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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이 있는 풍경
이상엽 사진.글 / 산책자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러시아하면 떠오르는 게 제일 먼저 혁명, 보드카 그리고 러시아 인형이다. 스탈린, 레닌, 후르시초프, 고르바초프, 옐친 그리고 이제 푸틴대통령까지 그 유명한 지배자들도 있다. 러시아는 정말 오랫동안 엄청난 강철 지배와 독재 그리고 온 세계를 공산당이라는 이름 아래 떨게 하고 동유럽을 차디찬 세계로 우리에게 인식시켰던 금지의 나라였다. 하지만 올림픽에서 완벽한 연기를 했던 체조나 그 유명한 백조의 호수 같은 발레, <백야> 같은 영화에서 보여준 차가우면서도 열정적인 면에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역시나 우리와 같은 사람이고 또 수준 높은 문화도 늘 호기심을 자극했던 나라이다. 그리고 이젠 수많은 나라들이 소련 연방에서 독립을 했고 연애를 한다는 대통령 기사가 나올 정도로 나라는 개방이 된 듯 보인다.
작가는 거의 1만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여행했다. 꿈의 여행이다. 낭만의 여행이다. 흥미로운 여행이다. 하지만 결코 쉬워 보이지 않는 여행이다. 작가는 낡은 카메라들(!)을 들고 러시아 혁명을 추억하고 현대 러시아를 돌아보며 레닌이 있는 풍경을 찍었다. 대부분은 옛 시대에 대한, 그 시대에 대한 영광, 그 시대 사람들에 대한 어떤 감상이 느껴졌지만 변화에 대한 모습은 잘 포착한 것 같다. 한때 세계의 한 주류로 공산주의 이념을 추구했고 실천했던 그 소련은 이제 추억의 한 장이 되었고 그 자리는 현재 전 세계를 물들이고 있는 자본주의가 현 러시아에선 어떤 모습을 차지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는 글과 사진들이다.
작가가 생각하고 알고 있는 옛 소비에트의 추억과 낭만이 변화의 긍정적인 면보다는 씁쓸하고 외롭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지만 그가 여행하는 동안 만나고 겪은 사람들, 사진들, 글을 보면 함께 여행을 하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여행할 때 생기는 크고 작은 사건들은 즐거운 여행기를 읽는 느낌이었고 러시아에 대해 막연한 생각만 갖고 있던 내게 그가 전해주는 역사 이야기, 기념물에 대한 에피소드 등은 즐거운 여행이었다. 또한 ‘망향의 언덕’에서 하염없이 조국으로 돌아갈 배를 기다렸던 사할린 우리 동포들에 대한 얘기에서는 마음이 찡했고 이제는 여러 민족들과 피가 섞이고 한국어도 거의 모르지만 약식으로라도 제사를 지내고 있는 사진에선 알 수 없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또한 이 책의 큰 장점 중의 하나는 러시아에 대한 추억과 사진 그리고 여행에 더해서 여행시 읽을 책을 소개하는 코너였다. 주로 러시아에 대한 책들 그리고 대부분이 어려워 보이는 인문서가 대다수였는데 읽은 소감과 책 요약을 짧게 소개해 놓아서 나중에 찾아보면 모두 도움이 될만한 흥미로운 책들이었다.
무리 없이 여행하기에 아직은 좀 무섭게 생각이 드는 러시아, 이 책으로 인해 많이 가까워진 느낌이다. 서로 간에 더 많은 교류가 이루어지고 언젠가 한국 철도가 북한을 거쳐 시베리아까지 그리고 유럽까지 관통하게 된다면 정말 1년 이상이 걸리더라도 평생에 그런 여행 한번 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정말 그런 날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