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여, 나뉘어라 - 2006년 제30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정미경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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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서 비극의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냐? 결국 사랑의 비동시성이야. 한 사람은 아직 뜨거운데 한 사람은 오래전에 불에서 내려놓은 냄비처럼 싸늘한 거지..."
<정미경, "밤이여 나뉘어라">-16쪽

라이벌이란, 강을 사이에 두고 강변의 양안을 달리는 자, 에서 어원을 가져왔다 했던가. 서로의 모습을 곁눈질하며, 터질 듯한 심장과 경련을 일으키는 다리를 질질 끌고라도 기어이 나를 달리게 하는 자.
<정미경, "밤이여 나뉘어라">-20쪽

교과서에 실렸던 그림을 실제로 보는 일은 늘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모나리자>나 <이삭 줍는 사람들> 앞에 서면, 그것들이 사실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것, 프린트와 다른 원화가 주는 놀라움과 충족감이 기대만큼은 대단하지 않다는 것, 충족된 욕망이 주는 포만감 앞에서 피어오르는 아릿한 허무, 같은 걸 느끼게 된다.
<정미경, "밤이여 나뉘어라">-35쪽

밥을 다 해놨네? 하는 M의 목소리가 제법 명랑하다. 그 명랑한 목소리는, 너는 이방인이며, 잠시 머물다 떠나면 그뿐, 이 영역을 건드리지 말아달라는, 나에 대한 경고처럼 들린다. 어쨌든 불행을 연기하기보다는 평화를 연기하는 게 쉽지.
<정미경, "밤이여 나뉘어라">-40쪽

고뇌의 근원은 연. 연을 맺으면 보고 싶어 괴롭고 보고 싶은데 보지 못해 괴롭고 나는 보고 싶은데 너는 아니어서 괴롭고. (법구경)
<정미경, "나의 피투성이 여인">-70쪽

-일기를 쓸 때 사람들은 누군가가 볼 것을 무의식 속에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 말하자면 일기란 어떤 면에서 자기 검열을 이미 거친 글이야.
<정미경, "나의 피투성이 여인">-82쪽

당신, 전등사 갔던 날 기억나? 사랑도 그런 거라는 생각이 들어. 전등사를 가지 못한 그날을 전등사 갔던 날, 로 이름지었듯 대개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 진짜 사랑은 빠져 있는 게 아닐까 싶어.
<정미경, "나의 피투성이 여인">-108쪽

각주1) 미시마 유키오, <금각사>, 페이지 번호는 일부러 적지 않는다. 의도적인 불친절이 못마땅하거든 앞으로의 각주를 무시하면 될 일이다. 목마른 자 우물을 팔 것이니, 만에 하나 정확한 출처가 궁금하다면 해당 책을 찾아 첫 문장부터 읽어볼 일이다. 인용된 문장을 발견할 때까지. 정말로 그런 문장이 있기나 한 것인지 확인할 때까지. 무슨무슨 영화의, 이러저러한 드라마의 배경이 되었던 특정한 벤치나 삼나무 길을,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은 섬이나 계곡을 실제로 찾아나서는 수고에 비하면 땅 짚고 헤엄치는 격일 테니. 부디 당신의 독서가 당신을 자유롭게 하기를.
<김경욱, "위험한 독서">-165쪽

당신이 어떤 책을 읽어왔는지 말해 주면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다. 당신의 독서 목록은 그 자체로 당신의 자서전이고 영혼의 연대기이다.
<김경욱, "위험한 독서">-166쪽

각주2) 제임스 M. 케인,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김경욱, "위험한 독서">-166쪽

내가 죽는 것이 가슴 아픈 유일한 까닭은 그것이 사랑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각주4)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콜레라 시대의 사랑>
<김경욱, "위험한 독서">-168쪽

한 번은 없는 것과 같다. 우리가 단 한 번만 살 수 있다면 그것은 단 한 번도 살지 않는 것과 같다.
각주5)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김경욱, "위험한 독서">-169쪽

다셀 해메트의 <몰타의 매>
<김경욱, "위험한 독서">-170쪽

마을회관 앞에서 나락을 말리는 노파들을 보면서 그녀는 이 마을 노파들이 흡사한 것에 다시 한 번 당황했다. 농사 지어 5일장을 중심으로 먹고살고, 곧고 휘어진 길을 함께 걷고, 한 공기와 한 햇볕을 쬐고 자식들 형편이나 걱정근심이 비슷비슷하면 세월이 흘러 꼭 비슷비슷한 노인이 되는 모양이었다.
<전경린, "야상록">-215쪽

"아버지들은, 자신을 닮게 낳은 것으로 부족해 자신과 닮은 사람이 되도록 키우죠. 바르게 키운다고 하지만 실은 자기를 닮게 키우는 거예요. 때려서라도요."
<전경린, "야상록">-226쪽

아침에 잠이 깼을 때 금조는 온통 남자의 몸 안에 파묻혀 있었다. 팔다리가 그렇게 얽힌 채 배를 붙이고 잠에서 깨는 연인들은 헤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떠올랐다.
<전경린, "야상록">-2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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