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넥타이 긴치마
백혜숙 지음 / 씨앤톡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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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은 사랑과 인생 그리고 세상에 미숙한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까지 이르게 된 사랑 이야기를 그림으로 엮은 카툰 에세이이다. 사랑을 막 시작한 미숙한 두 연인을 귀여운 캐릭터와 함께 아기자기한 글들로 엮었다. 마치 예의바른 사랑의 시작, 전개 그리고 에피엔딩을 바라보는 것 같다. 
인간은 여자나 남자나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사랑에 있어서 우린 줄곧 그 사실을 잊는다. 상대방이 내게 완벽한 짝이 되어주길 바라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 처음엔 서로 상대의 눈치를 보며 조심하다가 조금만 친해졌다 하면 막 대하기 시작하고 내가 바라는 사람으로 바꾸려고 하고 그게 안 되면 싸우고.
그런데 이 책에 등장하는 두 인물은 서로에게 끝까지 예의를 지키는 예쁜 사랑을 보여준다. 그게 멀리 떨어진 상태로 연애를 해서 그런지, 아니면 함께 성경을 읽는 종교 덕분인지 또는 서로 신중한 성격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요즘 흔히 우리가 보는 티격태격하는 사랑이 아니고 늘 애틋하고 부끄러워하는 사랑이다.
어찌 보면 요즘 연애 같지가 않다. 많이 만나고 많이 연애해 봐야 결혼에 성공한다는 말도 있고 또 보면 쉽게 만났다 쉽게 헤어지기도 하는 요즘 연애 성향과 비교해보면 이 책의 연애는 좀 구시대적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한편 식상한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또 한편 부러운 건 사실이다. 많이…
하지만 무엇보다 이 둘의 사랑이 참 부러웠던 건, 모든 면에 미숙한 두 사람이지만, 서로 배려하면서, 서로에 대한 애정을 키우며, 큰 욕심 없이 사랑의 결실을 맺었다는 점이다. 나를 더 사랑해달라는 욕심, 나를 더 봐달라는 욕심,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어달라는 욕심, 조금 더 큰 집, 조금 더 많은 재물을 원하는 현실적인 욕심, 그런 모든 욕심이 없는 둘이었다. 자신이 부족해서 서로에게 미안했고 넘치는 상대에게 고마워하는 마음, 그런 마음이 이렇게 예의바른 사랑을 키워 예쁜 결실을 맺은 게 아닐까.
이런 사랑이, 이런 예쁜 연애의 결실을 본 것이 기쁘고 괜히 고맙다. 더 많은 이 세상의 연애가 이처럼 아름답기를… (카툰도 정말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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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가게
장 퇼레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림원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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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자살가게라니~! 자살을 위한 모든 도구를 파는 가게라니 얼마나 기발한 상술인가. 있을 것 없을 것 다 있는 이 세상 가게들의 틈새를 이용한 확실한 사업이다. 사업등록증을 내기가 좀 어려워 보이지만 말이다.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스토리는 끝의 반전 아닌 반전까지 단숨에 나를 사로잡았다. 
 
이 가게에선 마시는 독, 목매달 줄, 칼이며 권총이며 별별 자살 도구를 다 팔고 자살을 위한 용기도 북돋워주는 자살을 위해서는 정말 친절한 가게이다. 가게 주인 부부도 자살을 독려하는 분위기로 가정과 가게를 끌고 간다. 아이들도 모두 부정적이고 음산한 분위기에서 자람은 물론이다. 막내 알랑을 빼고는.

구멍 난 콘돔을 시험해보다가 우연찮게 태어난 막내 알랑은 자살가게에선 끔찍한 행복 바이러스를 몰고 다니는 아이로 부모나 형제에겐 아주 골칫덩어리 아이이다.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마음이 들어야 사람들이 가게를 자꾸 찾을 텐데, “보기 좋아요.”나 “멋져요.” 등등의 말을 미소와 함께 해주는 알랑은 정말 가족을 불행으로 몰고 가는 바이러스인 것이다.

작품 전체에 퍼져있는 블랙유머와 기가 막힌 자살 도구의 발명 그리고 독이 든 키스까지 정말 어이없고 황당한 시츄에이션의 연속이다. 웃자니 어이가 없고 안 웃자니 기가 막힌 유머라 처음부터 끝까지 어리둥절하게 된다.

