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 유시민의 30년 베스트셀러 영업기밀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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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 때 감정에 빠지면 길을 잃기 쉽다. 주제를 벗어나 글이 엉뚱한 곳으로 흐르게 되고 주제와 상관없는 것을 들여와 글을 망치게 된다. - P37

아무리 뛰어난 헬스트레이너의 지도를 받아도 실제 몸을 쓰지 않으면 복근을 만들지 못하는 것처럼, 아무리 훌률ㅇ한 작가의 가르침을 받아도 계속 쓰지 않으면 훌륭한 글을 쓸 수 없다. 글쓰기에는 철칙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많이 읽어야 잘 쓸 수 있다. 책을 많이 읽어도 글을 잘 쓰지 못할 수는 있다. 그러나 많이 읽지 않고도 잘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둘째, 많이 쓸수록 더 잘 쓰게 된다. 축구나 수영이 그런 것처럼 글도 근육이 있어야 쓴다. 글쓰기 근육을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쓰는 것이다. 여기에 예외는 없다. 그래서 ‘철칙‘이다. - P62

여기서 ‘읽혔다‘는 ‘팔렸다‘와 같은 뜻이다. 출판계에서는 지식산업의 품격을 지키려고 ‘팔렸다‘는 말보다 ‘읽혔다‘는 말을 쓰는 관행이 있다. - P63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독서광이 되어야 한다. - P79

글쓰기 근육이 부실한 사람은 무엇보다 첫 문장을 쓰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 P81

독해력을 기르는 방법은 독서뿐이다. 결국 글쓰기의 시작은 독서라는 것이다. 독해력은 글쓰기뿐만 아니라 모든 지적 활동의 수준을 좌우한다. 눈으로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텔레비전을 보거나 강연을 들을 때도 핵심을 잘 파악하지 못한다. 독해력은 체력과 비슷하다. 체력이 부족한 사람은 어떤 스포츠도 잘 할 수 없다. 독해력이 부족한 사람은 글쓰기만이 아니라 논리적 사고를 요구하는 어떤 과제도 잘해내기 어렵다. - P100

외국어로 쓰는 글도 모국어를 제대로 하는 사람이 더 잘 쓸 수 있다.....
우리나라 대학이 교수를 채용할 때 영어 강의 능력을 가진 사람을 지나치게 우대하는 것은 어린이 영어몰입교육만큼이나 어리석은 짓이다. - P109

통역이나 번역도 잘하려면 한국어를 잘해야 한다. 영어로는 다 이해한다고 해도 한국어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말의 뜻과 느낌을 정확하게 전하지 못한다. 영어책을 잘 읽어도 우리글을 제대로 쓸 줄 모르면 좋은 번역을 할 수 없다. 우리글은 잘못 번역한 영어문장에 심하게 오염되어 있다. 영어 실력이 없어서 잘못 번역한 게 아니다. 우리말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다. - P110

말 못 하는 아기한테도 자주 말을 걸어주어야 한다. 아기는 부모가 하는 말을 이해하려고 무의식적으로 노력한다. 부모가 다정하게 말을 걸어줄 때 아기의 뇌에서는 행복한 비상사태가 일어난다. 청각신경이 포착한 음성 정보를 해독하고 적절한 대응을 하기 위해 아기의 뇌는 언어를 담당하는 영역에 더 많은 뉴런을 배치하고 교신을 더욱 강화한다. 따라서 반쪽짜리 말을 하는 아이라도 완전한 문장으로 대화해야 한다. ‘찌찌‘ ‘때때‘ ‘응가‘ 같은 반쪽짜리 말을 가르치고, 아이가 그런 말을 한다고 해서 부모도 같은 방식으로 말하면 아이의 뇌는 쉬운 숙제를 받은 학생처럼 느긋하젠다. 더 많은 신경세포를 배치하고 더 많은 시냅스를 만들어 더 효율적으로 교신하려는 노력을 덜하게 된다.
아이가 언어 능력을 온전하게 발전시키도록 하려면 부모가 우리말을 정확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 모든 부모가 우리말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말 공부를 새로 할 수도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말을 바르고 예쁘게 쓴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이다. - P119

