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 가족 - 과레스키 가족일기
죠반니노 과레스끼 지음, 김운찬 옮김 / 부키 / 2006년 12월
절판


이따금 내 생각의 수도꼭지가 잠긴다. 머릿속은 바람만 가득한 것 같다. 나는 한 줄 쓴 다음 타자기에서 종이를 뽑아 내버린다. 다른 종이를 넣고, 또 다른 담배에 불을 붙인다. 몇 번째 담배에서 생각이 떠오를까? 열다섯 번째, 스물다섯 번째 담배에서?
벌써 세 시간 전부터 낱말들을 조금이라도 걸어 둘 갈고리를 찾고 있다. 그리고 이따금 그것을 찾은 것처럼 한 줄 써 내려갔지만, 낱말들은 잠시 종이 위에 머물러 있다가 아래로 미끄러지곤 했다.
파시오나리아가 또 다른 커피를 갖고 왔다. 커피 잔 안에서도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몇 번째 잔에서? 네 번째 잔에서? 다섯 번째 잔에서?-150쪽

"과거는 맥주 한 잔으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모욕을 주는 사람은 그 모욕을 모래 위에 쓰지만, 모욕을 받은 사람은 청동에 새겨 두는 법이에요."-3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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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식당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0년 2월
구판절판


주방에 있을 때는 김으로 창이 흐려서 몰랐는데, 오전 내내 내렸던 비가 그치고 밖에는 아름다운 석양이 하늘에 깔려 있었다. 마치 지구를 그대로 거대한 굴병에 담가놓은 것 같았다.-80쪽

인스턴트식품에는 감정이며 생각이 전혀 없어서, 감정이 과민해진 내게는 아주 적당한 음식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엄마도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싶어서 인스턴트식품만 먹었을지도 모른다.-2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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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0
하인리히 뵐 지음, 김연수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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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피에 대해 너무 많이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단지 부득이한 경우의 정도 차이는 불가피하다. 그러니 이런 광경에 관해서는 텔레비전과 영화, 혹은 이런 종류의 공포물과 뮤지컬을 참조하기 바란다. 여기에서 무언가가 흐르고 있어야 한다면, 그건 피가 아니다. 아마도 약간의 채색 효과만 내야 할 것이다. 퇴트게스는 다 해진 침대 시트를 즉흥적으로 어설프게 재단해 만든 아랍 족장의 옷을 입은 채 총을 맞고 죽어 있었다. 그러나 순백의 바탕 위의 새빨간 피가 어떤 효과를 내는지는 누구나 알고 있다. 이때 권총은 필연적으로 거의 총 모양의 분무기이고, 의상은 캔버스와도 같기에 여기서는 배수 시스템보다는 현대 회화나 무대 장치에 더 가깝다. 그렇다. 그것은 그러니까 사실이다.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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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꽃 - 1992년 제16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양귀자 외 / 문학사상사 / 199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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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영상은 한번 저장되었다고 해서 움직임을 멈추고 각인되어지지 않는다. 저장된 그 순간부터 기억은 저 혼자의 힘으로 운동을 시작한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처음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영상으로 바뀌어 버리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25쪽

쓱싹쓱싹. 음산한 숫돌의 마찰음을 들으며 사람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긴장과 공포의 순간에도 사람들은 침을 삼킨다. 마치 기름진 음식을 상상하듯.-48쪽

그날도 안개가 심하다는 이장의 방송이 있었고, 마을 청년들은 모두 선착장으로모여들었다. 그리고 이내 한쪽에서는 징이며 꽹과리를 동원해 두드릴 수 있는 한 힘껏 두들겨대는 길잡이 잔치가 벌어졌다.
거기다 돌아오지 않은 배의 가족들이 총출동하여 식구의 이름을 부르거나 문자로 기록해 낼 수 없는 괴성들을 질러대기 시작하면 좁은 선착장은 잠깐 사이에 용광로처럼 들끓기 마련이었다.
타오르는 횃불과 징, 꽹과리의 요란한 소리에 못지않게 가족들이 있는 힘을 다해 내지르는 육성 또한 안개를 뚫고 먼 바다까지 도달하는 힘이 있다고 했다. 안개 속에 길을 잃고 헤매는 배들은 어디선가 들려 오는 아내와 자식의 목소리만은 반드시 가려 듣게 돼 있다는 것이다.

(숨은 꽃-양귀자)-69쪽

"누군가, 내가 사람은 왜 죽기 전에 늙어야 할까, 넋두리를 했더니, 늙지 않는다면 억울해서 죽을 수 있겠느냐 그러더군. 우리의 생은 운명의 식탁이오. 운명이 차려 주는 것을 먹을밖에."-3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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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연애법 - 연애 콤플렉스에 빠진 30대 여자들을 위한 맞춤 카운슬링
김낭 지음 / 끌레마 / 2010년 4월
절판


희한하게도 아이들은 안다. 저 사람을 언니라고 불러야 할지, 아줌마라고 불러야 할지. 택시기사들도 안다. 이 소님을 학생이라고 불러야 할지 사모님이라고 불러야 할지.-39쪽

남자를 선택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당신의 남은 인생은 거의 결정되어버린다. 당신이 아무리 잘났다 하더라도 당신은 그 남자의 아내이며 그 남자의 아이 엄마가 되어야 한다. 그러니 아직 결정되지 않았을 때 좀 더 계산적으로 낚시질을 하고 저울질을 해라.-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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