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알랭 드 보통 지음, 이강룡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5월
구판절판


혼돈에 처한 사람들이 흔히 겪게 되는 현상 중 하나는 종종 특정 단어에 사로잡힌다는 것이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짧은 시기 동안 서로 다른 장소에서 그 단어를 여러 번 듣거나 읽게 된다. 그 단어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다. 다만, 사람의 감각들이 열리고 나면 아주 신비하게도 언어의 조각들이 기호들을 끌고 나오기 때문에 갑자기 두드러져 보이게 되는 것이다. (문자의 데자뷰)-15쪽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좀더 험난한 과정을 회피하는 방법으로 누군가와 섹스를 나누는 것은, 마치 책을 사두고 그것을 읽었다고 착각하는 것과 같다. -155쪽

유혹은 의심을 이긴다.-181쪽

이사벨의 짝사랑은 그에 관한 백과사전적 지식을 갖게 해주었다.-195쪽

필적학에서는 사람들이 쓰는 글주 중 알(r)자보다는 티(t)자에 그들의 성격이 더 잘 드러난다고 하는데 근거가 무엇인지는 확실치 않다. 기울어진 글자들은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고, 기울이지 않고 똑바로 쓴 글씨체는 세상에 초연한 자세를 보여준다. 점점 위쪽으로 향하는 필체는 낙관적인 심리 상태를 나타내고, 글씨가 아래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은 기분이 암울하거나 신체적으로 피곤하다는 표시다. 촘촘한 글씨는 실용주의와 논리적 사고의 표식이고, 장식적인 필체는 겉멋을 나타낸다.-25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근원수필 범우 한국 문예 신서 1
김용준 지음 / 범우사 / 2000년 6월
품절


서로 모르고 있던 칼라일과 에머슨은 처음으로 만나 인사를 한 뒤 30분간이나 같이 묵묵히 앉았다가 오늘 저녁은 퍽 재미나게 놀았다 하고 헤어졌다는 싱겁고도 이상한 이야기가 있다.
그럴 법한 일이라 그들의 심경이 짐작된다.

-원수원과 정판교와 빙허와 나와--92쪽

세상 사람들이 고작 유자서나 읽을 줄 알았지 무자서를 읽을 줄은 모르며 유현금이나 뜯을 줄 알았지 무현금은 뜯을 줄은 모르니 그 정신을 찾으려 하지 않고 껍데기만 좇아다니는데 어찌 금서의 참맛을 알 도리가 있겠느냐. <채근담>

-시와 그림--10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석제의 이야기 박물지, 유쾌한 발견
성석제 지음 / 하늘연못 / 2007년 6월
구판절판


불경에서는 아기가 먹는 엄마의 젖이 여덟 섬 하고 네 말이라고 한다. 요즘 기준으로 해서 보면 1512리터이다. 1512리터가 얼마만한 양인가. 어떤 직장인이 일 끝나고 집 앞 생맥주집에서 한잔하는데 500cc 잔으로 넉 잔 마셔서 기분 좋게 취한다 치면, 하루도 빼놓지 않고 4년 이상을 마셔대는 것이다. 아기의 몸무게는 직장인의 수십 분의 일인데 이만큼의 젖을 먹어야 젖을 뗀다는 것이니 '어머니의 은혜는 가이없어라'는 노랫말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관점에 따라 다르다- -123쪽

추사는 귀양살이에서 서울로 돌아온 1852년부터 아버지의 산소가 있는 과천 청계산 자락 과지초당과 봉은사를 오가며 생애의 마지막을 보냈다. 추사의 만년작으로 대표적인 것은 봉은사의 현판인 '판전'으로 죽기 사흘 전에 쓴 글씨다. 같은 해에 쓴 글씨 '대팽두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최고의 음식은 두부, 오이, 생각, 나물이요
최고의 모임은 남편과 아내, 아들과 딸, 손자로다.

