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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쇼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김영하의 소설은 일단 재밌다. 특유의 냉소 섞인 유머, 뻔뻔스러움 그리고 가벼움과 경쾌함 등이 혼합된 즐거움이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나 <검은 꽃> 같은 진지한 작품이 2% 부족한 느낌이 드는 반면에 <오빠가 돌아왔다> 같은 작품의 유치하면서도 탄탄한 스토리 전개,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같은 작품의 드라마틱한 요소 그리고 젊음을 한껏 발산한 <퀴즈쇼>까지 김영하스럽게 재밌다.
<퀴즈쇼>는 작가도 말했듯이 하이텔이니 천리안이니 하는 인터넷 초기 세상의 탄생을 함께 살아온 이십대를 그린 작품이다. 인터넷의 부작용도 늘 함께 따라다녀 인터넷의 만남이라든가, 채팅이라든가 하는 말은 늘 어딘가 찝찝한 냄새를 풍긴다. 사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나거나 카페나 나이트에서 부킹으로 사귀게 되는 것도 어찌 보면 우연의 극치인데, 이상하게 온라인상의 만남은 더 비밀스럽고 은밀한 느낌을 준다.
그런 인터넷을 통한 세상을 그린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다. 요즘도 동아리다 뭐다 해서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끼리 카페를 운영하지 않는가. 우리도 관심사가 책이긴 하지만 블로그나 서재 활동을 통해 매일 인터넷 상에서 친구를 사귀고 일상을 나눈다. 어떤 땐 단기간에, 십년을 사귄 친구보다 더 친해지는 경우도 있고 오래된 친구보다 단기간에 서로를 더 잘 알게 되는 경우도 있고, 친구 간엔 못하는 비밀얘기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우리의 일상과 심리를 잘 그린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다. 퀴즈를 매개로 해서 인터넷에서 만나다 친해지고 오프라인으로 그 만남을 이어가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선 김영하 특유의 환상적인 스토리가 가미되어 그 재미가 배가된다.
사실 주인공 민수는 특별한 욕심도 없이, 야망도 없이 그저 그런 이십대를 보내는 젊은이다. 엄마 같던 할머니를 잃고 할머니가 남긴 빚으로 인해 집까지 뺏기고(!) 고시원에서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전과 비슷한 삶을 이어간다. 다만 퀴즈에 밝고 퀴즈를 좋아해 인터넷 퀴즈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텔레비전의 퀴즈쇼에 나가게 되고 그 퀴즈쇼를 매개로 퀴즈방에서 좋아해온 ‘벽속의 요정’을 오프라인에서 만난다. 민수의 삶은 하루를 버는 삶, 고시원의 독방의 삶, 인터넷 퀴즈방의 삶 그리고 실제로 만난 지원과의 사랑으로 요약되지만 하루를 사는 삶이 고단해지면서 모든 것이 꼬이고 만다. 부잣집 딸이며 방송국에서 일하는 지원과의 수준 차이도 차이지만 당장 하루를 먹고 사는 것도 버거워진 것이다. 그에, 퀴즈만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를 생각해내고는 제안을 받아들여 파주의 한 건물로 들어간다. 거기에선 실제 세상과는 다른, 완전 새로운 세상이다. 퀴즈를 내고 푸는, 그래서 머니와 거래가 오가는 퀴즈의 세계, 퀴즈만의 세계인 것이다. 물론 여자와 남자가 섞여 있으니 당연히 질투와 오해가 생기고 민수는 ‘튕겨져 나오게’ 된다. 그 모든 것이 마치 한갓 꿈이었던 것처럼.
지원에게 구원을 청하고 헌책방에서 당장 먹고 사는 일을 임시로(!) 해결한 민수는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다시 ‘회사’로 통하는 게이트를 찾아다닌다. 어쩌면 민수에겐 지금 사는 일상이 환상이고 ‘회사’가 현실로 더 잘 어울리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십대가 그런지도 모른다. 모든 것에 심드렁한데 자신이 빠져있는 단 하나의 세계를 위해서는 위험도 불사하고 식음을 전폐하듯이 말이다. 그것이 어쩌면 이십대의 특권이자 약점인지도 모른다. 남들이 볼 때는 허상을 쫓듯 보이지만 막상 본인에겐 그것이, 그것만이 삶의 의미인 것처럼. 주인공 민수가 회사에서 배운 게 있다고 말하듯이 어쩌면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이나 세상, 그 돌아가는 원리는 다 같은 것이다.
“세상 어디에도 도망갈 곳은 없다는 거. 인간은 변하지 않고 문제는 반복되고 세상은 똑같다는 거야. 거긴 정말 이상한 곳이었는데, 처음에만 그랬을 뿐, 적응하고 나니 하나도 다른 게 없었어.(...)”
김영하는, 이제는 우리 삶에 필수가 되어 버린 인터넷이라는 매개, 더 작게는 그 안의 퀴즈라는 매개체를 내세워 불안하고 위태위태한 이십대를 담담하게, 그리고 ‘부도덕하고 은밀하다’는 인터넷 세상의 만남을 좀 더 자연스러운 우리 일상의 세상으로 빛을 보게 해주었다. 더구나 아주 재밌게.
“그게 이상해요. 처음에 인터넷에서 만났을 때는 정말 행복했거든요. 그런 기분 아세요? 너무 단 파이를 한입에 삼켰을 때처럼 머리가 띵한 거? 아님 빈속에 독한 위스키를 확 들이켰을 때처럼 아릿한 거? 그러니까 제 말은, 거의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는 거예요. 우리는 얼굴 한번 보지 않았지만 속속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있었어요. 아니, 그렇게 믿었어요. 정말 정신적인, 플라토닉한, 순수한, 그러면서 친밀한 관계였다구요. 그런데 웬일인지 그 이후로, 그러니까 현실에서 만나기 시작한 이후로는 그런 짜릿한 감정을 다시 경험하기 어려워졌어요.(...)”
그냥 책을 매개로 한 우리도 블로그나 서재 활동을 하면서 글을 올리고 댓글을 주고받으면서 이런 비슷한 감정이 생길 때가 있다. 그런데 그게 비슷한 취미에 비슷한 나이 또래의 남녀라면 얼마나 어질어질 할 것인가. 하지만 이건 꼭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만남이 그 세상이 다르다거나 환상이 깨져서라기보다 어쩌면 사랑을 대하고 이해하는 방식에 있어서 남녀가 근본적으로 달라서가 아닐까.
“민수야, 난 이해할 수 있어서 이해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니까 이해하는 거야. 그게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소통방식 아냐?”라는 지원의 말에 민수는 ‘사랑은 사랑이고 이해는 이해라고’ 다르게 생각한다.
처음에 인터넷에서 블로그와 서재를 열고 책카페에 드나들던 때가 생각난다. 이십대도 아니었는데, 그때 정말 설렜다. 모르는 사람의 댓글 하나에 감동 먹고 방문객이 열 명을 넘어서면 흥분했었다. 누가 만나자고 하면 괜히 두려워서 무조건 피했다. 인터넷을 못하면 궁금해서 둑을 지경이었고 하루라도 들르지 않으면 정말 너무 허전했었다. 일을 하다가도 몰래몰래 들렀다. 웃음이 난다. 이젠 그 모든 단계를 지났기 때문이다. 이젠 초기 인터넷 세상의 부작용도, 흥분도, 두려움도 모두 넘어섰다. 이젠 모두 그냥 편안한 친구가 되길 바란다. 인터넷을 통해서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 용기가 되는 한마디 말을 해주고, 책을 통해서 함께 읽고 공감하길 바란다. 작가도 우리도 모두 이런 생각이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