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불과 지난주에 다녀 왔음에도 여행은 늘 그리움이다. 역마살이 낀 걸까? 가을엔 특히나 어디로든 떠나고 싶다. 코스모스, 해바라기 가득 피어있는 가까운 곳도 좋고, 발로 툭툭 차이는 노오란 은행나무길도 걷고 싶다. 가을 한 낮의 투명한 하늘 빛이 잘 보이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가고 싶다. 단, 여럿이 움직이는 번잡스러움이 아닌 한 둘 혹은 셋의 단촐한 여행이 좋다, 가을엔!
여행의 그리움을 꾹꾹 누르며, 도서관 서가를 휘휘 젓다가 최갑수의 <당신에게, 여행>이라는 제목의 책을 발견했다.
오래되어 금이 간 하늘빛 담벼락에 고운 해바라기 두 그루가 참 우아하게도 피어 있다. 슬레트 지붕아래 창문엔 깨진 유리를 가리려고 포대라도 댄 걸까? 표지 그림에 한동안 시선이 머문다.

# 때로는 맨발로 해변을 걷는 일 | 삼척 맹방해변
신발을 신고 걷기에는 해변이 너무 아깝다. 신발을 벗고 모래밭으로 내려선다. 발바닥에 닿는 모래의 감촉이 부드럽고도 따뜻하다. 쉴 새 없이 밀려드는 파도가 눈앞에서 부서지고, 끊임없이 흰 포말을 토하며 부딪치는 파도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해수욕장의 오른쪽 끝 바닷가에는 덕봉산이 섬처럼 떠 있어 멋진 경관을 뽐낸다. 모래가 너무 고와서 바람이 많이 불면 서해안의 해안사구처럼 모래자국이 생기기도 한다.
# 나의 마음이 당신에게로 옮겨 간다 | 강릉 보헤미안
오늘 강릉에 가는 이유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다.
어떤 커피가 맛있습니까. 커피잔을 비운 후 그에게 물었다. 우문.
좋은 사람과 마시는 커피가 맛있습니다. 그가 대답했다. 현답.
# 다친 마음을 위로하는 따스한 노을 | 태안 꽃지해변
나는 풍경이 사람을 위로해 준다고 믿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나 누군가의 거짓말 때문에 마음을 다쳤을 때, 우리를 위로하는 건 풍경이다. 힘들고 지쳤을 때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풍경이 지닌 이런 힘을 알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일은 좋은 음악을 듣는 것과 다르지 않다.
# 추억이란 어쩌면 간이역 같은 것 | 정선 새비재 지나 함백역까지 가을 드라이브
어디로든 떠나야 할 것 같다. 가을이니까. 왜냐고 다시 물어도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가을이니까. 그래도 다시 묻는다면 바람이 좋으니까 또는 하늘이 맑으니까 라고 대충 대답해버리겠다. 여행을 떠나야하는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해야 하는 건, 내가 당신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스물 세 가지 이상 대야 하는 것만큼 촌스럽고 멋없는 일일 테니까. 여행은 어쩌면 자작나무 사이로 새어 드는 가을 햇빛을 봐야겠다며 신발끈을 질끈 묶는 것으로 시작되기도 하니까.
# 대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초록빛 바람 | 담양 대나무숲과 메타쉐콰이어 숲길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 숲은 몸을 뒤채인다. 바람이 그치면 다시 잠잠해진다. 고요한 대나무숲 위로 휘황한 봄 햇살이 사금파리처럼 반짝이며 내려앉고 있다. 담양 대나무 숲에 봄이 한창이다.
글도 사진도 참 예쁘다.
우리나라 99개의 여행지를 소개한 이 책 따라 한달에 한곳만 다녀도 8년이 걸리겠다.
다행히 서른 한곳은 다녀왔으니 5년이면 되겠지만 한달에 한번 여행가는건 불가능할듯.
'여행 작가' 직업이 참 부러운 요즘이다.
2.

요즘 자주 가는 도서관 근처 카페 '이상'은 참숯으로 로스팅한다. 포트나 흔한 머신도 없이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핸드밀로 조금씩 갈아 핸드드립을 한다. 컵에 커피를 한가득 따라 조심스럽게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가져오는 뽀글머리 사장님의 모습은 마치 코믹 만화영화에 나오는 엉뚱한 캐릭터다. 내가 즐겨 마시는 커피는 브라질 산토스. 신맛이 거의 없고 고소하면서 깔끔한 맛이 맘에 든다. 일주일에 한, 두번은 가게 되는 곳. 마주보는 사람이 좋으면 커피도 유난히 맛있다.
커피와 책, 여행은 가을과 잘 어울린다. 내가 좋아하는 단어 커피, 책, 여행,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