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는 나에게 바래다 달라고 한다
이지민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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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하게 이를 다 드러내고 웃었을 때 이 작가처럼 하회탈 같이 되는 이, 얼마나 될까, 궁금해진다. 제목도 독특한 이 작가의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는 구입해놓고 아직 읽지 못했는데, 그토록 환하게 웃는 이 작가 모습을 보고 이 작품이 더 먼저 읽고 싶어졌다. 물론 작가의 웃는 모습만큼 환한(!) 작품은 별로 없었지만 이 작품을 읽고 나자 이유를 밝힐 수는 없지만 앞서의 작품이 간절하게 읽고 싶어졌다. 

이 작품집엔 모두 아홉 작품이 실려 있다. 너무나 ‘현재스러운’ 작품들, 그래서 진부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또 약간은 불편하고 찔리기까지 하는 작품들이 씁쓸하기도 하다. 놀랄 것도 없는 ‘카프카만큼 나쁜 남자’와의 연애, 성형 중독에 빠진 여자의 변신과 심리, 멋들어진 자신만의 카페를 꿈꾸다 결국은 자신의 카페를 구경하게 된 여자, 어린 롤리타와 불륜을 저지른 남자를 기다리겠다는 서른 살이 된 롤리타, 아내의 키티들을 보는 남자, 당당한 불륜, 물질만능 사회에 영혼을 팔아버리는 남자들, 타파웨어와 가족에 얽힌 이야기, 허니문에 허니문 베이비 그리고… 기타등등.

어찌 보면 모두 우리의 소소한 일상을 그리고 있는 듯 한 이 작품들은 모두 자잘한 반전을 간직하고 있다. 너무나 자잘해서 반전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그래도 세월이 흐르면서 마치 사람이 변하듯이 인생도 또한 변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게 좋은 방향, 나쁜 방향이라고 하기보다는 각자의 삶을 따라 그 동안 살던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변하는 것 같다. 심리와 생각도 따라 변하므로.

‘나의 에스코트가 필요 없어진 그의 삶에 섭섭함을 느낄 이유는 없었다. 나의 정성과 노력을 무시하는 인생의 어느 한 시절이 있듯 그런 남자도 있기 마련이므로’ 말이다. -<그 남자는 나에게 바래다달라고 한다>

그리고 롤리타도 서른 살이 되면 변하는 거겠지. 아마 다들 그렇겠지. 그렇지 않을까. 역설적으로 평범함도 진부해지면 희망이 생길지 모른다.   

‘유부남 핸드폰에 엉뚱한 거래처 이름으로 입력되는 거, 재미없잖아. 불륜이 진부해지니 희망이 생기더라. 다들 그런 거야, 나만 그런 거야?’ -<서른 살이 된 롤리타>

하지만 나이를 먹어도, 열심히 살아도 일은 여전히 잘 안 풀린다. 그러니 부모를 원망하고 탓하면서 부모를 배신하는 변명거리를 찾는다. 그래야 맘도 편하니까. 그런데 사실 타파웨어를 뒤지며 생각해보니 결국은 내가 문제였던 거다. 내 선택이… 

‘작은 산타 할아버지를 손에 쥔 채 나는 망설인다. 다시 가져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솔직히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다. 나에게 외제차도, 빌딩도, 아파트도 선물하지 않고 떠나버린 아버지를.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마다 나는 아버지를 탓하며 포기했다. 행복해지지 않기 위해 나쁜 선택을 한 건 언제나 나 자신이었다.’ -<타파웨어에 대한 명상>

