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은 나의 상급기관(?) 고위 공무원으로 정년퇴직 하셨다. 더군다나 이곳에서 명문이라는 청주중, 청주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셨다. 서울대에 시험을 치렀다가 아까운 점수차로 떨어지시고(물론 검증된 바는 없음), 그 당시 후기인 성균관대학교에 들어가셨단다. 오랫동안 공직생활을 하셨고 유명하셨던 분이라 퇴직하신지 10년이 지났지만, 늘 아버님의 며느리라는 타이틀이 따라다녔다. 덕분에 가까운 곳으로만 옮겨 다니는 혜택을 받았다.
그런 아버님이 오늘은 "내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우리 보림이, 규환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나 걱정이 된다. 요놈들 잘 키워야 할텐데......." 하신다. 며느리가 직장생활한다고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니 걱정이 되시나 보다. 괜히 눈물이 핑 돈다. "아버님, 요즘은 평균수명이 100살이래요. 아버님 앞으로도 30년 남으셨어요" 하는 말로 위로를 해드리지만 고개를 저으신다.
평소에 말씀이 없으신 분인데 오늘은 이런저런 말씀을 하신다. "공직생활에 가장 중요한건 인맥이라는 것, 내가 다른 곳으로 떠나도 나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해 줄만한 사람을 심어놓으라는 것. 노무현 대통령의 그점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라는 말씀을 하신다.....
아버님은 따르는 선, 후배도 많고, 어느곳이든 리더역할을 하시는 지라, 내가 리더십, 혹은 카리스마는 어떻게 해야 키울수 있나 여쭤보니 "내가 말을 많이 하기 보다는 그저 남이 하는 말에 귀 기울여 열심히 들어주면 된다" 라는 평범하면서도 심오한 말씀을 하신다. (하긴 '모모'의 주인공 모모도 그저 남의 이야기를 잘 듣기만 하는데도 모든 사람들이 좋아한다)
생각해보니 아버님은 내 인생의 멘토같은 분이신데, 나 혼자 힘으로 사는 것처럼 아둥바둥 거리지만 늘 아버님의 그늘 아래 살고 있는데, 점점 불효한 며느리가 되고 있다. 아버님 사랑해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야 되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아버님 저 공부하고 싶어요. 대학원 보내 주세요" 했더니 학비 대줄테니 당장 등록하라고 하신다. 에구 1개월만 먼저 말씀드렸어도.....올해 입학 원서접수가 모두 끝났다. 여름학기 알아봐야지. 물론 어머니는 "애들은 그럼 누가 보냐? 나는 죽었다" 하신다. "당연히 어머님이 봐 주셔야죠....."몹쓸 며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