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외수 외 지음 / 보성출판사 / 2008년 8월
품절


술에 취하면 프랑스인은 덮어놓고 춤을 추고 독일인은 함부로 노래를 부르고 싶어하며 영국인은 자꾸만 먹고 싶어하는 습성이 돋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이탈리아인은 쉴새없이 자랑을 늘어놓고 미국인은 오로지 연설에 열을 올리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이외수 <술을 멀리하며>-9쪽

술이 사람을 말하고, 술이 사람을 이야기한 글이라면 나는 아직도 수주의 [명정 40년]을 뛰어넘는 저술이 없으리라고 믿는다.
-이문구 <떠날 사람과의 마지막 잔>-111쪽

만경창파 내다보니 수천 배가 이승에서 돌아온다. 저 앞에 짚을 덮어 쓰고 오는 사람은 무슨 배인가?
그 배는 이승에서 부자로 악하게 타작을 하는데 가난한 사람이 짚을 달라자 짚 한 단을 내집어 던졌다.
저기 저 배는 무슨 배인가?
그 배는 부모 앞에서 눈의 희뜩희뜩 혀를 툭툭 차고, 이웃 노인이 무라 해도 눈을 희뜩희뜩 혀를 툭툭 차더니 저승에 들어와서는 눈알을 빼어차고 혀를 빼어 입에 물고, 억만지옥으로 들어가는 배다.
저기 저 배는 무슨 배인가?
남의 중신 가는 누나, 억지로 겁탈해서 저승에 들어올 때 큰 톱을 옆구리에 걸어 가지고, 독사지옥으로 들어가는 배다.
저기 저 배는 무슨 배인가?
그 배는 이승에서 술장사할 때 물을 타서 멀겋게 걸렀기로, 술찌꺼기를 입에 물고 지옥으로 들어가는 배다.
첫번째로 짚을 덮어쓰고 지옥으로 들어가는 배는 가난한 소작인에게 가혹하게 한 죄로 끌려오는 악덕 지주고,
두번째로 눈알을 빼어 차고 혀를 입에 물고 오는 사람은 부모와 어른에 불손한 죄로 끌려오는 불효자고,
세번째 배는 강간죄로 끌려오고,
네번째 배는 술장사할 때 물을 타서 판 사람이 지옥으로 끌려가고 있다.
-서정범 <사내의 씨>-119쪽

음주에는 무릇 18의 계단이 있다.
1.부주...술을 아주 못 먹진 않으나 안 먹는 사람.
2.외주...술을 마시긴 마시나 술을 겁내는 사람.
3.민주...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으나 취하는 것을 민망하게 여기는 사람.
4.은주...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고 취할 줄도 알지만 돈이 아쉬워서 혼자 숨어 마시는 사람.
5.상주...마실 줄 알고 좋아도 하면서 무슨 잇속이 있을 때만 술을 내는 사람.
6.색주...성생활을 위하여 술을 마시는 사람.
7.수주...잠이 안 와서 술을 먹는 사람.
8.반주...밥맛을 돕기 위해서 마시는 사람.
9.학주...술의 진경을 배우는 사람.
10.애주...술의 취미를 맛보는 사람.
11.기주...술의 진미에 반한 사람.
12.탐주...술의 진경을 체득한 사람.
13.폭주...주도를 수련하는 사람.
14.장주...주도 삼매에 든 사람.
15.석주...술을 아끼고 인정을 아끼는 사람.
16.낙주...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 술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사람.
17.관주...술을 보고 즐거워하되 이미 마실 수는 없는 사람.
18.폐주(열반주)...술로 말미암아 다른 술 세상으로 떠나게 된 사람.
-조지훈 <주도유단>-133쪽

술병은 우리 식탁 위의 태양.
그의 양광은 감홍색 술.
우리는 그의 위성들
그의 도움 없이는 부추김 없이는
우리만으로는 빛나지 못하리.
환락과 환희는 끝도 없어라.
그가 삐잉 일순회하면
우리는 그의 차광으로 따라 빛나리.
(영국의 희극작가 R.B.셰리든의 주덕송)
-변영로 <나의 음주변>-154쪽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저녁상의 반주, 그것이 가져올 위안을 생각하기 때문에 흔히 많은 사람의 하루의 긴 노동은 보다 쉽게 수행되는 것이 아닌가?
-김진섭 <주찬>-234쪽

인생은 짧다.
그러나 술잔을 비울 시간은 아직 충분하다.
-노르웨이 속담-2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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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 구운몽 최인훈 전집 1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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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것은, 1995년에 발행된 3판 5쇄본.
무려 5가지 버전의 서문이 들어있다.

1961년판 서문,
친구 이명준의 진혼을 위하여 쓴 1973년판 서문,
일역판 서문,
1976년 전집판 서문,
그리고 마지막으로 1989년판 서문.