“실패한 삶을 사셨습니까? 당신의 죽음만큼은 성공을 보장해드리겠습니다.”

성공하지 못하면 환불? 그리고 환불받은 머니로 다시 시도? 가격대도 천차만별이지만 방법도 새로 개발하는 것까지 한도 끝도 없다.

예전에 처음 회사에 들어갔을 때가 생각난다. 그날이 그날이고 어제와 같은 오늘, 내일도 오늘과 같을 것 같은 무미건조한 날들이 계속됐었다. 왜 사는지 의미도 찾을 수 없었고 아무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다 친구가 보내준 제주도에 관한 시집을 보며 막연히 생각했었다. ‘아, 나중에 죽고 싶으면 성산포에 가서 둑어야겠다.’ 그러면서 사람이 불행하면 오기로 더 살아내겠다, 또는 제일 밑바닥까지 떨어졌으니 이제 올라갈 일밖에 안 남았다 등등의 다짐으로 더 살 용기를 내는 한편, 이런 식의 무의미한 생활이 만약 둑을 때까지 계속 된다면 그 종말을 조금 앞당긴다 해서 뭐가 달라질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 만약 이 자살가게가 눈에 띄었다면 아마 들어가 보고 싶었으리라.

“삶이란 있는 그대로의 삶 자체를 말하는 거예요. 있는 그대로의 가치가 있는 것이죠! 서툴거나 부족하면 서툴고 부족한 그대로 삶은 스스로 담당하는 몫이 있는 법입니다. 삶에 그 이상 지나친 것을 바라선 안 되는 거예요. 다들 그 이상을 바라기 때문에 삶을 말살하려 드는 겁니다! 그럴 바엔 차라리 그 모든 것을 좋은 면에서 받아들이는 편이 나아요. 목매달 밧줄이나 권총 따위는 여기 이곳에 맡겨두고 말이죠.(...)”

하지만 알랑은 자살가게를 조금씩 행복가게로 바꿔나간다. 하지만 모두에게 행복 바이러스를 전염시키고 미래에 대한 핑크빛 무드를 불러일으킨 알랑은… 뭐지? 뭐지? 임무 완수다. 더 이상의 행복은 없다~! 인생의 아이러니, 이 작품의 최대 아이러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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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실의 검은 표범
아모스 오즈 지음, 허진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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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940년대 영국군의 치안 하에 있던 예루살렘에서 프로피는 성장기를 보낸다. 겉으로는 영국군이 지배하고 지하에서는 이스라엘 저항군이 싸움을 계속하고 낮에는 남들처럼 학교엘 가고 친구들과 놀지만 밤에는 통행금지가 실시된다. 부모님도 남들처럼 평범한 직장엘 다니지만 아버지는 팜플렛을 만들고 물건을 숨겨주는 등 저항군을 돕고 있다.

나, 프로피는 벤 허와 치타와 함께 FOD(Freedom Or Death)라는 조직원이 세명 뿐인 조직을 구성하고 예루살렘의 해방을 위해 싸우는 중이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적인 던롭경사를 만나게 된다. 그의 예루살렘에 대한 존중심과 그 언어 및 문화에 대한 애정으로 인해 둘은 서로의 언어를 서로에게 가르쳐주기로 한다. 그로 인해 조직에서 “프로피는 비열한 배신자”라는 명예롭지 못한 명칭을 얻게 되고 군법재판에 출두하라는 쪽지를 받는다. 프로피는 영화 <지하실의 검은 표범>에서처럼 신분을 위장한 스파이의 역할을 할 뿐인데 말이다.

한편으론 친구들과 지하조직을 위해 싸우겠다는 성스러운 약속을 어기는 불편한 마음, 그리고 피로 맺은 우정과 또 다른 한편으론 무장해제 된 부드러움을 간직한 적에게 끌리는 마음, 서로를 존중하는 우정 사이에서 프로피는 갈등을 겪지만, 그건 한편으론 그가 처한 특수한 상황의 환경, 그리고 다른 한편으론 성장기에 있을 수 있는 행운이다. 또한 자라면서 겪을 수밖에 없는 여성에 대한 호기심, 우연한 호기심조차 고의성이 아니라는 강조 그리고 그에 대한 알 수 없는 죄책감 등이 모두 프로피의 성장기를 나타낸다.

