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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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한 표지 그림 한가운데에 유난히 돋보이는 못생긴 여인이 서 있다.  화가 벨라스케스의 작품 <시녀들>이다. 원작에는 못생긴 여인을 부각시킨 느낌이 없는데 표지에는 유난히 그녀만 빛이 난다. 이 책의 제목인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이 이 그림을 보고 깊은 영감을 받아 만든 피아노곡 제목이기도 하다.  

표지가 시사하듯이 이 책에는 화자인 주인공과 평생을 사랑하게된 참으로 못생긴 그녀, 그리고 직장동료 요한이 나온다.

" 카레가 식을때까지 망연자실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처럼, 나는 그녀를 바라 보았다. 말하자면, 그때까지도 꽤 많은 못생긴 여자들을 봐왔지만 나는 그녀처럼 못생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세기를 대표하는 미녀를 볼 때와 하나 차이 없이, 세기를 대표하는 추녀에게도 남자를 얼어붙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과연 그렇게 못생긴 여자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길 정도로 그녀에 대한 묘사가 생생하다. 상업계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백화점에 정식 직원으로 취업했지만 주차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그녀, 어릴때부터 들어온 '못난아, 재수없다 '라는 꼬리표는 열등감과 소심한 성격으로 변해갔다.
그런 그녀를 호기심으로, 연민으로 바라보던 주인공 '나'는 어느덧 그녀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녀는 사랑 뒤에 올지 모를 헤어짐이 두려워 떠나간다. 문득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와 오버랩된다. 윤여정은 이순재를 좋아하지만 죽음으로 홀로 남는 것이 두려워 사랑하는 마음을 평생 간직하고자 시골로 떠난다. 짧은 시간일수도 있지만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도 좋지 않을까?

어느 날 아침 알 수 있었습니다.  
저의 전부가... 보이지 않는 세포 하나하나까지... 당신을 보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눈을 뜨고 바라보던 방안의 풍경과...흐트러진 이불이며, 그런 사소한 사물들과...베갯잇에 떨어진 몇올의 머리카락 마저도... 당신을 그리워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결국 매일 아침 당신이 보고 싶고... 당신을 떠나서는 살수 없는 여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을 떠나왔습니다. 말도 안된다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많은 고민 끝에 저는 이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저는 당신이 보고 싶은데 말입니다. (중략)

그리고 감사합니다. 당신이 제게 준 빛이 있는 한... 이제 어떤 삶을 살아도 저는 행복할 수 있을 거예요. 매일 아침 당신을 보고싶어하는 여자에게서 도망친 것이 아니라...실은 이 길을 택함으로써 끝끝내 그녀를 보호하고 있는 셈이니까요. 그러니까 저...정말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 얘기를 꼭 전하고 싶었어요. 앞으로도 계속 저는 당신을 보고 싶어할 것이고, 또 그런 할머니가 되어 행복한 표정으로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이런 얼굴로 태어난 여자지만 저의 마지막 얼굴은 당신으로 인해 행복한 얼굴일 거예요. 그리고 끝으로...꼭 이 말을 하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한 번도 못한 말이고 다시는 못할 말이지만...부디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차곡차곡 이 말을 눌러 쓰면서 알았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인간만이 스스로를 사랑할 수도 있는 거라고... 저 역시 스스로 사랑하면서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히...안녕히 계시기 바랍니다.  

헤어짐뒤에 그녀가 주인공에게 보낸 편지는 외모 콤플렉스로 인해 평생을 음지에서 살았던 고단한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리고 소중한 사랑을 평생 간직하고 싶어하는 애틋한 마음이 참으로 안타깝다.      

소비 문화의 상징인 백화점이 주무대이지만 주차요원들이 주인공으로 소시민의 삶과 애환을 보여준다. '나'의 아버지가 유명 배우가 되었지만 못생긴 엄마와 자식을 부끄러워하는 일그러진 아버지의 모습, 가족에 대한 상처로 자살 미수를 하고 오랫동안 병원생활을 하는 요한, 그녀는 야만적이고 외모 지상주의가 심한 우리나라를 떠나 독일에서 평범하게 살며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해간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아픈 상처를 보듬어주고, 찍어낸듯 똑같은 성형미인이 아닌 각자의 개성을 존중해주는 아름다움, 그리고 인생을 살아갈 힘을 얻는 참된 사랑의 가치를 강조한다. 사랑함으로써 더욱 빛이 나고, 아름다워지는 사랑의 위대함이여! 내가 한없이 보잘것 없는 존재라고 느껴질 때 이 책을 읽으면 힘이 샘 솟을듯, 부끄러운 내가 아닌,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소중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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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4-19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주무시고 낼 마저 쓰셔요~
박민규 저도 읽었어요.
님이 읽고 해석하신 박민규는 어떨지 궁금합니다~^^

세실 2011-04-19 20:35   좋아요 0 | URL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박민규 참 멋진 작가예요. 이제 쓰려고 합니다. ㅎ

오늘 서울 국립중앙도서관 출장 다녀왔어요. 따뜻한 봄 햇살과 기분 좋은 바람이 터미널에서 도서관까지 걷는 즐거움을 주었답니다. 특별강연도 좋았구요. ㅎ

꿈꾸는섬 2011-04-19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참 재밌게 읽었어요.^^

세실 2011-04-20 21:57   좋아요 0 | URL
아 님도 읽으셨군요. 궁중요리 배우시라, 아이들 키우시랴, 책 읽으시랴.....참 부지런 하십니다^*^

2011-04-21 0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21 2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11-04-26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참 좋게 읽었는데 호불호가 꽤 극명하게 나뉜 작품이어서 놀랐어요.
윤여정이 아니라 윤소정 씨가 출연한 거죠? 방금 이름 찾아보고 왔어요.^^ㅎㅎ

세실 2011-04-26 22:58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구나. 저도 괜찮았어요. 아주 아주 못생긴 여자라는 억지 설정이 조금 인위적이긴 하지만
분명 가능한 얘기잖아요.

그대를 사랑합니다. 윤소정씨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