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들의 도서관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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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없었다면 우리의 삶은 어땠을까? 영화나 드라마에 음악이 없다면 어떨까?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가수들이 없다면 이 세상은 어땠을까? 엠피쓰리 안에 노래가 하나도 안 들었다면 어땠을까? 음악을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그 삭막함을 쉽게 상상할 수 있으리라. 어릴 적에 아무것도 모르면서 피아노 건반을 띵똥거리지 않았거나 자라면서 기타 줄을 튕기고 싶어하지 않았던 사람이 있었을까. 이젠 음악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런 음악을 글로 살려낸 작품집이 바로 이 작품집이다.

소설 속에 유난히 음악과 노래 얘기를 많이 하는 건 김연수이다. 하지만 그는 주인공이 음악을 좋아하거나, ‘그 시절 그 노래’란 식으로 음악 얘기를 한다. 그런데 김중혁은 다르다. 작품들을 하나씩 읽어가다 보면 마치 그가 음악 자체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음악을 좋아하는 걸 넘어, 음악 속에서 살고 음악을 위해 사는 것 같은 작가가 바로 그다. 그래서 그의 작품집에선 한결 같이 바이올린, 피아노 등을 비롯해 악기 소리가 나고 레코드 가게에선 음악이 흘러나오고 주인공들은 음반 작업을 하거나 악기를 다룬다. 악기나 음악이 주인공을 살려주는 소재가 아니라 오히려 주인공이 악기나 음악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이 작품집에선 끊임없이 음악이 울린다.

이 작품집엔 표제작으로 잡힌 <악기들의 도서관>을 비롯해 모두 여덟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그와 함께 음악을 글로 듣고 노래를 흥얼거리고 악기의 음을 하나하나 듣다 보면 작품집 전체가 음악으로 가득한 씨디 같다. 맛난 음식 얘기에 입안에 침이 고이고 비주얼한 작품으로 눈앞에 영상이 펼쳐지듯 김중혁의 글에선 음악이 흘러나온다. 유쾌하고 즐거운 음악이 있는가 하면 우울한 음악도 있고 감상적이고 슬퍼지는 음악도 있듯이 작품집 안의 삶도 간혹은 즐겁고 또 간혹은 우울하고 또 간혹은 슬퍼지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음악이든지 듣고 있으면 행복해지듯이, 즉 슬픈 음악을 들어도 행복해지듯이 김중혁의 인물들은 행복하다. 조건이 좋아서, 고민이 없어서, 삶이 충만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잔잔한 음악과 함께 흘러가듯이 그들의 삶도 소소한 일상을 따라 흘러간다.   

잔잔한 음악을 배경 삼아 작품집 전체를 즐겁게 읽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유리방패>가 정말 유쾌했고 <엇박자 D>는 최고 중의 최고였다. 보통은 화음을 차근차근 맞춰가면서 조화로운 음악을 들려주는데 <엇박자 D>는 부조화 가운데에서 최고의 조화를 찾아내듯이 정말 새로우면서도 마음 따스해지는 작품이었다. 남들과 다른 내 인생의 엇박자도 어쩌면 언젠가 최고의 엇박자만의 아름다운 소리를 낼지 누가 알겠는가. 객관적으로는 엇박자이지만 주관적으로는 최고의 소리, 나만의 아름다운 소리, 그게 바로 최고의 엇박자가 아닐까. 우리 모두는 그런 ‘객관적인’ 엇박자 시절을 겪지만 최고의 ‘주관적인’ 엇박자는 내가 만드는 게 아닐까. 인생의 어떤 한 시절을 보내며 선택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왼쪽 길을, 나는 오른쪽 길을 선택했고, 발목에 묶여 있던 끈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스르르 풀어져버린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버스 뒤창문을 내다보았다. 팽팽하게 당겨진 전깃줄이 우리가 온 곳을 알려주고 있었다. 정확히 이름붙일 수 없는, 언제부터 언제까지라고 말할 수 없는, 내 삶의 어떤 한 시절이 지나가는 중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유리방패> 가운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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