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 - 폴란드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타데우쉬 보로프스키 외 지음, 정병권.최성은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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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는 연못에다 또다시 병마개를 집어던지고는 직물업자에게 그 마개를 가리켜 보였다.
"고틀리프, 보게나! 열번째 파문이 가장자리로 퍼져나갔다가 되돌아오는 게 보이나? 파문은 언젠가는 되돌아오는 법일세. 거기, 처음 생겨난 곳으로."

-파문은 되돌아온다 / 볼레스와프 프루스--111쪽

"....내가 보기에 모든 위대한 사랑에는 굴욕적이고 우스운 면이 있는 것 같아."
"굴욕적인 면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빅토르가 천천히 말했다. "그런데 우스운 면도 있다고?"
"굴욕과 웃음이 결합될 때의 그 어이없는 느낌을 너는 하넌도 맛본 적이 없구나?"
"응, 한번도 없었어."
"그것 봐. 그렇다면 너는 한 번도 진심으로 사랑을 해본 적이 없는 거야."

-빌코의 아가씨들 / 야로스와프 이바시키에비츠--2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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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 년 Mr. Know 세계문학 33
A.스뜨루가쯔키 외 지음 / 열린책들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순전히 제목에 끌려서 구입한 책.....이 아니고 알라딘에서 50% 세일을 하길래 잡지 살 때 배송비 아끼려고 같이 산 책.
잡지도 무료배송이 되면 차암~ 좋을 텐데 그러질 못해서 결국 나는 배송비 대용으로 3900원짜리 듣보잡 책을 같이 넣었다.

받아보니 엄청 가벼운 페이퍼북인데다가 종이 낱장의 두께는 또 두꺼워서 훌렁훌렁 읽어버렸.....다가 아니고
실은 의외로 재미있어서 단번에 읽어버렸다!
내가 이 책에 대해 알고 있는 사전정보라고는
"폭서가 찾아온 레닌그라드에 사는 한 과학자에게 벌어지는 이상한 일", 딱 요만큼.
그래서 살짝 기후에 대한 과학소설인가 싶기도 했고, 재난소설인가 싶기도 했다.
꺅. 이쯤에서 나 너무 멍청해 보여.

이야기는 찌는 듯이 더운 레닌그라드에 사는 4명의 과학자로부터 시작된다.
각각 천문학, 정밀공학, 물리학 등 분야는 다르지만
이들에게 어느 날 정체모를 누군가로부터 지금 하는 연구를 당장 중단하라는 압력이 들어온다.
하지만 미드 <빅뱅이론>에서도 알 수 있듯, 과학자들의 고집과 자만은 또 대단한지라
어떤 건 쫌스럽고 어떤 건 무시무시하고 어쨌거나 상상할 수도 없는 당근과 채찍에도 불구하고 연구를 계속하려 한다.
그런 와중에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한 과학자는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되고...
결국 이들 과학자들은 현실에 굴복하고 '당근'을 받아들이는 부류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를 계속하려는 부류로 나눠지게 된다.
그냥, 그렇게 나눠지는 것에서 이 소설은 끝.
어쨌거나 세상이 끝나려면 아직 10억년쯤은 남았으니까.

압력을 가한 이들이 누구였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아마도 문명화된 외계의 누군가였겠지.
혹은 당시에 정치의 지배를 받는 학문을 신랄하게 풍자한 것이리라.
실제로도 이 소설 안에는 학계의 부패, 학문의 관료 제도화, 성 모럴의 추락, 알코올 중독, 출세 지상주의 등
사회의 여러 문제들이 알듯 모를 듯 언급되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역시나 러시아 소설은 이름 때문에 길이 막힐 때가 종종 있다.
주인공 '드미뜨리 알렉세예비치 말랴노프'는 '딤까'로도 불리고, '디마'로도 불리며, 간혹 '딤낀'으로도 불린다.
문맥만 살짝 놓쳐도, 엥 이건 또 누구야, 하는 멋적은 상황이 발생하기 딱 좋다.
덕분에 책 맨 앞장에 포스트잇 붙여놓고 이름 써 가면서 읽었다는 건 나만 아는 비밀.
이는 요네하라 마리가 <문화편력기>에서 말한 '절대로 같은 단어를 쓰지 않으려는 러시아인의 미의식' 중 하나일까?
정말로 그들은 '몇 번이고 같은 단어를 되풀이하는 것은 촌스럽기 그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나같은 얼뜨기 독자는 어떡하라고!
사실 이 책도 번역자가 한국독자들 알아먹기 쉬우라고 좀 수정을 해놓은 걸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정도 따라가기도 벅찼다니까요.
주인공의 부인이 '이르까'도 됐다가 '이리나'도 될 수 있다는 건 나는 정말 몰랐습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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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 년 Mr. Know 세계문학 33
A.스뜨루가쯔키 외 지음 / 열린책들 / 2006년 8월
구판절판


