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말에 아이들 학원에 데려다주면서 가끔은 근처 카페에 앉아 책을 읽는다. 학원이 끝나면 바로 카페로 오라고 한뒤 내게 주어진 2시간 동안 책에 빠져든다. 집에서는 책만 펴면 잠이 오는 것도 카페를 가게 하는 힘이다. 카페에 들어서면 쑥스러운 마음에 5분에서 10분 정도는 주변을 둘러본다. 어제는 내 또래의 아줌마들 네명이 몰려와서는 자리에 앉기 무섭게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서로 찍은 사진을 돌려보며 웃는 소리가 내부에 쩌렁쩌렁 울린다. 남의 시선은 아량곳하지 않는 나이가 된걸까? 제발 소리좀 낮추세요. 거의 꽉찬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그 사람들의 시선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까?를 잠시 생각했지만 이내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책을 읽었다. 한동안 아메리카노!만 외치다 요즘은 부드럽고 고소한 카페라떼를 마신다. 에스프레소와 우유의 환상적인 조합은 나를 말랑말랑하게 한다.

 

 

 

 

 

 

 알라딘 지인은 이 책을 읽으며 페이지 줄어드는 것이 아쉬워 아껴가며 읽는다고 했다.

 난 쌓아놓은 책이 많아 빨리 읽고 싶었지만 밑줄 긋고 좋은 구절은 옮겨 적으며 읽다보니 페이지가 줄어들지 않는다. 마음은 급한데.......

 

 

 

 

 

 

 

피로도 내가 만드는 것

긍지도 내가 만드는 것

그러할 때면은 나의 몸은 항상

한치를 더 자라는 꽃이 아니더냐

오늘은 필경 여러 가지를 합한 긍지의 날인가 보다

암만 불러도 싫지 않은 긍지의 날인가 보다

모든 설움이 합쳐지고 모든 것이 설움으로 돌아가는

긍지의 날인가 보다

이것이 나의 날

내가 자라는 날인가 보다. 

                                                                              <긍지의 날> p.32

 

'딜레탕트'와 '울림이 없'음은 매우 중요하다. '딜레탕트'는 어설픈 예술 애호가를 지칭하는 용어로, 예술을 겉멋으로 추구하는 부류의 인간을 가리킨다. (중략) 김수영은 평생 '울림'이 있는 작품을 쓰고 싶었다. 어떤 작품에 울림이 있으려면 작가는 진지성과 진실성이 수반되는 정직한 글을 써야만 한다. 작가의 체취나 입김 혹은 정신이나 영혼, 뭐 이런것이 없다면 그저 화려한 작품은 쓸수 있어도 독자를 울리는 작품은 결코 쓸 수 없다. 진정한 사랑을 온몸으로 겪은 사람의 연애 이야기는 표현이 아무리 어눌해도 그럴듯하게 날조된 연애 이야기보다 우리를 더 울리는 법이다.

                                                                                               p.43

 

세이모 (SAMO, Same Old Shit,  별 것 아님!

                                           부단한 이탈,

                           이것은 예술가의 의무다.

                                                                                              p.165

 

카프카는 "우리는 불행처럼 우리를 자극하는 책들, 다시 말해 우리에게 아주 깊이 상처를 남기는 책이 필요하다. 이런 책들은 우리가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처럼 느껴지고,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어 숲으로 추방되는 것처럼 느껴지고, 심지어 자살처럼 느껴질 것이다. 책은 우리 내면에 얼어 있는 바다를 내려치는 도끼 같은 것이어야만 한다. 나는 이렇게 믿고 있다."

 

바로 읽히기는 힘들지만 우리를 자극하는 작품은 상대를 신비롭게 유혹하는 매력적인 여성과도 같다. 읽기 힘들지만 손에서 놓기 힘든 작품은 독자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다. "나를 이해하려면 스스로의 삶에 직면할 수 있을 때까지 성장해야만 할 거예요." "충분히 성장한다면, 제가 이야기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p. 229~230

 

 

자신의 삶을 자기 스타일대로 정직하게 살아 낸다면, 우리는 타인의 삶에 공명하는 보편성을 확보한다.

