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을 위로해줘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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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살 우리가 폭발물이면서도 그다지 위험하지 않은 것은, 도화선이 없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모든 것을 실천에 옮길 만한 기회와 행동력과 돈과 시간이 없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분노와 불안을 극한까지 상상할 수 있는 안전장치다.

열일곱 살, 고등학교 1학년때 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힘들면서도 아직은 공부에 대한 부담이 덜했던 시기였기에 친구들과 사소한 일에도 웃고, 울던 순진했던 시기였다. 간혹 따라 다니던 남자애들이 있었지만 사귐은 대학 이후라는 고정관념으로 매몰차게 대했던 기억 뿐이다. 부모님과 떨어져 할머니와 살아서인지 주인공 연우의 친구 채영이나 태수처럼 가족과의 갈등으로 고민한 기억도 없다. 

신간이 나오면 꼭 읽고 싶어지는 작가가 있는데 은희경도 그 중 한명이다. 여성 작가 특유의 구성상의 섬세함과 주인공에 대한 디테일한 심리묘사는 때로는 주인공 연우가 되고, 때로는 연우의 엄마 신민아가 되어 마음 아파하면서도 행복했다. 연우는 공부에 관심은 없지만 학교에서 조용히 지내는 우리나라 학생의 절반 정도되는 지극히 평범한 고등학교 1학년생이다.
그에 비해 연우의 엄마 신민아씨는 이혼녀이며 옷 칼럼니스트이다. 마흔 나이에 일곱 살 어린 재욱형과 사귄다는 자체만으로도 평범하지 않다. 그럼에도 그녀가 사랑스러운건 애써 자신을 포장하지 않으며 우울해 하지 않고, 아들과 친구처럼 지내면서 20대의 감수성을 간직하고 있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명랑 쾌활한 소녀같은 이미지 때문이다.   

남의 눈에 거스르지 않게 살고 싶어 친절을 익혔다지만, 어쨌거나 남들 눈에 조금은 튀게 살고 있는 엄마.

바람 보러 가자. 바람? 응 빨리 챙겨. 고작 바람을 보려고 이런 폭우를  뚫고 밖으로 나간다고? 도로 침대로 가서 이불을 뒤집어 쓰는 나를 엄마가 재촉했다. 지금 가면 숲 전체가 미친 듯이 흔들리는 걸 볼 수 있어. 쉽게 못 보는 그림이야. 네 감수성 훈련을 위해 교육적 목적으로 데려가는 거라니까. 남자는 날씨와 장소에 섬세하게 반응할 줄 알아야 해. 됐거든요! 나의 볼멘 대꾸에 엄마가 말했다. 할 수 없네. 만원 줄게. 신민아씨는 종종 이런 그런 식이다.

너는 방치된게 아니라 방목되고 있는 거야. 방목은 말이지. 공자어머니, 한석봉 어머니, 그리고 페스탈로치도 못하는 고난도 교육이라구. 신민아 식 자기 합리화 엄마의 특기다. 하지만 맞다고 생각되는 구석도 없진 않다. 방목이란 것, 넓은 곳을 혼자 다닌다는 게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나는 그곳에 울타리가 있다는 것만은 알고 있다. 잘못해서 낭떠러지에 이르는 일이 생기더라도 그 울타리가 나를 지켜주리난 것을. 결국 신만아씨 말에 넘어가버린 건가. 

주변의 위험한 물건 다 치워놓고 마음껏 놀게 해주는 것. 그게 방목이야. 대부분 혼자 하도록 내버려두지만 결정적일 때는 개입을 해야 해. 그러니까, 멀리 있더라도 연결은 끊어지면 안된다 이거야. 그런 걸 방목의 기술이라고 하지.

주인공 연우를 중심으로 한 엄마 신민아씨와 그녀의 애인인 평범하지 않은 음악 칼럼니스트 재욱형, 그리고 전학 첫날 만난 미국에서 사고치고 돌아온 태수와 태수의 동생 마리, 그리고 경직된 삶을 살고 있는 태수의 부모님. 억압적인 부모 밑에서 힘들어 하는 연우의 여자친구 채영과  그의 부모가 이 책의 등장인물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어른들은 만나지만 합일점을 찾지 못하고 또 다른 상처만 남기게 된다. 

태수의 죽음이라는 다소 무거운 결말이 부담스럽지만 부모의 이기심 혹은 비뚤어진 교육관이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몬다고 생각하니 마음 아프다. 그런 점에서 연우를 믿어주고, 끊임없이 배려하는 신민아씨의 교육관은 그녀가 주장하는 고난도 교육관이다. 친구처럼, 애인처럼 자녀를 대한다면 가정은 참 편안한 곳으로 기억되겠지. 비오는 날 빗소리 들으러 보림이 데리고 커피숍 가고, 아이들 믿어주고 나름 방목하는, 내 일을 사랑하고 가볍게 살려고 노력하는 그런 점에서 난 신민아씨와 조금은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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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1-01-10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신민아 씨, 세실 님처럼 발랄한 거 같아요~^^
아니다, 신민아 씨가 세실님처럼 발랄한 건가?

전, 열일곱살 연하남과 사는...지극히 평범한 아줌도 봐서 말이죠~


세실 2011-01-10 02:07   좋아요 0 | URL
앗 리뷰 쓰다가 옆지기 들어오는 소리에 보림이랑 같이 자는척 하자구 후다닥거리며 들어갔다가 다시 나온 사이에 들르셨네요. 보림이가 가끔 엄마랑 자고 싶다고 하면 이렇게 자는 척 한답니다. ㅋㅋ

호호호 맞아요. 발랄하고, 때로는 철없는 소녀같은 이미지죠.
신민아씨 참 예쁘게 사네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음 열일곱살 연하남이면 그 아줌은 몇살?


마녀고양이 2011-01-10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꾼님 리뷰에서도, 세실 언니 리뷰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네요.
신민아에 대한 묘사가 마음에 들어요...
자신이 단단하지 않다면, 자식을 믿어주고 배려하고 살짝은 방목하는 교육 어려울거 같아요.

좋은 한주되셔여~

세실 2011-01-10 13:58   좋아요 0 | URL
아 그러셨나요? ㅎㅎ
나무꾼님이 신민아랑 저랑 닮았다고 해서 기분 좋았어용.
마음은 20대~~ 상큼 발랄? 켁...
방목이란 말 참 좋아요. 울타리는 되어 주면서 자유롭게 뛰어 놀수 있도록 해주는 육아법.
이 책 참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