제일 마음에 든 작품은 <오늘의 커피>였다. 여자가 생각하는 카페의 분위기는 여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꿔 볼 것 같은 그런 분위기다. 물론 작품집 전체에 퍼져있는 자잘한 반전처럼, 여자가 생각하는 대로 카페가 되어 주진 않지만 나름 자신만의 분위기를 만들어간 그곳 카페 이녹에 가서 커피 한잔 하고 싶다. 그녀가 포기한 의미, 내가 느낄 수 있을 테니까.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세상에는 자신이 포기해야만 의미 있는 일도 존재한다는 걸.’ -<오늘의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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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들의 도서관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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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없었다면 우리의 삶은 어땠을까? 영화나 드라마에 음악이 없다면 어떨까?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가수들이 없다면 이 세상은 어땠을까? 엠피쓰리 안에 노래가 하나도 안 들었다면 어땠을까? 음악을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그 삭막함을 쉽게 상상할 수 있으리라. 어릴 적에 아무것도 모르면서 피아노 건반을 띵똥거리지 않았거나 자라면서 기타 줄을 튕기고 싶어하지 않았던 사람이 있었을까. 이젠 음악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런 음악을 글로 살려낸 작품집이 바로 이 작품집이다.

소설 속에 유난히 음악과 노래 얘기를 많이 하는 건 김연수이다. 하지만 그는 주인공이 음악을 좋아하거나, ‘그 시절 그 노래’란 식으로 음악 얘기를 한다. 그런데 김중혁은 다르다. 작품들을 하나씩 읽어가다 보면 마치 그가 음악 자체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음악을 좋아하는 걸 넘어, 음악 속에서 살고 음악을 위해 사는 것 같은 작가가 바로 그다. 그래서 그의 작품집에선 한결 같이 바이올린, 피아노 등을 비롯해 악기 소리가 나고 레코드 가게에선 음악이 흘러나오고 주인공들은 음반 작업을 하거나 악기를 다룬다. 악기나 음악이 주인공을 살려주는 소재가 아니라 오히려 주인공이 악기나 음악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이 작품집에선 끊임없이 음악이 울린다.

이 작품집엔 표제작으로 잡힌 <악기들의 도서관>을 비롯해 모두 여덟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그와 함께 음악을 글로 듣고 노래를 흥얼거리고 악기의 음을 하나하나 듣다 보면 작품집 전체가 음악으로 가득한 씨디 같다. 맛난 음식 얘기에 입안에 침이 고이고 비주얼한 작품으로 눈앞에 영상이 펼쳐지듯 김중혁의 글에선 음악이 흘러나온다. 유쾌하고 즐거운 음악이 있는가 하면 우울한 음악도 있고 감상적이고 슬퍼지는 음악도 있듯이 작품집 안의 삶도 간혹은 즐겁고 또 간혹은 우울하고 또 간혹은 슬퍼지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음악이든지 듣고 있으면 행복해지듯이, 즉 슬픈 음악을 들어도 행복해지듯이 김중혁의 인물들은 행복하다. 조건이 좋아서, 고민이 없어서, 삶이 충만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잔잔한 음악과 함께 흘러가듯이 그들의 삶도 소소한 일상을 따라 흘러간다.   

잔잔한 음악을 배경 삼아 작품집 전체를 즐겁게 읽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유리방패>가 정말 유쾌했고 <엇박자 D>는 최고 중의 최고였다. 보통은 화음을 차근차근 맞춰가면서 조화로운 음악을 들려주는데 <엇박자 D>는 부조화 가운데에서 최고의 조화를 찾아내듯이 정말 새로우면서도 마음 따스해지는 작품이었다. 남들과 다른 내 인생의 엇박자도 어쩌면 언젠가 최고의 엇박자만의 아름다운 소리를 낼지 누가 알겠는가. 객관적으로는 엇박자이지만 주관적으로는 최고의 소리, 나만의 아름다운 소리, 그게 바로 최고의 엇박자가 아닐까. 우리 모두는 그런 ‘객관적인’ 엇박자 시절을 겪지만 최고의 ‘주관적인’ 엇박자는 내가 만드는 게 아닐까. 인생의 어떤 한 시절을 보내며 선택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왼쪽 길을, 나는 오른쪽 길을 선택했고, 발목에 묶여 있던 끈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스르르 풀어져버린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버스 뒤창문을 내다보았다. 팽팽하게 당겨진 전깃줄이 우리가 온 곳을 알려주고 있었다. 정확히 이름붙일 수 없는, 언제부터 언제까지라고 말할 수 없는, 내 삶의 어떤 한 시절이 지나가는 중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유리방패> 가운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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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섭이 가라사대
손홍규 지음 / 창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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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홍규가 그리는 삶은, 그가 말하듯이 신이 선사한 건지 모르지만 누추하다. 하지만 그 영광을 또한 작가가 그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돌리듯이, 여기 스스로 아름다워지려는 사람들이 있다.

