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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영혼을 훔친 노래들 - 고전시가로 만나는 조선의 풍경
김용찬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조선이 대세라는 말답게 요즘은 드라마도 책도 조선시대에 대한 것이 많다. 한동안은 국제정세에 눈멀고 당파싸움이나 일삼고 쇄국정책만 피다 일제에 강제로 점령당했다는 비판 위주의 조선을 먼저 보는 경향으로 인해 역사 속에서 조선의 잘못과 과오만을 들추는 면이 강했다. 드라마도 예전엔 주로 당쟁이나 사화 또는 영웅들 위주의 각색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시대가 변했는지 우리가 간과하고 넘어갔던 조선시대의 아름다움, 세세한 일상 그리고 민초들의 삶까지 재조명하는 작품이 많다. 그래서 조선을 다시 발견하는 느낌이다.
이 책도 그런 방향의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많은 시조들을 광범위하고 다양하게 그 작가와 그 주변 배경까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조는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서 배운 게 다이다. 옛날 것이라 하여 현대에 시를 쓰는 사람은 많아도 시조작가(!)는 거의 못 본 것 같다. 장난처럼 시조의 운율을 흉내 내어 개작을 하기도 하지만 진정 우리가 학교를 벗어나 제대로 시조를 접할 기회도 거의 없지 않나 싶다.
이 작품은 조선시대의 다양한 시조 작품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자연의 다양한 모습을 읊고 왕에 대한 충성심을 다지고 벗들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고생하는 민초들, 일하는 노동자들의 삶의 애환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다양한 시조들이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시조도 많이 들어있는 것처럼 그만큼 많은 작품들이 소개되어 있다.
그림도 색상이 흐려 조금 아쉽긴 하지만 시조와 함께 읽는 데 멋을 더하고 있고, 먼저 원래 형태에 가까운 시조를 소개해 조금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고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지만 한자나 우리 고유 말에 대한 말맛을 다시 한번 새기는 데 좋은 기회가 되었다. 시조를 읊던 때의 시절이나 작가의 정서도 모두 감성적으로 그리고 학문적으로 잘 분석되어 있어 가끔 울적할 때나 사고할 일이 있을 때 아무데나 펼쳐보아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비슷한 감정을 읊은 시조를 만나게 되면 공감할 수도 있고 계절에 맞는 작품을 만나면 한번 더 창가 밖으로 흩날리는 나뭇가지를 다른 마음으로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나 같이 소설만 읽던 무식한(!) 일반인이 단숨에 읽기에는 좀 무리가 있었다. 한자 공부를 잊은 지도 너무 오래 되어 간혹 원문에 등장하는 한자들이 몇 쪽에 걸친 설명을 다 읽지 않고는 이해가 안 되는 것이 많았고, 지나치게 학구적인 분석 또한 그냥 재미로 조선의 풍류를 한번 즐겨보고자 했던 마음에 채찍을 가했다. 좋은 책임에는 분명하나 아무나 재미를 느낄 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잘 이 책을 느끼고 정말 잘 소화하고 싶다면 간혹 마음이 동할 때 아무데나 펴서 내키는 만큼만 읽고 음미를 하는 것이 좋겠고 정말 진득하게 조선의 시가와 데이트를 할 생각이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시가와 우리 좋은 문학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된 것도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이 시조를 읽고 나니 나도 ‘모시고’ 싶어진다. ^^;;
“지아비 밭 갈러 간 데 밥고리 이고 가
반상을 들오대 눈썹에 맞초이다
친코도 고마우시니 손이시나 다르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