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차
미야베 미유키 지음, 박영난 옮김 / 시아출판사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화차란 생전에 악행을 한 망자를 태워 지옥으로 옮기는 불수레라고 한다. 신용카드로 생기는 문제를 다뤘다고 해서 또 다른 <쇼퍼홀릭>인가 정도만 생각했는데, 책을 받기 전에는 책이 이렇게 두꺼우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460여 쪽밖에 안 되는데 무척 두꺼운 책인 것은 종이질 때문인가... 하지만 추리물이라 금방 읽을 수 있는 건 이 책의 장점이다. 스포일러 없이 감상문을 쓰느라 별 내용은 없지만 -있는 내용도 모두 책 소개에 들어있는 내용이지만,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 그래도 감상문을 적는다. 

<스텝파더 스텝>이라는 가볍지만 따스한 책으로 처음 만났던 미야베 미유키를 이번에 <화차>로 만났다. 경쾌한 문체나 특이한 대사 방식을 알고 있었기에 두꺼워도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책이었다. 하지만 추리물치고는 추리가 시작되는 시점이 좀 지루했다. 카드가 처음 시작되었을 당시의 정의, 올바른 사용이나 그 폐해, 그 이후에 해결을 위한 방편으로서의 법으로 가는 절차, 그걸 몰라 불행이 일어나는 일 등등을 너무 교과서적으로 설명하는 바람에 좀 지루하기도 했고, 소설을 교훈의 한 방편으로 생각하나... 또는 그런 식으로 사실을 알릴 의무가 있나... 하는 등의 의문이 들었다. 게다가 아직 주인공이 어떻게 됐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렇게 장황한 설명은 추리물에서 상당한 방해가 되는 것 같다. 물론 다 읽고 나서는 그 당시 상황이 어쩌면 그런 장황한 설명을 요구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그렇게 두꺼운 책을 쉬이 읽고 나서는 그렇게 걸리는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지만, 그 대목을 읽을 때는 흥미를 끌어놓기만 하고 그 흥미를 잠시 제쳐두고 그런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한번 발을 내디디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악순환의 구조로 돼 있어요. 성실한 사람일수록 발목이 잡혀 꼼짝도 못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막다른 곳에 다다르면 가장 나쁜 형태로 끝을 보지요. 범죄를 저지르는 거죠.” 이 정도였으면 되었지 않았을까만...

그래도 그것 빼곤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롭게 읽었다. 여기선 물론 카드나 대출 등을 소재로 삼긴 했지만 순수하고 정직한 사람들이 어쩌다 세상의 악순환의 고리에 걸려들어 어찌해 볼 도리도 없이 가족이 헤어지고 야반도주를 하고 자살이나 인생을 완전히 망치는 경우를 당하게 되는 경우를 실감나게 그렸다. 카드사에서 무분별하게 길거리에서도 아무한테나 카드를 발행해주던 몇 년 전 우리나라를 생각하면, 또 여러 장의 카드로 돌려막기를 하다 신용불량자가 된 많은 사람들을 생각할 때 생각해볼 여지도 많은 책이었다. <쇼퍼홀릭>을 읽으면서 대책 없는 주인공의 쇼핑행태에 뒷골이 땡겼었는데, 그 책의 결론은 다행히 헐리우드식이었다. 이 책에선 은근히 침잠하게 하는 일본식(!)이란 생각이 들면서 읽었다.

“5년 전에 개인파산 수속을 처음 밟으면서 부채가 늘어간 경과를 쓰게 했을 때 쇼코 양이 저한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선생님, 제가 어떻게 이런 엄청난 빚을 만들게 됐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전 그저 행복해지고 싶었을 뿐인데’라고요.” 결국은 카드뿐 아니라 현대사회가 만들어놓은 수많은 병폐를 작가는 꼬집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전엔 먹고살 것만 있어도 부자였고 행복한 삶이었는데, 이젠 새로 생기는 수많은 것들, 남들도 다 가졌는데, 나만 없으면 안 되지 하는 생각들, 그런 생각이 결국은 알게 모르게 우리를 망치는 것이 아닐까. 주제에 맞게, 분수에 맞게 살면 되는데, 황새만이 행복한 기준인 줄 착각하고 가랑이가 찢어지도록 황새를 쫓아가려니 화차를 타게 되는 것이 아닐까.    

