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테의 수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2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문현미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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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많은 인간들이 살고 있지만, 얼굴은 그것보다 훨씬 더 많다. 누구나가 여러 가지의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12쪽

아, 그러나 사람이 젊어서 시를 쓰게 되면, 훌륭한 시를 쓸 수 없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때가 오기까지 기다려야 하고 한평생,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의미와 감미를 모아야 한다. 그러면 아주 마지막에 열 줄의 성공한 시행을 쓸 수 있을 거다. 시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감정이 아니고(사실 감정은 일찍부터 가질 수 있는 거다), 경험이기 때문이다.-26쪽

<국립 도서관에서>
나는 여기 앉아서 한 시인의 작품을 읽고 있다. 열람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을 느낄 수 없다. 그들은 책에 몰두해 있다. 그러면서 마치 잠을 자다가 두 개의 꿈 사이에서 몸을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듯 책의 쪽수 사이에서 몸을 뒤척인다. 아, 책 읽는 사람들 속에 있는 게 너무도 좋다. 왜 사람들은 늘 책을 읽을 때와 같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가까이 가서 그를 살짝 건드려보아라. 그는 조금도 그걸 느끼지 못하리라. 일어나면서 옆에 앉은 사람에게 살짝 부딪히고 사과를 해도, 목소리가 나는 쪽으로 얼굴을 돌려 고개를 끄덕이긴 하나, 상대를 보지는 못한다. 그의 머리카락은 잠자는 사람의 머리카락 모양과 같다. 그것을 보면 얼마나 기분이 좋아지는지. 그런데 나는 여기 앉아서 한 사람의 시인을 앞에 두고 있다. 이 무슨 운명인가. 지금 열람실 안에서는 대충 삼백 명의 사람들이 책을 읽고 있다. 그러나 이들 하나하나가 시인을 앞에 두고 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45-46쪽

운명은 여러 무늬와 형상을 고안해 내기를 좋아한다.-2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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