독서도 억지로 하면 좋지 않다. ‘선행학습‘이라는 괴상한 풍조를 독서에 가져다 붙이는 것도 현명한 일이 아니다. 소위 추천도서 목록이란 것을 따라가면서 무작정 책을 가져다 먹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도움이 되기보다는 부작용을 낼 가능성이 더 크다. - P123

가장 좋은 독서법은 아이들 스스로 흥미를 느끼는 책을 읽게 하는 것이다. ‘어린이를 위한 고전 100선‘이니 ‘00추천 청소년 필독서 50선‘이니 하는 광고에 현혹되지 마시라. ‘어린이 논ㄴ어‘니, ‘어린이 사서삼경‘이니, ‘청소년용 그리스 로마 신화‘니 하는 책을 재미있게 읽을 아이는 거의 없다. 어린이 독서는 책 읽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독서를 생활 습관으로 만들고 자신이 읽은 것을 활용해 무엇이든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버릇을 들이면 된다. 많은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독서 교육의 목표는 아니다. 재미를 붙이기만 하면 아이들은 스스로 자기 나름의 독서 이력을 만들어간다. 만화, 판타지소설, 무협소설, 추리소설, 역사소설, 잡지, 그 무엇이든 괜찮다. - P124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책을 고르는 기준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인간, 사회, 문화, 역사, 생명, 자연, 우주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개념과 지식을 담은 책이다. 이런 책을 읽어야 글을 쓰는 데 꼭 필요한 지식과 어휘를 배울 수 있으며 독해력을 빠르게 개선할 수 있다.
둘째는 정확하고 바른 문장을 구사한 책이다. 이런 책을 읽어야 자기의 생각을 효과적이고 아름답게 표현하는 문장 구사 능력을 키울 수 있다. 한국인이 쓴 것이든 외국 도서를 번역한 것이든 다르지 않다.
셋째는 지적 긴장과 흥미를 일으키는 책이다. 이런 책이라야 즐겁게 읽을 수 있고 논리의 힘과 멋을 느낄 수 있다. 좋은 문장에 훌륭한 내용이 담긴 책을 즐거운 마음으로 읽으면 지식과 어휘와 문장과 논리 구사 능력을 한꺼번에 얻게 된다.

이런 책은 친구로 만드는 게 좋다. 친구는 오랜 세월 좋은 일은 함께 즐기고 아픔은 서로 나누며 자주 어울려야 친구다운 친구다. 어떤 책과 친구가 되려면 한 번 읽고 말 것이 아니라 여러 번 읽어야 한다. 시간이 들지만 손으로 베껴 쓰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그런 책 목록을 제안하기에 앞서 우선 세 권을 소개한다. <토지>와 <자유론> 그리고 <코스모스>다. 이 책들은 두세 번이 아니라 열 번 정도 읽어보기를 권한다. - P136

벌렁 누우면 양 손가락 끝이 벽에 닿는 0.7평짜리 독방에서 책 읽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던 때였기에 (토지) 1부와 2부를 다섯 번 읽게 되었다. 그 직후 사흘 동안 <항소이유서>를 썼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어쩐지 내 글이 달라진 것 같아!‘ - P139

나는 <토지>를 우리말 어휘와 문장의 보물 창고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원하는 만큼 꺼내 써도 되는,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 보물 창고. - P140

책 한 권이 때로는 기적이라 해도 좋을 만한 정신의 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코스모스>가 바로 그런 책이라고 생각한다. - P150

어떻게 하면 잘못 쓴 글을 알아볼 수 있을까? 쉽고 간단한 방법이 있다. 텍스트를 소리 내어 읽어보는 것이다. 만약 입으로 소리 내어 읽기 어렵다면, 귀로 듣기에 좋지 않다면, 뜻을 파악하기 어렵다면 잘못 쓴 글이다. 못나고 흉한 글이다. 이런 글을 읽기 쉽고 듣기 좋고 뜻이 분명해지도록 고치면 좋은 글이 된다.별로 어려울 것이 없다. - P170

말과 글 중에는 말이 먼저다. 말로 해서 좋아야 잘 쓴 글이다. 글을 쓸 때는 이 원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 P174