더구나 그 불행의 씨앗이 자신의 잘못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기에, 주인공의 행동이나 심리가 백분 이해가 되기도 해서 마음이 안타깝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추리물의 결론이 어떻게 날까...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복잡하지 않게 얽히고설키는 인물들의 구성은 미야베 미유키만의 장점이 아닐까 할 만큼 그 구성이 짜임새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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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두는 여자
샨 사 지음, 이상해 옮김 / 현대문학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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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릴 적에 어른들이 바둑 두는 걸 보면서 그 느리면서 지루하고 복잡해 보이는 게임이 그렇게 이상해 보일 수가 없었다. 그에 비해 장기는 빠르고 단순한 게임이어서 바둑보다는 장기를 배우고 그 긴박한 게임을 잠시 즐겼었다. 그러다 화토를 배우고 나서는 다른 게임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씨가 씨인지라 우리 식구 모두, 엄마만 빼고는 모두 화토를 좋아했고, 또 고수들이었다. 나랑 동생 용돈을 따먹으려고 오빠는 우리에게 고도리를 가르쳤다. 하지만 몇 판 만에 자신의 용돈을 잃게 생기자, 우리에게 ‘이제 그만 하산하거라’ 한 마디를 남기고 판을 접었다.

그런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바둑 두는 한 중국 소녀가 여기 있다. 바둑에 얽힌 사랑과 의리가 때로는 감각적이고 때로는 맑고 순수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바둑알 아래 슬며시 드러나는 그 모습은 또한 어느 격렬한 사랑 못지않게 열정적이고 아름답다.

‘한 수 한 수는 영혼의 밑바닥을 향해 내려가는 발걸음이다. 나는 그 미로들 때문에 바둑을 사랑했다. 돌 하나의 위치는 다른 돌들의 움직임에 따라 변화한다. 점점 더 복잡해지는 돌들 사이의 관계는 속속 변모해 처음에 의도했던 것과 완전히 일치하는 법이 거의 없다. 바둑은 계산을 비웃고, 상상력을 조롱한다. 구름들의 연금술만큼이나 변화무쌍한 모양 하나  하나가 모두 최초의 의도에 대한 배신인 셈이다. 한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매순간 가장 유연하고, 가장 자유로운 동시에 가장 냉철하고, 가장 정확한 수를 재빨리 찾아내야만 한다. 바둑은 기만의 게임이다. 오직 하나의 진실, 바로 죽음을 위해 온갖 허상으로 적을 포위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은 서로 다른 생각과 서로 다른 생활을 하는 서로 다른 두 국적의 남녀의 사랑 아닌 사랑 얘기로 볼 수 있다. 서로 다른 이야기 두 편이 각각 다른 곳에서 평행선을 달린다. 한편에선 여자로 피어나기 직전의 한 중국 소녀가 광장에서 바둑을 두고 또 한편에서는 전쟁을 위해 중국으로 떠나는 일본 장교가 있다. 소녀는 소녀대로 꽃봉오리 같은 삶이 막 피어나기 시작하며 육체적으로 또 심리적으로 여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겪고, 남자는 남자대로 자신의 삶보다는 나라를 위한 둑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다. ‘나는 내 운명을 잘 다스려 행복해질 것이다. 행복은 에워싸는 전투인 바둑과 같다. 나는 고통을 질식시켜 없앨 것이다.’ 막 사랑을 시작한 소녀의 다짐이다. 하지만 바둑에도 배신이 있을까. 또한 남자의 인생은 ‘내일, 우리는 먼지가 되어 대지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 누가 한 군인의 애달픈 사랑을 기억해줄까?’라는 구절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러다 어느 한 시점, 이 두 남녀가 바둑 두는 광장에서 만나고 바둑을 두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사랑의 시선이나 의견 교환 대신, 바둑알이 서로 얽히고설키면서 남녀의 생활 변화, 심리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여자는 사랑이라고 믿던 남자의 배신을 겪고 남자는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상황에서 한순간의 욕정을 창녀들을 통해 푸는 삶 아닌 삶을 계속하고 있다. 또한 ‘중국 남자와 중국 여자는 입을 열기도 전에 서로를 이해한다. 동일한 문화를 품고 있는 그들은 두 개의 자석처럼 서로를 끌어당긴다. 일본 남자와 중국 여자가 어떻게 서로를 사랑할 수 있겠는가? 우리에겐 함께 나눌 것이 아무것도 없다.’라는 씁쓸함이 남자의 생각이다.

