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사소한 일이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구나. 결국 산다는 일에는 사소한 게 없는 거구나 생각하기도 했다.-148쪽
굴레방다리에 지금도 있는 송림소아과에 가서 주사를 맞고도 울지 않았거나, 내가 착한 일을 했을 때 엄마는 가끔 나를 데리고 그 집에 가서 돈가스나 오므라이스를 사주곤 했다. 토마토 케첩을 뿌린 돈가스의 그 고소하고 파삭한 맛이라니. 우리 셋은 그 솔로몬 통닭집으로 가서 돈가스를 먹었다. 내가 콜라도 한 잔 얻어먹었음은 물론이었다. 형부가 될 그 남자가 전혀 칼질을 하지 못하는 바람에 봉순이 언니가 돈가스를 썰어 남자의 저비에 올려주었다. 그때 나는 보았다. 그 순간, 그러니까 봉순이 언니가 남자의 접시를 끌어당겨 고기를 썰어서는 다시 그에게 넘겨주는 그 순간, 남자의 얼굴이 붉어지고 그리고 목이 콱 메는 듯했던 것을, 그리고 또 전염이라도 되듯이 봉순이 언니의 얼굴 역시 붉어지고 둘 사이에 이전에는 없었던 그윽한 분위기가 흐르는 것을.-150쪽
"얘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아는 것이란다."-163쪽
호손의 공포소설 단편선을 읽었다는 얘기가 아니라, 읽다 보니 눈길을 못 떨쳐버리겠는, 무서운 구절이 있다. 인간의 정에 틈새를 만드는 것은 위험한 일인데, 그 틈새가 길고 넓게 벌어져서가 아니라 그 틈새가 곧 다시 닫혀버리기 때문이라는 말. 이게 정말 맞는 말이기 때문에 무섭다. 참, 내가 산 책은 '나사니엘 호손 단편선'이 아니라 '너새니얼 호손 단편선'. 아마도 그 이전에는 '나다니엘 호손'이었겠지. 한글 맞춤법이 자주 바뀌어서 이 사람의 한글식 표기도 자주 바뀌는 건지, 아니면 역자가 바뀔 때마다 그의 가치관에 따라서 자주 바뀌는 건지 모르겠다. 대학 때 H교수가, 너새니얼 호손의 이름을 참 기가 막히게 발음했었는데. 그 분 지금 뭐하시나. 아직도 청바지 입고 다니시나.
인간의 정에 틈새를 만드는 것은 위험한 일이오. 그 틈새가 길고 넓게 벌어져서가 아니라 그 틈새가 곧 다시 닫혀버리기 때문이라오.-94쪽
외국에 있으면 마음속에 품었던 말은 결국 토해내게 마련이다.-69쪽
독일인이라는 사실보다는 20대라는 사실이 푸르미를더 잘 이해하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 내가 독일인이 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내가 그 사람의 나이가 되어보는 일은 시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가능한 일이니까.-89쪽
2008년 여름에 읽었던 책.
이런 책은 왠지 겨울보다는 여름에 어울린다. 김영하라는 이름에 무심결에 집어들었는데 그 재기발랄함에 더위를 잊었던 책. 극히 사실적인 이야기겠거니 하고 읽다보니 어머나 뒷부분은 어떤지 환타지.
김영하스러운 게 이것이었던가.
그런데 어쩌나. 나는 끝까지 이것이 "극히" 사실적이긴 희망했다. 하나의 장편소설이라기보다는 두 편의 중편을 읽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 내심 초지일관, 을 바랐던 건지도.