“내가 지금 여기서 말하고 있는 어린 시절에도 또 그 이야기를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언제나 당혹해하는 사람들에게서 애정 어린 무언가를 발견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이 낯선 도시의 버스정류장이라도 되는 듯, 실수로 그곳에 내렸는데 어디서 잘못 된 건지, 어떻게 빠져나갈지, 혹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사람들처럼 일생을 살아간다.”

영국인 경사였던 친구 던롭경사가 프로피에겐 바로 이런 사람이었다. 겉으로는 덩치도 크고 다부져 보이지만 실제로는 소중한 뭔가를 잃어버리고도 모르는 사람, 점점 더 헤매는 사람인 것이다.       

세상에서 유대인이라는 종족이 차지하는 자리, 평판 그리고 희생까지도 이 작품에선 잠재적인 환경으로 등장하고 그들이 얻은 자유와 독립이 결코 우연히 금권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은근한 메시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이해 그리고 애정으로 모두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역설하는 듯 보인다. 어른이든 아이든. 

이 작품은 성장기를 다룬 작가의 자전적인 작품이다. 전쟁 아닌 전쟁 하에서 적과 우정을 나누게 되고 혼자 속으로는 적의 비밀을 캐내기 위한 스파이 작전이라고 생각하지만 점잖고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존중하는 적의 모습에서 프로피는 조금씩 우정을 느끼고 동시에 죄책감을 느낀다. 그게 프로피의 성장기였던 것이다. 배신자인가, 지하실의 검은 표범인가. 아마 둘 다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성장기 소년의 마음에 자리한 소중한 우정이었을 것이다.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소년이 평생 마음속 깊이 간직할 특별한 우정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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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웨어 판타 빌리지
닐 게이먼 지음, 나중길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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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상품: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이 불만이십니까? 그저 그런 일상을 살고 계십니까? 무료해서 치를 떨고 계십니까? 변화도 없는 이 세상, 재미난 일을 한번 겪어보고 싶으십니까? 그럼 런던 지하세계로 여행 한번 떠나보심이 어떨까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환상과 자극, 흥분 100% 보장합니다. 단 주의사항: 어쩌면 당신의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 경우, 100% 환불해드립니다. ^.~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든 생각이 바로 이 생각이다. 여행사에서 이런 상품을 한번 팔아보면 어떨까? 어쩌면 불티나게 팔리지 않을까? 너도 나도 모두 이 여행을 한번 떠나보고 싶지 않을까? 비록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지만 이런 경험을 어디서 할 수 있을까? 더구나 이런 경험을 한번 하고 났을 때의 나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런던의 괜찮은 증권회사에 다니는 리처드는 그저 그런 아파트에 살지만 괜찮은 여자 친구도 있고 그럭저럭 만족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변화도 없고 딱히 행복하다고 느끼지도 불행하다고 느끼지도 않고 다들 이렇게 사는 건가 보다고 생각하는 일반적인 젊은이다. 그러던 어느 날 길거리에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한 소녀의 목숨을 구해주면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당한다. 집과 직장 그리고 약혼녀까지 잃고 마치 투명인간이 된 것처럼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

리처드는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면서 지상의 틈으로 굴러 떨어져 지하세계로 가게 된다. 소녀는 지하세계의 사람이고 가족이 모두 누군가에 의해 살인을 당하고 현재 살인자들에게 쫓기고 있는 상황이다. 쥐와 의사소통이 가능한 쥐나라 사람들도 만나고 인간의 온기를 빼앗아가는 종족도 만나고 다리를 건너다 함께 가던 여인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쫓기는 소녀는 자신을 보호해주는 후작과 명성 높은 보디가드를 대동하고 아버지가 생전에 위험이 닥치면 찾아가라는 천사를 찾아가고 열쇠를 찾아오라는 명대로 모험을 떠난다. 미로와 지하터널, 수도사들의 시험도 통과하는 등 마치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 영화를 한편 보는 듯했다. 리처드는 이런 소녀와 함께 모험을 떠나는 것이다.

이야기는 모험과 미스터리 속에서 긴박함을 더하고 살인자들을 피해 살인을 명한 머리를 찾아가는 추리는 정말 손에서 땀을 쥐게 한다. 의리와 배신 그리고 진실을 밝히는 과정, 또 결말까지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저는 집으로 돌아갈 겁니다. 모든 게 다시 정상으로 돌아갈 거예요. 다시 따분하지만 멋진 생활이 시작될 거란 말입니다.”

