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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황보름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2년 1월
평점 :
품절
커피를 좋아한다. 사무실에 출근해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은 잠들어있는 뇌세포를 깨운다. 특히 핸드드립 커피를 좋아한다. 오래전 제주 송악산 가는 길 해안도로 근처의 풍경 좋은 카페에서 마셨던 드립커피는 여행의 여운을 오래 간직한다. 갓 볶아낸 커피 알갱이를 그라인더에 갈 때 퍼지는 커피 향도 좋다. 커피 맛은 산미가 있고 부드러운 에티오피아 커피를 선호한다.
퇴직 후 작은 공간에서 핸드드립 커피와 책을 파는 상상을 한다. 지인들과 정기적으로 독서 모임을 하고 좋아하는 작가의 강연회도 여는 동네 사랑방 같은 공간을 꿈꾼다. 실현 가능성은 적지만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진다.
도서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는 나의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마법 같은 책이다. 책을 읽는 내내 간접경험의 기쁨을 누렸다. 책의 첫 장엔 “서점이 없는 마을은 마을이 아니다. 스스로 마을이라 부를 수는 있겠지만 영혼까지 속일 수는 없다는 것을 자신도 알 것이다. (닐 게이먼 소설가)” 라고 적혀 있다. 여행을 가면 그 지역에 있는 서점에 간다. 작은 마을이지만 서점이 있으면 그 마을이 지적으로 보인다. 온라인서점보다 직접 책을 보고 구입하면 실패 확률이 적다. 베스트셀러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방법이기도 하다.
휴남동 서점에는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모인다. 서점 대표 영주는 이혼의 상처가 있다. 딸의 이혼을 이해하지 못한 엄마와는 몇 년째 연락을 끊었다. 이혼 후 서점을 차렸지만 하루종일 책만 읽었다.
서점에 바리스타로 취업한 민준은 서울 소재 대학을 졸업했지만 면접에서 번번히 실패했다. 오랜 백수 생활로 힘들 때 서점 문 앞에 붙어있던 ‘바리스타 구합니다’ 라는 공고문을 보고 취업했다. 서점의 단골손님 민철 엄마는 사춘기를 심하게 겪으면서 학원에 가지 않겠다는 민철에게 일주일에 한 번 서점 방문을 요구한다. 민철은 영주, 민준과 대화하고 관심 있는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일어서는 힘을 키우고, 미래를 꿈꾼다.
커피 납품업체 대표 지미, 서점에서 뜨개질을 하는 정서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의 등장인물이다.
영주는 다양한 책을 읽고,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위로받고 상처를 치유해간다. 독서 모임을 만들고, 좋아하는 작가의 북 콘서트를 열며, 큐레이션을 하면서 휴남동 서점은 활기 넘치는 새로운 공간이 된다.
“흔히들 현재를 살라고 말하잖아요. 그런데 말이 쉽지 현재에 산다는 게 도대체 무슨 뜻이죠? 현재에 산다는 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그 행위에 온 마음을 다해 집중한다는 걸 말해요. 숨을 쉴 땐 들숨 날숨에만 집중하고, 걸을 땐 걷기에만 집중하고, 달릴 땐 달리기에만, 한 번에 한 가지에만 집중하기.”
작년에 출퇴근이 힘들다는 이유로 현재를 즐기지 못하며 취미도 없는 단조로운 삶을 살았다. 책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 머리가 텅 빈 느낌이다. 올해 목표는 월 3권 이상의 책을 정독하고 독서 모임도 다시 시작할 계획이다. 나를 성장시키는 일이 있고, 좋은 사람들과 의미 있는 대화를 하면서 조금씩 채워가면 어제보다는 성장해 있겠지.
퇴직 후에 서점을 운영하는 것보다 하루 세 시간만 북큐레이터와 바리스타로 아르바이트는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