글은 단문이 좋다. 문학작품도 그렇지만 논리 글도 마찬가지다. 단문은 그냥 짧은 문장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길어도 주어와 술어가 하나씩만 있으면 단문이다. 문장 하나에 뜻을 하나만 담으면 저절로 단문이 된다. - P199

누누이 강조한 것처럼, 글을 쓰려면 근육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 글쓰기 근육을 키우는 방법을 살펴보자. 우리는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글쓰기 근육을 만들려면 아날로그 방식으로 훈련해야 한다. 최대한 옛날 사람들이 하던 것과 비슷한 방법으로 글을 써야 한다는 이야기다. - P222

티끌은 모아봐야 티끌이라는 우스개가 있다. 하지만 글쓰기는 그렇지 않다. 글쓰기는 티끌 모아 태산이 맞다. 하루 30분 정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수첩에 글을 쓴다고 생각해 보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매주 엿새를 그렇게 하면 180분, 세 시간이 된다. 한 달이면 열두 시간이다. 1년을 하면 150시간이 넘는다. 이렇게 3년을 하면 초등학생 수준에서 대학생 수준으로 글솜씨가 좋아진다. - P228

글을 길게 쓰는 것보다 ‘짧게 잘 쓰기‘가 어렵다. 똑같은 정보와 논리를 담는다면 2,000자보다는 1,000자로 쓰는 게 낫다. 이유는 자명하다. 읽는 데 시간이 덜 드는 만큼 경제적 효율성이 높다. 짧은 글이 좋은 이유는 또 있다. 같은 내용을 절반 분량에 담으려면 어떤 방법으로든 압축을 해야 한다. 압축하려면 군더더기를 없애야 하기 때문에 글의 예술성이 높아진다. - P231

굳이 없어도 좋은 접속사는 과감하게 삭제해야 한다. 단문으로 글을 이어나갈 때 문장 사이에 매번 ‘그러나‘ ‘그리고‘ ‘그러므로‘ ‘그런데‘ ‘그렇지만‘ 같은 접속사를 넣는 것은 나쁜 습관이다. 문장은 뜻을 답고 있다. 그 뜻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면 접속사가 없어도 된다. 단문을 기본으로 쓰고 불필요한 접속사를 생략하기만 해도 글을 조금은 압축할 수 있다. - P237

글쓰는 사람이 빠지기 쉬운 허영심은 지식과 전문성을 과시하려는 욕망이다. 이 욕망에 사로잡히면 난해한 글을 쓰게 된다.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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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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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라는 길이길이 기억될 다소 충격적인 첫 문장으로 시작되는 책. 성석제의 문장처럼 말맛이 느껴져서 신명나게 읽다가도 뾰족한 문장에 잠시 읽기를 멈추게 된다. 딸에게는 아버지를 평생 알아왔던 세월보다, 장례식장에서 보낸 며칠이 아버지를 이해하기엔 더 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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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 P7

고통스러운 기억을 신이 나서 말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마흔 넘어서야 이해했다. - P27

농부 주제에 작은아버지는 해가 중천에 솟은 뒤에야 숙취에 시달리는 몸을 간신히 일으킨다. 작은엄마가 윗목에 차려놓은 밥을 먹은 뒤 도살장에 끌려가는 늙은 황소보다 느릿느릿 일 나갈 채비를 한다. 그의 첫번째 필수품은 낫도 아니요 삽도 아니다. 작은아버지는 마당 한편에 쌓아놓은 궤짝에서 소주 다섯병을 꺼내 지게에 싣는다. 그게 그의 일용할 양식이다. 밭에 도착한 작은아버지는 그날의 일감을 눈대중하고 일의 양에 따라 한고랑, 혹은 두고랑마다 소주병을 하나씩 고이 안착시킨다. 참고로 그 시각 작은엄마는 남자들이나 하는 논농사를 짓느라 구슬땀을 흘리는 중이다. 작은아버지는 오직 술을 마실 목적으로 고추를 따고 들깨를 벤다. 다섯병의 소주를 다 마시면 몇시가 됐든 그걸로 그날의 작업 끝이다. - P40

