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일본의 맛 - 영국 요리 작가의 유머러스한 미각 탐험
마이클 부스 지음, 강혜정 옮김 / 글항아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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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독자들을 위해 알려드리자면 이곳의 정확한 명칭은 메구로 기생충 박물관이다. 실물처럼 만든 개똥 모형도 시선을 사로잡으면서 동시에 보는 이를 불편하게 만드는 전시물 중 하나다. 강에서 물고기를 거쳐 인체로 들어오는 기생충의 먹이사슬을 표현한 그림도 여럿 있다. 그리고 8미터나 된다는 ‘문제의‘ 거대 촌충이 있다. 송어를 먹고 촌충이 생긴 어떤 남자의 몸에서 제거한 것이다. 유리 상자 안에 겁먹은 유골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나한테 저런 게 있으면 밧줄로 사용할 수 있을 텐데." 에밀이 맥가이버 같은 엉뚱한 모습을 보이며 말했다.

(112)

상어 가죽 강판을 사기에 최적의 장소를 알아내는 데는 그리 많은 검색이 필요하지 않았다. 갓파바시 거리는 도쿄의 ‘반드시 봐야 할 장소‘ 목록에서 쓰키지 시장 다음으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158)

홋카이도에서 유명한 ‘바타콘 라멘‘을 먹기에 라멘 요코초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다. (바타콘은 ‘butter corn‘의 일본식 발음이다.) 주재료인 버터와 옥수수는 홋카이도의 특산물이기도 하다.

(193)

19세기 도쿄 노동자들은 오늘날 그들의 후손과 마찬가지로 항상 시간에 쫓기는 바쁜 일상을 살았다. 요즘 일본 초밥 식당을 보면 항상 입구에 일종의 커튼, 즉 포렴이 처져 있는데 이 무렵에 시작된 것이다. 초밥 식당 앞에 드리운 포렴을 일본어로는 노렌이라고 하는데, 시간에 쫓기는 손님들이 드나들면서 재빨리 손을 닦던 용도였다. 그래서 당시만 해도 노렌이 더러울수록 장사가 잘 되는 식당이라는 증거였다. 식당에 들어온 다음에는 부리나케 먹고 나가야 하는 손님들을 생각해서 하나야 요헤이라는 에도 시대 요리사가 좋은 방법을 생각해냈다. 주문이 들어오면 초밥용 밥을 한쪽 손으로 쥐어 네모 모양으로 만들고 거기에 생선을 얹어주는 방법이었다.

(292)

오키나와에는 이런 소식 철학을 표현하는 격언도 있다. ‘하라 하치-부‘라는 말인데 ‘배가 80퍼센트 찰 때까지 먹어라‘라는 의미다.

(447)

오키나와 사람들이 예로부터 가장 많이 먹는 육류는 무엇일까? 그렇다. 돼지고기다. 실제로 오키나와 사람들은 돼지고기 요리로 유명하며 "돼지에는 울음소리 뺴고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는 유명한 속담도 있다.

(449)

오키나와 방언에는 ‘은퇴‘라는 단어가 아예 없다. 윌콕스와 동료들이 인터뷰했던 100세 이상 노인들 가운데 다수가 당시까지도 일을 하고 있었다. 풀타임으로 하는 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정원을 돌보고, 채소를 키우는 등의 활동을 했다. 일부는 파트타임 일자리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그러므로 서구에서는 수명이 길어지면서 공공 의료 재정에 부담이 되고 있다는 우려, 심지어 분노가 점점 더 커지는 반면, 오키나와에서 100세 이상 노인은 사회에 부담이라기보다는 활력소가 되고 있었다.

(451)

현관을 통과해 들어간 다음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판석에 방금 물을 뿌린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이는 환영의 마음을 표시하는 일본의 관습이다.

(473)

런던, 파리, 뉴욕 등지에서 최근 인기 있는 소위 ‘핫 플레이스‘ 요리사 가운데 자신의 요리가 현지에서 나는 제철 재료를 쓰고, 신선하며, 단순하다고 말하는 요리사가 얼마나 되는가? 그러고는 거품을 잔뜩 내거나, 젤라틴을 사용하거나, 수비드 조리를 하거나, 퓌레로 만든 그런 음식을 내놓는다. 탑처럼 높이 쌓은 음식, 동그란 틀로 찍은 음식, 소스에 대해 말하자면 어느 비평가의 인상적인 지적처럼 "스틸레도 힐을 신은 누군가가 똥을 밟고 미끄러진 것처럼" 지저분하게 소스를 처바른 음식 등등.

