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의 우울
안드레이 쿠르코프 지음, 이나미.이영준 옮김 / 솔출판사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나, 빅토르는 동물원에서 동물을 분양해준다는 소리에 펭귄인 미샤를 한 마리 분양받아 키우고 있다. 함께 지내던 여자 친구도 떠나버리고 작가로서 성공도 못하고 있던 차였다. 거리에서는 가끔 총소리가 들리고 날은 춥고 커피를 끓이고 보드카를 마시고... 소련이 붕괴된 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빅토르가 펭귄인 미샤랑 그럭저럭 지내는 모습은 정겨우면서도 한편 불안하다. 말도 없이 방, 부엌, 욕실을 왔다 갔다 하며 창가나 문가에 서 있기도 하는 펭귄은 마치 조용히 애정을 갈구하는 애완용 동물 같기도 하다가 집에 돌아왔을 때 또는 잠에서 깨었을 때, 누군가 옆에 있다는 안도감 같은 걸 느끼게 해주는 친구 이상 가족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어디서나 둑음이 쉽게 느껴지는 사회적인 분위기도 느껴져서인지 불안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시끄럽지도 않았고 평온한 시절, ‘강한 애착도 없었고 혈연관계도 아니었지만 그들은 서로 의지가 됐었다.’

거기에 빅토르는 언제 둑을지 모르는 미지의 인물들에 대해 ‘십자가’라고 명명된 조문 쓰기를 청탁받고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런 조문이 결국 신문에 차츰 실리게 되는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고 주변 인물들도 사라지거나 둑는다. 그 사이 아는 이의 딸인 소냐와 소냐의 유모로 고용된 니니와 함께 빅토르는 살게 된다. 작가로서 성공은 못해도 그럭저럭 생활을 할 수 있고 특이하게 구성된 가족이지만 안정감도 느끼게 되면서 그런 ‘가족놀이’가 진짜 가족이 될 수 있음을 꿈꾼다. 하지만 빅토르와 미샤는 장례식까지 초대받기 시작하면서 일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편안하고 평온한 삶을 이어가기 위해 어떤 위험을 감지했으면서도 일부러 모르는 척 했던 사실이 서서히 드러난다. 결말의 반전 아닌 반전은 그래서 정말 흥미롭다.

이 책은 일단 독자가 읽기 쉽고 특이하다고 느끼면서도 편안하게 느끼게 해주는 분위기가 있다. 잔잔하게 내재되어 있는 유머와 무관심을 가장한 따스함, 사랑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사랑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 인물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위험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특이한 환경 속에서도 인간들은 평범한 일상을 이어가고 또 인연을 맺어간다. 불안정기에 있는 사회에서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가족이 아닌 그렇게 특이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가족놀이’가 더 맞을지도 모른다. 부정과 부패의 냄새 가운데에서도 정겨운 인간관계의 향기가 피어오르고 자연스럽게 구성되고 이루어진 ‘가족놀이’에서 진한 커피 향과 보드카 맛이 함께 난다. 펭귄이 우울한 건 어쩌면 그렇게 불안하고 위험이 잠재해 있는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되는 감정이 아닐까. 펭귄까지도 말이다.

“미샤는 우울증에 걸려 있고 또 심장이 아프다오.” 펭귄학자가 말하는 이 같은 병은 어쩌면 그 불안한 사회에서는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병인지도 모른다. “물론, 펭귄은 사람이나 다른 동물들의 기분을 쉽게 구분해내요. 게다가 원한을 아주 오래 품어요. 물론 친절을 베풀면 그것도 오랫동안 기억하지요. 당신은 모르겠지만 펭귄의 심리상태는 개나 고양이보다 훨씬 복잡하다고 할 수 있소. 더 영리하고,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아 비밀이 많고... 펭귄은 자신의 감정과 애착을 숨길 수 있는 능력이 있소.” 펭귄이 그렇댄다. 그 귀여운 모습으로 뒤뚱대는 펭귄이 말이지.

빅토르는 어떻게 될까, 펭귄 미샤는 어떻게 될까... 궁금해진다.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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