상식적인 세상을 꿈꾸는 걸레도, 성냥갑만한 방에서 소설을 쓰는 그와 나도, 거웃에 사면발이가 사는 용태와 뒤통수를 때리는 알리도, 손지 사람인지 모를 아비 응삼이와 소를 모는 봉섭이도, 몸에 뱀을 키우는 그도, 남과 북에 사는 준영도, 괄호 열고 괄호 닫는 못 생긴 늙은 여자도, 최초, 최후 그리고 나머지 테러리스트들도 모두모두 누추한 세상을 선사받았지만 불평 없이, 소리 없이, 움직임도 없이 그들에게 주어진 삶을 산다.

하지만 사기극에서 진실(!)을 깨닫는 아영의 모습에서 아이러니가 꿈틀대고 작가의 조롱 섞인 유머가 통쾌하다.  

‘눈에 보이지 않으나 상식이 통하는 세상으로 가는 길을 품고 있는 곳. 그게 바로 아영이 찾는 광야였다. 아영은 그렇게 찾아헤매던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광야를, 사실은 오래전부터 거닐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상식적인 시절>

또한 깨달음은 ‘내’가 소설에 대한 믿음을 잃은 순간에 온다. 매혹적인 결말을 찾아 일상의 누추함도 견디며 소설을 쓰던 내가 결국 귀향을 결심하고 그에게 묻자, 그가 간단하게 대답한다.

“어쩌면 소설은 처음부터 진리를 담는 그릇 같은 게 아니었는지도 몰라.” -<매혹적인 결말>

몸에 뱀을 키우고 사는 그는 진정 예쁜 얼굴을 은주의 온전치 못한 반쪽 얼굴과 온전한 쪽을 반쪽 탈로 가린 얼굴에서 본다.

‘은주는 제 흉측한 얼굴을 가리는 대신 온전한 반쪽을 반쪽짜리 탈로 가리고 있었다. 온전한 귀신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갓맑은 은주의 눈동자에 온몸이 빨려들 것만 같았다. 예, 예뻐? 예뻤다.’ -<뱀이 눈을 뜬다>

결국 삶의 진실은 현수와 그 친구들이 나누는 삶에서 나오는지도 모른다.

“삶은 우리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들이대고 있는 암살자와 같은 거야. 하지만 보통의 암살자와는 다르지. 결코, 방아쇠를 당기지 않으니까. 단지, 시늉을 할 뿐이지. ……우리는 끊임없이 살해의 위협에 시달리면서 암살자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을 수 없어. 암살자의 뜻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면, 암살자는 방아쇠를 당기고 말 테니까. 하지만, 아무도 몰라. 정말 그 총에 총알이 있는지 없는지는. 그 공포를 견딜 수 없거나, 혹은 꼭두각시처럼 살기 싫어졌을 때, 우리는 방아쇠에 들어가 있는 암살자의 집게손가락에 자신의 집게손가락을 올려놓게 되지. 지금이 그 순간일지도 몰라.”

