것도 채우지 않음으로써 너를 채우는 것
4
첫눈이 우레처럼 우리를 지나갔다
흑백필름에 새겨지는 마그네슘 플래시 발광처럼
환하게 밝아오던 땅 끝
처음 너를 알아보던 때!
<어떤 잠꾸러기> 가운데에서
어쨌든 잠이란, 무언가를 오롯이 견뎌내야 하는 때 가장 좋은 친구, 그야말로 휴식 같은 친구 아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곤히 잠든 그의 얼굴, 수척한 몸피에 밴 저것은 고스란히 괴로움과 슬픔이 아니면 무어란 말이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