두 남녀 사이에는 엄밀히 말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바둑알이 대신 그들 사이의 대화처럼 서로 상대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할 뿐이다. 남자도 여자도 서로의 생활이나 심리 변화에 따라 바둑의 수가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을 짐작한다. 남자는 생각한다. ‘평상시처럼 그녀는 말이 없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여자들의 미스터리, 그 침묵이 내 목을 조여온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왜 아무 말도 않는 걸까? 여자들은 기억력이 둔하다고 하던데, 벌써 모든 걸 잊어버린 걸까? (...) 그녀의 돌들이 날아오른다. 그녀의 응수가 점점 더 빨라진다. 그녀가 갖은 술수를 부린다. 정말 놀라운 여자다!’ 여자는 생각한다. ‘나도 그들처럼 삶을 갈망한다. 나는 만주의 집으로, 쳰훵 광장으로 되돌아가고 싶다. 나는 거기 앉아 그 무명의 상대를 기다릴 것이다. 어느 날 오후, 그가 처음 내 앞에 나타났을 때처럼 불쑥 날 찾아오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또한 결말에서 나타나는 절박한 상황은 사랑보다 더한 의리라고 보여진다. 사랑보다 더 끈끈하게 바둑알로 연결되었던 두 사람, 그 의리는 바둑을 두면서 그들 마음에 자리 잡은, 둑음도 초월하는 의리가 아니었을까. 그들의 마지막은 정말 가슴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사랑 고백이 되었다. 남자는 고백한다. ‘염려하지 말아요. (...)’ 여자도 고백한다. ‘제 이름은 밤의 노래「夜哥」예요.’ 이보다 더 아름다운 사랑 고백을 어디서 또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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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다예요 2007-03-12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소재의 소설이네요.
그런데 님, 님이 여자분이셨어요? 사랑보다 더한 의리, 의리라는 말 때문에 그저 남자분인 줄 알았어요. 의리를 소중히 여기시는 여자 분이시군요.
아, 신선해라! ㅋ

진달래 2007-03-13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재밌습니다. ^^
저, 법적으로 여자예요. ^^;;
이 책에선 사랑의 어떤 설레임이나 강렬함보다는 함께 바둑을 두고 그러면서 서로의 심중을 읽고... 그런 의미에서 사랑보다 의리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알렉산더의 연인
샨 사 지음, 이상해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측천무후>가 그 재미나 문학성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베스트셀러를 경계하는 습관이 그 책을 좀 멀리하게 만들었다. 또 <바둑 두는 여자>를 두고도 대신 먼저 잡은 것이 새로 나온 책이었다. 인정받은 작가의 새 책, <알렉산더의 연인>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좀 실망스러웠다. 그 이유는 꼭 동양 작가가 자신의 문화나 문학, 역사, 철학이 아닌 생소한 서양의 한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잡아서가 아니었다. 어차피 문학이란 것은 상상력의 소산물로 그 소재가 무엇이건 간에 그 구조나 스토리, 또는 주제가 보편성을 띠면 누구에게나 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커서 배운 외국어로 소설을 쓰는 그녀의 능력은 이미 성공한 것으로 그 나라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기에, 그 또한 태클을 걸만한 건 아니다. 비슷한 느낌으로 다이 시지에의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는 재미도 있었고 정서도 아름다웠지만, 언어적인 느낌 때문인지 그런 깊이의 부재가 느껴졌었다. 이와는 다르게, 이 책은 소설로서 성공적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점이 있었다.   