"...나한테 어째서 너나 글루호프가 다가올 대혼돈의 제1차 희생물로 선택되었는지 묻지 마. 너와 글루호프 연구의 어떤점이 우주의 항상성을 위협하는 거냐고 묻지 마. 그리고 항상성 우주의 그 어떤 메커니즘에 대해서도 묻지 마. 나는 아무것도 몰라.에너지 보존 법칙이 어떻게 유지되는가를 우리가 모르듯이. 모든 일은 에너지를 보존하는 방식으로 발생될 뿐인 거지. 그리고 모든 일은 너와 글루호프의 연구가 10억 년쯤 후에 수백만의 다른 연구와 결합되어 마침내 지구의 종말을 유도해 내는 일이 없도록 진행될 거야 물론 이건 추상적인 의미에서의 지구의 종말이 아니고, 우리가 오늘날 관찰하고 있는 이 세상, 10억 년 동안 존재해 온 이 세상, 그리고 너와 글루호프가 엔트로피의 정복을 위해 미시적인 안목으로 너희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위협하고 있는 이 세상에 관한 문제야.-1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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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이 다다시, 유니클로 이야기
가와시마 고타로 지음, 양영철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남자친구에게 캘빈클라인 브리프를 선물해 줬는데 예상보다 훨씬 좋아했다.
또 선물해 주고 싶었지만 문제는 가격.
내 속옷도 그렇게 비싼 거 사려면 손이 덜덜 떨린단 말이다. (속옷은 역시 홈쇼핑?)
그러나 남성용 브리프를 홈쇼핑에서 사려니 밴드에 써있는 브랜드네임이 너무 촌스러워서 안 되겠고
이미 남자친구에게 트라이 속옷은 아웃 오브 안중이 되어 버린 상황. 

역시나 해답은 유니클로에 있었다.
밴드에 브랜드네임이 써 있지도 않고 질도 좋아보이는데다가 예쁘다.
게다가 2개에 12900원이라는 놀랄만한 가격!
캘빈클라인 하나 살 돈으로 유니클로에서는 7개를 살 수 있다니!!!
그 때부터 나는 유니클로의 노예.

특히 유니클로가 제일 좋은 점은 언제 어느 매장을 가든 생각해 두었던 상품이 어김없이 진열돼 있다는 것.
전세계 남녀노소가 유행에 상관없이 입을 수 있는 캐주얼 의류를 만들자,는 것이
유니클로의 CEO 야나이 다다시의 이념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고마운 이념.

그런데 유니클로가 일본을 넘어 한국으로 뉴욕으로 죽죽 뻗어나갈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 있었을까.
유니클로만큼 싼 캐주얼 의류는 사실 쎄고 쎘는데.
해답은 야나이 다다시의 경영방침에 있었다.
지금까지 같은 업종의 다른 회사들은 생상자 따로, 유통업체 따로, 판매처 따로, 모두가 따로따로였는데
유니클로는 직접 생산해서 직접 판매하는 이른바 SPA 방식을 과감하게 채택한 것이다.
덕분에 대량생산, 일괄발주, 완전구매, 현금결제를 통한 비용절감 효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생산'이라는 상류와 '고객의 소리'라는 하류는 급격하게 가까워진 건 당연한 얘기고.
그래서 플리스, 히트텍이라는 공전의 히트상품을 싸게, 그리고 많이 팔 수 있었던 것.

사실, 히트텍은 정말 최고다. 정말 따뜻하고 가볍고 예쁘기까지 하니까.
요즘 언니야들이 하는 말로 하면 정말 '깔별로' 다 갖고 싶을 지경이다.

그런데, 나처럼 그냥 유니클로가 좋아서 이 책을 읽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그건 잠깐 생각해 보아야 할 일.
제목은 <야나이 다다시 유니클로 이야기>지만, 사실 '유니클로 이야기'라기보다는 '야나이 다다시'의 평전 같은 거다.
그러니까 나처럼 '히트텍은 도대체 누가 만든 거야?', '유니클로에서는 어떤 디자이너가 일하지?'
'일본, 한국, 뉴욕의 사람들은 유니클로를 어떻게 생각할까?' 블라블라 등등등, 유니클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이 책은 그 방향에서는 조금 벗어난다는 얘기다.
그저 반복되는 얘기라곤 야나이 다다시 사장이 유니클로를 어떻게 일으켜 세웠고
7전 8기의 역경을 어떻게 헤쳐나갔느냐 하는 것뿐.
그리고 사실, 책을 읽고 나면 이 야나이 다다시라는 사람에 대한 인간적인 호감도는 거의 바닥을 치게 될 수도 있다.
'합리적'이라는 듣기 좋은 단어로 포장해 놓긴 했지만 진실을 말하자면 '매정한' 사람이기 때문.
자신에게 엄격한 만큼 타인에게도 엄격해서 직원들이 감당 못 할 만큼의 기대를 갖고
그 자리가 버거워 떠나려는 직원들은 빈말로라도 붙잡지 않는다.