아버지는 뼈속까지 유물론자였다. 부모가 여든 넘도록 장지 마련은 고사하고 영정사진 찍어둘 생각조차 못한 불효자식이었으나 아버지의 유지가 그러하였으니 따르면 될 터였다. 역시 유물론은 산뜻해서 좋다. - P94

그런데 죽은 아버지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살아서의 모든 순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자신의 부고를 듣고는 헤쳐 모여를 하듯 모여들어 거대하고도 뚜렷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 P181

언제 왔는지 상이용사의 얼굴이 벌써 시뻘겠다. 식전부터 술을 마신 모양이었다.하기야 술꾼에게 시간이 대수랴. 술꾼은 시간을 뛰어넘은 자, 아니 어쩌면 어느 시간에 못 박혀 끊임없이 그 시간으로 회귀하는 자일지 모른다. - P193

아직 사회주의를 모를 때의 아버지, 열댓의 아버지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질곡의 인생을 알지 못한 채 해맑게 웃고 있었다. 사진 속 소년 둘은 입산해 빨치산이 되었고, 그중 한 사람은 산에서 목숨을 잃었다. 형들을 쫓아다니던 동생은 형을 잃고 남의 나라에서 제 다리도 잃었다. 사진과 오늘 사이에 놓인 시간이 무겁게 압축되어 가슴을 짓눌렀다. - P195

죽음으로 비로소 아버지는 빨치산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로, 친밀했던 어린 날의 아버지로 부활한 듯했다.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P231

천수관음보살만 팔이 천개인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천개의 얼굴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몇개의 얼굴을 보았을까? 내 평생 알아온 얼굴보다 장례식장에서 알게 된 얼굴이 더 많은 것도 같았다. - P249

아버지는 이곳에 묻히고 싶을까? 아무도 없이 적적하게 깊은 산속에 홀로? 아버지는 백운산에 가장 오래 있긴 했지만 이산 저산 떠돌며 48년 겨울부터 52년 봄까지 빨치산으로 살았다. 아버지의 평생을 지배했지만 아버지가 빨치산이었던 건 고작 사년뿐이었다. 고작 사년이 아버지의 평생을 옥죈 건 아버지의 신념이 대단해서라기보다 남한이 사회주의를 금기하고 한번 사회주의자였던 사람은 다시는 세상으로 복귀할 수 없도록 막았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는 고작 사년의 세월에 박제된 채 살았던 것이다. 아버지는 더 오랜 세월을 구례에서 구례 사람으로, 구례 사람의 이웃으로 살았다.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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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대신 시애틀, 과외 대신 프라하 - 사교육비 모아 떠난 10년간의 가족 여행기
이지영 지음 / 서사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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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서 아이를 글로벌하게 키우고 싶은
이 시대 학부모들의 유학경험담? 장기여행기?
혹은 사교육비 모아서 방학마다 어학연수 보내는
꿀팁 모음집 정도일 거라고 착각했다.

그러면서도 이 책을 읽기로 선택한 건
음... 사실은 나도 그러고 싶은
이 시대의 예비 학부모니께요.

그런데 착각도 이런 대착각일 수가!
약 10년간 짧게는 3박 4일, 길게는 8주간
미국, 태국, 중국, 프랑스, 체코, 홍콩을
가족이 함께 여행한 걸 풀어낸 에세이가
이 책의 정체였다니, 두둥!

제목을 보고 ‘공부‘ 얘기가
분명히 들어있을 거라고 착각할 만도 하다.
(나만 그런 거 아니라고 말해주세여 제발)
다른 과목은 몰라도 우리 애가 영어 하나만은 기똥차게 해요
그거면 된 거 아닌가요 라는 현지 영어교육에 몰빵한
젊고 대담하고 씩씩한 부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니...