-관점에 따라 다르다--158쪽

절에서는 국수가 '승소'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스님들이 절로 웃음이 날 정도로 좋아한다는 뜻이다.

-오후의 국수 한 그릇--251쪽

대폿집의 대포는 큰 바가지를 이르는 글자다. 왕대폿집의 왕대포는 대포 중에서도 '왕입니다요'에 해당하는 크기겠다. 예전에는 막걸리를 큰 바가지에 담아서 마셨는데 바가지가 잔으로 변한 뒤에도 '대잔'이 되지 않고 대포가 '술그릇'의 정통성을 이어갔다.

-오후의 국수 한 그릇--30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 알랭 드 보통의 유쾌한 철학 에세이
알랭 드 보통 지음, 정명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5월
구판절판


소크라테스: 한 남자가... 훈련을 신중하게 받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그는 모든 사람들이 보내는 찬사와 비난, 그리고 의견에 마구잡이로 관심을 기울일까, 아니면 그럴 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 이를테면 의사나 트레이너의 의견에만 관심을 가질까?

크리톤: 자격을 갖춘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겠지.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그 선수는 자격 있는 한 사람의 비난을 두려워하거나 칭찬은 환영하겠지만, 일반 대중의 소리에는 꿈쩍도 않겠지.

크리톤: 분명 그렇겠지.

소크라테스: 그 선수는 대중의 의견이 아니라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지도자의 판단에 따라 자신의 행동과 운동, 그리고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을 통제해야만 하는 거야.

<인기 없음에 대한 위안>-56-57쪽

독서는 괴롭기 짝이 없는 게으름의 짓누름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켜준다. 그리고 언제라도 지루한 사람들로부터 나를 지켜준다. 고통이 엄습할 때도 그 정도가 매우 심하거나 극단적이지만 않다면 그 날카로운 예봉을 무디게 만든다. 침울한 생각으로부터 해방되려면 그냥 책에 기대기만 하면 된다.

<부적절한 존재에 대한 위안>-186쪽

몽테뉴의 암시에 따르면, 학자들이 고전에 그토록 많은 관심을 쏟는 이유는,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름과의 연결을 통해 자신을 지적인 존재로 비치고 싶은 허영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결과 일반 대중은 학식만 높고 현명함에서는 크게 처지는 책들을 산더미처럼 많이 마주하게 되었다.

<부적절한 존재에 대한 위안>-264쪽

사랑이 갖는 가장 심오한 미스터리의 하나는 '왜 하필 그 사람인가?'와 '왜 하필 그녀인가?'다. 하고많은 후보자들 중에서 우리의 욕망이 바로 이 존재에게 그토록 강하게 달라붙는 이유는 뭔가? 그들이 저녁식사를 하면서 나누는 대화가 가장 계몽적이지도 않고, 그들의 습관 또한 가장 적절한 것도 아닌데 다른 모든 사람을 제쳐두고 서로를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이유는 뭘까? 그리고 훌륭한 의도임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객관적으로 보아서 매력적이고 또 함께 살기에 더 편할 수도 있을 법한 다른 어떤 사람들에게는 성적 관심을 품지 못할까?

<상심한 마음을 위한 위안>-298쪽

사랑이란 것은... 성적 관심은 별도로 하더라도, 혐오스럽고, 경멸할 만하고, 심지어 상극으로까지 보이는 사람에게 자신을 맡기게 한다. 그러나 종의 의지는 개인의 의지보다 훨씬 더 강하기 때문에 그 연인은 자신의 것과 상반되는 모든 특질들에 눈을 감아버리고, 모든 것을 간과하고, 모든 것을 그릇되게 판단하고, 자신의 열정의 대상이 된 인물과 자신을 영원히 묶어버린다. 그런 환상에 빠진 사람은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데, 그 환상은 종의 의지가 다 충족되고 나면 금방 사라지고 이젠 평생을 혐오하면서 살아야 할 파트너만 남게 된다.

