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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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그녀를 처음 본 순간에도
     이미 그녀는 다른 남자의 아내였었지
     하지만 그건 내게 별로 중요하질 않았어
     왜냐하면 진정한 사랑은 언제나
     상상속에서만 가능한 법이니까
     난 멈출수가 없었어 
     이미 내 영혼은 그녀의 곁을 맴돌고 있었기 때문에
           
     가려진 커텐 틈 사이로 처음 그댈 보았지
     순간 모든것이 멈춘 듯했고 가슴엔 사랑이
     꿈이라도 좋겠어  느낄수만 있다면
     우연처럼 그댈 마주치는 순간이 내겐 전부였지만
          
     멈출수가 없었어 그땐
     돌아서야 하는것도 알아
     기다림에 익숙해진 내 모습뒤엔 언제나 눈물이       

     까맣게 타버린 가슴엔 꽃이 피질 않겠지
     굳게 닫혀버린 내 가슴속엔 차가운 바람이 

     오늘밤 내방엔 파티가 열렸지
     그대를 위해 준비한 꽃은 어느새 시들고
     술잔을 비우며 힘없이 웃었지
     또 다시 상상속으로 그댈 초대하는거야 (조관우의 '늪')

고등학교 때 좋아하던 안군이 즐겨부르던 노래가 바로 조관우의 '늪'이었다. 다른 노래도 잘 불렀지만 유독 그 노래가 기억에 남는 건, 어린 내가 이해하기엔 너무 어렵고 아름답고 애달픈 가사 탓이리라. 이미 결혼한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의 마음. 상상 속에서만 해야 했던 슬픈 사랑... 열일곱의 감수성은 안군을 좋아하는 나의 러브러브모드와 결합해(^^;;;) 조관우의 '늪'을 최고의 노래로 떠받들게 했는데...

십여년이 지난 후 읽게 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사실 그렇게 쉬이 손이 가는 책은 아니었다. 왠지 모르게 <고전=재미없다, 어렵다, 고리타분하다>라는 등식이 성립해 있었기 때문. 하지만 얼마 전부터 혼자서 시행하고 있는 <이름만 들어보고 읽어보지 못한 책 독파하기 캠페인> 때문에 큰맘먹고 사버렸다. 그리고 산 지 2주일도 더 지난 후에야, 다른 책들 다 읽고 난 후 마지막으로 펼쳐들게 된 이 책에서, 나는 십여년 전 조관우의 노래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하면 사랑, 남이 하면 불륜"이랬던가? 이 말, 베르테르에게는 해당 안 된다. 베르테르의 사랑은 도덕적 기준에서 보면 용납할 수 없는 불륜이지만, 베르테르 자신에게는 물론 나를 포함한 많은 독자들에게는 엄연히 "사랑"이다. 1700년대의 아름다운 사랑. 전화나 인터넷이 없어서 하인을 통해 편지를 전달하고 먼 거리를 마차를 타고, 혹은 오랫동안 걸어가야만 만날 수 있었던 사랑. 굉장히 아름답다. 낭만적이다. 어렵지 않다. 열병을 앓다가 죽는 것과 사랑에 실패해 스스로 죽는 것은 똑같은 거라고 베르테르가 열변하는 부분에선 절로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게 된다!! 아! 그래서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노란 조끼에 파란 연미복을 입은 채로 거리를 활보하고, 실연의 슬픔을 못 이기면 자살을 했구나!  이해가 된다!!!!

그런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편지모음이었다니... 맹물지식인의 최고봉인 나로서는 놀라울 따름이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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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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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광석은 햇빛 속에 놓아두면 햇빛을 흡수하고 밤에도 잠시 동안 빛을 발한다고 한다. 내게는 이 젊은 하인이 바로 그런 형광석이었다. 로테가 그의 얼굴과 뺨, 윗도리의 단추와 외투의 깃에다가 시선을 던졌으리라고 생각하면, 이 모든 것이 내게는 아주 신성하고 귀중하게 느껴진다. 나는 그 순간 누가 천 달러의 돈을 준다고 하더라도 그 젊은 하인을 내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66쪽

그런데 한 가지 바람이 있습니다. 제게 보내시는 편지지에는 앞으로 모래(번짐 방지용 모래)를 사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편지를 받자마자 입술에 갖다 대었다가 그만 모래를 으드득 씹었답니다.-68쪽