과연 그럴까? ^^;; 따분한데 그게 과연 멋질까? 가끔은 비정상이 더 흥분되고 자극적이지 않을까? 목숨이 위태롭다 하더라도… 하지만 직접 저 여행상품을 꼭 체험해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난 이 책, <네버웨어>로 환상적이고 멋진 이 여행, 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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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쇼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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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김영하의 소설은 일단 재밌다. 특유의 냉소 섞인 유머, 뻔뻔스러움 그리고 가벼움과 경쾌함 등이 혼합된 즐거움이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나 <검은 꽃> 같은 진지한 작품이 2% 부족한 느낌이 드는 반면에 <오빠가 돌아왔다> 같은 작품의 유치하면서도 탄탄한 스토리 전개,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같은 작품의 드라마틱한 요소 그리고 젊음을 한껏 발산한 <퀴즈쇼>까지 김영하스럽게 재밌다.

<퀴즈쇼>는 작가도 말했듯이 하이텔이니 천리안이니 하는 인터넷 초기 세상의 탄생을 함께 살아온 이십대를 그린 작품이다. 인터넷의 부작용도 늘 함께 따라다녀 인터넷의 만남이라든가, 채팅이라든가 하는 말은 늘 어딘가 찝찝한 냄새를 풍긴다. 사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나거나 카페나 나이트에서 부킹으로 사귀게 되는 것도 어찌 보면 우연의 극치인데, 이상하게 온라인상의 만남은 더 비밀스럽고 은밀한 느낌을 준다.

그런 인터넷을 통한 세상을 그린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다. 요즘도 동아리다 뭐다 해서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끼리 카페를 운영하지 않는가. 우리도 관심사가 책이긴 하지만 블로그나 서재 활동을 통해 매일 인터넷 상에서 친구를 사귀고 일상을 나눈다. 어떤 땐 단기간에, 십년을 사귄 친구보다 더 친해지는 경우도 있고 오래된 친구보다 단기간에 서로를 더 잘 알게 되는 경우도 있고, 친구 간엔 못하는 비밀얘기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우리의 일상과 심리를 잘 그린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다. 퀴즈를 매개로 해서 인터넷에서 만나다 친해지고 오프라인으로 그 만남을 이어가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선 김영하 특유의 환상적인 스토리가 가미되어 그 재미가 배가된다.

사실 주인공 민수는 특별한 욕심도 없이, 야망도 없이 그저 그런 이십대를 보내는 젊은이다. 엄마 같던 할머니를 잃고 할머니가 남긴 빚으로 인해 집까지 뺏기고(!) 고시원에서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전과 비슷한 삶을 이어간다. 다만 퀴즈에 밝고 퀴즈를 좋아해 인터넷 퀴즈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텔레비전의 퀴즈쇼에 나가게 되고 그 퀴즈쇼를 매개로 퀴즈방에서 좋아해온 ‘벽속의 요정’을 오프라인에서 만난다. 민수의 삶은 하루를 버는 삶, 고시원의 독방의 삶, 인터넷 퀴즈방의 삶 그리고 실제로 만난 지원과의 사랑으로 요약되지만 하루를 사는 삶이 고단해지면서 모든 것이 꼬이고 만다. 부잣집 딸이며 방송국에서 일하는 지원과의 수준 차이도 차이지만 당장 하루를 먹고 사는 것도 버거워진 것이다. 그에, 퀴즈만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를 생각해내고는 제안을 받아들여 파주의 한 건물로 들어간다. 거기에선 실제 세상과는 다른, 완전 새로운 세상이다. 퀴즈를 내고 푸는, 그래서 머니와 거래가 오가는 퀴즈의 세계, 퀴즈만의 세계인 것이다. 물론 여자와 남자가 섞여 있으니 당연히 질투와 오해가 생기고 민수는 ‘튕겨져 나오게’ 된다. 그 모든 것이 마치 한갓 꿈이었던 것처럼.