<상심한 마음을 위한 위안>-302-303쪽

우리는 자신을 거부한 사람들을 용서하는 법을 일찌감치 배워야 한다. 어떤 사람이 상대방에게 서로가 더 많은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할 때, 그리고 아직은 상대방에게 미래를 약속할 만큼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사실을 서툴게나마 알려주려고 노력할 때,그 사람은 생에 대한 의지에 따른, 기본적으로 무의식적이고 부정적인 판단을 지적으로 보이도록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이성은 상대방의 특질들을 높이 평가할 수도 있지만 그의 생에 대한 의지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시비를 부르지 않을 방식으로 그렇게 말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아예 상대방에 대한 성적 관심을 비워버린다. 만약에 그런 그가 우리보다 훨씬 덜 지적인 사람에게 유혹당한다 해도 우리는 그를 천박한 존재라고 손가락질해서는 곤란하다. 쇼펜하우어가 설명하듯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기억해야 한다.

결혼에서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지적 유희가 아니라 아이의 출산이다.

<상심한 마음을 위한 위안>-308쪽

쇼펜하우어에겐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려는 의도는 없었다. 오히려 비통함을 불러일으키는 헛된 기대들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풀어놓으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사랑이 우리를 낙심하게 만들 때, 사랑의 본래 계획에는 행복이란 절대로 없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겠는가. 역설적이게도, 가장 염세적인 사상가들이 가장 쾌활할 수도 있는 법이다.

<상심한 마음을 위한 위안>-312-313쪽

처음에 나는 (쇼펜하우어의 책을) 무슨 버러지를 집듯이 집어 들고는 책장을 넘겼다. 어떤 수호신이 나를 향해 '이 책을 집에 가져 가거라'라고 속삭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절대로 책을 서둘러 사지 않는 나의 버릇과는 반대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나는 새로운 보물을 안고 소파 귀퉁이로 몸을 날리고는 그 역동적이고 음울한 천재에게 나 자신을 맡겼다. 행간마다 단념과 거부, 체념이 아우성치고 있었다.
(스물한 살 때 헌책방에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뽑아든 니체)

<곤경에 대한 위안>
-327-328쪽

니체에 따르면, 만약 대부분의 문학작품들이 <적과 흑>에 비해 작품성이 떨어진다면 그것은 그 작품의 작가들이 천재성을 결여해서가 아니라 작품을 창작하는 데 따르는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의 소설 작품을 남기려면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쏟아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곤경에 대한 위안>-34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람을 찾아, 먼 길을 떠났다
한수산 지음, 이순형 그림 / 해냄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는데, 지날수록 더욱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다. 내겐 한수산이 그렇다. "비단결 같은 서정의 눈물방울"이라며 <부초>에 대한 추천사부터 그럴싸해 마음을 붙잡더니만, 그 작품을 읽은 후론 아예 마음 속을 아프게 헤집고, 뒤이어 읽는 작품마다 하나같이 마음에 들어온다. 이 책 역시 서정적이고 겸손한 마음이 그득 배어 있다.

혹자는 겸손이 최고의 미덕이라던데, 한수산에 이르러선 겸손은 최고의 매력이다.

겸손 말고도 그의 매력은 무궁무진한데, 그 중 제일은 니코스 카찬차키스와 다자이 오사무를 향한 극한 애정. 괜한 공감대를 발견하곤 매력지수 급상승이다. 카찬차키스의 빛나는 문장과, 다자이 오사무를 찾아 떠나는 여행기는 그래서 더 고맙다. 두 대작가가 한수산에게 미친 영향도 영향이겠지만, 한수산의 글을 읽다 보면 두 대작가도 한수산에게 어느 정도는 고마워해야 할 듯하다. 비단결 같은 서정의 눈물방울로 묘사해 줬는데 고맙다고 꾸벅 한 번 인사하는 게 대순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