                                                                                              p. 269

 

 

 

강신주의 강의를 듣고 책을 읽으며, 신문에 한달에 한번씩 서평을 쓰는 것에 대해 고민했다. 무언가 고갈된 느낌이랄까? 깊이있는 책읽기가 필요한 때이다. 당장 읽기는 힘들지만 내 수준보다 어려운 책을 읽어야 겠다는, 그래서 내면의 성장이 필요한 시간이라고.... 며칠전 구입한 책은 <강신주의 감정 수업>,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수전 손택의 <다시 태어나다>

나의 내면에 얼어 있는 바다를 내려치는 도끼 같은 책을 읽고 재도약하는 시간이 필요한 때. <김수영을 위하여>도 도끼같은 책이다.

 

 

 

 

2.

 

새해 수첩을 준비할 때가 왔다. 속도는 나이에 비례한다고 하지만 어느새 1년의 끝자락이다. 마음은 아직 20대, 조금 더 쓰면 30대인데 실제 나이는 참으로 허걱스럽다. 그러나 백살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아직 반도 안 살았네. (이런 위안도 맞는걸까?)

수첩을 사려고 제법 큰 문구점에 갔지만 맘에 드는 수첩이 없다. 아무거나 살수는 없어 헛걸음했는데 직원이 커피 다섯잔 마시면 공짜로 준다는 할리스커피 수첩을 보여준다. '음 내 맘에 쏙 드는걸!' 결국 직원들이랑 커피 마시고 수첩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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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11-25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끔은 카페에서 책을 읽고 싶고, 노트북을 가져가서 글을 쓰고 싶은데...
그런 일에도 용기가 필요한가 봐요. 혼자서는 못 가겠더라고요.
제가 님의 집 근처에 살고 있다면 그럴 때 세실 님이 나를 부르면 되 는 건 데... ㅋㅋ

'울림'이 있는 작품, 불행처럼 우리를 자극하는 책들... 이런 글쓰기는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어려우니까 그만큼 탁월한 것일까요?^^

세실 2013-11-26 11:46   좋아요 0 | URL
한번 시도해보시면 나름 괜찮아요^^
아이들 학원 데려다주고, 두시간 후에 또 데리러가기 귀찮아서 그냥 눌러앉다보니 요즘 즐긴답니다.
아이들도 카페에 와서 핫초코 마시는걸 즐기네요.
아쉽다~~~
가끔 그렇게 친구들 불러내어 마시기도 한답니다.
'울림'이 있는 글쓰기!!! 너무 너무 어려워요~~~~

프레이야 2013-11-30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원래 카페라떼 좋아해요. 칼로리는 뒷전ㅋ 두어시간 카페에서 책읽기! 너무 멋지잖아요! 만년필도 멋져. ^^ 시끄러운 아줌쟁이들 때문에 방해되진 않았어요? 난 주변 시끄러우면 신경쓰여서 ㅠ 집중력 부족인가봐요 난. 영화관에서 폰 안 끄고 소리 다 나게 하는 사람도 화나ㅎㅎ 밖이 어떻든 집중하면 될 일인데 난 ㅠ

세실 2013-12-02 15:04   좋아요 0 | URL
카페라떼가 아메리카노보다 훨씬 부드럽죠^^ 내년엔 더 자주 이런 시간을 가져야 할듯합니다. 아이들 픽업하면서 나름의 시간을 즐기는거죠. 가끔씩 아줌마들 째려 보면서 책 읽었어요. 나중엔 무신경해집니다. 전 아이들 울음소리가 거슬려요. ㅠㅠ
영화관에서 폰 안끄는 사람 당연히 화 나죠. 휴대폰 불빛 비추며 문자확인, 전화받는 사람 정말 화나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