사실 목차를 훑어보고
너무나도 평범한 여행지와 짧은 일정에 깜짝 놀랐지만
이건 이것대로 깨달음의 깊이가 다르다.
둘째가 6살일 때 미국 8주 여행을 시작으로
중2 때 3박 4일 홍콩 여행으로 마무리하기까지
아이들의 성장과정이 독자의 눈에도 한눈에 그려진다.
오은영 박사님이 육아란 아이를 독립시키기 위해 교육하는 거랬나
아무튼 ‘독립‘이 육아의 최종도착지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
그 말대로라면 이집 아이들도
참 대견하게 독립을 향해 나아가고 있고
그만큼 키워낸 건 가족여행이 큰몫을 했을 터.

예를 들어, 브로드웨이에서 <라이온 킹>을 보았기 때문에
이집 아이들은 공연을 보며 여러 팬층과 어울리기 위해
혼자 고속버스를 타고, 혼자 밥을 사먹고,
택배 보내는 법과 은행 이용하는 법 등을 자발적으로 익혔다.
뮤지컬과 관련한 자료나 문학작품 등을 찾아보며
배경지식을 넓혀갔고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찾아들었다.
조금 더 크고선 바람직한 공연 문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확립하고
뮤지컬 계통의 진로를 꿈꾸기도 하며 성장해나갔다.
그래, 이게 진짜 공부지! 그렇고말고!

사실 내가 우리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공부도 이런 공부다.
책도 물론 중요하지만 책에서 본 걸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체득시키고 싶다.
경험을 확장시켜 생각도 넓어졌으면 좋겠다.

평일에 짬을 내어 동물원에 갔을 때
그렇게 좋아하던 아빠사자도 보고
아빠가 보여주고 싶었던 호랑이도 보고
엄마가 좋아하는 얼룩말도 봤지만
아이가 기억하는 건 엄마아빠가 보여주고 싶던 것과는 달랐다.
아이는 사자를 볼 때 유리창에 붙어 있던 꿀벌을 이야기하고
얼룩말을 볼 때 진동하던 응가냄새에 열광했다.
그림책 말고 실물로 볼 수 있는 큰 동물들보다
발 아래를 지나가는 개미를 보느라
계속해서 쪼그리고 앉아 고개를 숙였다.

엄마아빠가 의도한 것과는 달라도 한참 달랐지만
이 또한 아이의 성장에 0.1mm의 자양분이 되겠지.
평범하다고 생각한 3박 4일 여행기도
아이들을 성장시키고 가족을 똘똘 뭉치게 해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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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대신 시애틀, 과외 대신 프라하 - 사교육비 모아 떠난 10년간의 가족 여행기
이지영 지음 / 서사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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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니 뭐니 해도 가장 신기했던 건 어느 서점을 가도 문제집, 학습지류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우리나라처럼 문제집을 푸는 것이 공부라고, 교육이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가능한 서점의 모습이 아니었을지. 문제집이 없는 서점. 진짜 서점의 모습 같아 부러웠다. 그래서 더 오래 머물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 P37

부부는 20만 원 가지고는 피 터지게 싸울 수 있다. 그러나 200만 원일 때는 옆으로 와서 서주는 거다. 무너질 정도면 꽉 잡아주는 거다. - P53

아이는 아무리 보아도 완벽한 동양인이었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무리 보아도 완벽한 백인이었다. 순간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고 아이들이 여기저기 다니며 놀고 있는 동안에도 찜찜한 기분이 사라지지 않았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들에게 아까 옆에서 놀던 여자아이 기억냐느냐고 말을 꺼냈다.
"엄마가 실수를 한 거 같아. 엄마는 너무나 당연하게 그 아이가 일본이나 중국 아이일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어디서 왔냐고 물어봤는데 시애틀에서 왔다길래 거기로 이미 온 아이구나 했어. 근데 할머니, 할아버지가 완전히 백인이더라고. 입양되었을 수도 있고, 재혼 가정일 수도 있는데 엄마가 선입견을 품고 물어본 거 같아. 혹시 "Where are you from?‘ 이라고 물어서 그 아이가 기분이 나빴을까?"
"아닐걸? 시애틀에 사니까 그렇게 대답한 거겠지."
아이라 그런지 단순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혹시 나처럼 그 아이에게 "where are you from?" 을 묻는 사람이 많은 건 아닌지,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여러 인종과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머리로는 알아도 자연스럽게 여기진 못했구나 반성했다. 어떤 형태의 가족이면 어떤가? 그렇게 따뜻한 표정으로 손녀를 지켜보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신데 말이다. 조금 부끄러웠지만 마음만큼은 따뜻했다. - P62

