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초상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12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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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은 94년판 '민음사 오늘의 작가총서 10' 버전이다. 책을 읽을 때 책 내용도 중요하지만, 책을 갖게 된 동기나 읽은 장소도 중요시하는 편인데, 이 책은 집에 10년 넘게 박혀 있던 걸 우연찮게 발견했다. 아빠가 읽던 건지, 한 살 터울의 언니가 고등학교 때 읽었던 건지 아무도 기억은 못하는데 어쨌든 주인이 묘연한 관계로 내가 덥석 들고 왔다.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에서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세월이 흘러서 변색된 책장들이 너무 좋더라. 책곰팡이 냄새도 약간씩 날 듯 말 듯 하는 게 굉장히 로맨틱... 도서관 냄새가 나서 좋다.

어쨌거나... '이문열'이라는 네임 밸류와 눈에 익은 제목 때문에 읽기 시작했는데.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70~80년대의 대학생활이 낯설다. 지독하게도 가난한 친구들과 그 가난 때문에 더 낭만적인 그 시절. 물론 그 시절에 살았다면 지리멸렬한 인생살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이렇게 지나고 나서 남들의 경험담으로 흘려듣기엔 더할나위없이 아름다운 시절이다.

이문열, 하면 '삼국지'가 떠올랐었는데 이젠 이 책이 제일 먼저 생각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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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튀어! 1 오늘의 일본문학 3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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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본다면 평화로운 가정의 휴일 풍경이라고 부러워할지도 모르지만, 문제는 오늘이 평일이라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평일이면 아버지는 회사에 나가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법이다.-2-128쪽

"꼭 학교에 다닐 필요는 없습니다."
베니 씨가 참견을 하고 나섰다.
"왜요?"
"학교는 국가가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우리 아버지하고 똑같은 소리를 하시네? 둘이 금방 친해지겠어요."
"나도 꼭 만나보고 싶습니다. 오늘 저녁에 밥을 먹으러 가겠습니다."
귀찮아서 상대도 하지 않았다.-2-152쪽

"파이타티로마는 너무 좋은 곳이라 나중에 가려고 아껴운 거야."
지로는 그런 말로 모모코를 달랬다. 최후의 낙원은 최후의 즐거움으로 아주아주나중까지 아껴두는 게 좋다.-2-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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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잠 속에 비 내리는데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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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살의 이외수가 종종 등장한다. 많아야 서른여덟 정도? 이제 막 서른이 될까말까한 대학 7학년생의 가난한 이외수. 이틀에 한 번 20원어치 번데기로 단백질을 보충하고, 또 이틀에 한 번 삶은 감자 20원어치로 겨우겨우 허기를 떼우던 가난뱅이. 머리엔 언제나 이가 득시글거리지만, 자신의 더러운 옷을 새하얗게 빨아준 고마운 여자에게 온마음을 줘버린 따뜻한 사내. 월세 천원짜리 골방에서 담요라도 한 장 걸치고 자는 걸 호사로 생각했던 어린(?) 이외수가 무척이나 반갑다. 평소에 그의 얼음밥 이론에 깊이 공감하고 있던 터라 빈티가 뚝뚝 묻어나오는 그의 글이 존경스럽다.  지렁이, 콩나물, 도라지에서조차 글을 뽑아내는 재주가 경탄스럽다.

마누라가 이쁘면 처가집 말뚝에도 절을 한다던데, 나는 이외수가 좋으니 그의 친구 최돈선의 책에도 넙죽 절을 해야겠다. 한 가지 아쉬운 건, 구판을 구하기가 힘들다는 것. 헌책방에서라도 꼭 구해야겠다. 책의 주인이 밑줄을 그었던 흔적이 남은 책이라면 더욱 좋겠다.

 

마음에 들었던 구절 몇 개.

1. 비는 당신이 고등학교 시절 한 번도 말 붙이지 못하고 애태우던 여자애의 음성. 아니면 당신이 밤을 새워 쓰던 편지의 활자들이 이제야 다시 그대 주변으로 돌아와 떨어지는 소리다.

