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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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광석은 햇빛 속에 놓아두면 햇빛을 흡수하고 밤에도 잠시 동안 빛을 발한다고 한다. 내게는 이 젊은 하인이 바로 그런 형광석이었다. 로테가 그의 얼굴과 뺨, 윗도리의 단추와 외투의 깃에다가 시선을 던졌으리라고 생각하면, 이 모든 것이 내게는 아주 신성하고 귀중하게 느껴진다. 나는 그 순간 누가 천 달러의 돈을 준다고 하더라도 그 젊은 하인을 내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66쪽

그런데 한 가지 바람이 있습니다. 제게 보내시는 편지지에는 앞으로 모래(번짐 방지용 모래)를 사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편지를 받자마자 입술에 갖다 대었다가 그만 모래를 으드득 씹었답니다.-68쪽

그때 그녀의 애인이 그녀를 버리고 말았지요. 몸은 얼어서 굳어버리고, 넋을 잃은 채 높은 절벽 앞에 서게 될 수밖에요. 주위 사방은 온통 어두운 장막으로 둘러싸이고 희망도 없고, 위안도 없고, 기대도 없었어요, 자기 자신의 목숨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그 남자가 자기를 버렸으니 더 할 말이 없지요! 그녀는 눈앞에 놓인 넓은 세상도, 잃은 것을 메워줄지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도 찾아볼 생각을 않고 홀로 세상에서 버림받은 외로뭄을 뼈저리게 느끼며 눈이 뒤집혀서 앞을 못 보고, 아픈 가슴속에 억눌러둔 무서운 쓰라림을 머금은 채,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괴로움을 끊어버리려고 죽음에 몸을 던지고 말았어요. 보세요, 이것이 많은 사람들의 애달픈 사연이란 말입니다! 병이 든 경우에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인간의 천성이 얽히고 설키며 서로 다투고 싸우는 갖가지 힘의 미궁으로부터 빠져나갈 길을 찾아내지 못하면, 그 인간에게는 죽는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어요.
이것을 옆에서 바라보고 있다가, <어리석은 여자야! 좀 기다렸다면, 시간이 흘러서 때가 오면 절망도 가라앉을 것이고 반드시 다른 남자가 나타나서 위로해 주었을 텐데>라고 태연자약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오히려 한심한 사람이지요. 그것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거나 다름없어요. <열병을 앓고 죽다니 참 어리석은 놈이야. 체력이 회복되고 원기가 좀 생겨서 혈액의 혼란이 가라앉을 때까지만 기다려보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고 말이오. -82쪽

권총은 당신의 손을 거쳐서 왔습니다. 당신이 권총의 먼지를 털어주셨다고요. 당신이 직접 손을 대고 만졌던 권총이기에 나는 천 번이나 그것에다 키스를 했답니다. 그대, 하늘의 정령이시여! 당신은 나의 결심을 확고하게 해줍니다. 로테! 당신이 내게 무기를 내주었습니다. 나는 당신 손에서 죽음을 받기가 소원이었는데, 아아, 이제 이렇게 받게 되었습니다.-2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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