서문만 봐도 역사가 한눈에 주르륵 꿰어진다.
개정이 될 때마다 한자어는 비한자어로 바꾸어지고
세로쓰기는 가로쓰기로 바뀌었다.

광장은 어떤 면에서 보면 <출발 비디오 여행> 같은 책이다.
왜, 그런 느낌 있잖은가. 출발 비디오 여행에서 
너무나도 자세하게 줄거리 듣고 분석까지 듣다 보면, 
정작 극장에서는 보기가 싫어지는 것.
이건 뭐 본 것도 아니고 안 본 것도 아닌데 왠지 돈 주고 보려니 그건 쫌 아까운 느낌? 

광장은 수능시험 준비하던 고3때 요약본으로 읽었던 것 같다.
아니, 결말 부분만 문제집 여기저기에 많이 실렸던가?
이건 중요한 작품이니 주인공의 의도가 무언지 꼭 알아야 한다며
선생님들이 줄거리를 소상히도 알려줬던 기억...
그래. 광장이 굉장히 큰 문학사적 가치를 가진다 해도
왠지 돈 주고 사서 읽기는 아까운 느낌이었다.

그러던 것이 얼마 전 김용규의 <철학 카페에서 문학 읽기>를 독파하고 나선,
그.래.도. 꼭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아아앙. 잘한 일이었어.
주인공 명준이 남으로 갈래 북으로 갈래 딴 나라로 갈래 갈팡질팡하다가
그냥 바다로 퐁당 빠져버린단 줄거리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 앞뒤로 얽힌 서사가 기가 막히다.

역시나 다시 한 번 "고전은 읽을 가치가 있다"는 진리를 깨닫게 된 시간.
5가지 버전의 서문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도 꽤나 가슴 벅차다.
뭐야. 책 한 권에 뭐 이렇게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냔 말이다.
헌책방에 들르길 잘했군,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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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 구운몽 최인훈 전집 1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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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는 버릇을 가지라, 신에 가까워지리라.-41쪽

윗목에 놓인 책장에 마주선다. 한번 죽 훑어본다. 얼른 뽑아보고 싶은 책이 없다. 4백 권 남짓한 책들. 선집이나 총서, 사전류가 아니고 보면, 한 책씩 사서는 꼬박 마지막 장까지 읽고 꽂아놓고 하여 채워진 책장은 한때 그에게는 모든 것이었다. 월간 잡지가 한 권도 끼지 않았다는 게 자랑이다. 그때그때, 입맛이 당긴 책을 사서 보면, 자연 그 다음에 골라야 할 책이 알아지게 마련이다. 벽 한쪽을 절반쯤 차지하고 있는 이 책장을 보고 있으면, 그 책들을 사던 앞뒷일이며, 그렇게 옮아간 그의 마음의 나그네길이, 임자인 그에게는 선히 떠오르는 것이고, 한권 한권은 그대로 고갯마루 말뚝이다.-43쪽

선(禪) 같은 데서 비법을 주고받을 때, 스승이 뚱딴지 같은 물음을 불쑥 던지면, 뛰어난 제자가 마찬가지 헛소리 같은 사설로 받아넘겨서, 두 사람 사이에 홀아비 사정을 홀아비가 안 빙그레 웃음으로 마음이 마음을 알아, 깨달음의 주고받음이 이루어지는, 옛 우리네 마음놀이의 저 기합술 같은 수작의 생김새는 아마 이런 것이라 싶게, 태식의 한마디는 명준의 가슴에서 대뜸 울려오던, 그런 일이 있다. 그 후 그들은 툭하면, 고독해서 그러는 거야, 엉뚱한 데다 그 말을 쓰곤 했는데, 버스 꽁무니를 바싹 따라가는 자전거 선수이든, 로터리에서 교통 정리하는 순경의 경우든, 국산 기관포로 강냉이를 튀기는 아저씨의 경우든, 모조리 그럴싸한 데는 놀라고 만다.-45쪽

이런 늦은 때 무렵에 상큼하니 낯을 쳐들고, 눈이 초롱초롱한 강아지 모습이 또 때에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하긴 사람 같으면 이부자리가 있으니까, 자다 일어났다는 걸 알 수도 있겠지만, 강아지고 보면 그렇지도 못했고, 사람은 부스스한 옷매무시나 벙벙한 낯빛으로, 자다 깬 사람은 알 수 있는 법이지만, 잠옷이 없는 이 짐승은 그것도 아니고, 어느 모로 뜯어보아도 자다 깬 사람이 가지는 그 흐트러진 낌새는 찾을 수 없다. -47쪽

입 밖에 내지 않았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일도, 한 번 말이 되어 나와버리면 허물어버릴 수 없는 담을 쌓고 만다.-134쪽

어떤 사람이 어떤 사회에 들어 있다는 것은 풀어서 말하면, 그 사회 속의 어떤 사람과 맺어져 있다는 말이라면, 맺어질 아무도 없는 사회의, 어디다 뿌리를 박을 것인가. 더구나 그 사회 자체에 대한 믿음조차 잃어버린 지금에.-1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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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 <파우스트>에서 <당신들의 천국>까지, 철학, 세기의 문학을 읽다
김용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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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하는 남자도 참 매력적이란 말이지.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철학을 전공한 사람이랑은 한 번도 연애해 보지 못했구나.