2. 두보가 말했던가. 강물이 푸르니 새 더욱 희어 보인다고.

3. 그 중에서도 겨울에 헤어지기가 가장 가슴 아프고 어려웠었다. 만 병의 독주를 마셔도 그리움은 지워지지 않고 카랑카랑한 하늘에 박혀 있는 별들처럼 더욱 선명해져서 으스스 몸서리가 쳐질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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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
성석제 지음, 김경호 그림 / 창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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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밀대 냉면은 맛있다. 허나, 처음엔 맛이 없다. 젊은 사람들 취향에 맞춘 듯 달달하고 입에 착착 감기는 맛이 아닌 전혀 달지 않은 맛에 처음엔 고민했다. 식탁 위의 설탕을 넣을까 말까... 하지만 사람들이 칭찬해 마지 않던 그 귀한 국물맛을 버릴까 싶어 설탕을 넣지 않고 한 그릇을 다 비웠는데, 다 먹고 나니 "참 맛있네"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돌아와서도 두고두고 생각나는 맛. 그 맛있는 냉면 쿠폰도 준다니... 이 책 참 대단하네. 게다가 성석제의 책이 아닌가. 참 대단할 게 뻔했다.  

굳이 목차를 훑어보지 않아도 신간이 나오면 꼭 사게 되는 책이 있는데. 내겐 이외수의 책이 그러하고, 하루키의 책이 그러하고, 성석제의 책이 그러하다. 최소한 작가 이름에 먹칠하는 책은 아니겠거니 하는 보증수표랄까... 하지만 중간중간의 삽화가 걸린다. 가끔 하루키의 글이 더 유유자적(?)하게 느껴지는 건 안자이 미즈마루의 엄청나게 간결한 삽화에도 그 원인이 있거늘... 소풍의 삽화는 글을 방해한다. 글은 인간적이고 거친 시골맛이 나는데, 삽화는 어딘가 기계적이다. 어울리지 않아... 글과 상관없는 내용이기도 하고, 유머러스하길 원했으나 전혀 유머러스하지도 않다.

또 하나 아쉬운 점. 소풍을 읽고 나서 본문에 나왔던 심연섭 선생의 "술, 멋, 맛"이라는 책을 꼭 사고 싶었는데 알라딘에 그 책이 없다. 성석제가 말하기를 "내가 아는 한 술에 관련된 당대 최고의 교양서적"이라던데... 이 책, 구해 주세요 ㅠㅠ

 

마음에 드는 구절 몇 개.

1. 니나노집은 아버지들의 바운더리였다. 아버지들은 아들들이 그곳에 가는 걸 원치 않았던 듯 자신들의 시대가 가면서 함께 가지고 가버린 것 같았다.

2. 역시 기네스는 맛있었다. 풍성한 거품이 까만 맥주 색깔과 대조를 이루며 크림처럼 부드럽게 입술 주변을 간질이는가 싶더니 커피처럼 강한 씁쓰름함 뒤에 초콜릿 같은 달콤한 냄새가 살짝 풍겼다...... 그 맥주는 기네스보다 훨씬 걸쭉했다. 발표한 곡물의 텁텁한 맛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말고는 꾸밈없이 단순했다. 시골장터에서 만난 어린시절 친구가 팔을 벌리며 다가오는 듯한 느낌의 맥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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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 반양장
피천득 지음 / 샘터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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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서 제목만 달달 외우고, 읽을 생각은 하지도 않았던 책들. 그냥 '단테는 신곡, 단테는 신곡, 단테는 신곡....' 몇 번 외우기만 해도 학창시절 아무 문제도 없었는데.... 학교 졸업한 지 10년 가까이 되다 보니까 많이 아쉬워졌다. 단테의 신곡 그렇게 외워댔으면서 한 번이라도 읽어보기는 했나. 하멜표류기는 재미있을까 재미없을까. 현산어보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그래서 언젠가부터, 저자와 제목만 외워두고 읽지 못했던 책들을 두루 섭렵하고 있는 중인데 이게 재미가 꽤 쏠쏠하다. 맹물지식에 조금씩 설탕이 더해지는 느낌~  쪼아요.