재미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더의 한 남자로서의 숨은 욕망, 사랑, 열정 그리고 슬픔과 광기까지 그녀의 붓은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 감각적인 문체와 잘 어우러졌다.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그의 연인 녹산의 기원 그리고 그녀를 그리는 스토리는 아마존의 여인들에 대한 우리의 환상과 꿈을 한껏 키워놓았다. 위대한 왕으로서의 알렉산더의 모습이 아니고, 고통 받고 억눌린 한 인간으로서의 심리 또한 멋진 필체로 살아났다. 그의 전사로서의 힘찬 발걸음, 한 인간을 향한 사랑과 욕망도 감각적으로 아름답게 그려져 있었다. 인도까지 대영토를 점령한 알렉산더의 위대함보다는 광기와 열정에 사로잡힌 한 인간의 심리와 고뇌를 그린 것도 흥미로웠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이 소설은 한편의 서사시였다. 소설에서의 고저나 갈등 그리고 정점을 지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마무리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 열정적이고 광적이고 싶어 하는 열망이 서사로 펼쳐지는 바람에 깊이 있게 표현되던 한 인간의 심리와 사랑이 묻혀버렸다. 맛있는 것만 먹다보면 결국 그 어느 것도 아무 맛이 느껴지지 않는 것과 비슷하게, 너무 높게만 몰고 가는 그 상황들, 격정적이고자 하는 정신 상태는 결국 지루함을 가져왔다. 휴식 없는 서사처럼 식상한 건 없다.

여자처럼 아름다운 얼굴, 부드러운 손길, 여자처럼 입고 시를 사랑했던 부드러웠던 아이, 알렉산더가 아버지를 둑이고 사랑하게 된 청년들과 욕망을 나누고 하는 사이에 무시무시하게 강한 전사가 되는 과정은 좀 부족해보였고, 유일할 정도로 격렬한 전투를 치르고 난 상대에게 사랑에 빠졌지만, 그 상대를 남들과 똑같은 여자로서의 왕비로 만들어 자유를 허용치 않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후계자를 낳아줄 것을 종용하고, 또 말을 타고 초원을 누비던 남자 못지 않던 여전사가, 매이는 게 싫어 사랑을 나눴던 남자 목을 베던 그 여전사가 한 남자에 대한 사랑으로 튜닉을 입고 베일로 얼굴을 가리고 후방에서 사랑하는 남자를 기다리는 여자로 변하는 것 또한 이해하기 쉽지 않은 대목이었다. 그토록 격렬한 사랑이 그토록 순종적이고 그토록 뻔한 과정을 거치는 게 좀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나는 성실하고 총명한 학생이었다. 아버지에게 나는 고문기술자이자 창녀였다. 동료들에게 나는 폭군적인 스승이자 비열한 연인이었다.’ 실제로 폭군이 되고 광기로 뒤덮이는 알렉산더, 살인, 처형, 살육의 이유를 ‘더 나은 선이 악의 길을 통해 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역설하는 알렉산더는 영토를 확장하고 전쟁을 계속한다.

