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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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4월의 어느 날 아치울에 있는 작가의 집을 찾았다. 잘 정돈된 마을 풍경과 길 양쪽으로 피어있는 벚꽃길, 아차산이 마주보이는 곳에 황토로 지은 아담한 집과 초록빛 잔디 정원이 참 아름다웠던 기억이 있다. 

"또 책을 낼 수 있게 되어 기쁘다. 내 자식들과 손자들에게도 뽐내고 싶다. 그 애들도 나를 자랑스러워했으면 참 좋겠다. 아직도 글을 쓸 수 있는 기력이 있어서 행복하다. 쓰는 일은 어려울 때마다 엄습하는 자폐의 유혹으로부터 나를 구하고,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지속시켜 주었다."

작가의 나이 여든임에도 때로는 소녀 같은, 미사여구로 꾸미지 않는 솔직한 글이 참 좋다. 나도 먼훗날 자식들과 손자들이 자랑스러워하는 그런 사람으로 나이 들고 싶다. 아흔까지도 글을 쓸 수 있고 책을 읽을수 있는 기력이 있으면 좋겠다.

이 책은 크게 세 꼭지로 나누어 쓰여졌는데 정원을 가꾸며 아름답게 나이들어 가는 작가의 일상과 문태준 시집 <그들의 발달>,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최순우의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고흐의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등에 대한 느낌을 적은 '책들의 오솔길'이라는 예쁜 제목의 책 에세이, 그리고 마지막은 작가가 좋아했던 김수환 추기경님, 박경리 선생, 박수근 화백의 추모글로 짜여졌다.

6.25의 경험이 없었다면 소설가가 되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작가의 글에는 6.25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우리 민족의 한이기에 어린 세대들도 꼭 기억했으면 한다. 사랑하는 가족을 먼저 보낸 가슴 아픈 삶도 담백하게 이야기하며 세월의 연륜을 보여준다. 서평이라기 보다는 삶속에 녹아져 있는 책읽기에 대한 느낌도 참 좋다.

심심하고 심심해서 왜 사는지 모르겠을 때도 위로 받기 위해 시를 읽는다. 등 따습고 배불러 정신이 돼지처럼 무디어져 있을 때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어 시를 읽는다. 나이 드는게 쓸쓸하고, 죽을 생각을 하면 무서워서 시를 읽는다.  

작가의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를 읽고 쓴 글이다. 가슴 한곳이 텅 빈것 같은 공허한 계절 가을에 시집 읽으며 따뜻함을 느끼고 싶다.

섬세함과, 따뜻함이 느껴지는 작가의 글을 읽으며 어느새 편안해지는 내가 보인다. 점점 친구 같아지는 옆지기와 착한 아이들이 있고, 즐겁게 일 할 수 있는 직장이 있으니 이 정도면 행복하다는 생각도 해본다. 이렇게 나이들어 가는 것도 괜찮을듯. 아름답게 나이듦을 알려주는 이 책을 읽으며 작은 위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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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09-19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벌써 여든이셨군요.
마음은 나이들고 싶어하지 않지만,
글은 나이먹지 않는 것 같아요.

세실 2010-09-20 09:29   좋아요 0 | URL
그쵸. 글은 사십대인 우리에게도 충분히 공감대가 형성되잖아요.
감성적이고, 소녀같은 취향을 아직도 갖고 계셔서 그런가 봐요.

꿈꾸는섬 2010-09-20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세이...너무 좋을 것 같아요. 여든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소녀적 감수성을 갖고 계시죠.ㅎㅎ 부러워요. 저도 그렇게 나이들어 가고 싶어요.^^

세실 2010-09-20 15:21   좋아요 0 | URL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답니다. 특히 책에 관련한 에세이 참 좋아요.
여든에도 소녀적 감성을 고스란히 담고 계실수 있는지 참으로 존경스러워요.
우리 노력해요^*^

순오기 2010-09-20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 꼭지로 나뉘어 있다니 보고 싶네요.
이 양반은 나이 들어도 여전히 고운 소녀 같아요.

세실 2010-09-20 15:22   좋아요 0 | URL
네. 특히 책에 관련된 부분이 좋답니다.
저도 그렇게 나이들어 가고 싶어요. 때로는 소녀처럼 보여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