소리 없이 누추한 삶을 견디며 사는 것도 힘든 만큼 그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하릴 없이 영광을 돌리기도 힘든 일인지 모른다. 작가의 말처럼 사람으로 태어난 게 아니라 노예로 태어난 것 같이 일을 하는 부모님의 삶이 안쓰럽고 화가 나기까지 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그분들의 삶에서 일을 빼앗아버리면 그 삶은 어디에서 의미를 찾을까. 우리의 좁은 소견으로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노예의 삶이 주어졌어도 그 삶을 ‘온전히’ 살아내는 그분들의 받아들임, 그것이 어쩌면 그 누추한 삶을 선사한 신의 뒤통수를 때리는 게 아닐까. 둑는 척하며 뒤통수를 때린 알리처럼. 그리하여 영광(!)을 얻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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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이 있는 풍경
이상엽 사진.글 / 산책자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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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하면 떠오르는 게 제일 먼저 혁명, 보드카 그리고 러시아 인형이다. 스탈린, 레닌, 후르시초프, 고르바초프, 옐친 그리고 이제 푸틴대통령까지 그 유명한 지배자들도 있다. 러시아는 정말 오랫동안 엄청난 강철 지배와 독재 그리고 온 세계를 공산당이라는 이름 아래 떨게 하고 동유럽을 차디찬 세계로 우리에게 인식시켰던 금지의 나라였다. 하지만 올림픽에서 완벽한 연기를 했던 체조나 그 유명한 백조의 호수 같은 발레, <백야> 같은 영화에서 보여준 차가우면서도 열정적인 면에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역시나 우리와 같은 사람이고 또 수준 높은 문화도 늘 호기심을 자극했던 나라이다. 그리고 이젠 수많은 나라들이 소련 연방에서 독립을 했고 연애를 한다는 대통령 기사가 나올 정도로 나라는 개방이 된 듯 보인다. 

작가는 거의 1만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여행했다. 꿈의 여행이다. 낭만의 여행이다. 흥미로운 여행이다. 하지만 결코 쉬워 보이지 않는 여행이다. 작가는 낡은 카메라들(!)을 들고 러시아 혁명을 추억하고 현대 러시아를 돌아보며 레닌이 있는 풍경을 찍었다. 대부분은 옛 시대에 대한, 그 시대에 대한 영광, 그 시대 사람들에 대한 어떤 감상이 느껴졌지만 변화에 대한 모습은 잘 포착한 것 같다. 한때 세계의 한 주류로 공산주의 이념을 추구했고 실천했던 그 소련은 이제 추억의 한 장이 되었고 그 자리는 현재 전 세계를 물들이고 있는 자본주의가 현 러시아에선 어떤 모습을 차지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는 글과 사진들이다.

작가가 생각하고 알고 있는 옛 소비에트의 추억과 낭만이 변화의 긍정적인 면보다는 씁쓸하고 외롭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지만 그가 여행하는 동안 만나고 겪은 사람들, 사진들, 글을 보면 함께 여행을 하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여행할 때 생기는 크고 작은 사건들은 즐거운 여행기를 읽는 느낌이었고 러시아에 대해 막연한 생각만 갖고 있던 내게 그가 전해주는 역사 이야기, 기념물에 대한 에피소드 등은 즐거운 여행이었다. 또한 ‘망향의 언덕’에서 하염없이 조국으로 돌아갈 배를 기다렸던 사할린 우리 동포들에 대한 얘기에서는 마음이 찡했고 이제는 여러 민족들과 피가 섞이고 한국어도 거의 모르지만 약식으로라도 제사를 지내고 있는 사진에선 알 수 없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또한 이 책의 큰 장점 중의 하나는 러시아에 대한 추억과 사진 그리고 여행에 더해서 여행시 읽을 책을 소개하는 코너였다. 주로 러시아에 대한 책들 그리고 대부분이 어려워 보이는 인문서가 대다수였는데 읽은 소감과 책 요약을 짧게 소개해 놓아서 나중에 찾아보면 모두 도움이 될만한 흥미로운 책들이었다.

