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실의 검은 표범
아모스 오즈 지음, 허진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1940년대 영국군의 치안 하에 있던 예루살렘에서 프로피는 성장기를 보낸다. 겉으로는 영국군이 지배하고 지하에서는 이스라엘 저항군이 싸움을 계속하고 낮에는 남들처럼 학교엘 가고 친구들과 놀지만 밤에는 통행금지가 실시된다. 부모님도 남들처럼 평범한 직장엘 다니지만 아버지는 팜플렛을 만들고 물건을 숨겨주는 등 저항군을 돕고 있다.

나, 프로피는 벤 허와 치타와 함께 FOD(Freedom Or Death)라는 조직원이 세명 뿐인 조직을 구성하고 예루살렘의 해방을 위해 싸우는 중이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적인 던롭경사를 만나게 된다. 그의 예루살렘에 대한 존중심과 그 언어 및 문화에 대한 애정으로 인해 둘은 서로의 언어를 서로에게 가르쳐주기로 한다. 그로 인해 조직에서 “프로피는 비열한 배신자”라는 명예롭지 못한 명칭을 얻게 되고 군법재판에 출두하라는 쪽지를 받는다. 프로피는 영화 <지하실의 검은 표범>에서처럼 신분을 위장한 스파이의 역할을 할 뿐인데 말이다.

한편으론 친구들과 지하조직을 위해 싸우겠다는 성스러운 약속을 어기는 불편한 마음, 그리고 피로 맺은 우정과 또 다른 한편으론 무장해제 된 부드러움을 간직한 적에게 끌리는 마음, 서로를 존중하는 우정 사이에서 프로피는 갈등을 겪지만, 그건 한편으론 그가 처한 특수한 상황의 환경, 그리고 다른 한편으론 성장기에 있을 수 있는 행운이다. 또한 자라면서 겪을 수밖에 없는 여성에 대한 호기심, 우연한 호기심조차 고의성이 아니라는 강조 그리고 그에 대한 알 수 없는 죄책감 등이 모두 프로피의 성장기를 나타낸다.

“내가 지금 여기서 말하고 있는 어린 시절에도 또 그 이야기를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언제나 당혹해하는 사람들에게서 애정 어린 무언가를 발견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이 낯선 도시의 버스정류장이라도 되는 듯, 실수로 그곳에 내렸는데 어디서 잘못 된 건지, 어떻게 빠져나갈지, 혹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사람들처럼 일생을 살아간다.”

영국인 경사였던 친구 던롭경사가 프로피에겐 바로 이런 사람이었다. 겉으로는 덩치도 크고 다부져 보이지만 실제로는 소중한 뭔가를 잃어버리고도 모르는 사람, 점점 더 헤매는 사람인 것이다.       

세상에서 유대인이라는 종족이 차지하는 자리, 평판 그리고 희생까지도 이 작품에선 잠재적인 환경으로 등장하고 그들이 얻은 자유와 독립이 결코 우연히 금권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은근한 메시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이해 그리고 애정으로 모두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역설하는 듯 보인다. 어른이든 아이든. 

이 작품은 성장기를 다룬 작가의 자전적인 작품이다. 전쟁 아닌 전쟁 하에서 적과 우정을 나누게 되고 혼자 속으로는 적의 비밀을 캐내기 위한 스파이 작전이라고 생각하지만 점잖고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존중하는 적의 모습에서 프로피는 조금씩 우정을 느끼고 동시에 죄책감을 느낀다. 그게 프로피의 성장기였던 것이다. 배신자인가, 지하실의 검은 표범인가. 아마 둘 다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성장기 소년의 마음에 자리한 소중한 우정이었을 것이다.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소년이 평생 마음속 깊이 간직할 특별한 우정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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