아이들은 어느새인가 쿨쿨 잠이 들어버렸다. 부모와 함께 있을 때 아이들은 상황이 어떠하든 안전하다고 느낀다. 만약 지금이라면 "괜찮은 거야? 우리 무사히 갈 수 있어?" "아빠, 길 알아?" 하며 의심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이때가 그나마 그런 안전함을 줄 수 있는, 부모로서의 행복한 시기였음을 지금은 안다. 엄마, 아빠를 온전히 믿고 곯아떨어진 아이들을 안전하게 데려가기 위해 우리는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험난한 안갯길을 초인적인 집중력으로 지나왔다. - P91

이 모든 것이 브로드웨이에서 본 <라이온 킹>이 일으킨 나비 효과다. 그래서 지금 하는 우리의 결정, 경험, 생각들은 작지만 귀하다. 많은 것의 시작, 거대한 변화의 작은 날갯짓이니까. - P104

여행은 그 장소에서 끝나지 않는다. 과거의 일과 연결되고, 이후의 경험과 통하고, 다른 여행과 이어진다. 아무 떄고 넘나들며 오갈 수 있는 신비한 사차원 통로 같다. - P165

똘레랑스를 한눈에 보여준 곳은 정원이다. 걷고 또 걷다 보면 중간중간 만나게 되는 정원들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잔디가 보이면 그냥 누워도 되고,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의자를 끌어다 앉을 수도 있고, 잠깐씩 졸다 가기에도 좋았다. 화단에는 비슷한 색이나 같은 종끼리 모아서 심는 우리식 꽃밭과 달리 여러 종류의 꽃이 마구 뒤섞여 있었다.길고 짧은 것, 크고 작은 것, 다양한 색을 가진 꽃들이 섞여 있는데 신기하게도 전혀 산만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무척 조화롭고 안정감 있게 보였다.
아, 저런 게 똘레랑스구나! 다르지만 함께 할 수 있는 것. 달라서 오히려 화려한 것. 서로를 인정할 때 더욱 보기 좋은 것. - P202

돌아와서도 뱅센느 숲이 자꾸만 생각났다. 파리 여행 중 제일 좋았던 곳이지만 어떤 점이 좋았냐고 묻는다면 표현하기가 어렵다. 여행 책자에 올리라고 하면 역시 사진 한 장과 짧은 문장 몇 줄이 되겠지. 감정의 크기는 정보의 양과 비례하지 않는다.뱅센느 숲이 알려준 깨달음이다. - P223

일상을 보내다가 문득문득 떠오르는 풍경은 유명 관광지가 아니다. 지명을 대기 어려운, 그곳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담긴 장소들이다. 그래서 여행을 가면 숙소 근처 마트나 식당, 동네 놀이터, 서점 등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같은 이유로 프라하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수도원에서 내려오는 골목길이라고 말하고 싶다. 마치 내가 현지인인 듯 착각하게 만드는 일상의 공간이라서. - P239

남편의 손을 살며시 잡고 걸었더니 뒤에서 큰딸이 우리의 뒷모습을 사진으로 남긴다. 아이 하나씩 손 붙잡고 다녀야 했던 시기를 지나 이제 겨우 편하게 남편 손을 잡는다. 이제 겨우 앞만 보고 걷는다. 그리고 그 모습을 아이가 사진으로 남긴다. - P311

우리가 더 낯선 곳으로 갈수록 가족의 의미가 더 크게 와 닿는 것 같다. 아무도 우리를 챙기지 않는 곳에서, 아무도 우리를 모르는 곳에서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하고 귀하기 떄문이다. 서로가 아니면 의논할 사람이 없으니 남편과도 좋은 파트너가 되어야 하고, 아이들도 부모가 아니면 자신들의 부족함을 이해하고 채워줄 사람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여행 하나하나를 이렇게 회상한다. 함께 했기에 진짜 행복한 ‘해피 투게더‘였다고. -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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