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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미야베 미유키 지음, 박영난 옮김 / 시아출판사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화차란 생전에 악행을 한 망자를 태워 지옥으로 옮기는 불수레라고 한다. 신용카드로 생기는 문제를 다뤘다고 해서 또 다른 <쇼퍼홀릭>인가 정도만 생각했는데, 책을 받기 전에는 책이 이렇게 두꺼우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460여 쪽밖에 안 되는데 무척 두꺼운 책인 것은 종이질 때문인가... 하지만 추리물이라 금방 읽을 수 있는 건 이 책의 장점이다. 스포일러 없이 감상문을 쓰느라 별 내용은 없지만 -있는 내용도 모두 책 소개에 들어있는 내용이지만,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 그래도 감상문을 적는다.
<스텝파더 스텝>이라는 가볍지만 따스한 책으로 처음 만났던 미야베 미유키를 이번에 <화차>로 만났다. 경쾌한 문체나 특이한 대사 방식을 알고 있었기에 두꺼워도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책이었다. 하지만 추리물치고는 추리가 시작되는 시점이 좀 지루했다. 카드가 처음 시작되었을 당시의 정의, 올바른 사용이나 그 폐해, 그 이후에 해결을 위한 방편으로서의 법으로 가는 절차, 그걸 몰라 불행이 일어나는 일 등등을 너무 교과서적으로 설명하는 바람에 좀 지루하기도 했고, 소설을 교훈의 한 방편으로 생각하나... 또는 그런 식으로 사실을 알릴 의무가 있나... 하는 등의 의문이 들었다. 게다가 아직 주인공이 어떻게 됐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렇게 장황한 설명은 추리물에서 상당한 방해가 되는 것 같다. 물론 다 읽고 나서는 그 당시 상황이 어쩌면 그런 장황한 설명을 요구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그렇게 두꺼운 책을 쉬이 읽고 나서는 그렇게 걸리는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지만, 그 대목을 읽을 때는 흥미를 끌어놓기만 하고 그 흥미를 잠시 제쳐두고 그런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한번 발을 내디디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악순환의 구조로 돼 있어요. 성실한 사람일수록 발목이 잡혀 꼼짝도 못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막다른 곳에 다다르면 가장 나쁜 형태로 끝을 보지요. 범죄를 저지르는 거죠.” 이 정도였으면 되었지 않았을까만...
그래도 그것 빼곤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롭게 읽었다. 여기선 물론 카드나 대출 등을 소재로 삼긴 했지만 순수하고 정직한 사람들이 어쩌다 세상의 악순환의 고리에 걸려들어 어찌해 볼 도리도 없이 가족이 헤어지고 야반도주를 하고 자살이나 인생을 완전히 망치는 경우를 당하게 되는 경우를 실감나게 그렸다. 카드사에서 무분별하게 길거리에서도 아무한테나 카드를 발행해주던 몇 년 전 우리나라를 생각하면, 또 여러 장의 카드로 돌려막기를 하다 신용불량자가 된 많은 사람들을 생각할 때 생각해볼 여지도 많은 책이었다. <쇼퍼홀릭>을 읽으면서 대책 없는 주인공의 쇼핑행태에 뒷골이 땡겼었는데, 그 책의 결론은 다행히 헐리우드식이었다. 이 책에선 은근히 침잠하게 하는 일본식(!)이란 생각이 들면서 읽었다.
“5년 전에 개인파산 수속을 처음 밟으면서 부채가 늘어간 경과를 쓰게 했을 때 쇼코 양이 저한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선생님, 제가 어떻게 이런 엄청난 빚을 만들게 됐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전 그저 행복해지고 싶었을 뿐인데’라고요.” 결국은 카드뿐 아니라 현대사회가 만들어놓은 수많은 병폐를 작가는 꼬집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전엔 먹고살 것만 있어도 부자였고 행복한 삶이었는데, 이젠 새로 생기는 수많은 것들, 남들도 다 가졌는데, 나만 없으면 안 되지 하는 생각들, 그런 생각이 결국은 알게 모르게 우리를 망치는 것이 아닐까. 주제에 맞게, 분수에 맞게 살면 되는데, 황새만이 행복한 기준인 줄 착각하고 가랑이가 찢어지도록 황새를 쫓아가려니 화차를 타게 되는 것이 아닐까.
더구나 그 불행의 씨앗이 자신의 잘못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기에, 주인공의 행동이나 심리가 백분 이해가 되기도 해서 마음이 안타깝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추리물의 결론이 어떻게 날까...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복잡하지 않게 얽히고설키는 인물들의 구성은 미야베 미유키만의 장점이 아닐까 할 만큼 그 구성이 짜임새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