‘탈레스트리아는 아마존들의 여왕이다. (...) 우리 부족은 태생을 모르는 여자들, 고아와 버려진 아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전사들의 손에 길러진 우리는 두려움을 모르는 여자로 자랐다. 추위, 전쟁, 굶주림은 얼음의 신이 우리를 시베리아 산 정상으로 이끌기 위해 보내는 세 마리의 독수리였다.’ 그런 아마존의 여왕이 사랑에 대해 말한다. ‘아냐는 남자를 사랑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사랑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다. 그녀는 연인들이 재회할 때, 그들의 사지가 휘감길 때, 그들이 꿈속에서 다시 만나기 위해 잠이 들 때 느끼는 행복을 알지 못했다. 그녀는 연인들이 헤어질 때 가슴을 에는 그 아픔을 알지 못했다. 그녀는 나를 비방, 배신, 비난, 음모에 무감각하게 만드는 그 힘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녀는 그 광기를 몰랐다. 알렉산더는 내게서 모든 것을 가져갈 수 있었고, 나는 그의 부재까지 참아내며 내 모든 것을 그에게 바쳤다. 사랑은 몸 내부, 가슴 어딘가에 둥지를 틀고 있다. 그래서 사랑은 없어지지도 않고, 도둑맞을 수도 없다. 사랑은 날 고문했고, 날 아름답게 만들었다. 사랑은 날 절망에 빠뜨렸고, 희망으로 가득 채웠다. 나는 알렉산더를 사랑했다! 이 한 마디가 날 얼음 물속에, 화염 속에 빠뜨렸다. 나에게 기쁨과 고통을 주었다. 이 마술적인 문구가 날 위대하게, 그리고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푸른 하늘을 펼쳐놓았고, 폭풍우를 불러일으켰다!’

‘!’가 이렇게 많은 작품은 처음 본 것 같을 정도로 스토리나 두 연인의 심리는 높은 곳으로만 달려간다. 이런 게 정말 격렬하고 열정적인 최고 정점의 사랑이라고... 한다면, 내가 그런 사랑을 해보지 못해서 그런 거라면... 할 말 없다. 내겐 좀 식상하기까지 한 사랑의 서사시인 이 책이 어쩌면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그 광기까지 포함한 격한 사랑과 열정의 증거라고 이해할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 곧바로 <바둑 두는 여자>를 읽었다. 단숨에... 너무 재밌게... 그래서 좀 덜 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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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짝! 쿵! (부모용 독서가이드 제공) - 장독대 그림책 6
코리 로젠 슈워츠.코리 로젠 슈워츠 지음, 이상희 옮김, 올리비에 던리 그림 / 좋은책어린이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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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 책을 내가 왜 열심히 보는지 웬만한 친구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친구들 딸내미들에게 책이모로 통하는 이유도 있지만 이젠 돌이 다 되어가는 조카 때문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 선물을 제일 많이 했던 책은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나 다양한 헝겊 책들, 그리고 <바빠요 바빠> 같은 사계절 시리즈 그림책이었다.

<폴짝! 쿵!>은 책을 받자마자 조카한테 보여주러 곧바로 달려갔었다. 이제 11개월 조카는 누워있는 것보다 앉아있는 걸 더 좋아하고 앉아있기보다는 서 있는 걸 더 좋아했었고, 지난  달부터는 문제없이 걷더니 이젠 달린다. 특이한 걸 보면 무조건 따라 하기도 잘 한다.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그림책에서 코끼리와 생쥐 정도는 구별할 줄 안다.

책에서 덩치 큰 코끼리와 몸집이 작은 생쥐가 함께 놀려고 놀이터에 가지만 시소도 그네도 함께 놀기엔 만만치가 않다. 결국 심심하다며 돌아가려는 생쥐에게 긴 코를 내주며 미끄럼을 태워주는 코끼리... 서로 많이 다르지만 함께 배려하는 마음에서 서로 고마워하며 놀게 된다는 책이다. 우리 조카에겐 좀 이른 감이 없지 않아 있는 책이었지만, 놀이터를 워낙 좋아해 시소도 미끄럼도 그네도 좋아하는 조카는 곧바로 관심을 보였다. 세세한 것까지는 아니지만, 심심하다고 하품하던 생쥐와 코끼리를 흉내 내는 이모 따라서 입을 함박 벌리고 자기도 곧잘 “아~함” 한다.