피천득 책도 그래서 골랐다. 피천득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이름 멋지네' 라는 생각 뿐이었고 교과서에 나오는 수필 하나만 읽었던 것 같고. 그래서 읽기 시작했는데, 보물을 건진 듯. 그리스인 조르바 이후로, 닮고 싶은 사람 서열 5위 안에 들 사람이다.  아, 술 못 먹는 것 빼고.

술은 너무 좋은 거잖아요.

 

마음에 들었던 구절 몇 개.

- 수필은 청춘의 글은 아니요, 서른여섯 살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수필)

- 어제 나는 외투를 벗어 버리고 거리에 나갔다가 감기가 들었다. 그러나 오래간만에 걸음걸이에 탄력이 오는 것을 느꼈다. 충분한 보상이다.    (조춘)

- 선물은 뇌물이나 구제품같이 목적이 있어서 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주고 싶어서 주는 것이다. 구태여 목적을 찾는다면 받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선물)

- 간다 간다 하기에 가라 하고는 / 가나 아니 가나 문틈으로 내다보니 / 눈물이 앞을 가려 보이지 않아라.    (눈물)

- 그를 비난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그가 비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춘원)

- 앞을 바라보면 걸음이 급하여지고 뒤를 돌아다보면 더 좋은 단풍을 두고 가는 것 같아서 어쩔 줄 모르고 서 있었다.   (나의 사랑하는 생활)

- 하버드 대학에서는 롤링스라는 키츠 학자로 유명한 교수가 있었다. 스물다섯에 죽은 시인을 연구하느라고 70 평생 다 보내고 아직도 숨을 헐떡이면서 <엔디미온>을 강의하고 있었다. 그는 천재에 부닥치는 환희를 즐기는 모양이었다.    (반사적 광영)

- 술은 입으로 오고 / 사랑은 눈으로 오나니 / 그것이 우리가 늙어 죽기 전에 / 진리로 알 전부이다. / 나는 입에다 잔을 들고 / 그대 바라보고 한숨짓노라.............. 예이츠는 이런 노래를 불렀고, 바이런은 인생의 으뜸가는 것은 만취라고 하였다.    (술)

- 나는 작은 놀라움, 작은 웃음, 작은 기쁨을 위하여 글을 읽는다. 문학은 낯익은 사물에 새로운 매력을 부여하여 나를 풍유하게 하여준다. 구름과 별을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하고 눈, 비, 바람, 가지가지의 자연 현상을 허술하게 놓쳐 버리지 않고 즐길 수 있게 하여 준다. 도연명을 읽은 뒤에 국화를 더 좋아하게 되고 워즈워스의 시를 왼 뒤에 수선화를 더 아끼게 되었다. 운곡의 <눈 맞아 휘어진 대>를 알기에 대나무를 다시 보게 되고, 백화나무를 눈여겨 보게 된 것은 시인 프로스트를 안 후부터이다.     (순례)

- 폐를 앓는 젊은 시인 키츠는 한밤중에 우짖는 나이팅게일 소리를 들으면서 고통 없이 죽는 것은풍유하리라 하였다.   (비원)

- 유명했던 자기 노래를 듣고 있는 가수. / 이제는 던지는 볼이 말을 안 듣는 유명한 투수, 관중은 조용히 보아 주었다. / 손님도 웨이터도 다들 돌아간 텅 빈 식당에서 혼자 커피잔을 들고 있는 주방장.    (여린 마음)

- 다섯 살쯤 된 여자 아이가 쪼그리고 앉아 비둘기들에게 과자를 부스러뜨려 주고 있습니다.  / 아이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고 웃습니다. 미소는 인사입니다. 고운 초대이기도 합니다.   (초대)

- 결혼 생활은 작은 이야기들이 계속되는 긴긴 대화다. 고답할 것도 없고 심오할 것도 없는 그런 이야기들.....   (시집가는 친구의 딸에게)

- 오래오래 살면서 신문에서 가지가지의 신기하고 해괴한 일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송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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