하긴, 그렇게 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물러터진 나는 그냥 그의 책이나 읽고 유니클로 가서 쇼핑이나 해야지.
 


(2010년 1월 24일에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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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꾸뻬, 인생을 배우다 열림원 꾸뻬 씨의 치유 여행 시리즈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이미 유치원에서 배웠다.

하지만 나는 빨간불일 때 차가 오지 않으면 빠른 걸음으로 길을 건너고
껌을 씹다 단물이 빠지면 길바닥에 뱉기도 한다.
이때는 뱉은 껌을 내가 밟을 수도 있으므로 고개를 뒤로 돌리며 퉷, 하고 멀리 뱉어내는 기술이 필요하다.
해도 티 안 나는 일들은 슬그머니 미뤄놓고 다 했다고 뻥치기도 하고
누군가 비밀이라고 한 얘기를 절친에게는 슬쩍 풀어놓기도 했으며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면, 뒤에서는 욕할지언정 앞에서는 입안의 혀처럼 굴기도 했다.
일부러 상처를 줄 말들만 골라서 최대한 냉정하게 해보기도 했으며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 며칠 동안 치밀하게 계획을 짜기도 했었다.

이미 유치원 때 그러면 안 된다고 배웠지만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는 '기술' 쯤이라고 여겼달까.
혹은, 다 그러는데 나만 고고하게 있으면 손해라는 '계산'을 배웠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꼬마 꾸뻬는 나쁜 어른이 될 확률이 나보다는 현저히 적을 테지.
이유는 바로 그의 '수첩' 때문.
꼬마 꾸뻬는 인생수업에서 배우는 교훈들을 작은 수첩에 적어나간다.
동물원에 갔다가 비가 와서 화가 났었지만 그 비 때문에 관람객이 적어 오히려 동물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날은,
"인생에 있어 늘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좋은 면을 볼 필요가 있다."는 문장을 수첩에 쓰고,
다른 반 여자아이인 아망딘에게 말을 걸까 말까 노심초사할 때는 아빠와 상의한 다음
"여자애들한테는 늘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은 해야 한다."고 쓴다.
그 수첩에는 소소한 일상뿐 아니라 전쟁과 계급에 대한 꼬꼬마의 시선까지 담겨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염려스러운 점은,
꼬마 꾸뻬 역시 정신과 의사인 아빠와 전문직을 가진 엄마 사이에서 자란 아이라는 것.
기본적으로 괜찮은 머리를 물려받았고 냉장고는 언제나 가득 채워져 있으며 엄마아빠 사이도 좋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사는 여유가 있어서 걱정의 '기준'이 다를 수도 있다는 얘기.
일테면 짝꿍 기욤의 아버지는 점심시간에만 문을 여는 식당의 요리사고, 어머니는 가정부다.
축구는 잘 하지만 머리는 별로 좋지 않아 언제나 꼬마 꾸베의 답안지를 커닝한다.
중국에서 온 이민 2세대(?)인 빈은 부모님이 없다.
키가 작고 뚱뚱하고 공부도 못해 '뚱땡이'라는 놀림을 받는 으젠은
친구가 없어 두 살이나 많은 동급생인 빅토르하고만 어울릴 수있다.
아르튀르는 꼬마 꾸뻬네보다 몇 배는 부자지만, 그의 부모는 사이가 좋지 않다.
심지어 아르튀르의 엄마는 꼬마 꾸뻬의 아빠를 사모한다.
꼬마 꾸뻬가 좋아하는 여자아이인 아망딘 역시, 지저분한 아파트에 살고 엄마아빠는 늘 싸움을 한다.
이 아이들에게 꼬마 꾸뻬처럼 작은 수첩을 쓸 여유가 있었을까.
있다 하더라도 꼬마 꾸베가 쓴 내용보다 훨씬 어두운 이야기들이었으려나.
모두가 꼬마 꾸뻬처럼 행복한 아이라면 좋겠지만
거기도 그렇고 여기도 그렇고 유토피아는 아니라서....

한 챕터마다 꼬마 꾸뻬가 수첩에 쓴 '교훈'들이 나오는데 당연하게도 유치원에서 이미 배운 내용들이다.
이미 배웠으나 또 이미 까먹은 교훈들.
그 중에서 요즘의 내가 가장 가슴에 새겨두어야 할 문장은 바로 이것.

"말을 할 때는 지금 내가 누구에게 말을 하고 있는지 늘 생각할 것."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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