이 책 역시, 읽고 나면 돈지갑이 줄줄 샌다.
읽고 싶은 책들이 많아진다는 얘기.

희망 하나만 가지고 사막 건너는 법을 보여주는,  폴란드 출신 작가 유레크 베커의  <거짓말쟁이 야콥>.
유토피아를 찾다가 바다로 사라져버리는, 최인훈의 <광장>, 
디스토피아 문학들인 자미 아틴의 <우리>,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베스트셀러라는 단어를 설명하기 위해 인용된다는,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유토피아주의에 몸서리를 치는, 카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아몬드와 함께 구운 송어가 세밀하게 묘사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이 중, <광장>과 <멋진 신세계>, <페스트>는 찾아서 읽었고
(서른 넘어서 읽은 게 부끄러워 발가락까지 새빨개지지만....)
나머지도 알라딘 위시 리스트에 차곡차곡 모셔져 있다.

알라딘 위시리스트에 채워진 책을 전부 다 사주겠다는 남자가 있으면
몸도 주고 마음도 주고 사랑도 줄 수 있을 것만 같아. 아아앙아아아아.
그 남자가 철학을 전공한 남자라면, 난 까무러칠지도 몰라. 아앙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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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 <파우스트>에서 <당신들의 천국>까지, 철학, 세기의 문학을 읽다
김용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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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물고 사람 구경을 하다 보면, "사람이 풍경일 때처럼 / 행복한 때는 없다"라는 정현종 시인의 말처럼 사람이 하나둘씩 풍경으로 피어나고 조금은 행복해지지요.-54쪽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 <소유냐 존재냐>에서 현대인의 소유욕에 의한 신경증적 증상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였습니다. 흥미롭게도 그는 이것을 언어의 변천 과정을 통해 설명하지요. 그에 따르면 대부분의 고대 언어에는 소유를 나타내는 '갖다(have)'라는 동사가 없었답니다. 그러다 언어가 발달함에 따라 점차 소유를 나타내는 말과 어법이 생겨났는데, 놀라운 것은 이러한 언어적 변화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한 지난 2~3세기 동안에 아주 급격하게 일어났다는 것이지요.-113쪽

지독한 사디스트나 할 것 같은 질문입니다만, 혹시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요? 인간이 가장 고통스러워하고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론 사람에 따라, 처지에 따라 또는 상상력에 따라 달리 대답하겠지요. 그런데 1957년 44세의 젊은 나이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는 그것이 '무용하고 희망 없는 노동'이라고 단정했습니다.-183쪽

1947년 6월 10일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출간된 <페스트>는 초판 2만 부가 한 달 만에 매진되었고, 현재까지 프랑스어 판으로만 500만 부가 훨씬 넘게 팔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베스트셀러'라는 단어를 설명하는 데 이 소설을 예로 든 프랑스어 사전까지 있다지요.-187쪽

오스트리아 출신의 카를 포퍼는 이러한 유토피아주의에 대해 몸서리를 치며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썼지요. 그는 이 책에서 유토피아주의에 대해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최선의 의도가 있다고 해도, 그것은 단지 하나의 지옥, 인간만이 그의 동포를 위해 준비하는 그런 지옥을 만들 뿐이다."라고 단언했습니다. 이유인즉 우선 인간이 이성이 불완전하다는 것이지요.-252쪽

"오래전부터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라는 짧은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1인칭 소설은 우선 섬세하고 세련된 문장들로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 중 가장 긴 것은 무려 522개의 단어로 이루어져 있어, 이 문장을 종이테이프에 쓸 경우 길이가 약 4미터에 이른다고 하지요. 프루스트는 타고난 감수성으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것과 같이' 세밀한 언어를 사용하여 보통 사람들로서는 보지도 듣지도 느끼지도 못할 우아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자신의 소설 안에 펼쳐놓았습니다.
바닷가 산책, 소나타의 울림, 꽃의 향기, 마들렌 케이크와 따뜻한 보리수꽃차, 아몬드와 함께 구운 송어,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나비 한 마리, 아무리 사소한 것까지도 생생하게 그려내는 그의 솜씨는 세상의 모든 독자들을 가차 없이 두 부류로 나누어놓지요. 처음 300쪽 이전에 책장을 덮는 사람과 3000쪽을 마치 중독된 것처럼 읽어내는 사람으로 말입니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해.-3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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