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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의 연인
샨 사 지음, 이상해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측천무후>가 그 재미나 문학성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베스트셀러를 경계하는 습관이 그 책을 좀 멀리하게 만들었다. 또 <바둑 두는 여자>를 두고도 대신 먼저 잡은 것이 새로 나온 책이었다. 인정받은 작가의 새 책, <알렉산더의 연인>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좀 실망스러웠다. 그 이유는 꼭 동양 작가가 자신의 문화나 문학, 역사, 철학이 아닌 생소한 서양의 한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잡아서가 아니었다. 어차피 문학이란 것은 상상력의 소산물로 그 소재가 무엇이건 간에 그 구조나 스토리, 또는 주제가 보편성을 띠면 누구에게나 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커서 배운 외국어로 소설을 쓰는 그녀의 능력은 이미 성공한 것으로 그 나라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기에, 그 또한 태클을 걸만한 건 아니다. 비슷한 느낌으로 다이 시지에의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는 재미도 있었고 정서도 아름다웠지만, 언어적인 느낌 때문인지 그런 깊이의 부재가 느껴졌었다. 이와는 다르게, 이 책은 소설로서 성공적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점이 있었다.
재미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더의 한 남자로서의 숨은 욕망, 사랑, 열정 그리고 슬픔과 광기까지 그녀의 붓은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 감각적인 문체와 잘 어우러졌다.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그의 연인 녹산의 기원 그리고 그녀를 그리는 스토리는 아마존의 여인들에 대한 우리의 환상과 꿈을 한껏 키워놓았다. 위대한 왕으로서의 알렉산더의 모습이 아니고, 고통 받고 억눌린 한 인간으로서의 심리 또한 멋진 필체로 살아났다. 그의 전사로서의 힘찬 발걸음, 한 인간을 향한 사랑과 욕망도 감각적으로 아름답게 그려져 있었다. 인도까지 대영토를 점령한 알렉산더의 위대함보다는 광기와 열정에 사로잡힌 한 인간의 심리와 고뇌를 그린 것도 흥미로웠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이 소설은 한편의 서사시였다. 소설에서의 고저나 갈등 그리고 정점을 지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마무리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 열정적이고 광적이고 싶어 하는 열망이 서사로 펼쳐지는 바람에 깊이 있게 표현되던 한 인간의 심리와 사랑이 묻혀버렸다. 맛있는 것만 먹다보면 결국 그 어느 것도 아무 맛이 느껴지지 않는 것과 비슷하게, 너무 높게만 몰고 가는 그 상황들, 격정적이고자 하는 정신 상태는 결국 지루함을 가져왔다. 휴식 없는 서사처럼 식상한 건 없다.
여자처럼 아름다운 얼굴, 부드러운 손길, 여자처럼 입고 시를 사랑했던 부드러웠던 아이, 알렉산더가 아버지를 둑이고 사랑하게 된 청년들과 욕망을 나누고 하는 사이에 무시무시하게 강한 전사가 되는 과정은 좀 부족해보였고, 유일할 정도로 격렬한 전투를 치르고 난 상대에게 사랑에 빠졌지만, 그 상대를 남들과 똑같은 여자로서의 왕비로 만들어 자유를 허용치 않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후계자를 낳아줄 것을 종용하고, 또 말을 타고 초원을 누비던 남자 못지 않던 여전사가, 매이는 게 싫어 사랑을 나눴던 남자 목을 베던 그 여전사가 한 남자에 대한 사랑으로 튜닉을 입고 베일로 얼굴을 가리고 후방에서 사랑하는 남자를 기다리는 여자로 변하는 것 또한 이해하기 쉽지 않은 대목이었다. 그토록 격렬한 사랑이 그토록 순종적이고 그토록 뻔한 과정을 거치는 게 좀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나는 성실하고 총명한 학생이었다. 아버지에게 나는 고문기술자이자 창녀였다. 동료들에게 나는 폭군적인 스승이자 비열한 연인이었다.’ 실제로 폭군이 되고 광기로 뒤덮이는 알렉산더, 살인, 처형, 살육의 이유를 ‘더 나은 선이 악의 길을 통해 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역설하는 알렉산더는 영토를 확장하고 전쟁을 계속한다.
‘탈레스트리아는 아마존들의 여왕이다. (...) 우리 부족은 태생을 모르는 여자들, 고아와 버려진 아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전사들의 손에 길러진 우리는 두려움을 모르는 여자로 자랐다. 추위, 전쟁, 굶주림은 얼음의 신이 우리를 시베리아 산 정상으로 이끌기 위해 보내는 세 마리의 독수리였다.’ 그런 아마존의 여왕이 사랑에 대해 말한다. ‘아냐는 남자를 사랑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사랑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다. 그녀는 연인들이 재회할 때, 그들의 사지가 휘감길 때, 그들이 꿈속에서 다시 만나기 위해 잠이 들 때 느끼는 행복을 알지 못했다. 그녀는 연인들이 헤어질 때 가슴을 에는 그 아픔을 알지 못했다. 그녀는 나를 비방, 배신, 비난, 음모에 무감각하게 만드는 그 힘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녀는 그 광기를 몰랐다. 알렉산더는 내게서 모든 것을 가져갈 수 있었고, 나는 그의 부재까지 참아내며 내 모든 것을 그에게 바쳤다. 사랑은 몸 내부, 가슴 어딘가에 둥지를 틀고 있다. 그래서 사랑은 없어지지도 않고, 도둑맞을 수도 없다. 사랑은 날 고문했고, 날 아름답게 만들었다. 사랑은 날 절망에 빠뜨렸고, 희망으로 가득 채웠다. 나는 알렉산더를 사랑했다! 이 한 마디가 날 얼음 물속에, 화염 속에 빠뜨렸다. 나에게 기쁨과 고통을 주었다. 이 마술적인 문구가 날 위대하게, 그리고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푸른 하늘을 펼쳐놓았고, 폭풍우를 불러일으켰다!’
‘!’가 이렇게 많은 작품은 처음 본 것 같을 정도로 스토리나 두 연인의 심리는 높은 곳으로만 달려간다. 이런 게 정말 격렬하고 열정적인 최고 정점의 사랑이라고... 한다면, 내가 그런 사랑을 해보지 못해서 그런 거라면... 할 말 없다. 내겐 좀 식상하기까지 한 사랑의 서사시인 이 책이 어쩌면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그 광기까지 포함한 격한 사랑과 열정의 증거라고 이해할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 곧바로 <바둑 두는 여자>를 읽었다. 단숨에... 너무 재밌게... 그래서 좀 덜 미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