지원에게 구원을 청하고 헌책방에서 당장 먹고 사는 일을 임시로(!) 해결한 민수는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다시 ‘회사’로 통하는 게이트를 찾아다닌다. 어쩌면 민수에겐 지금 사는 일상이 환상이고 ‘회사’가 현실로 더 잘 어울리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십대가 그런지도 모른다. 모든 것에 심드렁한데 자신이 빠져있는 단 하나의 세계를 위해서는 위험도 불사하고 식음을 전폐하듯이 말이다. 그것이 어쩌면 이십대의 특권이자 약점인지도 모른다. 남들이 볼 때는 허상을 쫓듯 보이지만 막상 본인에겐 그것이, 그것만이 삶의 의미인 것처럼. 주인공 민수가 회사에서 배운 게 있다고 말하듯이 어쩌면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이나 세상, 그 돌아가는 원리는 다 같은 것이다.

“세상 어디에도 도망갈 곳은 없다는 거. 인간은 변하지 않고 문제는 반복되고 세상은 똑같다는 거야. 거긴 정말 이상한 곳이었는데, 처음에만 그랬을 뿐, 적응하고 나니 하나도 다른 게 없었어.(...)”

김영하는, 이제는 우리 삶에 필수가 되어 버린 인터넷이라는 매개, 더 작게는 그 안의 퀴즈라는 매개체를 내세워 불안하고 위태위태한 이십대를 담담하게, 그리고 ‘부도덕하고 은밀하다’는 인터넷 세상의 만남을 좀 더 자연스러운 우리 일상의 세상으로 빛을 보게 해주었다. 더구나 아주 재밌게.       

“그게 이상해요. 처음에 인터넷에서 만났을 때는 정말 행복했거든요. 그런 기분 아세요? 너무 단 파이를 한입에 삼켰을 때처럼 머리가 띵한 거? 아님 빈속에 독한 위스키를 확 들이켰을 때처럼 아릿한 거? 그러니까 제 말은, 거의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는 거예요. 우리는 얼굴 한번 보지 않았지만 속속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있었어요. 아니, 그렇게 믿었어요. 정말 정신적인, 플라토닉한, 순수한, 그러면서 친밀한 관계였다구요. 그런데 웬일인지 그 이후로, 그러니까 현실에서 만나기 시작한 이후로는 그런 짜릿한 감정을 다시 경험하기 어려워졌어요.(...)”     

그냥 책을 매개로 한 우리도 블로그나 서재 활동을 하면서 글을 올리고 댓글을 주고받으면서 이런 비슷한 감정이 생길 때가 있다. 그런데 그게 비슷한 취미에 비슷한 나이 또래의 남녀라면 얼마나 어질어질 할 것인가. 하지만 이건 꼭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만남이 그 세상이 다르다거나 환상이 깨져서라기보다 어쩌면 사랑을 대하고 이해하는 방식에 있어서 남녀가 근본적으로 달라서가 아닐까.

“민수야, 난 이해할 수 있어서 이해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니까 이해하는 거야. 그게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소통방식 아냐?”라는 지원의 말에 민수는 ‘사랑은 사랑이고 이해는 이해라고’ 다르게 생각한다. 

처음에 인터넷에서 블로그와 서재를 열고 책카페에 드나들던 때가 생각난다. 이십대도 아니었는데, 그때 정말 설렜다. 모르는 사람의 댓글 하나에 감동 먹고 방문객이 열 명을 넘어서면 흥분했었다. 누가 만나자고 하면 괜히 두려워서 무조건 피했다. 인터넷을 못하면 궁금해서 둑을 지경이었고 하루라도 들르지 않으면 정말 너무 허전했었다. 일을 하다가도 몰래몰래 들렀다. 웃음이 난다. 이젠 그 모든 단계를 지났기 때문이다. 이젠 초기 인터넷 세상의 부작용도, 흥분도, 두려움도 모두 넘어섰다. 이젠 모두 그냥 편안한 친구가 되길 바란다. 인터넷을 통해서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 용기가 되는 한마디 말을 해주고, 책을 통해서 함께 읽고 공감하길 바란다. 작가도 우리도 모두 이런 생각이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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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7-12-17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으로 김영하를 처음 읽어 본 건데 꽤 읽을만 했어요. 근데 이 작가가는 왠지 무조건 좋다고 하지 않고 각을 세워 달겨들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요? 제가 질투하는가 봅니다. 흐흐

진달래 2007-12-21 10:11   좋아요 0 | URL
앗, 저도 그래요. ^^
김영하 좋아하면서도 늘 태클을 걸죠.
전 <오빠가 돌아왔다>가 젤 좋았어요.
골때리는 작품... ^^*

2007-12-17 14: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2-21 1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