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소설로 그린 자화상 2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199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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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TV에서 이 책을 읽자 읽자 또 읽자 외칠 때는 기어코 읽지 않다가, 이제서야 신촌의 "숨어있는 책"에서 골라들고 나왔다. 가장 좋은 소설은 쉼 없이 읽히면서도 발끝으로 꼿꼿하게 선 느낌을 주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참으로 좋구나.

고백하건대 가끔은, 격동의 세월을 보낸 대작가들이 부러워질 때가 있다. 6.25, 일제강점기, 민주화운동 등등이랄까. 고되고 고된 인고의 세월이었겠지만 소설의 소재를 온몸으로 체득했을 것 아닌가. 내가 겪은 일은 IMF가 고작인데다가 그마저도 솔직히 나에겐 피부로 느껴지진 않았다. 더 최근 들어서는 취업난이 문제일까? 88만원 세대? 흠. 아무래도 이건 대작가들의 경험에 비하면 조족지혈 느낌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사죄하며 고백하건대 나는 대작가들의 쓰린 경험이 무례하게도 가끔은 부럽다.

박완서 작가의 많은 책들도 이런 경험이 소중한 밑천이 된 경우가 많다. 특히나 싱아는 그런 면에서 최정점이다!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그 밑천들이 주루룩 쏟아져 나오는데 이건 아예 회오리바람, 돌풍, 허리케인 급이다. 큰 어려움 없이 살아갈, 아직은 어린 이들에게 이 책을 꼭 권해주고 싶다. 인생을 알아봐라 요것들아. 나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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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소설로 그린 자화상 2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1995년 12월
구판절판


서울 아이들은 소나기가 하늘에서 오는 줄 알겠지만 우리는 저만치 앞벌에서 소나기가 군대처럼 쳐들어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우리가 노는 곳은 햇빛이 쨍쨍하건만 앞벌에 짙은 그림자가 짐과 동시에 소나기의 장막이 우리를 향해 쳐들어오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27쪽

반찬 하나 안 남기고 깨끗이 먹어 치운 상을 보고 물장수 상이라고 말하는 걸 요새도 흔히 듣게 되는데, 그런 비유가 물장수는 워낙 먹성이 좋은 데서 유래된 건지, 먹다 남은 걸 다 싸 가지고 가던 관습에서 유래된 건지, 별것도 아닌 걸 궁금해하는 버릇이 있다. 그거야말로 나의 가장 현저동 출신다운 의문인지도 모르겠다.-70쪽

이광수의 <단종애사>-1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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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 낱말편 1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
김경원.김철호 지음, 최진혁 그림 / 유토피아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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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은 화장실에 두고 짬날 때마다 읽기 제격이다. 폄하하는 게 아니라, 한 번에 좌악 읽어내리기 보다는 하루에 한 챕터씩 야금야금 흡수하는 재미가 여간 아니라는 얘기다. 삽화가 유치한 것 같아도 이해가 한 번에 싹~ 되는 것 또한 즐겁다. 가끔 이렇게 큰 그림 있으면 책 읽는 진도가 빨라지니 뿌듯함도 느끼게 되고, 한 권 독파하고 나면 글이 좋아지고 생각이 깊어진다니, 이 아니 좋을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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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테의 수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2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문현미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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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많은 인간들이 살고 있지만, 얼굴은 그것보다 훨씬 더 많다. 누구나가 여러 가지의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12쪽

아, 그러나 사람이 젊어서 시를 쓰게 되면, 훌륭한 시를 쓸 수 없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때가 오기까지 기다려야 하고 한평생,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의미와 감미를 모아야 한다. 그러면 아주 마지막에 열 줄의 성공한 시행을 쓸 수 있을 거다. 시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감정이 아니고(사실 감정은 일찍부터 가질 수 있는 거다), 경험이기 때문이다.-26쪽

<국립 도서관에서>
나는 여기 앉아서 한 시인의 작품을 읽고 있다. 열람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을 느낄 수 없다. 그들은 책에 몰두해 있다. 그러면서 마치 잠을 자다가 두 개의 꿈 사이에서 몸을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듯 책의 쪽수 사이에서 몸을 뒤척인다. 아, 책 읽는 사람들 속에 있는 게 너무도 좋다. 왜 사람들은 늘 책을 읽을 때와 같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가까이 가서 그를 살짝 건드려보아라. 그는 조금도 그걸 느끼지 못하리라. 일어나면서 옆에 앉은 사람에게 살짝 부딪히고 사과를 해도, 목소리가 나는 쪽으로 얼굴을 돌려 고개를 끄덕이긴 하나, 상대를 보지는 못한다. 그의 머리카락은 잠자는 사람의 머리카락 모양과 같다. 그것을 보면 얼마나 기분이 좋아지는지. 그런데 나는 여기 앉아서 한 사람의 시인을 앞에 두고 있다. 이 무슨 운명인가. 지금 열람실 안에서는 대충 삼백 명의 사람들이 책을 읽고 있다. 그러나 이들 하나하나가 시인을 앞에 두고 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45-46쪽

운명은 여러 무늬와 형상을 고안해 내기를 좋아한다.-2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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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 왔다 - 2000년 제31회 동인문학상 수상작품집
이문구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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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에 들은 사투리 유머 하나. 충청도 사람들은 "보신탕 드실 줄 아세요?"를 어떻게 말할까? 정답은 "개혀?"

푸핫! 단 두 글자로 뭉근하게 물어보는 저 충청도 사람들이라니. 나도 태생이 충청도인지라 묘하게 일체감을 느낌과 동시에, 그들의 뛰어난 축약 스킬에 엉덩이가 번쩍일 정도로 놀랍기도 하고. 역시나 충청도의 힘인가? 전라도나 경상도 사투리와는 달리 의뭉스럽게, 끈덕지게, 먼 산 바라보며 하는 말투가 나는 꽤나 마음에 든다.

이문구는 충청도 토속어의 대가다. 그래서 혹자들은 그의 소설이 잘 안 읽힌다고도 하는데, 나는 오히려 한 템포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주는 그의 토속어 작렬 문체가 고맙다. 은근히 뒤끝이 있어서 생각의 여운도 깊다.

이윤기 작가는, 마감이 임박한 어느 날 우연치 않게 이문구의 이 소설을 집어들었다가 기어이 마감을 넘기고야 말았다고도 한다. 출판사 담당자와 통화를 하면서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를 펼치는 실수를 했노라 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그 담당자의 맞장구가 더 기막히다. "어쩌다 그런 실수를 했어요? 거기서 빠져나와 원고 쓰기는 틀렸네요?"

그러니까 결론은, 빠져나올 수 없는 실수를 경험해 보고 싶은 이라면 이 책을 집어들 것. 하지만 나는 역시나 '관촌수필'이 한 수 위라고 생각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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