몸집이, 취향이 서로 달라도 자기 것만 고집하며 놀려고 하면 함께 놀 수 없지만,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친구를 배려하면 함께 재밌게 놀 수 있다는 것을 예쁜 그림으로 잘 나타내준 그림책이었다. “아~함”보다는 “고마워, 넌 좋은 친구야...”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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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의 우울
안드레이 쿠르코프 지음, 이나미.이영준 옮김 / 솔출판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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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 빅토르는 동물원에서 동물을 분양해준다는 소리에 펭귄인 미샤를 한 마리 분양받아 키우고 있다. 함께 지내던 여자 친구도 떠나버리고 작가로서 성공도 못하고 있던 차였다. 거리에서는 가끔 총소리가 들리고 날은 춥고 커피를 끓이고 보드카를 마시고... 소련이 붕괴된 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빅토르가 펭귄인 미샤랑 그럭저럭 지내는 모습은 정겨우면서도 한편 불안하다. 말도 없이 방, 부엌, 욕실을 왔다 갔다 하며 창가나 문가에 서 있기도 하는 펭귄은 마치 조용히 애정을 갈구하는 애완용 동물 같기도 하다가 집에 돌아왔을 때 또는 잠에서 깨었을 때, 누군가 옆에 있다는 안도감 같은 걸 느끼게 해주는 친구 이상 가족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어디서나 둑음이 쉽게 느껴지는 사회적인 분위기도 느껴져서인지 불안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시끄럽지도 않았고 평온한 시절, ‘강한 애착도 없었고 혈연관계도 아니었지만 그들은 서로 의지가 됐었다.’

거기에 빅토르는 언제 둑을지 모르는 미지의 인물들에 대해 ‘십자가’라고 명명된 조문 쓰기를 청탁받고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런 조문이 결국 신문에 차츰 실리게 되는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고 주변 인물들도 사라지거나 둑는다. 그 사이 아는 이의 딸인 소냐와 소냐의 유모로 고용된 니니와 함께 빅토르는 살게 된다. 작가로서 성공은 못해도 그럭저럭 생활을 할 수 있고 특이하게 구성된 가족이지만 안정감도 느끼게 되면서 그런 ‘가족놀이’가 진짜 가족이 될 수 있음을 꿈꾼다. 하지만 빅토르와 미샤는 장례식까지 초대받기 시작하면서 일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편안하고 평온한 삶을 이어가기 위해 어떤 위험을 감지했으면서도 일부러 모르는 척 했던 사실이 서서히 드러난다. 결말의 반전 아닌 반전은 그래서 정말 흥미롭다.

이 책은 일단 독자가 읽기 쉽고 특이하다고 느끼면서도 편안하게 느끼게 해주는 분위기가 있다. 잔잔하게 내재되어 있는 유머와 무관심을 가장한 따스함, 사랑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사랑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 인물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위험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특이한 환경 속에서도 인간들은 평범한 일상을 이어가고 또 인연을 맺어간다. 불안정기에 있는 사회에서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가족이 아닌 그렇게 특이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가족놀이’가 더 맞을지도 모른다. 부정과 부패의 냄새 가운데에서도 정겨운 인간관계의 향기가 피어오르고 자연스럽게 구성되고 이루어진 ‘가족놀이’에서 진한 커피 향과 보드카 맛이 함께 난다. 펭귄이 우울한 건 어쩌면 그렇게 불안하고 위험이 잠재해 있는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되는 감정이 아닐까. 펭귄까지도 말이다.

“미샤는 우울증에 걸려 있고 또 심장이 아프다오.” 펭귄학자가 말하는 이 같은 병은 어쩌면 그 불안한 사회에서는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병인지도 모른다. “물론, 펭귄은 사람이나 다른 동물들의 기분을 쉽게 구분해내요. 게다가 원한을 아주 오래 품어요. 물론 친절을 베풀면 그것도 오랫동안 기억하지요. 당신은 모르겠지만 펭귄의 심리상태는 개나 고양이보다 훨씬 복잡하다고 할 수 있소. 더 영리하고,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아 비밀이 많고... 펭귄은 자신의 감정과 애착을 숨길 수 있는 능력이 있소.” 펭귄이 그렇댄다. 그 귀여운 모습으로 뒤뚱대는 펭귄이 말이지.

빅토르는 어떻게 될까, 펭귄 미샤는 어떻게 될까... 궁금해진다.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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