무리 없이 여행하기에 아직은 좀 무섭게 생각이 드는 러시아, 이 책으로 인해 많이 가까워진 느낌이다. 서로 간에 더 많은 교류가 이루어지고 언젠가 한국 철도가 북한을 거쳐 시베리아까지 그리고 유럽까지 관통하게 된다면 정말 1년 이상이 걸리더라도 평생에 그런 여행 한번 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정말 그런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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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영혼을 훔친 노래들 - 고전시가로 만나는 조선의 풍경
김용찬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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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대세라는 말답게 요즘은 드라마도 책도 조선시대에 대한 것이 많다. 한동안은 국제정세에 눈멀고 당파싸움이나 일삼고 쇄국정책만 피다 일제에 강제로 점령당했다는 비판 위주의 조선을 먼저 보는 경향으로 인해 역사 속에서 조선의 잘못과 과오만을 들추는 면이 강했다. 드라마도 예전엔 주로 당쟁이나 사화 또는 영웅들 위주의 각색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시대가 변했는지 우리가 간과하고 넘어갔던 조선시대의 아름다움, 세세한 일상 그리고 민초들의 삶까지 재조명하는 작품이 많다. 그래서 조선을 다시 발견하는 느낌이다.

이 책도 그런 방향의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많은 시조들을 광범위하고 다양하게 그 작가와 그 주변 배경까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조는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서 배운 게 다이다. 옛날 것이라 하여 현대에 시를 쓰는 사람은 많아도 시조작가(!)는 거의 못 본 것 같다. 장난처럼 시조의 운율을 흉내 내어 개작을 하기도 하지만 진정 우리가 학교를 벗어나 제대로 시조를 접할 기회도 거의 없지 않나 싶다.

이 작품은 조선시대의 다양한 시조 작품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자연의 다양한 모습을 읊고 왕에 대한 충성심을 다지고 벗들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고생하는 민초들, 일하는 노동자들의 삶의 애환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다양한 시조들이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시조도 많이 들어있는 것처럼 그만큼 많은 작품들이 소개되어 있다.

그림도 색상이 흐려 조금 아쉽긴 하지만 시조와 함께 읽는 데 멋을 더하고 있고, 먼저 원래 형태에 가까운 시조를 소개해 조금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고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지만 한자나 우리 고유 말에 대한 말맛을 다시 한번 새기는 데 좋은 기회가 되었다. 시조를 읊던 때의 시절이나 작가의 정서도 모두 감성적으로 그리고 학문적으로 잘 분석되어 있어 가끔 울적할 때나 사고할 일이 있을 때 아무데나 펼쳐보아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비슷한 감정을 읊은 시조를 만나게 되면 공감할 수도 있고 계절에 맞는 작품을 만나면 한번 더 창가 밖으로 흩날리는 나뭇가지를 다른 마음으로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나 같이 소설만 읽던 무식한(!) 일반인이 단숨에 읽기에는 좀 무리가 있었다. 한자 공부를 잊은 지도 너무 오래 되어 간혹 원문에 등장하는 한자들이 몇 쪽에 걸친 설명을 다 읽지 않고는 이해가 안 되는 것이 많았고, 지나치게 학구적인 분석 또한 그냥 재미로 조선의 풍류를 한번 즐겨보고자 했던 마음에 채찍을 가했다. 좋은 책임에는 분명하나 아무나 재미를 느낄 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잘 이 책을 느끼고 정말 잘 소화하고 싶다면 간혹 마음이 동할 때 아무데나 펴서 내키는 만큼만 읽고 음미를 하는 것이 좋겠고 정말 진득하게 조선의 시가와 데이트를 할 생각이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시가와 우리 좋은 문학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된 것도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이 시조를 읽고 나니 나도 ‘모시고’ 싶어진다. ^^;;

“지아비 밭 갈러 간 데 밥고리 이고 가
반상을 들오대 눈썹에 맞초이다
친코도 고마우시니 손이시나 다르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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