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꾸뻬, 인생을 배우다 열림원 꾸뻬 씨의 치유 여행 시리즈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이미 유치원에서 배웠다.

하지만 나는 빨간불일 때 차가 오지 않으면 빠른 걸음으로 길을 건너고
껌을 씹다 단물이 빠지면 길바닥에 뱉기도 한다.
이때는 뱉은 껌을 내가 밟을 수도 있으므로 고개를 뒤로 돌리며 퉷, 하고 멀리 뱉어내는 기술이 필요하다.
해도 티 안 나는 일들은 슬그머니 미뤄놓고 다 했다고 뻥치기도 하고
누군가 비밀이라고 한 얘기를 절친에게는 슬쩍 풀어놓기도 했으며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면, 뒤에서는 욕할지언정 앞에서는 입안의 혀처럼 굴기도 했다.
일부러 상처를 줄 말들만 골라서 최대한 냉정하게 해보기도 했으며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 며칠 동안 치밀하게 계획을 짜기도 했었다.

이미 유치원 때 그러면 안 된다고 배웠지만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는 '기술' 쯤이라고 여겼달까.
혹은, 다 그러는데 나만 고고하게 있으면 손해라는 '계산'을 배웠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꼬마 꾸뻬는 나쁜 어른이 될 확률이 나보다는 현저히 적을 테지.
이유는 바로 그의 '수첩' 때문.
꼬마 꾸뻬는 인생수업에서 배우는 교훈들을 작은 수첩에 적어나간다.
동물원에 갔다가 비가 와서 화가 났었지만 그 비 때문에 관람객이 적어 오히려 동물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날은,
"인생에 있어 늘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좋은 면을 볼 필요가 있다."는 문장을 수첩에 쓰고,
다른 반 여자아이인 아망딘에게 말을 걸까 말까 노심초사할 때는 아빠와 상의한 다음
"여자애들한테는 늘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은 해야 한다."고 쓴다.
그 수첩에는 소소한 일상뿐 아니라 전쟁과 계급에 대한 꼬꼬마의 시선까지 담겨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염려스러운 점은,
꼬마 꾸뻬 역시 정신과 의사인 아빠와 전문직을 가진 엄마 사이에서 자란 아이라는 것.
기본적으로 괜찮은 머리를 물려받았고 냉장고는 언제나 가득 채워져 있으며 엄마아빠 사이도 좋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사는 여유가 있어서 걱정의 '기준'이 다를 수도 있다는 얘기.
일테면 짝꿍 기욤의 아버지는 점심시간에만 문을 여는 식당의 요리사고, 어머니는 가정부다.
축구는 잘 하지만 머리는 별로 좋지 않아 언제나 꼬마 꾸베의 답안지를 커닝한다.
중국에서 온 이민 2세대(?)인 빈은 부모님이 없다.
키가 작고 뚱뚱하고 공부도 못해 '뚱땡이'라는 놀림을 받는 으젠은
친구가 없어 두 살이나 많은 동급생인 빅토르하고만 어울릴 수있다.
아르튀르는 꼬마 꾸뻬네보다 몇 배는 부자지만, 그의 부모는 사이가 좋지 않다.
심지어 아르튀르의 엄마는 꼬마 꾸뻬의 아빠를 사모한다.
꼬마 꾸뻬가 좋아하는 여자아이인 아망딘 역시, 지저분한 아파트에 살고 엄마아빠는 늘 싸움을 한다.
이 아이들에게 꼬마 꾸뻬처럼 작은 수첩을 쓸 여유가 있었을까.
있다 하더라도 꼬마 꾸베가 쓴 내용보다 훨씬 어두운 이야기들이었으려나.
모두가 꼬마 꾸뻬처럼 행복한 아이라면 좋겠지만
거기도 그렇고 여기도 그렇고 유토피아는 아니라서....

한 챕터마다 꼬마 꾸뻬가 수첩에 쓴 '교훈'들이 나오는데 당연하게도 유치원에서 이미 배운 내용들이다.
이미 배웠으나 또 이미 까먹은 교훈들.
그 중에서 요즘의 내가 가장 가슴에 새겨두어야 할 문장은 바로 이것.

"말을 할 때는 지금 내가 누구에게 말을 하고 있는지 늘 생각할 것."

알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