그때 그녀의 애인이 그녀를 버리고 말았지요. 몸은 얼어서 굳어버리고, 넋을 잃은 채 높은 절벽 앞에 서게 될 수밖에요. 주위 사방은 온통 어두운 장막으로 둘러싸이고 희망도 없고, 위안도 없고, 기대도 없었어요, 자기 자신의 목숨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그 남자가 자기를 버렸으니 더 할 말이 없지요! 그녀는 눈앞에 놓인 넓은 세상도, 잃은 것을 메워줄지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도 찾아볼 생각을 않고 홀로 세상에서 버림받은 외로뭄을 뼈저리게 느끼며 눈이 뒤집혀서 앞을 못 보고, 아픈 가슴속에 억눌러둔 무서운 쓰라림을 머금은 채,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괴로움을 끊어버리려고 죽음에 몸을 던지고 말았어요. 보세요, 이것이 많은 사람들의 애달픈 사연이란 말입니다! 병이 든 경우에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인간의 천성이 얽히고 설키며 서로 다투고 싸우는 갖가지 힘의 미궁으로부터 빠져나갈 길을 찾아내지 못하면, 그 인간에게는 죽는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어요.
이것을 옆에서 바라보고 있다가, <어리석은 여자야! 좀 기다렸다면, 시간이 흘러서 때가 오면 절망도 가라앉을 것이고 반드시 다른 남자가 나타나서 위로해 주었을 텐데>라고 태연자약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오히려 한심한 사람이지요. 그것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거나 다름없어요. <열병을 앓고 죽다니 참 어리석은 놈이야. 체력이 회복되고 원기가 좀 생겨서 혈액의 혼란이 가라앉을 때까지만 기다려보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고 말이오. -82쪽

권총은 당신의 손을 거쳐서 왔습니다. 당신이 권총의 먼지를 털어주셨다고요. 당신이 직접 손을 대고 만졌던 권총이기에 나는 천 번이나 그것에다 키스를 했답니다. 그대, 하늘의 정령이시여! 당신은 나의 결심을 확고하게 해줍니다. 로테! 당신이 내게 무기를 내주었습니다. 나는 당신 손에서 죽음을 받기가 소원이었는데, 아아, 이제 이렇게 받게 되었습니다.-2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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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세일즈 하세요 - 이야기 산업이 부의 유전자다
정효신 지음 / 영림카디널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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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토요일, 이 책과 '배려'를 선물받았다. '배려'는 이미 읽었던 책이기에 고이 되돌려주고 이 책만을 받아들었는데, 도저히 못읽을 책이다. <저자의 잘난척 + 개념없는 논리>를 견뎌낼 수 있다면 사도 무방하다. 책을 읽다가 그만두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이 책은 3분의 1을 참고 참고 읽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그만둬버렸다. 이 책을 읽는 시간조차 아깝다.

이 책이 영 꽝~이라는 걸 제대로 알 수 있는 한 대목. 책 뒷표지에 나와 있는 소개문이다.

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해진다는 말은 옛말이다. 그러나 이야기 산업이 기업과 개인의 부의 유전자를 만들고, 침체된 한국경제를 살리는 IT 트렌드의 키워드가 되고 있다. 세상은 드림소사이어트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는가? 중간에 '그러나'는 왜 들어간건가? 이 책에서 말하려는 주제는 분명 '이야기 산업의 중요성'일테지만, 3분의 1을 읽어나가는 동안 그 주제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 내가 읽지 않은 뒷부분에 주제가 집약돼있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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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여, 나뉘어라 - 2006년 제30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정미경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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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이맘때쯤이면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사본 게 6년째.

습관처럼 사본다. 한때는 꽤 감동스러워서 지난 작품집도 꼼꼼히 다 사보마 다짐했었는데 이젠 약간 시들해진 듯. 그냥 앞으로 나올 작품집만 하나하나 사보련다. 예전보다 재미가 없어졌달까, 아님 나의 감성이 서른살에 가까워지면서 무뎌진걸까, 모르겠지만.

김경욱의 <위험한 독서>와, 전경린의 <야상록>은 아주 훌륭하다.

내 인생의 책 베스트 10에 들기도 한, 앤 패디먼의 <서재 결혼시키기>에 보면, 책을 읽는 사람들을 궁정식 사랑의 신봉자와 육체적 사랑의 신봉자로 나누는 대목이 있는데, 김경욱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완전히 '육체적 사랑의 신봉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저기 접고 밑줄 긋고 화장실에 갔다가 물까지 묻히고... 그만큼 맘에 드는 구절이 많고 손에서 놓기 쉽지 않았다는 얘기.