(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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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2
한수산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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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지나간 사람들의 세상이다. 먼저 산 사람들이 살다간 눈에 보이지 않는 이야기다. 그게 좋아 읽는 사람들은 공부를 해야겠지. 그렇지만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물건을 앞에 놓고 조였다 풀었다 하면서 요것저것 그 이치를 따져보는 걸로 사는 사람도 있지. 어디 그뿐이랴. 사람들을 줄 세우며 대장 노릇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뭔가 봤다 하면 돈벌이부터 눈에 보이는 사람도 있단다. 명조야 넌 뭘 하며 살래.

(118~119)

청주는 한홉에 2엔이었다. 그토록 배가 고프면서도 주먹밥 하나 사먹기도 아까운 판인데 술을 마시다니. 다들 혀를 내둘렀지만 양씨는 태연했다.
"술은 청탁불문이요, 계집은 미추불문이라. 술이라면 내 덫에라도 기어들어가겠다."
"벌써 취해삤나. 하기사, 술이란 게 술술 잘 넘어간다고 술이라 안 카나."
"이 사람아, 술 먹은 놈은 개천도 좁다면서 건너뛴대. 오늘 하루 기분 좋으면 내일 저승엘 간다 한들 어떻겠나."

(172~173)

공격 제1목표는 코꾸라 조병창 및 시가지, 예비로 선정된 제2목표는 나가사끼 시가지 나까지마강이었다. 시가지를 흐르는 폭이 좁은 이 강에는 둥근 아치 두개가 물에 비쳐 안경처럼 보이는 안경다리를 포함하여 수많은 다리가 놓여 있었다. 정확한 투하 조준점은 강 하류의 토끼와 다리에서 니기와이 다리까지였다.

(389)

그날 저녁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밤이 되며 빗발은 점점 굵어져 폭우로 변했다. 낱알을 뿌리듯 쏟아지는 굵은 빗발에 하나둘 임시 화장터의 불길이 꺼져갔다.
앞이 안 보이게 두들겨대는 빗발이 나가사끼의 폐허를 뒤덮었다. 경사 심한 나가사끼의 골목골목을 빗물이 흘러넘쳤다. 빗발은 도시 남쪽에 자리해 원폭을 비켜 살아남은, 항구를 내려다보는 전망이 가장 좋은 글로버 저택의 지붕을 쏟아붓듯이 뒤덮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아치형 돌다리인 안경다리의 교각을 때리며 물은 넘실거렸다. 유곽과 유흥가가 자리 잡았던 시안바시 언덕길을 휩쓸며 물은 둑이 터진 듯 쏟아재내렸다. 산으로 오르는 길목에 검게 그슬려 넘어진 지장보살 석상에 누군가가 묶어놓았던 붉은 천도 빗물에 쓸려내려갔다. 네덜란드 언덕길의 돌계단은 급류가 쏟아져내려가는 물길이 되었다.

(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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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1
한수산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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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쪽이 조선이다."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진홍빛으로 물들었던 바다가 잿빛으로 어두워진다. 섬을 둘러싸며 휘돌아간 방파제 위에 작은 점처럼 서서 두 사람은 오래오래 바다를 바라보았다. 저기 먼 어디쯤 조선이 있겠지. 조선, 명국은 입 속으로 가만히 불러보며 고개를 저었다. 저 바다 건너 어디에도 조선은 없다. 그건 우리가 잃어버린 나라다.
불어오는 바람에 어둠이 뒤섞인다. 남루한 옷자락에 그 어둠이 묻는다.

(7)

그가 가고 나면 어찌 살 건가. 세월이 소금처럼 입에 씹히리라.

(70)

마치 발을 헛디디기나 하듯 마음이 지상에게로 넘어지던 날을 서형은 잊지 않고 있었다.

(73)

일찍이 나가사끼를 근거지로 활동하던 영국인 사업가 토머스 글로버가 있었다. 뿌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의 모델이 된 남자다. 1868년 그는 타까시마탄광의 공동경영에 참여, 일본 최초의 채탄터널, 배수펌프, 석탄을 실어올리는 권상기를 설치하는 등 근대적인 설비를 도입한다. 그러나 1873년 외국과의 합병기업이 금지되면서 타까시마탄광은 관영으로 돌아선다.
하시마 해저탄광의 비극적인 역사는 여기에서 싹이 튼다. 관영이 된 타까시마탄광은 나가사끼형무소의 죄수들을 노동력으로 이용했다. 감옥노동이라고 말해지는, 쇠사슬을 발목에 찬 죄수들에 의해 번성해간 타까시마탄광은 잔혹한 폭력이 일반화, 횡횅하게 된다.
미쯔비시가 타까시마탄광에 이어 1890년 11월 하시마탄광을 매수하면서 타까시마의 잔혹함은 하시마에도 이어졌다. 그 어두운 역사는 세월과 함께 하시마탄광의 전통이 되면서 이곳을 더할 수 없는 인권의 사각지대로 만들었던 것이다. 가장 큰 갱도 출입구를 광부들이 지옥문이라고 부르게 된 까닭이다.