야상록을 읽으면서는, 나는 좀, 센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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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여, 나뉘어라 - 2006년 제30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정미경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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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서 비극의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냐? 결국 사랑의 비동시성이야. 한 사람은 아직 뜨거운데 한 사람은 오래전에 불에서 내려놓은 냄비처럼 싸늘한 거지..."
<정미경, "밤이여 나뉘어라">-16쪽

라이벌이란, 강을 사이에 두고 강변의 양안을 달리는 자, 에서 어원을 가져왔다 했던가. 서로의 모습을 곁눈질하며, 터질 듯한 심장과 경련을 일으키는 다리를 질질 끌고라도 기어이 나를 달리게 하는 자.
<정미경, "밤이여 나뉘어라">-20쪽

교과서에 실렸던 그림을 실제로 보는 일은 늘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모나리자>나 <이삭 줍는 사람들> 앞에 서면, 그것들이 사실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것, 프린트와 다른 원화가 주는 놀라움과 충족감이 기대만큼은 대단하지 않다는 것, 충족된 욕망이 주는 포만감 앞에서 피어오르는 아릿한 허무, 같은 걸 느끼게 된다.
<정미경, "밤이여 나뉘어라">-35쪽

밥을 다 해놨네? 하는 M의 목소리가 제법 명랑하다. 그 명랑한 목소리는, 너는 이방인이며, 잠시 머물다 떠나면 그뿐, 이 영역을 건드리지 말아달라는, 나에 대한 경고처럼 들린다. 어쨌든 불행을 연기하기보다는 평화를 연기하는 게 쉽지.
<정미경, "밤이여 나뉘어라">-40쪽

고뇌의 근원은 연. 연을 맺으면 보고 싶어 괴롭고 보고 싶은데 보지 못해 괴롭고 나는 보고 싶은데 너는 아니어서 괴롭고. (법구경)
<정미경, "나의 피투성이 여인">-70쪽

-일기를 쓸 때 사람들은 누군가가 볼 것을 무의식 속에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 말하자면 일기란 어떤 면에서 자기 검열을 이미 거친 글이야.
<정미경, "나의 피투성이 여인">-82쪽

당신, 전등사 갔던 날 기억나? 사랑도 그런 거라는 생각이 들어. 전등사를 가지 못한 그날을 전등사 갔던 날, 로 이름지었듯 대개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 진짜 사랑은 빠져 있는 게 아닐까 싶어.
<정미경, "나의 피투성이 여인">-108쪽

각주1) 미시마 유키오, <금각사>, 페이지 번호는 일부러 적지 않는다. 의도적인 불친절이 못마땅하거든 앞으로의 각주를 무시하면 될 일이다. 목마른 자 우물을 팔 것이니, 만에 하나 정확한 출처가 궁금하다면 해당 책을 찾아 첫 문장부터 읽어볼 일이다. 인용된 문장을 발견할 때까지. 정말로 그런 문장이 있기나 한 것인지 확인할 때까지. 무슨무슨 영화의, 이러저러한 드라마의 배경이 되었던 특정한 벤치나 삼나무 길을,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은 섬이나 계곡을 실제로 찾아나서는 수고에 비하면 땅 짚고 헤엄치는 격일 테니. 부디 당신의 독서가 당신을 자유롭게 하기를.
<김경욱, "위험한 독서">-165쪽

당신이 어떤 책을 읽어왔는지 말해 주면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다. 당신의 독서 목록은 그 자체로 당신의 자서전이고 영혼의 연대기이다.
<김경욱, "위험한 독서">-166쪽

각주2) 제임스 M. 케인,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김경욱, "위험한 독서">-166쪽

내가 죽는 것이 가슴 아픈 유일한 까닭은 그것이 사랑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각주4)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콜레라 시대의 사랑>
<김경욱, "위험한 독서">-168쪽

한 번은 없는 것과 같다. 우리가 단 한 번만 살 수 있다면 그것은 단 한 번도 살지 않는 것과 같다.
각주5)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김경욱, "위험한 독서">-169쪽

다셀 해메트의 <몰타의 매>
<김경욱, "위험한 독서">-170쪽

마을회관 앞에서 나락을 말리는 노파들을 보면서 그녀는 이 마을 노파들이 흡사한 것에 다시 한 번 당황했다. 농사 지어 5일장을 중심으로 먹고살고, 곧고 휘어진 길을 함께 걷고, 한 공기와 한 햇볕을 쬐고 자식들 형편이나 걱정근심이 비슷비슷하면 세월이 흘러 꼭 비슷비슷한 노인이 되는 모양이었다.
<전경린, "야상록">-215쪽

"아버지들은, 자신을 닮게 낳은 것으로 부족해 자신과 닮은 사람이 되도록 키우죠. 바르게 키운다고 하지만 실은 자기를 닮게 키우는 거예요. 때려서라도요."
<전경린, "야상록">-226쪽

아침에 잠이 깼을 때 금조는 온통 남자의 몸 안에 파묻혀 있었다. 팔다리가 그렇게 얽힌 채 배를 붙이고 잠에서 깨는 연인들은 헤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떠올랐다.
<전경린, "야상록">-2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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