(129~130)

우석이 소리쳤다. 조선말로.
"올라가자!"
탄차 옆을 따르는 조원들이 함께 소리를 받았다. 조선말로.
"올라가자!"
우석의 목소리가 울음으로 변한다.
"올라간다! 창수야, 올라가자!"
"올라간다! 창수야, 올라가자!"
일본의 탄광, 그것도 큐우슈우 지방에서 내려오던 관습의 하나였다. 지하갱 안에서 일하던 사람이 죽으면 그 시신을 갱 밖으로 실어내더라도 그의 영혼은 남아서 갱 속을 떠돈다고 했다. 그래서 시신을 밖으로 올릴 때는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다 같이 죽은 사람의 이름을 불러가며, 올라가자 올라가자 소리치면서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캄캄한 지하에서 떠돌 죽은 자의 혼을 불러가며 함께 데리고 나간다는 뜻이었다.


(187)

멀리 바다를 내다보면서 명국이 말했다.
"3백 1흑 1청이라는 게 있었다네. 자네 그런 말 들어봤나?"
"처음 듣는 얘긴데요. 무슨 말입니까?"
"일본 사람들이 조선에 들어오며 가져가려 한 것들이야. 흰 거 세 가지는 바로 조선의 쌀과 비단, 목화였지. 그리고 검은 건 김이고, 푸른 건 대나무였어. 일본이 조선에서 가장 탐낸 게 바로 그 셋이었다는 건데, 사람이 말 타면 종 부리고 싶다지 않나. 3백 1흑 1청을 실어나르면서 욕심이 늘어나니까 아예 땅까지 빼앗자고 달려든 거 아니겠어."

(241~242)

"이런 말이 있지요. 열냥 주고 집 사고 백냥 주고 이웃 산다는 말, 아마 여러분도 아실 겁니다. 물설고 낯설다고 해도 어디 여기에 비하겠습니까. 여기까지 이렇게 와서, 그래도 서로 이웃이 되어 지내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고, 다들 어려운 때에 그래도 여러분들이 옆에 계시니 한결 위안이 된다고 늘 생각했습니다. 그저 고맙다는 말밖에... 자식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도 좋다거나 어떻다거나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는데, 여러분들이 이렇게 좋은 이웃이 되어주시니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고맙습니다."

(269)

느리고 느리게, 아침은 끝내 오지 않을 듯이 밤이 지나갔다. 지하여서인가. 밤새 파도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금화가 눈을 떴을 때는 새벽빛이 환하게 밥상보만 한 창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455)

시간의 흐름에는 그때 어긋났던 것이 후에 제대로 맞아들어가는 우연이 있다.

(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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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문제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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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은 보험이야. 특출한재능이 있는 개인에게는 학력이 필요 없지. 하지만 그런 인간은 10만 명에 한 명 정도나 있을까 말까거든. 그러니까 부모는 자식에게 최대한 좋은 보험을 들어 주려는 거 아니겠어?‘

- 달콤한 생활? (41)

참 어린애 같은 고등학교 1학년생이다. 동생의 관심사란 오직 농구와 여자와 먹는 것뿐으로, 지진 말고는 뭐 하나도 눈치를 못 채는 둔감한 녀석이다.

- 에리의 4월 (124)

12월의 하늘은 오후가 되면 금방 저물기 시작한다. 가게 문을 일찍 닫는 음식점처럼, 뭔지 모르게 서두르는 기분이 된다.

- 아내와 마라톤 (281)

"어, 엄마다!"
게스케가 외쳤다.
"엄마! 엄마!"
"여기야, 여기!"
아들들이 폴짝폴짝 뛰어오르며 엄마를 맞이한다.
사토미는 거의 걷는 속도로, 그러나 씩씩하게 뛰고 있었다. 아이들을 보자 힘없이 미소 짓는다. 기진한 표정이다.
야스오도 힘껏 손을 흔들었다. 코끝이 찡해 온다. 안 되지, 안 돼. 아이들도 있는데 울면 쓰나.
그러나 아차 하는 순간 시야가 흐려지고 말았다.

- 아내와 마라톤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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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문제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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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 생각나는 단편모음집.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게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각각 다르다˝... 오쿠다 히데오는 불행해 보이는 여섯 가족을 고르고 골라 사실은 이들이 서로 닮은 행복한 가정이라는 걸 보여준다. 좋네. 콧등 시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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